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종교 탄생을 이야기 할 때 역사학자들은 공포가 신을 만들었다고 이야기 한다. 자연재해, 무서운 짐승들에 대한 공포로 인해 사람들은 신을 모시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두려움이 부족 모두가 인정하는 하나의 신으로 바뀌기에는 단순히 공포만으로는 무언가 고리가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빠진 고리를 찾기 위해선 우선 신이 먼저인지 주술사가 먼저인지에 대한 질문부터 던지고자 한다. 즉 어떤 종교가 생겨났기 때문에 그에 맞는 주술사가 생긴 걸까? 아니면 주술사가 생기고 나서 그 주술사가 말하는 대로 따라한 것이 종교일까?
이 부분은 마치 닭과 달걀과 같아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증명을 하긴 힘들지만, 우회로를 통해볼 순 있다.
척박한 곳의 종교
척박한 땅의 종교라면 가장 대표적으로는 이슬람이 있지만, 이슬람은 고대 종교가 아니므로 잠시 접어두기로 하겠다. 이슬람 다음으로 유명한 것이라면, 북유럽의 토르, 오딘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토르와 오딘의 모습은 그리스 신들과 다르게 무척 사납고, 떠받들어야 하며, 아주 강한 형상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이런 신의 모습과 종교적인 모습은 척박한 땅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슬람 역시 사막에서 생겨났으니까.
왜 그런가 하면, 살기 힘들수록 의지할 곳을 찾는 게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순한 의지가 아니라 완전히 몸과 마음을 맡길 어떤 곳을 말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원하던 모습이 나타난다. 바위를 들고,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던가, 혹은 번개와 폭풍을 부르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물론 여기에는 과장과 뻥이 무수히 버무려져 있지만, 일단 사람들 눈에 그렇게만 보이면 그걸 진짜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상관없다. 즉 호랑이와 1:1로 싸워서 이기기만 해도 이제 사람들이 알아서 적당히 각색을 해줄 것이고, 혹은 본인이 직접 힘을 동원해서 믿도록 강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번개와 폭풍을 부르는 사람이 되는 법은, 굳이 그걸 부를 필요는 없다. 단지 언제 오는지만 알고 있어도 사람들 눈에는 번개와 폭풍을 부르는 것처럼 보이기엔 충분하다.
이런 모습들은 역사에도 조금 남아있다. 삼국지에선 제갈 공명이 바람의 방향을 바꿔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장비가 80키로짜리 창을 휘두른다. 여기에 과장이 섞였겠지만 적어도 제갈 공명이 자연의 흐름을 읽을 줄 알던 것과, 장비가 상상을 뛰어넘는 힘을 가진 것은 분명 사실이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 사이에 믿으라는 강요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부채에 나오는 티브 족 이야기, 인육 부채 이야기를 보면 은근한 강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강요가 설령 할아버지가 손주를 무릎에 앉혀놓고 매일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해도 말이다.
기름진 곳의 종교.
위와 다르게, 농사가 되고 물도 많은 기름진 땅에서 생긴 종교는 좀 많이 다른 모습을 띈다. 우선 위와 다르게 절대 복종을 강요하진 않고, 무척 따스한 신들이 나온다. 우리나라에 삼신할머니나, 집을 지킨다는 문왕신, 조왕신, 측신, 성주신….. 과 같은 수호신들이 나온다. 또한 한 가지 특징은 여신들이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남신들에게 밀려서 역할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분명 여신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는 있었다. 그건 아마 각 부족마다 있는 대모의 모습이 변한 걸 수도 있고, 인구는 적은데 할일이 많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의 지위가 높아서일 수도 있다. 혹은 정말로 어머니에 대한 부채감이 여신들을 낳았던가. 어떻든 여신들이 지배하던 세상은 평화로웠고, 폭력이 끼어들어서 신을 만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기름진 곳에 살다보면 기술이 발전하고, 인구도 늘어난다. 그러면 전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승리자는 ‘신’이 된다. 파라오는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가 스스로를 신과 동격이라고 말함으로써 신이 되었고, 환웅도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 되었다.
이렇게 정복자가 신이 되며, 이런 곳들도 ‘강한 신’을 믿게 되었다. 원래 세상을 지배하던 여신들은 뒤로 밀려나고, 가부장이 등장했다.
특히 여신들이 밀려나고 가부장이 등장한 부분이 중요하다. 원래 삼신할머니는 한반도를 지배하던 시조신이었는데, 어느 순간 출산이나 도와주는 신으로 변해있고, 분명 시조신이었을 웅녀나 그리스 가이아 역시 애만 낳고 사라진다.
이런 부분들은 남자들이 그 당시 여자들에게 강요한 모습과 똑같다. 물론 여기에는 애를 낳는 일이 예전처럼 중요해지지 않아 생긴 시대적 문제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일이 전쟁이 한창 벌어지거나 벌어지고 나서 생긴 일이라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에 구체적인 근거는 없지만, 지금 우리가 고대신이라 부르는 것 중 기름진 곳의 신들은 거의 대부분 정복전쟁이 왕성하게 일어날 때나 정복전쟁이 끝난 다음 나타났다. 초대 파라오가 그랬고, 환웅도 나타나서는 곰신을 모시는 부족과 호랑이 신을 모시는 부족을 정복한 다음 할일 많았을 곰신을 애만 낳고 사라지는 존재로 만들지 않았나.
고대 종교가 끼친 영향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회가 신을 만들었다고 해놓고선 종교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알아본다는 것은 좀 생뚱맞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종교가 사회에 다시 영향을 미쳤다. 이런 일들은 바로 ‘강한 사람들’ 즉 고대 사회에 계급에 높은 사람들이 신을 다룸으로써 일어난 일들이다.
종교와 권력의 관계
종교가 어마어마한 권력이 된다는 것에는 반론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는 정치권력, 그리고 소위 총부리에서 나오는 권력과는 많이 다르다. 총부리에서 나오는 권력은 총이 녹스는 순간 사라진다. 정치권력은 늘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떻든 들어야 한다.
하지만 종교는 조금 다르다. 일단 자리만 잡으면, 노력이 딱히 없어도, 딱히 약자를 배려하지 않아도 종교의 힘은 유지가 된다. 이것이 정치권력과 비슷하게 바뀌면 또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만, 그래도 종교가 가진 특유의 힘, 즉 강한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계속 노력을 한다. 사람들이 계속 종교를 자기 입맛에 맞는 데로 믿을 필요가 있으므로. 그래서 교리도 바뀌고, 신화도 무수히 바뀌어 왔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바뀐 신화’는 바로 고조선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조선을 끌어들인 첫 번째 나라는 다름 아닌 고구려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옛 영광을 되찾겠다며 정복전쟁을 정당화 했고, 스스로를 단군의 아들 해부루(부여의 시조)의 피를 이은 사람이라 말함으로써 당시 커다란 나라였던 부여를 통치할 정당성을 가져왔다.
그리고 고구려가 무너진 다음, 다시 단군과 기자를 끌어들인 건 다름 아닌 고려였다.
왜 굳이 고려가? 그건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고 나서 삼국은 원래 고조선에서 흩어져 나온 우리 삼국은 원래 하나였다. 라고 말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야지만 정복에도 정당성이 있다.
그리고 이 단군과 기자의 위치도 끊임없이 바뀐다. 어느 때는 단군이, 어느 때는 기자가 더 높았다. 이것은 바로 외교와 관련이 있다. 중국을 상국으로 모시려 했던 왕들은 모두 중국 출신 기자를 더 높은 왕으로 쳤고, 중국과 동등해 지려고 한 왕들은 모두 단군을 높게 모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외교술을 정당화 했던 것이다.
또한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모두 불교를 들여온데 역시 정치적 이유가 있다. 왕의 자리에 올라와 보니, 토착 세력을 굴복시키지 못해 왕이 별로 힘이 없었다. 그리고 이 토착 세력은 무당 세력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불교를 들여옴으로써, 무당 세력을 약하게 만들고, 토착 세력의 힘을 빼앗으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시도는 성공했다.
그밖에 일일이 예를 들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권력에 의해 신화가 바뀌고, 그것이 세상에 다시 영향을 미친 일들은 무수히 많이 일어났다. 조금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경제학자들 역시 완전한 자유시장 신화나 물물교환 신화를 주장했고, 그것은 엄청난 세상을 만들어내었다.
종교와 경제의 관계
그리고 종교는 늘 경제를 휘어잡았다. 물론 종교의 힘이 약할 때는 이야기가 다르지만 중국의 불교, 인도의 힌두교, 유럽의 기독교, 중부의 이슬람. 그밖에 고대 종교 역시 대부분 종교 중심으로 경제가 굴러갔다. 단지 조금 큰 예외라면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신 중심으로 굴러가진 않았지만, 황제가 최고 제사장 역할도 했으므로 완전히 신과 동떨어졌다고 하기는 힘들다.
중요한 건 종교가 경제를 휘어잡아서 뭘 만드냐는 점이다. 거의 대부분, 종교는 결과적으로 노예를 만들었다. 그것이 채무노예든, 부채노예든, 아니면 노예는 아니어도 이집트처럼 노예나 다름없이 살아가는 식이었다. 특히 고대 종교는 노예제도를 딱히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빚을 갚는 것이 도덕이라고 이야기 하며 빌려준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이런 부분은 어쩔 수 없었던 게, 빌려준 사람들이 바로 신을 만든 사람들, 즉 주술사들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