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5호] 편집자의 말 – 대학 교수들에게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위클리 수유너머> 5호 특집 주제는 ‘대학 등록금’입니다. 비싼 등록금이 가난한 이들을 배움의 장에서 내쫓고 있습니다. 고등교육에 들어갈 학비를 내려줄 생각은 죽어도 하기 싫은 모양입니다. 등록금을 내리느니 싼 이자로 빌려주겠다는 건데요. 대학은 등록금 올려받고 정부는 이자받고 빌려주고. 무슨 짜고 치는 사기꾼들 같습니다. 서민들의 피를 빠는 사채업자들 광고 있지 않습니까. ‘싼 이자 묻지마 대출’, ‘나중에 돈 생길 때 갚으면 돼요’. 정부의 학자금 대출 광고를 보니 소름이 돋았습니다. ‘대학생**군에게 빌려주고 직장인 **씨에게 받았습니다.’ 지금 빚쟁이 학생이 되면 직장인으로서의 미래를 구할 수 있다는 건데요. 사실은 반대죠. 현재를 연명하기 위해 미래를 저당 잡히는 것, 오늘 살겠다고 내일을 죽이는 것 아닙니까. 어쩌다 대학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지식과 정보, 돈을 둘러싼 계급전쟁의 현장, 대학으로 가볼까요?

대학등록금 문제를 다루다보니 대학의 중요한 구성원인 교수들의 목소리가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학생들은 대학 당국과도 싸우고 정부에도 항의를 하는데 교수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통 모르겠습니다. 스스로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여기 조금 다른 교수가 한 명 있습니다. 유시버클리의 아난야 로이(Ananya Roy) 교수인데요.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등록금 문제로 시위가 벌어지면서 그 중심에 떠오른 사람입니다. 그는 최근 대학을 비롯한 고등공교육의 사유화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가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어느 강연에선가 자신이 그렇게 나서게 된 이유를 짐작케 하는 말을 하더군요. 자기 학생들 몇 명이 다음 학기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했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한국에서도 아주 흔한 일이지요. 등록금 천만 원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학생들이 무슨 수로 매달 평균 백만 원 이상을 저축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부모 등골을 빼먹어야 한다는 건데, 그런 큰돈을 선뜻 낼 수 있는 부모가 전체의 몇 퍼센트나 될까요.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저임금 불안정 노동시장에 뛰어드는 건 당연하겠죠.

제가 로이 교수 이야기를 꺼낸 건 이 흔하디흔한 비극적 사태에 놀라고 아파하고 분노하는 그의 감성 때문입니다. 버클리 학생들이 건물을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을 때 먼저 뛰어가 경찰과 학생들을 중재하고, 학생들의 행동이 갖는 의미를 누구보다 먼저 이해하려 했던 사람입니다. ‘대학을 구하자(Save the University)’는 모임도 만들었지요.

대학을 뜻하는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나 ‘콜레기움(collegium)’은 모두 코뮨, 즉 공동체를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앎의 공동체, 배움의 공동체 안에서 스승과 제자는 서로의 삶을 챙기고 앎을 나누었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앎이라는 것 자체가 코뮨적입니다. 이번호에 글을 보내준 ‘도쿄의 블랙리스트회’ 친구들이 잘 지적했듯이, 앎이란 매매 양도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단지 나눠가질 수만 있지요. 가령 학생들에게 말라르메의 시를 읽어줬다고 해서 교수의 앎이나 정서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것들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퍼져나가는 것뿐이지요.

로이 교수의 특별한 행동은 대학의 전통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그리 특별한 게 아닐 겁니다. 정말로 특별한 건, 아니 특별하다 못해 기괴한 것은 배움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어린 동료들이 겪는 끔찍한 사태를 흔한 풍경으로 보는 사람들이지요. 세상의 어떤 공동체도 자기 동료들이 떨어져나갈 때 그렇게 무덤덤한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소위 조폭만도 못한 거지요. 게다가 학생들을 대학에서 내쫓는 비싼 등록금의 정체, 그 용도가 무엇입니까.

대학교수들이 이제 뭔가 답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대학이 앎의 코뮨, 배움의 공동체인지, 학생들 놓고 장사하는 취업알선 학원인지. 나는 앎의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인지, 앎을 팔아먹는 장사꾼인지. 내 앎의 동반자가 당국과 기업인지, 등록금에 허덕이며 저임금 노동시장을 전전하고, 월말이면 ‘학자금 대출이자 상환일입니다’라는 문자를 받고 깜짝깜짝 놀라고 있는 저 어린 학생들인지 말입니다.

끝으로 일본에서 멋진 글을 보내준 ‘도쿄의 블랙리스트회’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보냅니다. 서울에 오면 술 한 잔 사겠다는 약속 꼭 지킬게요. 아울러 솔직한 이야기를 재밌게 들려준 <전선인터뷰>의 금강산씨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요즘 <위클리 수유너머> 뉴스레터 신청을 많은 분들이 해주고 계시는데, 그냥 기사 받아보듯 읽지 마시고 편지를 읽듯 글을 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의견란에 짧은 답장이라도 좋으니 이러저런 생각을 들려주시면, 웹의 코뮨으로서 <위클리 수유너머>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 고병권(수유너머 R)

응답 8개

  1. 만죵말하길

    등록금 문제가 정작 대학교 안에서는 더이상 ‘문제’라기 보다는 논의 자체가 너무나 고질적이고 익숙해져버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하나의 현상이 되고 있습니다…’이건 아니다’라는 반응은 하면서 ‘뭐 어쩌겠어’로밖에 결론내리고 마는 무기력한 의식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그 문제를 제대로 학습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의식의 풍토가 잘못된 걸까요. 계속 이러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2. 청안(淸安)말하길

    대학이 장사치로 변하고, 학생들이 교수들의 밥줄이라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기만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대학이 학문의 장이 아니라 취업의 한 과정이라는 사실 또한 씁쓸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해야할까요? 제도와 의식이 같이 변해줘야하는데….

  3. 고추장말하길

    서범구 선생님… 혹시 춘천의? 따님 대학에 들어갔어요?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여하 선생님 출판기념회 소식이 들리질 않아요. ^^ ‘힘’ 좀 써보시지요^^ 그나저나 정말 학생들하고 진지하고 이 문제가지고 대학에서 토론을 했으면 좋겠어요.

  4. 여하말하길

    이번 주가 개강이지요? 글쓰기 수업인데, 이번 특집으로 글쓰기 한 번 해야겠네요. 글쓰기만 하지 말고, 돌려 읽고, 토론하고. 이렇게 좋은 수업자료를 제공하는 위클리에 한 잔!

  5. 서범구말하길

    오랫만입니다.
    올해 딸을 대학 보내고 이글을 읽으니 더욱 공감이 갑니다.
    저도 많은 일들을 다시 생각해보고 깊이 생각하고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봄눈이 내린 흐린 3월 1일 내일부터 개학…
    따사로운 봄날을 기대할 수 있는건 건강한 생각을 지니 젊은이와 그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6. 소이빈말하길

    대학교가.. 공부를 하는 곳이었던가요?
    대학교는.. 좋은곳에 취직을 하기 위해서 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었나요?

    저는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 좀 더 깊이있게 배우는 곳이 대학교인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곳이 아니던걸요.
    교수님들께 전공에 대한 질문을 하면 그런건 시험에 안나온다고 하는 대답을
    들으면서, 학생인 저는.. 비싼 등록금을 왜 학자금 대출을 받아 다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7. 쓴웃음말하길

    이대로 당하기만 해선 안됩니다. 학생들의 정당한 권리의 쟁취해 내야 합니다.

  8. 취생몽사말하길

    점점 더 이상 대학은 공부하기에 좋은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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