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지가 쓰는 편지

하버지의 행복론 (13)

- 윤석원(전 전교조교사)

12. 신비한 경험체계

하버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얘기가 방향도 없이 길어져? 벌써 며칠째야. 나 지금 따분해. 아, 홍아야, 아직도 결론이 안 보이니 지루할 거야. 이제 결론을 꺼낼 때야. 결론을 찾기 전에 하나 묻자. 앞에서 하버지가 인간의 두 가지 운영체계 중에서 조건반사체계가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지? 여러 번 ‘바꿀 수 있다’고 하셨어. 뿐만 아니라 ‘바꾸어야 한다’고 하셨고, 바꿀테면 ‘바람직하게 바꾸어야 한다’고도 하셨어. 그랬었구나.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바꾸어야 바람직한지 방법을 찾을 때네. 그런데 그 방법을 어디 가서 찾지? 그야, 바람직한 경험체계를 찾아서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아봐야 우리도 그렇게 만들 방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렇구나. 너는 역시 일머리가 밝아. 그럼 바람직한 경험체계들, 반사체계들을 어디 가서 찾지? 그것들을 찾아야 공통 특징을 찾아 그 특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볼 수 있을 텐데. 우리는 바람직한 반사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바람직한 반사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의 반사체계 아닐까.

우리가 그들의 무엇을 존경하지? 그들의 경험과 지혜. 그게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데. 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가 우리 공동체의 문제를 잘 해결하여 우리 모두를 잘 살게 하잖아. 그렇고말고.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경험한 진선미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지. 나아가서 우리도 그들이 반사한 진선미를 경험하면서 우리의 경험가능성 즉 자아를 실현할 수 있으므로 그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지. 홍아야, 그럼 옛날 대가족 안에서는 누가 그런 역할을 했겠니. 남성 연장자인 가부장. 씨족 공동체나 마을 공동체에서는 누구? 원로원이라 할 노인들의 모임에서 지혜로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씨족장이나 촌장으로 존경하고.

그런데 홍아야. 이들의 공통점이 무어니. 지혜로운 노인. 옛날에는 어느 문화권이나 육체적으로는 노쇠하여 힘이 없지만 경험과 지혜를 지닌 노인을 존중했어. 그런데 요즘에는 노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옛날 같지 않다면 왜 그러니? 옛날 같지 않다면 오늘날은 삶의 조건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기 때문에 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가 이제는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일 거야. 정말 그래. 옛날에는 노인들의 경험과 지혜는 공동체의 소중한 자산이었는데 그것이 이젠 지혜로운 말씀이 아니라 쓸데없는 잔소리가 되고 말았어. 그러니까 늙을수록 입을 다물고 젊은 세대가 하자는 대로 따라야 조금이나마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었구나.

그럼 홍아야, 이제는 존경받는 노인이 사라졌니? 아니, 누구든 존경을 받을 만큼 지혜와 업적이 쌓이려면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야 할 거야. 그러니까 각 분야에는 그런 경륜을 갖춘 노인이 많이 있을 거야. 그렇단다. 옛날에는 노인이라면 무조건 존경했지만 지금은 달라졌지. 자기의 생활방식만 옳고 좋다고 고집하는 노인은 귀찮은 존재가 되었고 시대의 변화를 뛰어넘어서 미래에 닥칠 문제를 경고하며 대안을 제시해 주는 노인은 존경받게 되었지.

자, 그러면 홍아야, 이들 존경받는 노인들의 반사체계, 경험체계가 어떤 공통특징을 지녔지? 지혜롭다는 아니야? 그래, 그거야. 일반적으로 노인들의 무조건반사체계라는 생리적인 운영체계는 늙고 낡아서 점차 기능이 떨어지게 마련이잖아. 그러나 네 말대로 지혜로운 노인들의 조건반사체계는 존경받을 만큼 달라. 어떻게 다르지? 하버지 말씀을 뒤집으면 그분들의 경험체계는 늙지 않는다는 말씀인 것 같아. 그렇단다. 죽는 순간까지 스스로를 수정하며 날마다 새로워진단다. 너는 그게 신비롭지 않니? 정말 정신이 노쇠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을까? 그게 사실이라면 그거야말로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는 사실이니까 신비롭지. 그렇다면 정말 신비지.

물론 늙으면 기억력은 많이 떨어져. 어떤 경험을 오랫동안 간직하려면 자꾸 떠올려야 그 경험을 붙들고 있는 뇌신경망이 굵어져서 고속통행이 가능하니까 빨리 검색할 수가 있지. 그런데 오가지 않은 길은 초목이 우거져서 더 이상 통행할 수 없게 되듯이 오랫동안 떠올리지 않았으면 그 기억까지 찾아갈 길이 없어졌으니 검색할 수 없게 되지. 그렇다고 경험이 아주 잊혀진 것은 아닐 거야. 자의식 위로 떠올릴 수가 없을 뿐 희미하게 잠재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을 거야.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게 노쇠한 현상이 아니야? 하버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봐. 젊은이라도 그만큼 오랜 세월이 지난 것은 기억하기가 쉽지 않을 거야. 그리고 자주 떠올리지 않았다는 것으로써, 이미 새로운 사물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근거 자료로써의 가치가 없고, 오히려 집중하는데 방해만 될 잡동사니라고 평가가 된 것들이야. 그러니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기 위해서 용량을 확보하려면 이들을 지울 수밖에 없지. 이는 마치 컴퓨터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정보를 알집으로 만들어 저장하듯이 잠재의식 속에 묻어버렸기 때문에 자의식 위로 바로 떠올릴 수가 없게 되는 것과 같아. 그러므로 나이가 많은 노인이 오래된 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렇다면 노인의 정신력이 노쇠하지 않는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뭐야. 존경받고 있는 노인의 반사체계는 그 나이만큼 지혜롭다는 거야. 일반적으로 노인에게 건망증이 심해지는 것이 만약에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 정신의 노쇠 현상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어. 정신력이 유연하면서도 탄력성이 있는 노인들은 날마다 더 지혜로울 수 있다는 것이 조건반사체계의 신비야. 그들은 오랜 세월 끝없이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고 또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조건을 더 잘 해석할 수 있고 상황조건에 알맞는 반사행동을 더 잘 구상할 수 있지. 노인이 나이 값을 하여 존경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그 노인이 지닌 지혜 즉 문제 해결 능력 때문이야.

자연과 사회와 인간의 삶의 모든 분야에서 변화의 속도를 뛰어 넘어 앞날을 예견하며 미리 대안을 세워줄 수 있는 초인적인 노인은 없어. 그러나 특정한 분야나 영역에서 몸은 늙어도 정신은 늙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노인들은 많이 있어. 부족했지만 하버지도 그러려고 노력했단다. 교육 부문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이해된 인간성에 알맞은 새로운 교육방법을 찾으려고 애썼지. 그래서 현재 제도 교육의 목표와 방법이 인간성에서 빗나가게 된 원인을 알게 되고 제도 교육에서 빠뜨린 자아실현의 방법을 모색해 보았단다. 나름대로 대안을 가지려고 애쓴 거지.

음, 노인이 존경받는 것이 기억력 때문이 아니라 지혜, 말하자면 문제 해결 능력 때문이라면 그거야말로 기억력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정신적인 능력이니까 존경받을 만하네. 그런데 정신력이 늙지 않는다는 신비가 어떻게 가능하지. 하버지 생각인데 죽을 때까지 우리의 운영체계, 조건반사체계, 경험체계, 인식체계, 신념체계가 스스를 수정할 수 있으니까 이런 신비가 가능해지는 것 같아. 스스로를 수정할 수 있기에 언제나 새로워질 수 있으니 늙거나 낡아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 늙으면 육체가 자꾸 병이 나서 쇠약해지듯이 정신도 그런 것이라면 나이가 들어서 노쇠한 정신능력만큼 어리석어져야지. 그러나 존경받는 노인들의 경험체계는 죽는 날까지 지혜로워지면서 오히려 성숙하니 신비랄 수밖에.

운영체계, 경험체계를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 제자리를 찾아 들어갈 수 있도록 그와 관련된 경험들이 재조직되고 재배치된다는 뜻이야. 이렇게 경험할 때마다 계속해서 새롭게 수정된 경험체계로 우리는 사물 속에 들어있는 더 많은 진선미를 해석하고, 판단하고, 응용하여 경험할 수 있게 되지. 그래서 죽는 날까지 우리는 경험으로 경험하는 선순환으로 경험체계를 계속 확충해가며 자아를 실현할 수 있어. 이건 신에게나 가능할 수 있는 놀라운 신비가 아니니.

하버지, 엔트로피 법칙을 넘어선 존재는 신밖에 없는데 그러면 정말 인간이 신이나 다름없겠네. 신이 그런 의미라면 인간은 신이지. 어떤 생명체든지 진화 수준의 절정까지 성장한 개체는 네 말대로 모든 생명을 지배하는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야 돼. 에너지를 섭취하여 이를 구조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용하던 능력이 점차 떨어지게 되지. 우리의 무조건반사 체계는 이렇게 쇠약해져서 어느 날 생리작용을 멈추게 마련이야. 그리고 분해되어 흩어지면 다시는 복원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어떤 생명체도 예외가 없어. 네 말대로 엔트로피 법칙을 넘어서는 영원불변하는 존재는 신 말고 우주에 없어.

그런데 그 예외로 보이는 것이 우리의 조건반사 체계라는 말씀이잖아. 그렇단다 홍아야. 인간의 무조건반사체계가 작동을 멈추면 조건반사체계가 들어있는 대뇌에 산소와 영양 공급이 끊어지고 바로 뇌세포가 작동을 멈춘대. 30초 후면 뇌세포가 파괴되기 시작하여 2~3분 후가 지나면 재생할 수 없게 된대. 이 짧은 시간 동안에 조건반사체계의 내용인 평생의 경험도 다 지워져 버리는 거지.

그러나 하버지는 경험 내용이 사라진 그 조건 반사의 체계적인 형식인 운영체계를 영혼이라고 믿는단다. 가능성으로서의 영혼은 늙지도 사라지지도 흩어지지도 않고 다음 세상의 나에게 가능성으로 주어진다고 믿는 거야. 이러한 하버지의 믿음은 양자 물리학자들이 우리 우주의 실재들에 대한 정보가 블랙홀에 빠지고 웜홀을 거쳐 화이트홀로 빠져나가서 다른 우주에 가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또 이는 마치 식물의 씨앗 속에 경험내용은 없지만 새로운 개체의 운영체계가 들어있는 것과 같아. 조건반사체계, 운영체계인 우리의 자아도 현생의 육체 특히 대뇌를 떠나면 현생의 경험은 모두 잃고 씨앗처럼 충전된 최소한의 에너지를 가지고 운영체계 그 자체에 대한 정보 즉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가능성만 보존하고 있다는 거야. 그러다가 어떤 계기에 무조건반사체계를 만나면 씨앗이 싹트듯이 거기서 또 다시 경험을 얻어가며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스스로의 가능성을 실현한다고 믿고 있어. 그 여행은 만족할 때까지 우리 우주나 다른 우주에서 계속될 거라고 믿는 거야.

홍아야, 이건 마침 생각나서 하버지 신념체계의 일부를 보여준 거지 네게 믿으라고 강요하려는 건 아니었어. 아무튼 모든 생명체는 에너지를 더 잘 섭취하고 운용할 수 있는 각각 고유한 질서의 항상성을 유지하거나 더욱 발전시키도록 진화해 왔어. 우리는 이를 생명체의 역엔트로피 활동 또는 네트로피 활동이라고 말하지. 그러나 진화의 절정까지 성장한 생명체는 다시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야 하는데 그 예외가 인간의 조건반사체계라는 말이야. 그 예외가 내세까지 연장되든 아니든 그것은 미뤄 두더라도 우리는 현세에서 죽는 순간까지 스스로를 수정하면서 새로워지는 엔트로피 법칙의 예외를 발견한 거야.

그리고 우리의 생리작용을 주관하는 무조건반사체계는 인간의 조건반사체계를 내장할 만큼 충분히 진화되었어. 그래서 인간의 조건반사체계를 내장한 인간의 무조건 반사체계는 지상에서 우주의 진선미를 가장 많이 경험할 수 있어서 에너지를 가장 창조적으로 운용하는 진화의 산물이 된 거지. 그리고 인간의 조건반사체계가 스스로를 수정하면서 점차 진화한다면 나중에는 오늘날의 우리가 신이라고 부를 만큼 다른 존재가 되어 있을 테지. 그렇게 되는 것이 진정한 우리의 자아실현이니까. 그러나 다른 생물체는 조건반사체계의 운영정보가 보존될 만큼 충분하게 진화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해.

그런데 이미 인간의 무조건반사체계는 늙어도 조건반사체계는 늙거나 흩어지지 않는 신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잖아. 엔트로피를 넘어서는 존재가 신이라면 인간도 신이랄 수 있댔어. 그렇다고 인간이 영원한 존재라는 것은 아니야. 아무튼 정보와 에너지의 관계에 대하여 말하자면 인간의 영혼은 컴퓨터보다는 씨앗에 비댈 수 있을 거야. 컴퓨터는 껐다가 다시 켜도 끄기 전의 운영체계와 끄기 전의 모든 정보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 그러나 인간의 무조건반사체계를 껐다가 다시 켜면 조건반사의 운영체계의 현실성은 사라지고 가능성으로 정보만 남겠지. 그러나 대뇌의 신경망에 담겨 보존되던 경험내용은 모두 지워져 버릴 거야.

씨앗은 모체로부터 충전된 최소한의 에너지만 있어도 조건반사가능성 즉 운영체계의 정보를 보존할 수 있어. 살아있는 씨앗이라면 어떤 계기가 되어 에너지를 다시 얻고 경험을 다시 시작할 거야. 씨앗처럼 충전된 최소한의 에너지로 죽음을 넘어서 운영체계의 정보를 보존할 수 있다면 인간의 영혼은 이미 신이 되어 있는지도 몰라. 어떤 양자물리학자는 데자뷰 현상을 우리우주와 평행우주의 시공이 겹쳐서 평행우주의 다른 나와 경험이 교차된 현상이라고 본대. 하기야 다중우주론이나 평행우주론을 믿는다면 거기에 얼마든지 또 다른 나가 있을 수도 있지. 나는 거기까지 믿지지는 않지만 만약에 엔트로피를 이겨내고 죽어서 흩어지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신이야. 신이 그런 뜻이라면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다고 믿어.

하버지, 인간의 경험가능성이 신비하다는 얘기가 왜 지금 필요하지? 인간의 경험체계가 스스로를 수정할 수 있는 신비를 강조하고 싶은 거야. 그러니 죽는 날까지 자기완성을 위해 노력하자고 너를 격려하려고. 그리고 현생의 현실성이 다음 세상의 나에게 가능성으로 유전되어 만족에 이를 때까지 자기완성의 여행을 계속한다는 얘기도 덧붙이고 싶었고. 정말로 인간의 경험가능성이 다음 세상의 나에게 유전되는 것이라면 다음 세상의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경험체계를 바람직하게 수정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네. 결국은 그래야 행복해진다는 말씀이잖아? 그래, 그거야. 그렇게 지름길을 두고 이렇게 멀리 돌아왔어? 그렇구나. 확신이 서야 네가 실천할 것 같아서 얘기가 길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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