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공부하고, 놀고, 이야기하자 (3)

- 박카스(수유너머R)

3. 집으로, 집들로!

친구들이 사는 집으로 떠났다. 공부모임의 중간즈음 쉬는 시간을 가질 겸 산하 집으로 놀러가게 됐는데 그 이후로는 수유너머R 연구실이 아니라 아예 지역의 친구들 집에 모여 공부하고 잠까지 자고 다음 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잠자리로의 이동이 편했던 점이 있었고, 공놀이 모임하는 친구들은 오래간만에 다른 가정의 식구들을 만난다는 기쁨이 있어보였다. 또 친구들과, 친구들 부모님들과 차를 마시고, 밥을 같이 먹고, 말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진안에 사는 산하네 집은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옥수수 밭과 논밭을 거쳐 들어가야했다. 산하에게 올해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라고 하는 데 바로 이해가 갔다.^^ 그래도 풍경이 좋아, 산과 밭과 함께하는 것이 좋지 않냐고 물으니 산하는 ‘매일 봐서 뭐..’라고 한다. 풀들이 널린 논밭들 사이로 산장 속 별장 같은 공간이 등장했다. ‘우와’ 집에 들어가자마자 놀랐다. 서재에, 영화를 볼 수 있는 넓은 방에, 마당에,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넓은 거실까지! 여기서는 영화 보고, 여기서는 세미나 실로 쓰고, 여기는 강의실, 여기는 요가방 내지 신체 훈련장. 정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정말 이곳은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공부하고 놀며 지내기에 훌륭한 공간이었다. 한편, 모인 날은 산하의 동생 생일이었는데 가정 연대의 다른 가정의 친구들이 놀러와 한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음식을 나눠먹고, 정성이 담긴 선물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산하 아버님은 ‘도깨비 빤쓰’ 라는 문화작업공간을 만들고 계셨고, 산하 어머니는 방과 후 아이들과 함께 공부모임을 만들고 계셨다. 아버님은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요새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도대체 볼 수 가 없다.’며 토로하시기도 했다.

다음 날에는 수경이네 집에 들렀다. 수경이집은 올해 흙으로 새 집을 짓고 있는 상태였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직접 흙벽돌을 만들어 자기 손으로 자신들 살 집을 쌓아올렸다. 친교가 있는 목수의 도움을 빌려 함께 집을 짓는 경우도 있었지만 공놀이 모임 친구들의 경우에 집을 짓는 것은 누구나 겪어야하는 일련의 행사처럼 이야기되는 것이 신기했다.

그 다음 달에는 오름이네 집으로 갔다. 오름이에게 듣기로는 ‘집에서는 물도 흐르는 물을 가져다 쓰고, 냉장고도 쓰지 않고, 전기도 많이 쓰지 않고, 인터넷도 쓰지 않는다.’는 말만 들은 상태여서 ‘그럼, 도대체 어떻게 지낼 수 있는거지?’ 하고 호기심 반, 걱정 반 인 상태에서 집을 찾았다. 집에 도착해서 이틀을 머물렀는데 집에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냉장고예요.’ 하면서 밭을 보여주시는 오름이 어머님의 말에는 웃음이 넘쳤다. 오름이네 집은 50가지 작물을 재배하며 농사를 짓고 살아갔다. 한 살림에 키운 농작물들을 보내경제적으로 보태기도 했지만, 대부분 자신들이 먹고 싶은 작물들을 직접 키워 지내고 있었다. 집에서 쓰는 물도 밭과 연결되어있어 버리는 물이 농작물들로 연결되고, 또 먹는 물도 흐르는 물을 가져다 쓰도록 되어있었다. 기름기 있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먹지 않고, 세재도 될 수 있는 한 사용하지 않고 지냈다. 화장실에는 후라이팬과 볏짚, 소변을 받는 통이 놓여있었고, 이것들은 잘 모았다가 거름으로 쓰였다. 집 안의 보온은 적정기술을 이용한 대체에너지를 사용하여 쓰고 있었다. 직접 만든 아담한 흙집 다락방이 참 맘에 들었다. 밤에는 동네 어귀에서 풍물을 배우는 모임에 함께 했다. 동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 풍물을 함께 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풍물 구경에서 돌아와서는 오름이 부모님과 담소를 나눴다.

노동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아직까지도 노동자의 시각에서 회사의 이윤을 생각해야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내가 살고 싶은대로 이기적으로 사는 구석이 있어서 부모님이 고생을 좀 하셨죠. 천천히 가도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해요.
(…) 요새는 같이 사는 것이 참 공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식들도 참 내 공부가 되요. 이렇게 자식들과 주로 맞대고 살아서 그런지 저 행동이, 저 말이 다 나의 어떤 면인데.. 다시 보게 되서 깜짝 놀라게 되는 거예요. 또 저건 내가 끔찍이 싫어하는 내 어떤 모습이기도 했는데! 하면서 말이죠. 다시 보게 되요. 정말 공부거리와 함께 살아요.
(…) 이렇게 냉장고도 없이 전기도 줄이고, 세재도 줄이고 사는 것이요. 그것이 가져다주는 기쁨이 있어요. 물론 두려움도 가끔씩 있기 마련이지만, 명분만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무언가 살고 싶은대로 살아봤을때 찾아오는 것들이 있답니다.
(…) 아이들 억지로 키우려고 안해요. 사실 아이들은 항상 말을 걸고 있거든요. 필요한 것들을 항상 찾고요. 그렇게 지내다보면 스스로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 자립이라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자기들 살아보고 싶은 방식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서 서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또 도시에서 살고 싶으면 살아보는 거지요. 아이들이 자립하면 나는 부인하고 여기서 나귀타고 사는 것이 바램입니다.
(…)

공놀이 모임이 막바지에 접어들어 제주도의 성학이의 집에서 밀양 가기 전 준비모임을 가졌다. 성학이네 집은 성학이 부모님의 소개처럼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집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집을 만들 때 부터 가족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집을 만들까 함께 이야기하고 그 설계대로 가족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집이었다. 또 집 곳곳에서는 버려진 물건들을 새롭게 살림품으로 바꾸어놓은 것들이 많았다. 부엌에는 적정기술을 이용하여 직접 만든 난로와 대나무로 모양을 낸 뚫려있는 창, 자전거 발전기가 눈에 띄었다.

아침에 날이 밝고 보니 이곳은 재활용 전시회장과 같았다. 버려진 개수대를 이용하여 만든 생태화장실, 단열판과 버려진 냉장고로 만든 고추말리기는 기계, 그네 달린 정원, 버려진 수도꼭지들을 모아 밭 곳곳에서 물이 나오는 분수대들. 다시 살아난 사물들이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듯 하게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는 졸졸졸님과 함께 제주의 강정마을을 찾았다. 강정마을 근처에서는 졸졸졸님과 대화를 나눴다.

‘자립’이라는 것은 아무도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스스로 견디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자립은 스스로 만들어 쓸 수 있는 기술들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여기 밖에 없는 집들이 많이 만들어져야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설비 기술을 직접 익혀가며 만든 대체 에너지 기술, 가족들과 함께 만든 신문, 직접 가족들이 이야기하여 만든 공간, 비밀통로가 나있는 흙 집, 생태 화장실, 성학이의 나홀로 들판 살아보기 체험이야기, 친구들과 영화를 만든 경험담 등 교육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재밌게 잘 살기 위해 만나고, 만들어왔던 실천들이 참 소중하게 다가왔다.
‘여기 밖에 없는 집들이 많이 만들어져야한다고 생각을 해요.’ 라고 말한 졸졸졸님의 말은 이렇게 함께 사는 사람들이 바라는 방식대로 만들고, 살 수 있는 곳들이 늘어나야한다고 들렸다.
집집을 오가며 여러 기운을 받았다. 우선 살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것. 그리고 시도하고 실패도 해보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삶들이 주는 활기가 좋았다. 이렇게 7개월 남짓한 시간들을 공*놀*이 로 만난 인연으로 보고, 듣고, 이야기나누며, 울다, 웃다, ‘기뻐라’ 했다.

4. 공*놀*이 후일담

공*놀*이 마지막 모임날 무주에 모여 에세이 발표와 뒤풀이를 했다. 모임을 주선하신 규현군 어머님인 장영란님께서 책거리 가래떡을 선물로 내어주셨다. 친구들과 모여 막 뽑은 가래떡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떡볶이도 만들어 먹고, 준비한 에세이를 발표한 후, 밤이 되어 그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담소를 나눴다.

박카스 : 작년 여름, 무주 음악회에 놀러와서 처음 가정연대 모임을 알게 되었고, 이후 정현어머님과 연결이 되서 인문학공부모임을 만들었지요. 그리고 처음 니체! <도덕의 계보>를 같이 공부했죠.

* 니체, <도덕의 계보> 그 이후

박카스 : 니체 <도덕의 계보> 읽고나서 어떤 것이 기억에 남던가요?

성학 : 박카스, 우리가 질문이 많고, 이해는 못하는 것 같아 슬펐죠?

박카스 : 왜 내가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았어요? 난, 좋았는데. 설명을 잘 못했나 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내가 더 알고 싶었던 부분에 대해서 콕 집어 이야기해주기도 했고, 앞으로 더 공부하고 싶은 부분도 생겼고요.

규현 : 나중에는 다시 보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직도 니체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진 않아요. 그리고 지금은 철학에 대한 의구심도 들고요. (박카스: 정말? 아흑~) 아, 그래도 이런 고민이 들긴 하더라고요. 어떻게 니체의 말과 연관이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금융제도를 바꾸는 것이 문제이냐, 가난에 대해 아는 것이 먼저 인가, 음.. 뭐랄까. 더 큰 무엇들과 싸우는 것이 과연 중요한가. 싸움을 하다가 싸움이 좋아서 싸움을 걸게만 되는 그런 것에 빠지는 거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수경 : 저는 니체 말 중에 행동하는 것이 좋음이라는 말이 좋았는데.. 음.. 좋다고 불려지는 것을 하는 것이 좋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행하는 것이 좋음이라는 말이요.

오름 : 전 기억에 남는게…
(박카스 : ㅎㅎㅎ 설마~ 공부한 것을 4글자로 표현한다면?)
오름 : 오.리.무.중.

성학 : ‘말의 음색을 느껴라.’ 라는 말을 들었는데 니체 책을 보며 그것을 느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전쟁에서 향기가 난 데! 어쩜.” 이런 말들이 참 알 듯 말 듯 했어요. 말 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타입과는 좀 다른데 뭔가 허를 찌른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네 글자로 하자면 색.다.르.다.

규현 : 나.랑.달.라.

수경 : 알.쏭.달.쏭.

* 현장에 다녀와서.

4대강 개발로 행정대집행 위기에 놓였던 두물머리에도 다녀왔고, 765kv 송전탑 건설로 공동체가 파괴 위기에 처해있는 밀양에도 다녀왔죠. 두물머리 개발 반대 탄원서도 함께 쓰고, 밀양에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농성장 지킴이도 하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오름 : 두물머리 갔을때.. 그때 참.. 그랬어요. 여러모로. 여자도 나밖에 없었고, 두물머리 가면서는 길도 잃었지요. 아마.

박카스 : 우리 이 사실은 은폐시킵시다.

오름 : 필히 넣어주세요. 산책로로 쭉 걸어가다가 박카스가 길을 잃어서 이상한 집 마당들을 거쳐 왔다는 사실. 그 기억이 참..^^

박카스 : 내가 약간 길치이긴하죠.

규현 : 두물머리가서 D누나를 못 만나고, 책만 보다 왔으면 전 또 징징댔을꺼예요. 이야기 듣고 온 게 좋았어요. 탄원서는 써본 경험은 없었는데 골프장 시설이 우리가 사는 마을에 들어오면서 농가를 해치게 해서 반대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경험으로 두물머리 탄원서를 더 열심히 썼어요.

박카스 : 밀양에서는 어땠어요..
수경이가 ‘하고 싶어요.’ 해서 그 다음에 같이 연극도 만들어서 했잖아요!

수경 : 다들 마음 속에 하고 싶은 구석이 있었으니까 한 거죠. 제가 꼭 하자고 해서 한 건가요? 그게.

성학 : 저는 밀양에서 가방에 노트북을 싣고 다리를 걸어갈 때 살이 떨려 죽을 것만 같았어요. 누구 앞에서 퍼포먼스를 한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끔찍했거든요. 오우 그 압박감. 박카스가 한번 더 하자는 말을 끄내자 정말, 또다시 살이 떨렸어요.

오름 : 나도 서울에서 하자는 말에는 정말.

성학 : 박카스는 연극을 통해 함께하면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겠죠. 하지만 전 앞으로는 연극 말고도, 좋은 기억들을 만들러 밀양과 같은 현장에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카스 : 맞아요. 연극은 내가 너무 하고 싶어서 꼬득였어요. (살이 떨림에도 무엇을 할 수 있는 경험을 했다니!^^)

오름 : 연극 하면서 웃겼던 것은 연극 보시던 밀양분 들이 극 중에 공무원들이 보상금 나눠 주는 부분에서 ‘안 받는다, 치워뿌라. 저거이, 저거이. 미쳤나.’ 하셨을 때가 기억나요. (…) 또 연극 보신 분 중에 하시는 말씀이 원자력발전 수출 관련해 설명하는 부분은 이해가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좀 더 쉽고 재밌게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박카스 : 농성장에서는 어땠어요. 교대로 자기로 해놓고, 밤에는 나만 지켰죠!^^ 새벽엔 규현군하고 성학군이 일어나서 농성장을 지켰고요.

오름 : 난 매번 깨있었다고요! 박카스가 한 시간씩 일어날 때 마다!

수경 : 농성장에서 전 할머니들하고 산적 부치는 이야기를 나눌 때가 너무 재밌었어요. 그리고 엄청나게 가파른 언덕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매번 올라가신다는게 참..

오름 : 밥 지어먹던 거 기억나요. 코펠밥은 밀양에서 처음 해봤거든요. ‘이거 다 된 거 맞아?’ 하면서 랜턴 키고 수경이누나랑 서로 두리번 거리고.

수경 : 라면도 너무 맛있었고, 밥도 너무 맛있었어.

규현 : 저는 정권이 바뀌어도 이런 문제들이 쉽게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누가 되던 간에 온도 차이는 있겠지만 또 개발로 논밭을 밀어붙이지 않을까 싶어요.

수경 : 그러고보면 대통령도 할 게 못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일들을 밀어붙여야되고요.

오름 : 그래도 하고 싶다고 난리인 사람들 많자나.

* 학교 ‘밖’에서

박카스 : 살면서 누군가에게는 ‘너 왜 그렇게 살아? 그렇게 살면 안 돼.’ 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내가 보험회사 직원에게 그 나이에 보험도 안 들고 직장도 없으면 앞으로 어떻게 할려고 하냐고 추궁을 당했던 것 처럼요.ㅎ 우리가 만났을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부딪히는 문제로 청소년증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나눴던 것 같아요. 그 이야기들을 한번 더 해줄 수 있어요?

오름 : 저 같은 경우는 버스 탈 때 버스 기사 아저씨들이 학생이냐고 물어요. 학교 안 다닌다고 하면 기사아저씨가 학교 안 다니면 어떻게 하냐고 묻더라고요. 그리고 버스기사 아저씨들이 청소년증을 또 잘 몰라요. 어떤 기사아저씨들은 청소년증은 학생요금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규현 : ‘학교 왜 안 가냐고’ 하면 가장 많이 대는 말로 ‘개교기념일’이 있긴하죠.

수경 : 저 삼척에서 버스를 탈 때, 청소년증으로 할인받고 타려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기사아저씨가 학생증을 내라고 하는 거예요. 학생증은 없다고 했죠. 그때 한창 고스펑크에 빠져있던 때라 넥타이에 복장이 그래서 그랬던지 기사 아저씨가 그게 교복이냐고 묻더라고요. 교복이면 학생할인으로 돈 내고 타라고 하더라고요.

박카스 : 나 같은 경우는 회사에 취직도 안하고, 그렇다고 대학원도 안 가면 앞으로 어떻게 살꺼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준비해놓고 기다리기도 했던 것 같아요.ㅎㅎ ‘요새 누가 대학원 가냐고’ 괜히 소리도 내보고, ‘나는 바깥에서 뭘 만들며 성장하고 싶다고’ 그럴싸하게 말해보기도 하고요.ㅎㅎ 친구들은 어떤 말을 준비하려고 하거나, 고민해본 적이 있나요?

성학 : 저 같은 경우, 학교 다닐 때 착실한 학생이었거든요. 학교에서 주목도 받는 편이었고요. 그런데 학교를 나와서 공부하고 지내면서부터는 저를 보는 사람들 눈빛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나, 제사 때 큰 집에 가면 친척들이 학교 안 다닌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내 선택을 긍정할 이유가 필요해서 공부하기도 했어요. ‘민들레’라는 잡지를 통해서 공부하기도 했고, 교육과 노동시장의 연결에 대해서 공부하기도 했죠. ‘그 다음부터는 어른들이 왜 학교 안가냐?’ 하면 대꾸할 수 있는 말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겼어요. 사실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한 것도 그때 ‘생각’이란 것을 해보게 됐거든요. 생각이나 사유를 깊이 해보고 싶었어요. 그 때가 열 셋, 열 넷 일 때 였죠.

* 당분간 어떻게 지내고 싶어요?

성학 : 책을 읽으며 지내고 싶어요. 해왔던 것 처럼 니체나 쇼펜하우어에 대해 더 읽어보고 싶어요. 제주도에는 왜 수유너머가 없는 거야.

박카스 : 만들어요. 만들어. 친구들하고 같이요.
아니면 서울에 와서 같이 먹고, 자고하면서 지내도 좋고요.

규현 : 저는 당분간 쉬었다가 기타 연습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박카스는요?

박카스 : 공부하고, 밥하고, 말도 나누며 살겠죠? 나도 참, ‘앞으로 어떻게 살꺼냐?’는 질문을 받는 걸 좋아하진 않아요. 당분간 어떻게 살아보고 싶어요?

오름 : 운동쪽 에 관심이 있어요. 인터넷으로 축구모임 같은 것도 알아보려고 하고 있어요.

수경 : 그리스 비극을 좀 더 읽어보고 싶어요. 만화도 더 그리고요. 지금은 집 짓느라 만화를 잘 못 그리고 있어서요. 집 짓는 것이 빨리 끝나야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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