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장애인 스토리텔링

어메이징 스토리

- 이영남(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그이들은 갇힌 자들의 내러티브에 속할 때는 마치 푸코의 <말과 사물>에 등장하는 ‘멀리서보면 파리처럼 보이는 짐승’이었다. 그러나 워크숍이 진행지면서 각자만의 ‘어메이징 스토리’를 풀어내자 사태는 일변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후미진 구석에서 홀로 고립되어 있는 줄 알았으나 그 시절에도 같이 있었던 동무가 있었으며, 그들 자신이 그 곳에서 누군가의 동무이기도 했다. 황량하기만 한 삶인 줄 알았으나 가족의 아련한 사랑이 있었고 스스로 꿈꾸었던 것들을 향한 신중한 행보도 있었다. 이들이 역사워크숍에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물론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활동가의 적극적인 권유도 있었지만 그것은 하나의 작은 계기였을 것이다. 나무가 불러 새가 날아와 가지에 앉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먼 길을 가는 새가 잠시 쉬며 가야 할 길을 내다보기 위해 과감히 내렸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 워크숍 동무들은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출발해 이런 자리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들꽃으로 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어메이징 스토리’를 간단하게 말해본다. (이번 호에는 진행과정만 간략하게 소개함)

발표

우리는 1주일에 한 번 모였는데, 모일 때마다 두 명 또는 세명이 발표를 했다. 첫번째 세션에서는 연대기를 이야기했다. 태어나 첫 숨을 쉬는 순간부터 지금 이자리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 삶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진솔하게 말했다. 비장애인 임상역사 워크숍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연대기 사건들에는 출세한 사건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살면서 중시하는 것은 출세가 아닌 것 같다. 뭔가 다른 것이 있는데,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 사람을 분절 없이 통채로 공감할 수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연대기를 통해 서로를 생애적으로 통채로 공감했다.

두번째 세션에서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주제를 발표했다. 시설생활, 동료상담, 부모님 이야기 등은 발표자가 사전에 준비한 주제였다. 다른 한편 사전에 주제를 준비하지 않고 동무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물어오면 그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어떤 동무는 시설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고 어머니 사진을 빼앗겨 불태워진 사건이었다. 그이의 시설생활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으며 비인권적 실상의 백화점 같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힘들었던 것이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함이었다. 인간의 마음은 정말 불가사의하다.

동료상담은 장애인 상담가가 장애인, 특히 시설에 있거나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는 동료 장애인들을 상담하는 프로그램인데, 이 때는 아무리 인권활동가나 활동보조인(중증장애인의 생활을 보조하는 사람으로 마치 중병을 앓는 사람을 간호하는 간병인 같은 사람)라 해도 상담과정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낙담과 실의, 좌절과 절망 속에서 동료상담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있겠다는 것을 깨닫고 동료상담 교육을 받으며 열정을 쏟았던 이야기를, 우리는 숙연하게 들었다.

부모님 이야기는 애잔했다. 부모님 이야기는 사실 다들 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불편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애잔했다. 그런데 특별히 부모님 이야기를 한 분은 “부모님과 가족의 사랑으로 난 그늘 없이 컸어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는 부모님 사진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 분이 현재 준비하는 것은 장애청소년 상담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그 이가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힘들었던 삶과 치열한 공부를 통해 더 숙성시켜, 마침내는 그 사랑을 남김없이 전해주는 상담사가 될 것임을 믿을 수 있었다. (이 부분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것으로 생략한다)

세번째 세션에서는 매력을 이야기했다. 매력과 콤플렉스 개념은 융심리학에서 빌어온 것이었고 타지고 보면 복잡한 개념이었지만, 우리는 매우 단순하게 접근했다. “아무개의 매력은 이것이다”라고 말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처음 만난 이들도 있었고 전부터 알던 이들도 있었다. 처음 만난 사이나 오래된 사이나 매력을 말하는 것이 처음에는 쑥스러웠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내 매력을 말한다는 것이 칭찬이나 덕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침착해졌다. 매력은 누군가의 캐릭터와 연결이 되는 것이며 한 번의 표정으로 온 생애를 읽을 수 있는 그런 고유한 것이다. 우리는 매력을 발견하기 위해 농사철 모내기처럼 함께 협업했다. 모두 7명이 참여했으니 아무개의 매력을 보는 시선은 6개였다. 이것을 두 번에 걸쳐 했으니 모두 12개의 시선이 아무개의 매력을 말했다. 다른 것도 있었고 어떤 것은 매우 의외였다. 어떤 것들은 서로 중첩되었다. 마치 무지개처럼 여러 개의 매력은 한 인간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그렇게 아무개의 매력은 이야기에서 스며나왔다.

대화

한 사람이 발표를 하면 다른 동무들은 애정어린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대화로 들어갔다. 대화방식은 일정한 형식을 갖추었다. 먼저, 1:1 대화를 5분 동안 나눴다. 발표를 들으면서 궁금했던 점을 추가로 더 물었고, 발표를 들으며 더 나누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함께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발표를 들으며 내 삶에서는 어떤 기억이 떠올랐는지 그것을 말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내 아버지가 떠올랐고 그 과정에서 내 아버지와의 기억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식이었다. 참여자가 모두 7명이었고 한 명이 발표를 했으니 1:1 대화는 매회 6번 진행이 되었다.

1:1 대화가 끝이 난 후에는 전체 대화를 나눴다. 전체 대화는 1:1 대화 이후에 진행되는 것이라 “발표 + 6번의 1:1 대화”가 함께 섞여 진행되었다. 대화와 달리 발표는 대체로 사전에 발표문을 만들고 그 발표문대로 읽어나가는 것이기에 마치 지하철을 타거나 노선버스를 타고 원하는 곳에 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대화는 특별히 정한 곳 없이 떠나는 여행이거나, 특별히 정한 곳이 있어도 중간에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 곳으로 빠져가는 여행과도 같다. 전체 대화는 특히 이런 면이 컸다. 누군가 발표자와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면 뒤이어 다른 이들이 말을 섞게 되고 그러다보면 우리는 엉뚱한 곳에 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엉뚱한 곳이란 사실은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이번 스토리텔링의 대화에는 지켜야 할 몇 가지 룰이 있었지만 특출난 것은 아니었다. 스토리텔링, 심리상담 등에서 공유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동료상담에도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었다. 예를 들어 비밀보장, 상대 이야기를 부정하지 않기, 충고하거나 조언하지 않기, 상담자와 내담자가 대등하게 시간 갖기 등이다. 학술세미나에서는 비판이 덕목이지만 이런 스토리텔링 모임에서는 공감과 지지가 덕목이다. 그래서 이런 룰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스토리텔링 동무들은 룰을 잘 지켰다. 그것은 아마도 동무들이 인내와 배려를 몸에 익힌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갓난 아이가 엄마 젖을 본능적으로 빨 수 있듯이, 인내와 배려를 몸에 익힌 동무들은 스토리텔링 분위기에 젖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룰을 지켰고, 그것이 서로에게 용기가 되었다.

화양연화

화양연하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때’라는 뜻이다. 마지막 발표회는 공개 발표회로 진행되었다. 8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우리는 종로구 효자동에 있는 한 갤러리 레스토랑에 모였다. 스토리텔링 동무들은 이 특별한 자리에 초청하고 싶은 이들을 초청했다. 시설에서 같이 생활했던 동무, 현재 내 삶을 함께 하는 활동보조인, 그리고 발바닥 활동가들이 초청을 받았다. 초청을 받은 이들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휠체어를 뒤에서 밀거나, 또는 자신도 휠체어를 타고 문을 열었다. 스토리텔링 동무들은 세 달동안의 여행을 회고하며 ‘말로 나의 역사’를 발표했다. 그 동안은 발표석에서 혼자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왜냐하면 발표석에 자신이 초청한 사람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발표석에는 발바닥 활동가 한 분이 사온 꽃이 놓여졌고, 또한 스토리텔링 동무가 그린 그림도 전시되었다. 소박하게 멋을 낸 발표회석에서 아무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것을 기념이라도 하듯이 발표 전에 초청받은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 후에는 혼자 환한 웃음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발표가 끝난 후에는 동무들의 코멘트가 있었다. 코멘트는 그 동안 함께 했던 여행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측면도 있었고, 이번 마지막 발표에 대한 구체적인 것도 있었다. 초청을 받은 이들도 코멘트를 했다. 초청을 받은 이들까지 10여 명이 그 공간에 있었으니 코멘트를 하는 데만도 꽤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코멘트는 중요한 ‘증인의식’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시간이 걸려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발표회에는 특별한 분도 초대되었다. 평소 인권분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과도 인연이 있던 전문 다큐멘터리 감독이 시종일관 자리를 지키며 영상에 장면 하나 하나를 담았다. 아무리 비루한 현실이라도 영상에 담기면 왠지 낭만이 느껴지는 것이 영상의 매력인데, 그 날 그 자리도 그렇게 아름답게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은 인생에서 아름다운 한 때였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발표회를 화양연화(‘인생에서 아름다운 한 때’)라고 불렀다.

와인을 곁들인 저녁을 떠들썩하게 먹고 나니 해가 졌다. 밖은 어두웠지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응답 1개

  1. 말하길

    슬프고, 애잔하고, 그러면서도 힘나고, 놀랍고, 다 좋은데, 특히 “매력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모내기 하듯 협력했다”는 구절이 참 좋아요. 앞으로도 탈시설장애인들의 어매징한 스토리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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