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2012생명평화대행진에서 함께 살자 농성촌으로 – 또 다른 정치의 장소를 만들기 위한 내몰린 자들의 연대.

- 정정훈(수유너머N)

전국이 아프다

10월 5일 제주도청, “함께 살자! 모두가 하늘이다! 함께 걷자! 강정에서 서울까지!”를 외치며 2012생명평화대행진의 전국 순회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단지 이명박 정권 때문이라고 만은 할 수는 없지만 2012생명평화대행진에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이명박 정권하에서 크나큰 고통을 당해야만 했던 사람들이다. 이번 대행진의 모체가 되는 스카이액트(SKYact)는 이명박 정권 하에서 일터와 삶터에서 폭력적으로 쫓겨나거나 빼앗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노동자들(S), 구럼비와 강정마을 주민들(K), 용산참사 유가족들(Y)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단지 쌍용과 강정과 용산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명박 정권의 막가파식 토건사업에 의해 4대강은 처참하게 망가지고 주변 농민들은 자신의 농터에서 쫓겨났다. 밀양과 청도에서는 핵발전을 위한 고압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80이 넘은 어르신들이 산에 올라가 노숙을 하며 맨몸으로 포크레인에 맞서야 했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정리해고는 단지 쌍용자동차뿐만 아니라 전국 공장에서 벌어지고 있고,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하는 비정규직은 갈수록 양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야산을 깎아내고 농토를 뒤엎어 건설되는 골프장은 강원도 농민들의 마을공동체와 생존의 기반을 파괴하고 있다. 뿐만 인가? 거대유통 자본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의 전횡으로 지역의 중소상인들이 생계를 위협당하고 있고, 재개발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집으로부터 쫓겨나고 있다.

가히 전국에서 힘없는 다수의 사람들이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주권을 국가구성과 운영의 근본원리로 삼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대다수가 지금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내몰리는 비정상적 상황이 일상적 상황으로 되어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폭정은 하늘과도 같은 국민들의 신음소리가 그칠 날이 없도록 만들고 있다.

쫓겨난 자들의 연대, 내몰린 자들의 반격

2012생명평화대행진은 쌍용, 강정, 용산만이 아니라 전국의 빼앗기고 쫓겨나는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며 함께 행동하기 위해 시작된 연대의 발걸음이다. 이번 대행진의 주축은 여전히 쌍용, 강정, 용산의 사람들이지만, 또한 행진의 나날은 하면서 삶을 지키기 위한 싸움의 현장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결코 쌍용, 강정, 용산과 다르지 않음을 서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행진을 준비하며 각 단위들의 책임자들이 모인 회의의 자리에서, 행진 중 지역 주민들 및 투쟁사업장의 사람들과 행진단이 가진 간담회에서 서로는 서로에게 강하게 공명했다. 그야말로 우리 모두가 송전탑을 막기 위해 투쟁하는 밀양과 청도의 농민이며, 골프장건설을 막기 위해 싸우는 강원도의 농민들이며, 비정규직철폐를 위해 투쟁하는 현대자동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이며, 정리해고를 철폐하고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싸우는 콜트콜택,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이며, 핵발전소를 막기 위해 투쟁하는 고리와 삼척의 주민들임을 확인했다. 또한 더 이상 쫓겨나지 않고, 빼앗기지 않고 자기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이들이 쌍용이며, 강정이고, 용산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하늘(SKY)임을 2012생명평화대행진에 참여한 이들은 절감했다.

더불어 대행진 기간 중 분명하게 확인한 또 하나의 단순한 진리는 평범한 사람이 이 나라의 하늘로 여겨지는 세상, 진실로 다수의 평범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은 오로지 연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2012생명평화대행진은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에서 매우 오랜만에 문제와 영역, 부문과 의제를 가로지르는 광범위한 연대의 장이 되고 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투쟁하는 최전선의 노동운동, 탈핵과 4대강복원을 기치로 생태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환경운동, 농토와 마을 공동체를 지키려는 농민운동, 군사기지건설을 저지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만들어내려는 평화운동이 이번 대행진에 함께 하고 있다. 또한 인권운동과 시민운동 활동가들이 동참하고 있으며 진보적 학술연구자들이 대행진에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이렇게 대행진은 부문과 영역을 뛰어넘어 서로의 문제에 공감하고, 의제를 공유하며 공동의 과제를 설정해가고 있다. 각 부문에서 전개되어온 투쟁들이 합류하고 각 영역에서 펼쳐져 왔던 운동들이 접속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시작되는 장소는 어디인가?

이와 같은 합류와 접속의 흐름은 2012생명평화대행진이 끝난 이후 “함께 살자 농성촌”으로 이어졌다. ‘민초들의 자구적 연대’라는 성격 속에서 “함께 살자 농성촌”은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용산참사 유가족, 강정마을 주민들과 지킴이들, 탈핵활동가들이 함께 하는 연대와 공동행동의 거점이다. 그리고 이는 정확히 정치적 행동이다.

대선정국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되어가고 있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연일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제출되고 다른 세상에 대한 약속이 제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의 논의에는 강원도골프장문제,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문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강제철거의 문제, 제주해군기지 건설문제 등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 없다. 이 모든 문제가 이명박 정권과 무관한 문제가 아니지만 이 모든 문제가 단지 정권을 교체한다고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2012생명평화대행진과 “함께 살자 농성촌”에 함께 하는 이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정권교체의 대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민주적 가치에 보다 충실하고, 경제민주화를 보다 내실 있게 실행하고, 보편적 복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후보가 대통령이 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친일파에 뿌리를 둔 자유당 및 유신독재세력으로부터 발원하는 정당의 후보가 집권을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지 그런 대통령을 뽑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최선의 정치라고 할 수 없으며, 정치적 역량의 표현이 오로지 정권교체로만 완전히 환원될 수도 없는 것이다.

주류 미디어와 제도권 학자들은 정치는 국회와 청와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며, 국민의 정치참여는 정당을 반드시 매개해야 하고 국민의 정치적 행위는 투료로 집약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좋은 정당이 필요하고, 정의롭고 능력 있는 대통령을 뽑기 위한 투표가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의 특권적 장소가 의회이며, 투표만이 국민의 유의미한 정치적 행위라는 주장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정치의 일차적 장소는 권리를 박탈당한 자들, 쫓겨나고 빼앗긴 다수의 국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연대하고 같이 행동하는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회와 청와대는 이렇게 연대하는 이들, 함께 행동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받아 안아서 정책으로 만들고 집행하는 정치의 또 다른 공간일 뿐이다. “함께 살자 농성촌”은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의 정치적 힘으로서 이번 대선에 개입하는 정치적 행동이다. 이번 대선이 빼앗기고 쫓겨난 이들이 하늘로 여겨지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치적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을 “함께 살자 농성촌”은 주장하고 잇는 것이다.

2012생명평화대행진에서 “함께 살자 농성촌”으로 이어지는 내몰린 자들의 연대는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를 철폐하고 제주해군지를 백지화하며 강제철거를 금지할 것을, 4대강을 원상회복하며 핵발전을 폐기하고 무분별한 골프장 건설을 중단하며 농업을 보호육성할 것을, 이주노동자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보장할 것을 대선후보들에게 엄중하고 완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쫓겨나고 내몰린 자들이 연대하여 각자의 싸움을 함께 싸우는 연대와 공동행동이야말로, 그런 연대와 행동이 열어내는 장소야 말로 정치의 일차적 장소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단지 국회의사당과 청와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제한당한 다수의 국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고 위해 모이는 거리야 말로 정치의 우선적인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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