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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없는 취포자, 불안한 취준생을 만나다< – 구여친들 : 송이의 해어린 인터뷰편

- 송이

<구여친들ex-girlfriends>은 지난 4월 송이와 해어린이 결성한 여성듀오다. 해어린의 ‘나도 누군가의 구여친이고 싶다!’는 외침과, 송이가 어떤 사정으로 집에 있던 구구구남친의 남방을 해어린에게 넘긴 것에서 영감을 얻어 그룹 이름을 정했다. <구여친들>은 그룹을 결성한 것 외에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다. 골든디스크상 수상을 노리고 음반을 기획했으나 아직 구상에 머무르고 있다. 송이와 해어린은 잉여롭고, 별다른 쓸모가 없으며, 생산 및 재생산을 특별히 원하지 않고, 집에 집착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인터뷰는 취포자(취업포기자)인 송이가 취준생(취업준비생)이 된 해어린에게 작은 배신감을 느끼고 해어린을 다시 자기와 같은 세계로 끌어들이려다 포기한 뒤 해어린의 입장을 들어보려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인터뷰이의 이름은 박혜린(해어린), 나이는 24살, 빠른 89년생이다. 학교에 다니며 1년 휴학을 했고, 졸업 유예를 위해 한 학기를 더 다녔다. 지난 8월에 졸업을 했지만 학교 근처에서 자취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인터뷰는 송이의 집에서 진행되었다. 인터뷰이의 스케줄과 편의를 고려해 시간과 장소를 정하려 했으나, “나야 너희 집이 편하지”라는 인터뷰이의 말에 송이는 혜린을 집으로 초대했다. 9월 27일 목요일 오후 5시, 티아라의 롤리폴리 의상 콘셉트와 비슷한 잔 꽃무늬 원피스와 진한 빨간색 가디건을 입은 혜린이 도착했다. 오자마자 침대에 벌렁 드러누운 혜린에게 아이스초코 500ml를 대접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취준생의 일주일 스케줄을 알려주세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진 강남에서 영어 스피킹 수업을 들어요. 금요일에는 3시부터 7시까지 학교 취업진로지원처(이하 취진처)에서 만든 잡매칭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커피빈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요. 고정 스케줄은 이렇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학교에서 취업설명회가 있으면 들으러 가요. 저녁엔 집에서 자소서를 써요. 이때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죠. 다 쓰고나면 새벽 2~3시 쯤 되요.

잡매칭 수업이 뭔지 설명 좀 해주세요. 취업 못한 졸업생에게 취업컨설팅을 해주는 거예요. 이력서나 자소서 쓰는 방법, 면접 스킬, 모의면접, 직무 이해 따위를 알려줘요. 지금은 이력서 쓰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대기업 온라인 지원양식이나, 문방구 이력서 말고 수업하는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이력서 형식이 있어요. 경력자들이 이직할 때 사용하는 이력서인데, 자기 저작권 개념 같은 게 있어서 유포하면 안 되고 수업 듣는 애들만 나눠줘요. 이렇게 형식을 주면 못 쓰는 애들은 없어요. 그리고 구체적인 취업 사례를 보여줘요. 스펙이 이것 밖에 안 되는데 이력서를 잘 써서 취직을 했다던가, 토익 점수가 없는데도 외국계 기업에 취직한 예시를 들며 자기 강점을 살려서 이력서를 쓰라고요.

잡매칭 수업의 장점은 뭔가요? 어떻게든 취업을 해야 하는데, 수업에서 꼼수라도 쓰는 방법을 알려주니 듣기 싫어도 갈 수 밖에 없어요. 학과장이나 총장 추천서를 받는 방법부터 아르바이트나 인턴 경험 포장하는 것 같은 거요. 또, 스펙도 안 좋은데 취업한 사례를 보면, 쟤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겠다고 마음이 안정되죠. 성형도 할 수 있으면 하라고 해요. 취진처 정팀장님 본인의 딸도 쌍꺼풀 수술을 시켜줬다고 하면서요. 이력서에 동아리 활동으로 쓰라고 ‘드림캐쳐’라는 조모임도 만들어 줬어요. 분위기가 좋은 조는 따로 만나서 면접 연습을 하기도 하는데, 저희 조는 동아리 활동 증거자료로 단체 사진만 찍었어요.

수업의 단점은 어떤 게 있나요? 수업에서 성공한 사례를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가 수업 끝으로 갈수록 지치고 제가 부족하다는 게 보여요. 해야 할게 많으니 다시 마음이 무거워져서 미끄럼틀을 타는 것 같아요. 듣기 싫은 수업을 참는 것도 자체도 힘들죠. 얼마까지 영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찌릿찌릿하게 존재를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잡매칭 수업은 선생님이 말할 때 목소리의 파장이 존재를 두드려 패는 것 같아요. 같이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도 저랑 비슷해요. (웃음) 강사분이 취업 사례 예시를 보여주려고 메일을 열면 “안 돼! 제발! 그 파일을 열지마!”라고 입을 뻐끔 거리죠.

자소서 쓸 때 고통스러운 이유를 듣고 싶어요. 자소서는 일기가 아니라 광고예요. 그런데 저는 시작부터 멘붕(멘탈붕괴)이 와서 결국 사실을 적고, 그러고 나면 일기와 광고의 중간치가 나와요. 저는 본바탕이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에서 잘 살아가게끔 만들어진 인간이 아니에요. 자기 포장을 못하고, 자아 분리가 안돼서 기능화에 실패하거든요. 그래서 자소서를 쓰는 게 가장 괴롭죠. 취업을 잘하는 애들은 본인이 에너지를 쓰든 안 쓰든 결과적으로 취업용 자아를 만들어 자신을 잘 전시한거예요. 기능화가 뭔가요? 기업에 완전히 자기를 동일시하거나, 경영 마인드를 내면화 하지 않고 신입사원 가면, 그러니까 이미지를 하나 만들어 내는 거요. 이런 얘기를 하면 인간이 도구화되고, 상품화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도구화 되고, 물화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자아 분리가 안 되고, 역할 수행을 잘 못하니까 ‘이 사회’가 아니라 총체적 부적응자, 그냥 ‘사회 부적응자’인 것 같아요.

그러면 앞으로 면접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수업에서 설명하는 면접은 어떤 건가요. 자소서랑 비슷한데 면접에서도 자신의 솔직한 본 보습을 보이거나, 개성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 안 돼요. 일 잘하고, 스마트하고, 조직 생활을 잘 할 것 같은 인상을 줘 야죠. 면접은 면접관이 자소서와 첫인상으로 저를 판단하고 질문을 던지면, 저는 “네, 면접관님이 처음에 받은 그 인상이 맞습니다!”라는 걸 증명하는 시간이에요. 그러니 여기서 헛소리를 하면 안 되죠. (웃음) 손 좀 보자는데, 바지를 내리면 안 된다는 거죠? 네(웃음). 그냥 손이 아니라 큐티클을 잘 다듬고 매니큐어를 칠해 관리한 손을 보여줘야죠. 성형 할 수 있으면 하라는 것도 그런 이유에요. 한 눈에 봐서 잘 다듬어진 애가 뽑히거든요. 잡매칭 수업을 들으면서 얻는 결론은, 보이는 게 전부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조금 더 예뻤으면 취업이 더 쉬웠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요즘은 원룸 전세 보증금을 빼서 치아 교정을 받고 싶어요.

자신이랑 맞지 않는다고 느끼면서도 공채 준비를 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다른 길을 선택 할 수도 있지 않나요? 우선 저에게는 남들이 해보는 걸 나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요.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기도 하고요. 공부를 더 할게 아니라면, 다음에 뭔가를 하긴 해야 하니, 취업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죠. 저도 제가 취업 준비를 하게 될 줄 몰랐어요. 추가 학기를 다니면서도 취업이 와 닿는 문제가 아니었고요. 제가 전공수업을 들을 때 취진처 소속 교수님이 오셔서 “너희들 수능 준비를 고등학교 졸업하고 하냐, 고3 때 수능 공부 하지 않느냐. 대학에 들어올 때는 안 그러면서 왜 취업은 재수를 하려고 하냐”고 하시던데 저도 들었어요.(웃음) 전 멀티플레이가 안돼서 취업 준비를 못하고 학교만 다녔어요. 사실 저한테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글도 써보고, 영화 이런 것도 건드려봤지만 그게 더 안 맞더라고요. 요즘엔 창조적인 일보다 그냥 안정적인 일, 사무직이 나에게 맞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데 이것도 경험해본 적 없으니까 잘 몰라요. 그리고 이 길도 아니라면 그게 더 문제죠.

수업을 듣는 다른 취준생들은 어떤가요? 학교 다니면서 취업에 관련된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자원봉사, 어학연수 아니면 인턴, 자격증 같은 스펙을 조금씩 갖추고 있죠. 저는 이번에 자소서를 4~5개 썼는데, 20~30개 쯤 쓴 사람도 있어요. 같이 잡매칭 수업을 듣는 사람 중에 밤새서 자소서를 5~6개 쓰고, 탈진해서 잡매칭 수업에 못오고 병원에서 링겔을 맞은 분이 있어요. 수업에 한 번이라도 결석하면 무조건 아웃인데, 팀장님이 불쌍해서 봐주더라고요. 취준생이 되고서 취준생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나요? 전에는 취업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괴물인 줄 알았어요. 대기업 홍보 포스터에 등장하는 대학생이나 신입사원의 전형적인 모습, 투자동아리나 토론동아리, 공모전에 나가는 애들을 떠올리며 나랑은 다르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경영회계 마인드로 무장한 마징가제트들은 없어요. 소시민적이라고 해야 하나? (제가 싫어하는 말이긴 한데)표준적인 대학생들이에요. 착하고 친절하기까지 해요. 기도하는 기간이라 그런가봐요.(웃음) 지금 원서 쓰고, 결과 발표하는 시기거든요.

졸업 후 거취가 정해지지 않아서 불안하지는 않나요? 저는 제가 소속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저한테 맞게 시간을 능동적으로 계획할 수 있어서 오히려 지금이 행복해요. 경제적으로는 어떤가요? 집에서 다른 압박은 없나요? 경제적으로 불안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집에서 독립을 해도 아직 아빠한테 경제적으로 종속이 되어 있으니, 취업해서 완전히 독립하고 싶죠. 그리고 대출받은 학자금도 갚아야 하고요. 이런 얘기를 하면 안됐다는 표를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 별로 슬프지 않고, 왜 슬퍼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돈을 빌렸으니 갚기는 해야죠. 취업한 뒤에 한 달에 50~60만원씩 4년 동안 갚으면 되요. 제가 안 갚으면 아빠가 갚아야 하는데, 제가 짊어질 몫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진 않아요. 취업준비를 하기로 결심하고는 마음이 복잡하긴 한데 오히려 편해졌어요. 자포자기라고 해야 하나? 어쩔 거야. 취업하기 전엔 신세를 질 수 밖에 없는데, 그냥 마음 편히 신세 지고 말지.(웃음)

최근에 언제 종속되는 느낌을 받았나요? 취업 준비를 하면서, 관광통역 안내사 자격증 공부도 같이 하고 있어요. 학원을 알아보니까 40만원이나 하더라고요. 한참 고민하다가 아빠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막상 전화로 40만원을 보내달라고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안다니기로 했는데, 그 때 말한다는 생각만 해도 힘들었어요. 스스로 먹고 살 힘을 키우려고 자격증을 준비하는데 그걸 위해 돈이 들고, 돈이 들면 마음이 불편해지죠. 주말에 5시간 동안 커피빈 아르바이트를 하면 한 달에 15만원을 벌어요. 일은 힘들고 돈은 얼마 안 되는데, 그게 또 쏠쏠해서 아빠한테 15만원 어치 아쉬운 소리를 안 할 수 있어요. 취업 준비를 하면서 현실적이 돼요.

현실적이란 게 무슨 의미인가요? 취직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현실, 돈이 목적이에요. 하고 싶은 일 같은 건 허상이고 회식 적고, 야근 안하는 데서 일해야죠.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대한항공에 진짜 가고 싶어 했어요. 입사지원서를 여러 군데 쓰고 대한항공과 외국계 기업 두 군데 다 붙었어요. 고민하더니 꿈이라던 대한항공이 아니라 일하기 편한 외국계로 가더라고요. 한국타이어에 정말 들어가고 싶다면서 한 번 떨어지고 두 번째에 붙은 사람도 있었는데, 다른 기업에서 연봉 천만 원을 더 준다니까 바로 그 쪽에 입사하더라고요.

꿈과 현실은 별개란 건가요? 취업준비를 하면서 꿈과 현실을 말할 때는, 꿈은 뭘 모르고 이론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거예요. 삼성이나 LG를 말하면서 대기업에 근무하는 신입사원의 이미지나 환상을 가지고 있는 거죠. 잡매칭 수업으로 그런 망상을 깨나가요. 수업을 들으면 신입 사원의 20%정도가 이직을 하거나 그만 둔다고 해요. 그만 두는 이유 중 70~80%정도가 자신이 생각 했던 것과 일이 맞지 않아서고요. 그러면 현실이란 건? 남자는 체력이 있으니 연봉, 여자는 칼퇴예요.

얼마쯤 벌어야 만족스럽게 살 수 있을까요? 번 돈을 어떻게 쓰고 싶으신데요? 한 달에 150만 원 이상, 등록금을 갚으려면 세후 200만 원은 되어야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공간이 가장 중요해요. 지난겨울은 너무 추웠고, 집에 곰팡이가 펴서 제 손으로 도배를 새로 했어요. 최소한 춥지 않고, 곰팡이는 안 피는 곳에서 살아야 하잖아요. 지금은 생활비가 모자라서 몇 십 만원도 아니고, 일이만원을 아끼는 상황이죠. 아빠한테 생활비를 보내달라고 말하면 되긴 하는데, 그런 얘길 하는 게 비참해요. 집이랑 음식에 대한 기초적인 욕망이 해결 됐으면 좋겠어요. 앞에는 나무가 있고, 놀이터도 있는 너무 오래되지 않은 주공아파트에서 살고 싶어요. 곰팡이가 피지 않고 관리아저씨가 잘 관리해주는 20평 쯤 되는 복도식 아파트에 살면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불안감이요? 네, 저는 비상 상황이나, 의료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려요. 불안감을 아예 없앨 순 없지만, 저 정도면 최소화 된 상태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보험에 든다거나, 목돈을 마련해서 집을 사는 것 같이 미래에 대한 게 아니에요. 오늘 갑자기 엄청난 게 먹고 싶으면 어떡해요. 길가다가 갑자기 집에 불이나면 어떡하나, 쓸데없는 걱정 같지만 어쩔 수 없어요. 지난번에 진짜 집에 불이 났거든요.

마지막으로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 부분을 하나로 정리해서 말씀해주시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들려주세요. 가장 큰 건 기능화, 사회화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어떤 상황이 있으면, 그 상황에 맞는 말, 필요한 말이라는 게 있어요. 특히 면접에서는 생각을 묻는 것 같지만, 물어보는 의도가 있고 거기에 맞는 답도 있죠. 자기소개 포맷이 존재하고, 장점을 말할 때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자기가 지원한 업무에 맞는 것을 이야기 해야죠. 단점은 진짜 단점이 아니라 현재 극복하고 있는 단점을 말하고요. 토익 만점자한테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냐고 물어요. 활동내역이나 정보를 보고, 그것들을 연결해서 물어보며 해명을 하라는 식이죠. 그런데 저는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끄집어 내지 못하고, 제가 하고 싶은 말만 해요. 사실 이 부분에서 남들이 하는 것을 나는 못한다는 박탈감을 가장 크게 느끼죠. 제가 가진 취향이나, 소비에 대한 욕망은 대중적이고 평범한데, 몸이 거기에 못 따라가니까 제 자신을 반푼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더 남들과 같은 일을 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죄송한데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취업이 되면 일을 하겠지만, 안 될 경우엔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내년 5월까지 달려보고, 안되면 아예 마음 편히 9월까지 놀고 10월에 시작하는 출판학교에 갈 생각이에요. 웃긴 게 지금 취업준비를 하고 있지만, 저는 저를 잘 알아요(웃음). 그냥 놀고 싶고(웃음), 벌써 논다는 생각에 신나요.(웃음) 마음은 이미 출판학교에 가 있는 것 같아요.(웃음)(웃음) 내년 상반기까지 했는데 취업에 실패하면, 그 때 저랑 <구여친들> 음반 준비 하셔야해요.

인터뷰가 끝나고, 혜린은 침대에 조금 더 누워 있었다. 인터뷰어인 나 역시 혜린처럼 자신을 기능화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현대백화점 신입사원 모집 면접을 보고 나서 최종적으로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면접 결과를 요약하면 ‘준비되지 않은 인재임을 파격 선언’하는 자리 였다. 혜린도 같은 면접을 하루 전에 봤는데, 물어보니 나와 다를 바 없었다. 남의 집에서 너무 편안하게 쉬고 있는 혜린에게 비슷한 우리가 왜 다른 선택을 한 것 같은지 이유를 물었다. 혜린은 자신이 억압에 순응하는 인간이며, 아빠와 가족이 신경 쓰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기능화를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이 자신을 철없는 애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취포자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현실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아직 철이 없어서 취직 대신 다른 방식으로 살겠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 매 몫을 엄마가 대신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건 아닐까. 혜린이 자신을 가리키며 ‘반푼이’라 말했던 것처럼, 돈을 멀지 못하는 나는 아직까지 사람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이 자신을 해치거나, 존재를 변형시키지 않고 자급자족 가능한 경제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저마다 진통을 겪는다.

응답 3개

  1. 캄캄이말하길

    감성적이면서도 참 와닿는 글이네요
    문학같아 혜린이라는 주인공이 참 매력적이예요

  2. 말하길

    해어린에 대해, 그리고 취준생에 대해 많이 알게 해준 인터뷰 잘 읽었어요.

  3. 샛별말하길

    전체적으로 공감이 많이 돼요. 마지막 부분은 표현 능력이 부족한 제 마음을 대신해 송이님이 글로 표현해준 것처럼 무~척 공감돼요!

    혜린은 자신이 억압에 순응하는 인간이며, 아빠와 가족이 신경 쓰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기능화를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이 자신을 철없는 애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취포자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현실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아직 철이 없어서 취직 대신 다른 방식으로 살겠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 매 몫을 엄마가 대신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건 아닐까. 혜린이 자신을 가리키며 ‘반푼이’라 말했던 것처럼, 돈을 멀지 못하는 나는 아직까지 사람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이 자신을 해치거나, 존재를 변형시키지 않고 자급자족 가능한 경제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저마다 진통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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