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공부하고, 놀고, 이야기하자 (2)

- 박카스(수유너머R)

2. 사건 속으로

공*놀*이 모임이 3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덤쌤이 공부 모임이 있던 날 세미나실에서 4대강사업으로 두물머리 유기농농지 행정대집행을 하는 것에 대한 탄원서를 쓰고 있었다. ‘참, 무슨 이 놈의 정부는 농사에 맺힌 것이 있나. 농사 짓는 곳 비껴가서 자전거도로를 만들라고 해도 말이 안 통하네. 왜 그러지. 농사를 떠올리면 막 못 참겠는 건가? 농사는 아주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나? 아 참내. 농사에 뭐 맺힌 거 있나봐.’
이전에 빈집에 살았던, 사는 친구들을 따라 몇 번 다녀온 적 있는 두물머리에 행정대집행이 이루어진다는 소식이었다. 덤쌤이 들고 온 탄원서를 보고 친구들과도 두물머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탄원서라는 말에 친구들이 조금 겁을 먹지 않을까 싶어 ‘탄원서란 말이죠, 법원에다가 이런 억울한 사정이 있다고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친구들에 대한 재판에 글을 보내는 거예요. 나도.. 몇 번.. ’ 말을 해나가는 도중에 오름이가 말한다.

오름 : 예, 이거요. 써 봤어요. 지역에서는요. 자주 있는 일이예요. 논, 밭이 자주 없어지거든요. 살던 사람들도 많이 쫓겨나고요. 전교조 선생님들이 나서서 시위도 하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한 번은 선생님 잡혀가고 애들은 선생님 풀어달라고 탄원서 쓰고 했어요. 이거 써봤어요.

규현 : 소농들에게는 주변에서 법 가지고는 살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잘 일어나거든요. 저도 집 근처의 산들에 골프장이 만들어지려고 해서 마을 분들이 반대한 적이 있었어요.

두물머리에서 가서 민환형님을 만나고 직접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물머리에 종종 가봐야겠다고 생각도 들었지만 친구들의 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두물머리에 자주는 못가도 발걸음을 했다. 한 번은 공*놀*이 친구들과 함께 두물머리를 찾았다. 낮에는 밭전위원회 사무실공간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고 감상을 함께 나누고 밤에는 D누나와 두물머리의 싸움의 시작부터 함께했던 S가수에게 그간의 상황들을 들었다. 말수가 많은 이들은 아니었지만 그간의 시도들에 대해 들으며, 내가 받았던 어떤 힘 만큼이나 친구들에게도 무엇이 전해진 듯 했다. 규현군은 ‘정말 두물머리에 와 보길 잘한 것 같아요. 두물머리에 와서 책만 보고 갔으면 허무하다 싶을 수도 있었는데 D누나를 만나서 너무 좋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나는 나지막히 ‘책만 보고 갈 수도 있지! 그리고 밭도 봤잖아!’ 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D누나의 어떤 말이 좋았어요?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규현군은 ‘오우, 저 분(D누나)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네요. 또 제가 구상하는 소설의 한 인물에 강한 영감을 주셨어요.’라는 말을 했다. 나는 ‘대한민국이요? 역사요? 소설?’하며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모임이 한참 진행되어 그리스 비극작품을 읽을 때쯤 수유너머 위클리에서 밀양에 관련된 원고들을 보았다. 그런 와중 이계삼쌤이 빈집에 오셔서 함께 ‘밀양의 전쟁’ 을 보고 밀양의 시급한 상황을 들려주시기도 했다. 답답하고 머리가 지끈해서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밀양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밀양에서는 그 동안 읽은 그리스 비극의 아가멤논을 밀양의 상황으로 재구성하여 쓴 대본을 가지고 연극을 올리기로 했다. 친구들은 모두 처음 하는 연극에 약간의 긴장을 하기도 했지만, 수경이가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을 하자 다들 ‘한번 해 볼까?’라고 하며 마음을 돌렸다.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밀양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밀양의 사연에 깊이 알 기회는 적었다. 오히려 연극을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 더 많은 ‘말’과 ‘상황’들을 전할 수 있었다. 연극연습은 제주도에 사는 성학군 집에서 1박 2일 동안 진행되었다. 우선 대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대본에 대한 이야기 역시 질문을 마다하지 않는 능력이 있는, 규현군과의 대결이^^ 주를 이루었다.

규현 : 이 대본은 너무 파편적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사건들이 연결에 있어 필연성이 떨어지고요. 특히 이 문제가 핵전쟁에 대한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지, 밀양에 송전탑을 설치하는 것의 문제인지가 명확하지 않아 사람들이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구요.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이것이 어떤 부분에서 왜 하는 건지가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단 말이죠.

박카스 : 네, 맞아요. 쓴 대본은 이치우 열사로 대신되는 한 인물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 인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아요. 아가멤논을 보면 함께 이야기하기도 한 건데요. 나는 그리스 비극을 볼 때 잔혹한 행위조차 죄나 슬픔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여러 힘들 속에서 발현되는 힘으로 혹은 운명애로 말하는 그리스 비극 형식에 관심이 있어요. 죄 혹은 광기라고 불릴 말한 행위조차 그것들을 둘러싼 힘임을 긍정하며, 삶을 놀이로 삼았던 그리스 정신을 좋아하고요. 그 연극형식을 빌려 밀양의 사건에 맞춰서 써본 거예요. 그래서 연극은 하나의 이야기로 흐른다기보다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상황과 의지들이 드러나있죠.

규현 : 그리고, 여기 과거들이 들어간 부분은 좋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건 어떻게 들어가게 된 것이죠?

박카스 : 네.. 아가멤논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대사를 보면 자신의 행위가 그 이전에 과거, 또 과거의 누군가의 행위를 대신하고 있다고 하듯이 지금 여기 밀양의 싸우는 분들도 4대강 사업으로 농토를 빼앗길 위기에 처했던 두물머리의 상황에 놓였던 분과 대추리에서 미군기지의 설치로 농토를 잃고 쫓겨났던 분들과 멀게는 신대륙을 차지하려고 그곳에 살고 있던 땅을 빼앗은 지금의 아메리카인들에 대항했던 인디언들의 상황과 겹쳐보였어요. 개발과 발전에 대한 망상과 야욕에 삶의 공동체가 파괴되는 현실들이요. 그래서 그 이전의 사람들이 겪었던 싸움에서 부딪혔던 과정들, 싸우는 도중 외쳤던 말들, 자신들의 공동체와 삶을 지키고자 했던 마음을 지금 싸우고 있는 밀양 분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규현 : 그래도 핵전쟁에 대한 위협과 우리나라가 원전수출을 하려고 발 벗고 나서는 부분, 지금 밀양간의 연결은 좀 부드럽게, 재밌게 연결하고 싶은데요.

박카스 : 오! 어떻게요. 그래, 내가 너무 유머 없이 쓴 부분이 있죠.

규현 :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제 대사는.. 이렇게…

(…)

오름 : 여기 이치우열사와 용역들이 부딪히는 장면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이건 겪은 사람이.. 알 수 있지.. 어떤 상황들이 이 분을 힘들게 만들었을까요?

박카스 : ‘밀양의 전쟁’ 영상을 한 번 봅시다. 직접 겪거나, 같은 상황은 아니어도, 어떤 상황에 들어가 함께 하면서 여기에 문제가 발생한 삶을 알아가고, 그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전할 때 발견되는 것들이 있어요. (…)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한전직원들이 나무를 베면서 자기들도 급한 상황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게 먹고 사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여기 어르신들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니예요. 근데 이해는 가지만 용서는 안 되는 상황이죠. 누군가의 삶과 터전을 뿌리뽑으면서 자신들은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이니까요.

(…)

수경 : 여기 야마시타 박사 대사 있잖아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후쿠시마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다. 위기는 기회다. 이것은 최대의 기회다. 야, 후쿠시마, 자네는 아무런 수고도 들이지 않고 유명해졌구나.’ 이 사람은 과학자인데, 말이 이상하기도 하고, 대사도 너무 많아요.

박카스 : 사실 이 사람 실제있는 사람이고, 그대로 한 말을 따온 대사예요. 후쿠시마 핵 유출에 대해서 시민들의 반핵반응을 무마시키고 싶었겠죠. 과학자라는 이름을 빌려서요. 그래서 핵 유출의 영향 뿐 아니라 핵 유출이 경제적 극복의 가능성이라는 연구 결과 아닌 말까지 하고 있어요.
(…)

대본은 애시당초 내가 쓴 것에서 짜임새와 연출의 형태가 조금 바뀌었다. 토론과정에서는 ‘내가 이걸 얼마나 고민하고 썼는데.’ 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친구들의 말에 분명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었고 배우와 연출이 따로 없고 함께 상황에 대해 알아가고 표현하는 연극을 만들고 싶었다. (- 이 부분을 공*놀*이 친구들에게 읽어주자 친구들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공연은 수요일 저녁 집회 시간에 하기로 했다. 집회가 있기 전날 친구들과 함께 오전에는 깻잎을 따는 농활을 했고, 오후에는 농성장에서 잠을 잤다. 농성장에 향하며 꽤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했다. 올라가는 도중에는 농성장 지킴이를 해오고 계신 올해 80이 넘으신 할아버님의 말씀을 듣기도 했다.

“그러니까 여기 산이 대부분 밤나무들로 이루어져있어. 여기서 할머니들은 밤을 따서 서울에 자식들한테 밤도 보내주고, 그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밤나무들이 그냥은 잘 자라지를 못해. 여름에 헬기로다가 약을 치기는 하는데 그 약은 벌레가 들어먹지 않도록 하는 거거든. 그런데 그건 밤 껍질 안으로 들어가는 건 아니라서 몸에 해롭지는 않아. 벌레가 꼬이지 않도록 하는 거지. 뭐 환경오염이 문제라면 또 그럴 수 있지만, 여기 할머니들은 그걸 따다가 사는 경우가 있어. 그런데 송전탑이 들어서면 헬기도 못 지나가고 밤도 못 따지. 그럼 뭘 어떻게 먹고 살아야하나 참..
(…)

그렇게 30분 정도를 걸어올라가 농성장에 도착했다. 나이가 7,80되시는 어르신들이 일주일에 3일씩 3교대로 이 가파른 곳을 오르고 계셨다. 그러면서 ‘학생들 힘들지.’ 하면서 오르다 보면 좀 적응되는데 하고 오히려 걱정을 해주셨다. 농성장에서 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반찬과 밥, 라면을 끓여먹고, 모닥불을 피우고, 이야기를 나누다 잠을 잤다. 교대로 잠을 자며, 새벽까지는 나와 오름, 수경이가 농성장 주위를 지키기로 했고, 새벽부터는 규현이와 성학이가 농성장 주위를 지키기로 했다. 엄격한 지킴이들은 아니었지만 무사히 밤을 보냈고, 다음 날 농성장으로 올라오는 다른 조 할머님들을 맞이했다. 할머님들이 풀어놓으시는 이야기 보따리에 이불에 손 넣고 앉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와.. 학생들이네. 학생들 어디서 왔어요?
(네, 무주, 진안, 장수, 제주, 서울 서요..)

얼마 전에 ** 할머니 댁에서 제사가 안 있었습니까? 와 저 할매. 진짜 산적 잘 저미대요. 80먹은 할매가 산적을 얇게 저미는 게 기가 막히다 안 합니까. 가기 전에 산적 저미는 기술 알려주고 가야합니다. 어찌 인물도 이렇게 좋은데 산적도 그렇게 잘 저미는지.

야야. 나 저깄다. 붕붕 날라간다. 날라가.

이거이 문디. 얼굴이 이라믄 나는 산적도 못 할 줄 아나! 나도 잘 한다!
아니, 그게 다르다니까요! 얄~~팍하니!

(…)

담배피는 사람, 술먹는 사람은 따로 조 편성해서 붙여놓던지 해야한다. 아님 따로 자는 곳을 만들어놓던가 해야지. 아우, 같이 못 잔다.

2조는 고기를 몇 번이나 먹고 치우질 않고 가네. 여기 물이 귀한데 잘 닦이지도 않는 걸.
그러게! 남겨놓지는 못해도 그릇은 씻고 가야지!

누구누구 신랑, 신부 같이 올라와 둘이 지내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에고에고. 그라믄 안 된다. 여기서. 그라믄. 안 된다.
와 그라믄. 교대도 좀 더 밀리고 좋다 아입니까.
둘이 올라와 싸워도 곤란하다. 혼자 냅두고 내려가믄 무서워서 어째.
설마. 혼자 냅두고 가겠습니까?
가는 사람있다. 분명!

이제 추워지는 데 어떻한데. 와! 돌을 가져다 올라와 구들장을 만든다 안합니까. 뭐 여기를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다는 말도 있긴 했는데… 좀 따숩게 지내자! 한 두 번 올라올끼가! 몇 달을 달달 떨어가며 할끼라고?
우선 기다려봐라. 청년들이 뭘 하겠다고 하지 않냐. 그러면 뭐라고 하면 안 된다. 가만히 기다려라. 젤로 움직일 사람들한테 이거해라. 뭐해라. 하면 안 된다. 있어봐라. 청년들이 구들장 만들끼다.

근데 구들장 여 만들면 여기서 돈 벌려는 사람 생기는 거 아니가.
누가! 누가 여까지 올라와서 돈 벌라 하는데?
(…)

한전에서 김**이 넘어간 사람들한테는 추석 때 소고기를 다 돌렸다카드라. 또 회장 집에도 소고기가 날라왔다고 하더라. 받으면 안 된다! 그거. 우리 회장은 그거 사진찍고, 돌려보냈다 카드라. 잘했다. 잘했어!
(…)

학생들 밤하고 요거는 솔잎쪄서 만든 떡이예요. 먹어요. 먹어. 하루 지내니 지낼 만은 하지요? 학생들 온 줄 알았으면 먹을 것 좀 더 가지고 올 껄.

그렇게 할머님들이 간식으로 가져오신 떡을 먹고, 올라오며 주워오신 밤을 쪄서 주시는 것을 받아 산을 내려왔다. 버스를 기다리며 마을 분들은 농성장에서 내려오는 젊은이들이 기특한지 말을 건내오셨다.

버스기다리나? 곧 온다. 2시간씩 있다가 오는데 잘 맞춰 내려왔네. 사람들이 줄어가지고 버스도 많이 끊겼거든. 버스가 끊기니까 들어올 사람들도 더 못 들어오고… (…) 내가 80이 다 됐거든. 나도 산에 올라가다가 이제 몸이 도통 안 좋아서 못 올라가. 미안허지. 수고했네. 수고했어. (…) 내가 지금 우체국가거든. 여기 밭 판돈 증명서 띠러. 자식이 버스 운전을 하는데 그만 사람을 부딪켰나봐. 손주가 둘인데 대학 등록금은 내야하는데… 땅 값이 뭐 어따 갔다가 쓰겠냐만 싶어도… 나는 뭐 어떻게 살겠지만 싶어도… 이제 키울 밭도 없다. 뭐 먹고 살지도 모르겠고, (…) 동네 사는 노인들 모여 사는 재미도 없으면 뭐.. 우야라고… 살아있는게 잘못이지. 잘못. (…) 잘들 가고.. 잘들가. 우리는 여 지킬테니까.. 올라가서 사람들한테 알려주는거 부탁허고.

다음 날 수요집회에서 밀양의 송전탑 건설 문제를 공부하며 만든 연극을 공연하고, 촛불 집회에서 밀양 분들의 소식을 듣고 다음 날 우리는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한 할머니왈, ‘이거 정류장에 부탁해.’ 본인은 집으로 돌아간다. 기사아저씨왈, ‘또! 아이, 귀찮게. 참.’

한 할머니왈, ‘이거 정류장에 부탁해.’ 본인은 집으로 돌아간다. 기사아저씨왈, ‘또! 아이, 귀찮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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