동시대반시대

새로운 가치 체계를 위해

- 박은선(리슨투더시티)

모래내

얼마 전 작업실을 연희동 근방 ‘모래내’ 라고 불리는 곳으로 이사갔다. 예쁜 이름이구나 생각하다 문득 모래내를 한문으로 바꾸어 보았더니 사천(沙川) , 우리나라 마지막 모래 강 ‘내성천’의 옛 이름과 같았다. 맑은 물, 끝없는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강 내성천과 같은 이름인 동네에서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모래내는 모래대신 콘크리트가, 맑은 물 대신 시궁창 냄새나는 물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이 더러운 개울도 개발 이전에는 맑은 물이었을테다.

자료를 찾아보니 추측했던 대로 모래내는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모래강 이었다. 그리고 모래내 바로 옆 동네 이름은 ‘가재울’ 인데 가재가 많은 개울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한다. 가재가 많은 맑은 개울을 떠올려본다. 가재는 1급수에만 사니까 그 개울은 맑고 차가운 물이 돌 사이사이 자갈 사이사이로 졸졸 흘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위엔 ‘가재울 뉴타운’이 자리 잡고 얼마 전부터 첫 입주자를 받기 시작했다. 비어있는 고층 아파트의 단지에 어디서 들여왔는지 알 수 없는 소나무들이 듬성 듬성 심겨있다. 이 익숙하고 건조한 풍경이 전에는 모래톱이 있는 강가였다니. 마치 그간 4대강 보존 운동을 하면서 보았던 풍경들이 종결된 모습을 보는 듯하였다.

사실 이것은 서울 전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니 전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것도 2-30년 안에 일어난 변화다. 한강은 드넓은 모래사장이 있는 맑은 강이었고, 지금 반포의 지명은 모래밭이 넓어 사평리라고 불렸다. 양화진은 버드나무 양자를 쓴다 버드나무가 많은 포구였고 뚝섬은 70년대 까지도 대중적인 강수욕장이 있던 곳이다. 여름이면 몇십만 운파가 몰려들어 강수욕을 즐겼던 한강의 모습은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한강의 변화는 70,80년대 주로 일어났지만 금강과 남한강 낙동강의 급격한 변화는 아주 최근의 일이다. 금강과 남한강 낙동강 모두 특정 부분을 제외 하고 1-2급수의 모래톱이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건강한 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4대강 공사 때문에 물고기가 죽는 썩은 물이 되어가고 있다. 4대강 공사 때문에 현재 남은 모래강은 내성천 하나 뿐이고, 그나마 마지막남은 모래강 마저 이제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성천에는 4대강공사의 핵심인 영주댐을 지금 건설중이기 때문인데 2014년에 완공되면 내성천 상류가 물에 잠기고 물줄기는 더이상 흐르지 못한다.

한강의 60년대

한강의 60년대

모래내- 내성천으로 이사

근래에 한 번의 큰 이사가 더 있었다. 조계사에서 거의 2년간 4대강과 내성천에 관련해 전시도 하고 모임도 하던 모래를 저번주에 지율스님 계시는 내성천 둑방에 옮겨 놨다. 그 뒤에는 지금 수백 대의 포클레인이 들어와 강을 헤집고 있다. 내성천을 기록하면서 지치거나 힘들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강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강을 걸으면 발가락 사이로 작은 모래알이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가끔 물고기들이 종아리를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특히 내성천 상류는 물이 어찌나 맑은지, 주변의 은사시 나무 숲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강에 있으면 지치거나 힘들기는 커녕 마음이 편안해지고는 했다.여러사람을 초대해 같이 걷던 내성천 상류와 그 주변의 산이 파헤쳐지는 것을 보면 낙동강 본류가 파헤쳐진 것을 본것과 또 다르게 마음이 힘들다. 이렇게 아름다운곳이 무너지리라 상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성천에서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다. 정규 미술교육을 오래 받았고 그림도 오래그렸고, 미적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들을 많이 보고 다녔지만 내성천이 만드는 풍경은 여지껏 본 어떤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아름다움이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강에서 느낀 미학적 체험으로 강의 소중함을 표현하기 보다는 경제적 과학적인 언어로 표현해주기를 원했다. 나는 그 프레임이 되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강을 우리 주변의 여러 인프라 중 하나일 뿐인 무엇으로 평면화 시킨다고 생각한다. 강은 수돗물과 다르다.

몇 달 전 한 미술기관에서 인류학을 하는 어떤 분과 토론할 일이 있었는데 내성천에 대해 설명할 때 아름답다는 말을 했더니, 아름답다 소중하다는 말 말고 과학적으로 설명을 해보라고 나에게 권유를 했다. 자기도 여러 운동을 해봤는데 그런 것들은 차라리 경제적 수치와 과학적 설명을 해야 된다면서 나름 충고를 해준 것이었다. 4대강 운동이나 생명운동이 이런 경제의 프레임으로, 이미 우리가 쓰고 있는 익숙한 방법 안에서 언어를 만들어낸다면 결국 강이란 것도 시민사회를 지속하는 부속일 뿐이다.

푸코는 ‘생명관리장치의 탄생’에서 미국 신자유주의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비경제적부분도 경제 매커니즘으로 분석한다는데 있다고한다. 가족과 범죄 결혼 등 시민사회의 모든 분야를 말이다. “신자유주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시장의 경제적 형식을 일반화 하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전체 사회체 내에서 시장의 경제적 형식을 일반화시키는 것이고, 통상적으로는 통화의 교환을 경유한다거나 그것을 통해 승인된다거나 하는 일이 없는 사회체 전체에 이르기까지 그 형식을 일반화하는 것이다.”

경제 환원주의에 기반한 분석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강이 저 지경이 되었더라도 지금 이렇게 아파트도 생겼고 도로도 생겼으니 나쁘지 않네. 강이야 나중에 복원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 논리는 평창 올림픽을 위해 가리왕산의 천년 숲을 파헤치면서 나중에 복원하겠다는 삼성의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경제로 환원 되어서는 안될 사람의 목숨, 산, 강 같은 것들은 절대적 가치로 남겨두어야 한다. 절대적 가치의 붕괴가 지금 우리가 맞이한 위기이다. 강을 파헤치면 기회비용이 많이 들기때문에 훼손시키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강은 강이기 때문에, 내성천은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건드려서는 안된다.

최근에 세계에 천 마리 밖에 남지 않은 천연기념물 먹황새가 다시 내성천을 찾았다. 내 후년 댐이 완공되어 물이 흐르지 않으면 먹황새가 앉을 곳을 찾지 못하고 굶어 죽을 수도 영영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새가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살 수 없다. 내성천을 후대가 볼 수 있게 하려면 우리는 환원 불가능한 가치들에 대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내성천 모래강
www.naeseong.org

내성천 전 후

내성천 전 후

응답 2개

  1. 국민대 귀요미말하길

    존경스럽습니다.
    교수님 멋져요 짱!

  2. 새벽말하길

    무지하고 이기적인 인간들로 인해 상처받고 있는 자연과 모든 생물들에게 미안합니다..
    4대강 사업에 관련된 기사와 사진들을 보며 분노와 죄책감, 미안함을 느끼다가도 일상 속에서는 어느새 슬며시 그 감정들은 덮어버리고 마는 스스로를 보며 또 다른 분노와 죄책감에 마음이 아파오며 화가 납니다. T- T
    그래서 지율스님이나 리슨투더시티 그룹 분들처럼 자연의 목소리를 내주시는 분들께 더없이 감사함을 느낍니다.
    저는, 우리는, 각자가 어떤 노력하면 우리의 자연을 지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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