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최전선

당신이 빼빼로를 먹는 사이

- 송이

지난 10월 내 동생 짱구(가명)가 전역하며 혼자 살던 집이 시끄러워졌다. 짱구는 입을 옷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며칠 동안 방에서 뒹굴더니 인터넷에서 알바를 검색했다. 내년 3월에 복학하기 전까지 다섯 달 동안 집에서 할 일도 없으니 바짝 돈을 벌어 “급전을 땡겨놓겠다”고 말했다. 22살 짱구는 외모에 관심이 많다. 알바비를 받으면 요즘 유행하는 워커 1켤레, 가죽 재킷 1벌, 싱글 버튼 블랙 울 코트를 사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짱구는 공장에서 2교대 생산직 일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구인 공고를 찾지 못했다. 알바 구인 사이트에는 술집에나 노래방, 피시방 알바를 구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제일 많은 건 편의점이었다. 집 앞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구했다. 해볼까 고민하더니 그만뒀다. 밤에 일하면 피부가 상해서 버는 것보다 피부과에 쓰는 돈이 더 많을 것 같아서 안 되겠다고 말했다.

“제일 웃겼던 게 편의점 야간 알바 구하는 거야. 시급을 4,700원 밖에 안 주면서 성실한 사람을 구하는 게 말이 돼?”

# 쪼꼬랜드

‘<쪼꼬랜드> 빼빼로 단기 포장 알바 구함’ 공고는 간단했다. 위치를 보니 집에서 5분 거리였다. 빼빼로데이 전 날인 11월 10일까지만 일할 사람을 구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일을 마친다. 시급은 5,500원이다. 일요일이었지만 짱구는 전화를 걸었다. 사장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월요일에 이력서를 가지고 면접을 보러 오라고 말했다. 다음 날 2시에 이력서를 들고 가게를 찾았다. 사장이 알바 경력을 물었다. 짱구는 자신 있게 전역한지 얼마 안 된 군필자이고, 스무 살 때 야외 수영장을 건설하는 일을 해봤다고 말했다. 사장은 빼빼로데이 시즌이 다가오면 야근을 하게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짱구는 빼빼로데이를 18일, 약 3주 앞 둔 10월 24일 수요일부터 일을 시작했다.

“사장이 도중에 그만두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어. 빼빼로데이가 다가오면 힘들어 질 수 있다기에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냐 생각하고 알았다고 했지.”

<쪼꼬랜드>는 3층짜리 상가건물 지하 1층을 쓴다. 규모는 50평쯤이다. 들어가면 인터넷 쇼핑몰을 관리하고 전화를 받는 사무실이 있고, 오프라인 손님이 오면 샘플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진열장이 있다. 나머지는 전부 창고다. 초콜릿과 빼빼로 만드는 재료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쪼꼬랜드>에서는 빼빼로데이를 위한 기획 세트가 있었다. 세트 구성은 매년 바뀌는 데 올해는 해피세트, 스위트세트, 롱러브세트, 곰돌이세트 따위를 팔았다. 세트에는 초콜릿과 빼빼로 과자, 초코펜과 초콜릿 몰드, 포장 비닐과 설명서가 들어간다. 제일 비싼 건 14,900원짜리 스위트세트다. 재료를 낱개로 사는 것 보다 세트로 사는 게 더 저렴해서 세트가 많이 팔렸다. 개인이 구매하는데 10만 원 이상 주문하는 경우도 많았고, 초등학교에서 단체로 구입하기도 했다.
짱구 말고도 단기 알바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디션을 준비한다는 19살 어린 남자애 1명, 대학에 다니는 24살 누나 1명, 이모 7명이 짱구와 함께 일했다. <쪼꼬랜드>는 여(女)사장(이하 여사장)이 운영하는 초콜릿 전문 쇼핑몰이었다. 평소에는 혼자 일 하는데 밸런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 같은 초콜릿 대목에 남편인 남(男)사장(이하 사장, 남사장이 더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편의상 ‘사장’으로 줄인다.)이 일을 돕고 단기 알바생들을 뽑는다고 했다.

– 포장과 짐 나르기 : 짱구, 19살 남자 알바생, 사장
– 쇼핑몰 관리 및 주문서 출력 : 누나, 여사장
– 소분 : 이모 7명

소분은 초콜릿과 과자를 나눠담는 일을 말한다. 초콜릿은 한 박스에 10kg이다. 이모들이 그 초콜릿을 팔기 좋게 100g, 200g 씩 비닐에 나눠담는다. 다크, 밀크, 화이트, 딸기 등 8종류나 된다. 짱구는 블루베리맛 초콜릿 같은 건 거기에서 처음 봤다고 말했다. 빼빼로 과자도 23cm 롱, 11cm 날씬이, 개뼈다귀 같이 생긴 냠냠이 등 10가지나 됐다. 이모들은 그 과자들도 전부 파는 개수에 맞춰 포장한다.

짱구는 포장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쪼꼬랜드>에서는 3일에 한 번 용달차로 초콜릿과 과자를 잔뜩 들여온다. 10kg짜리 초콜릿 150박스, 빼빼로 과자와 포장비닐 수십 박스를 날랐다. 사장이 시키면 이모들이 소분하는 것을 돕고, 소분해놓은 초콜릿과 과자를 조합해 세트도 만들었다. 그 동안 누나와 여사장은 쇼핑몰을 관리하고 주문서를 뽑는다. 작은 바구니에 주문한 상품과 주문서, 송장을 넣고 짱구와 19살 남자 알바생에게 전달한다. 짱구는 택배 상자를 만들고, 주문서를 보며 빠진 물품은 없는지 확인하고 상품을 상자에 담는다. 맨 위에 <쪼꼬랜드> 홍보지와 만화캐릭터 짱구가 그려진 빼빼로 만들기 설명서를 넣고 박스에 테이프를 붙인다. 박스에 송장을 붙이고, 취급주의 스티커를 붙이면 포장이 끝난다. 포장이 끝난 박스는 한쪽 구석에 쌓아둔다. 첫 주에는 주문량이 많지 않았다. 적게는 하루에 50박스, 많으면 200박스 쯤 포장했다. 점심은 다 같이 밖에서 사먹었다. 사장은 밥을 먹으며 늘 반주를 곁들였다. 짱구는 사장이 47살인데 보통 어른들은 잘 모르는 요즘 애들이 쓰는 말투로 재미있게 말한다며 감각이 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 단기 포장 알바의 노동 강도

알바를 시작하고 며칠 뒤 짱구는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목이 잠기고 계속 기침이 나왔다. 계속 박스를 만드니 거기에서 먼지가 많이 나왔다. 짱구는 쇼핑몰이 지하에 있어서 창문도 없고 환기가 전혀 되지 않는다며 근무 환경이 좋지 않다고 내게 불평 했다. 집에 와서 귀를 파보면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귀지가 한 숟갈 나온다고 했다. 내가 미심쩍게 쳐다보자 짱구는 자신만 민감한 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이모들도 먼지가 많다며 목욕을 하면 때가 시커멓게 나온다고 말했다고 항변했다. 나는 알았다며 짱구의 말을 흘려보냈다.
11월이 되며 짱구는 급격하게 바빠졌다. 짱구가 내게 문자를 보냈다. “누나 나 늦게 옴” 사장이 짱구에게 야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짱구는 집에 가서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일을 오래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으니 사장에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일이 끝나니 11시가 넘었다. 그때부터는 하루에 택배를 800개 쯤 포장했다. 그 전에는 다른 일을 도왔는데, 그 때부터는 거의 짐 나르고 포장하는 일만 했다.
짱구는 빼빼로를 상자에 담는 일은 옷을 포장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포장을 하다 옷이 구겨질 수 있지만, 찢어지는 일은 없다. 하지만 과자는 부서진다. 짱구는 포장할 물건이 담긴 바구니를 받으면 머릿속으로 어떻게 담을지 구상을 한다. 과자가 딱 맞게 들어갈 상자 크기를 생각한다. 상자가 너무 크면 배송 중에 흔들려서 과자가 다 부서지기 때문이다. 내용물이 흐트러지지 않고, 과자가 부서지지 않도록 탑을 쌓듯 차곡차곡 기술적으로 쌓아야 한다. 딱 맞을 거라 생각하고 담았는데 상자다 닫히지 않으면 박스를 새로 만들어 다시 담는다. 과자가 부서져서 오면 쇼핑몰 게시판에 항의하는 손님들이 있다고 했다. 고객이 다 부서진 빼빼로를 사진으로 찍어 올려 구구절절하게 억울함을 호소하면 새것으로 다시 포장해 보내준다.
포장을 하는 동안 짱구는 내내 서서 일했다. 내가 앉아서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자 정색을 하며 절대 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짱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범을 보여줬다. 엉덩이 높이의 책상 앞에 서서 포장을 한다. 포장이 끝난 박스를 다른 쪽으로 치워 놔야하고, 박스가 떨어지면 새로 가져와야 한다. 포장이 끝난 박스가 어느 정도 쌓이면 택배트럭에 싣기 위해 다른 쪽으로 옮긴다. 50개쯤 포장 할 때는 쉬엄쉬엄 앉아서 할 수 있지만, 800상자를 포장 할 땐 앉을 수 없다. 짱구는 발바닥이 가장 아프다고 말했다. 하루에 10시간 쯤 서있으면 다른 곳보다 발바닥이 무척 아프다. 자고 일어나도 낫지 않고 다음날까지 발바닥이 욱신거린다. 짱구는 아침에 일어나면 “누나 나 아직도 발바닥이 아파”라고 말했다. 약 일주일간 짱구는 아침 10시부터 하루에 12시간 가까이 일을 하며 점심을 먹을 때 딱 20분 동안만 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짱구가 집에 들어와 신발을 벗으니 발 냄새가 진동했다.

“누나가 질색을 하며 냄새 난다고 소리를 질러. 12시간 넘게 운동화를 신은채로 서서 일을 하면 발에서 냄새가 날 수 밖에 없어. 일을 하고 와서 힘들어 죽겠는데 누난 어떻게 나한테 냄새 난다고 나가라고 할 수 있어. 나도 내가 힘들면 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니까.”

짱구는 단기 포장알바를 하는 게 이등병 때보다 몸이 훨씬 힘들다고 말했다. 이등병 때는 동기들이 많아서 하소연 할 곳도 있고, 다른 동기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쪼꼬랜드>에서는 대화할 사람이 없고, 무엇보다 말 할 틈이 없다. 짱구는 입을 꾹 다물고 같이 일하던 19살짜리 동생과 일그러진 표정으로 ‘너도 힘들지?’라고 눈빛만 교환했다. 포장을 하고 있는 사장은 짱구를 불러 중간에 다른 일을 시킨다. 이모들에게 초콜릿 상자를 가져다주라고 시키고,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는 일들도 짱구에게 시킨다. 속으로 불만이 쌓이니 스트레스가 몸의 피로로 이어진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시계를 보면 9시 20분, 씻고 출근할 시간이다. 짱구는 아침마다 욕을 했다.

“친구들이 알람소리를 못 들어서 지각했다고 말하면 게으른 자식들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했지. 난생 처음 알람소리도 못 듣고 계속 잤어. 사람이 피곤하면 알람소리를 못 듣는 게 가능해.”

가장 힘들었던 건 11월 2일 금요일이었다. 그 날은 빼빼로 1,000상자를 포장했다. 시간이 되면 택배회사에서 물건을 수거하러 오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가게 앞에 택배차를 세워뒀다. 짱구는 포장한 박스들을 그 차에 차곡차곡 실었다. 더 이상 물건을 실을 수 없어서, 다른 차 한 대가 더 왔다. 9시에 일이 끝났다. 짱구는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다. 사장이 지하에서 올라오더니 잠깐 멈춰보라고 말했다. 소분하는 이모 중 한 명이 밀크 초콜릿과 다크 초콜릿을 바꿔서 담았다. 두 초콜릿이 비슷하게 생겨서 실수를 저질렀다. 짱구는 상자를 전부 다시 내려서 뜯고 밀크와 다크를 바꿔 담았다. 이제 끝나는가 싶었는데, 사장이 욕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누나가 오픈마켓 주문서를 중복해서 뽑았다. 짱구는 250상자만 포장해도 될 것을 500개나 포장했다. 잘못 포장된 박스를 다시 내렸다. 끝나니 12시가 넘었다. 짱구는 그 주 일요일에도 출근했다.
짱구는 사장에게 남자 알바생이 한 명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장 알바 2명이 감당할 수 있는 주문량이 아니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좋은데, 시급 5,500원을 받으면서 12시간 씩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장은 짱구에게 인터넷에 알바 구인 공고를 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면접을 보러 오지 않았다. 답답해서 여사장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짱구에게 되물었다. 사장은 키 184cm에 체대를 나와 몸이 좋은 자기 조카를 데려 오겠다고 약속했다. 힘쓰는 일을 잘한다고 호언장담 했다. 조카가 왔다. 짱구는 그 몸 좋은 형이 포장하는 일을 도와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인간은 앉아서 초콜릿과 냠냠이를 담아 세트를 만들고, 이모들과 소분을 했다. 세트 상품을 만드는 속도가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해서 세트 몇 개가 품절된 상태였다. 사장 조카가 세트를 만든 덕분에 품절이 풀려서 주문이 늘었다. 짱구의 일은 더 늘어났다.

# 더 이상은 못 하겠어

빼빼로데이가 끼어있는 주 월요일에는 더 바빴다. 사장은 딱 한 번만 짱구에게 야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다음부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짱구는 당연히 연장근무를 해야 했다. 포장하는 짱구의 손길은 날이 갈수록 거칠어졌다. 처음에는 받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과자가 부서지지 않도록 성심성의껏 담았다. 나중엔 과자가 부서지든 말든 막 집어넣고, 박스도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실수로 빼놓은 물건이 있으면 박스를 개봉해 물건을 넣고 다시 포장했다. 나중엔 과자가 남으면 주문한 적도 없는 다른 사람의 박스에 집어넣고 테이프를 붙였다.
야근을 하며 한 뼘이 넘게 쌓인 송장을 포장이 끝난 박스에 하나씩 붙인다. 다 붙이면 송장이 또 쌓인다. 같이 야근하는 누나가 주문서를 계속 출력한다. 그 누나가 잘못한 것은 없는데 송장을 뽑아 짱구 앞에 쌓아두니 알바 하는 누나에게 안 좋은 감정이 생긴다. ‘저 나쁜년.’ 늦게까지 일해도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 짱구는 이모들도 미워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초콜릿과 빼빼로를 나눠 담는 일은 지겹긴 해도 몸이 힘들진 않다고 말했다. 어째서 이모들은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짱구는 ‘앉아서’ 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짱구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서서 묵묵히 상자를 포장하고 나르는 동안, 이모들은 앉아서 일하며 깔깔거리고 수다를 떤다. 짱구는 다음부터는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구해야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사람이 젊고 괜찮아 보였어. 한 번 싫어지니 사장의 태도가 가식처럼 느껴지고 밑도 끝도 없이 정이 떨어져.”

짱구는 사장이 ‘헐’, ‘멘붕왔어’라고 말을 하면서 장난을 치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40대 후반이 되서 인터넷 용어를 쓰는 게 한심해 보인다. 자신은 품위 있게 나이를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장은 점심을 먹으며 소주 2병을 마신다. 일이 끝나고 술 마시는 것까지 합치면 하루 3병이다. 식사하며 반주를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알코올 중독자처럼 보인다. 사장이 사업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초콜릿 장사 8년째라더니 주문 수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매번 세트가 품절이 난다. 남자 알바생 2명이선 못 할일이란 걸 뻔히 알면서 사람을 더 쓰지 않으니 일하는 사람만 죽어난다. 짱구는 면접을 볼 때 사장이 자신에게 그 동안 알바생들이 중간에 많이 그만 뒀다고, 절대 중간에 그만두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 했던 일을 떠올렸다.

“내가 돈 버는 거면 주문이 밀려도 좋아서 밤새서 하지. 혼자 남아서라도 하겠다. 그런데 나는 알바생이고 아무리 힘들어도 받는 돈은 똑같잖아. 일을 많이 해도 전혀 배려를 받지 못해.”

하루에 빼빼로 800~1000 상자를 포장한다. 짱구는 바쁜 걸 뻔히 알고 있으니 사장이 자신에게 부탁한다면 늦게까지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야근을 하면서 제 때 저녁을 먹은 적이 없다. 밤 11시쯤 집에 들어와 그 때 저녁을 먹었다. 사장이 짱구에게 저녁을 늦게 먹겠다고 미리 말하거나, 간식으로 김밥 한 줄이라도 챙겨줬으면 배고파도 참고 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한 번을 빼놓고 사장은 짱구와 19살 남자 알바생에게 야근을 할 것이냐고 묻지도 않았고, 저녁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모들에게는 매번 야근 할 수 있냐고 물어보고, 야근을 할지 말지 선택권을 줬다. 짱구가 일이 밀려 포장을 하는 동안, 이모들은 제 시간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한 시간 동안 천천히 밥을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신다. 짱구는 2시가 넘어서 사장과 함께 20분 동안 늦은 점심을 입에 털어 넣고 바로 다시 포장을 시작한다.

“나랑 그 동생이 22살, 19살이니까 우리한테 그렇게 했지, 30살 쯤 되면 그랬겠어? 나이가 어려도 기본적인 예의나 절차는 지켜야지. 왜 이모들한테는 물어보고 우리한테는 안 물어보는 거야. 그렇게 바쁜데 물어보고 부탁하면 사람이 안도와줄까. 매일 싸우고 싶은 걸 꾹 참았어.”

짱구는 빼빼로데이를 3일 앞두고 알바를 그만뒀다. 그 날도 2시에 점심을 먹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었다. 사장이 그 모습을 보고 밥을 맛있게 잘 먹으니 자신도 기분 좋다고 말했다. 짱구의 귀에는 그 소리가 ‘그래 많이 먹어라 그래야 일을 시키지’라고 아니꼽게 들렸다. 그 날도 사장은 짱구에게 야근을 할 것인지 묻지 않았고, 저녁밥도, 간식도 주지 않았다. 11시가 넘어서 일이 끝났다. 10시간 쯤 굶어서 배도 고프고, 빨리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었다. 사장은 “삼겹살을 먹으면서 목에 기름칠 좀 하자”고 말했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기분 좋게 술 한 잔하자며 팔을 잡아끄는 사장을 보니 울컥 치밀어 올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짱구의 표정이 험악해지자 사장은 슬그머니 손을 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이 일하던 동생에게 그만두자고 말했다. 둘이 같이 다음날 출근하지 않기로 했다.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더 이상 일 못하겠습니다.
14일, 128.5시간 입니다. 계좌로 입금해주세요
임짱구 신한 123-456-18181818

문자를 보내고 바로 잠들었다. 핸드폰은 벨소리는 무음으로 해 놨다. 신기하게도 때려치우겠다고 문자를 보내는 순간 육체의 피로가 싹 사라졌다. 심리적으로 해방감을 받으니 몸까지 편해졌다. 일어나니 오전 10시에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와있었다. 사장이었다. 그 후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나는 짱구가 알바비를 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처음에 짱구는 알바비를 받으면 옷을 사겠다고 틈만 나면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고, 내 눈에는 비슷해 보이는 가죽워커 사진을 여러장 보여주며 나를 귀찮게 만들었다. 나는 짱구에게 그 돈을 쓸 수 있겠냐고 물었다. 짱구는 도저히 못 쓸 것 같은데, 옷을 사고 싶긴 하다고 말했다. 알바를 그만둔 다음날 짱구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밖에 나가서 혼자 밥을 사먹고 영화를 봤다. 집에 돌아와 나에게 이제야 사람답게 산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차라리 노가다를 뛰었으면 돈이라도 더 많이 벌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자신이 시급 5,500원에 그런 착취를 감당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포장 알바 같은 건 다시는 안 할 거야. 원래 과자 안 좋아해서 빼빼로 안 먹는데, 이젠 영영 먹을 일이 없어. 그 전단지에 들어있던 짱구 얼굴만 봐도 찢어버리고 싶어.”

짱구는 알바비를 무사히 받았다.

짱구는 알바비를 무사히 받았다.

응답 3개

  1. 달팽이달팽이말하길

    송이가 가끔 말해주던 동생 얘기, 말 대신 글로 읽으니 더욱 실감나는 건 왜죠ㅋㅋ 르포르타주 너무 좋아요. 계속계속 써주세요-!

  2. 말하길

    지난번 취준생 인터뷰도 그렇고 이번 인터뷰 아니, 르포르타쥬, 정말 재밌고 처절하고 유익하고…암튼, 넘 잘 읽었어요. 동생도 참 개성지네…시급 4,700원에 어떻게 성실한사람을 구해? 라는 말이 팍 와 닿네요.

    • 송이말하길

      오늘은 짱구가 영등포로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세 달동안 빡세게 2교대 생산직 일을 하고 700만원을 땡긴다고 했습니다.
      세 달 뒤에 새로운 글로 만나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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