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물류 시대에, “택배”를 생각한다.

- 김융희

빗발치는 음산한 늦가을 날씨에 종일토록 장포 정리로 바깥 일을 했더니 삭신이 노곤하고 기분이 으스스 했다. 읽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천근 눈 꺼풀에 겨워서 금세 혼미한 의식이 오락 가락이다. 스르르 잠이 들었었나 보다. 꿈결의 전화 벨소리에 짜증스럽다. 이 늦은 밤중에 무슨 전활까? 였는데, 택배원의 위치 확인 전화였다. ‘배달 물품이 있어 곧 방문하겠다’고 한다. 또 택배원이 바뀌었나 보다. 이미 밤 아홉 시가 가까웠다. 인구 밀도가 낮은 시골이다 보니 우리 집은 꼭 밤중에 물품이 배달되고 있다.

개가 짖고, 인기척이 있어 출입문을 여니 도깨비처럼 움직이는 물체, 비를 맞으며 들어선 배달원이 불쑥 쌀 포대를 내 민다. 칠흑 같은 어둠에 얼떨결 경황없이 포대를 받아들기가 무섭게 배달원은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정말 순식간이다. 밖에선 후적 후적 찬비가 내리고 있다.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며 금세 불빛이 사라진다. 늦가을의 음산한 으스스 찬비를 맞으며 밤 늦게까지 무거운 짐을 나르는 중노동 택배원의 방금 모습이 서언하다. 따끈한 차라도 한 잔 대접할 걸… 어쩐지 마음이 허전하고 안쓰럽다. 저리 힘든 일이기에 배달원이 자주 바뀌나 보다.

자동차도 있고, 대중 교통도 내차처럼 편리한 세상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옮기며, 손에 짐을 든 것은 질색인 현대인들이다. 모두가 모든 것을 택배에 의존한다. 어제도 우체국에 갔더니 편지 업무는 없고 금융과 택배 업무만 북적댄다. 특히 택배 업무는 사람과 화물이 긴 줄로 늘어섰다. 요즘이 수확의 계절이라 농산물 물량으로 더욱 혼잡하나 보다. 지금은 농산물도 직거래란 명목으로 판매가 아예 택배에 의존한 직접 상거래이다. 담배도 고향 담베를 사달라며 몇 차례씩이나 고향의 행정 기관으로부터 안내문을 받기도 했다. 이것도 택배로 가능한 일이다.

현대는 만능의 물류 천국이다. 며칠 전에는 제주에서 오전에 보내온 살아 펄떡이는 방어를 세 시간도 안걸려 받았다. 지금 배달된 쌀포대도 정읍의 친구가 어제 보내준 것이다. 얼마 전에는 전철역에서 꽃바구니를 들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웬 그리 큰 꽃바구니냐고 물었더니 어색한 표정으로 요즘 취업해서 하는 일이라 했다. 전철 택배회사에서 고령자의 전철 무임 승차를 이용한 택배 일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급하다며 서류를 챙겨서 퀵써비스로 보내달라는 아들놈의 전화를 받고 편리한 세상을 절감했던 기억도 난다. 정말 만능의 택배로 편리한 세상이다.

현대를 지구촌 시대라 한다. 거대한 지구가 한 마을이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넓은 지구가 작은 마을로 축소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먼 공간을 쉽게 오락 가락 접근이 이웃집처럼 쉬어졌다는 뜻일 게다. 아무리 먼 지구의 끝이라도 하룻길이 되었으니, 정말 발달된 편리한 교통 수단이요 지구촌이란 합당한 명칭이다. 우리의 해안에서 금방 잡아 펄떡이는 생선이 곧장 일본인의 밥상에 오르고, 북구에서 배송된 생화가 우리의 저녁 파티에 장식꽃으로 사용된 꼭 요술쟁이 같은 세상이다. 이 모두가 잘 발달된 편리한 물류 덕택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항들은 인산 인해로 항상 북적이며, 이미 거미줄처럼 펼쳐진 도로는 나날이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오대양에는 수 만 톤의 화물선들이 해아릴 수 없이 항해하고 있으며, 하늘도 육로도 끊임없이 화물을 나르는 수송 대열이다. 개인도 나라도 내 것을 남들에게 팔며, 남들 것을 사 주는 거래가 왕성해야 경제가 살고, 나라가 발전하며, 모두가 유익하다는 것이, 현대의 지구촌 경제논리이다. 유리한 것을 만들어 비싸게 팔며, 불리한 것은 싸고 손쉽게 사서 이용하는 것이 효용 극대화의 경제 원리인 것이다. 이지와 이성은 별 볼 일없는 효율을 내세운 현대 신자본주의의 횡행인 것이다.

글쎄…이다. 나에게 있는 일이다.
내가 조그만 장포를 갖고 내 자급용 먹거리를 경작하는 서툰 농사꾼임은 이미 밝혔던 봐이다. 무, 배추등의 채소들, 고추, 상추, 시금치, 가지, 호박, 그리고 쑥, 비름, 민들레, 씀바귀, 고들뻬기, 냉이, 달래등의 야생초 같은, 누구나 손쉽게 가꿀 수 있는 일반 작물들이 전부이다. 특별한 기술도 자본도 없는 서툰 농부의 일상의 방편이요 소일거리일 뿐, 시장에 내놀 수 있는 작물은 전혀 아니다. 그러니 이미 출가한 세 자매를 둔 우리 가정에 쓰이는 먹거리로는 늘 넉넉해 남아 넘친다. 서툴지만 정성껏 기른 작물이 넘친다고 그냥 버릴 수는 없지 않는가!

이웃과 나눌 수 있고, 그래서 인심 후한 아량을 베풀 수 있어 다행이요, 더불어 일상의 삶이 한결 즐겁다. 또한 적적한 두뫼 산골에 살면서도 한가롭거나 외롭게 지내지 않고, 늘 자족하며 여유롭다. 나의 상경 길은 언제나 배낭을 메고 양손에 든든한 짐거리가 함께 한다. 내가 봐도 촌노의 꼴이 분명하고, 무거운 짐거리가 몹시 힘들어 짜증이 날 때도 많다. 그래도 몸에 벤 익숙함으로, 아니면 어색하고 허전하다. 내 우둔한 짖이 다행일 망정, 결코 싫지는 않다. 그런데 이처럼 모두를 나의 직접 택배로는 나눌 수는 없다. 그 편리한 택배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작년에는 마음 먹고 줄곧 택배 영수증을 모아 보았다. 생각보다는 훨씬 많은 물량이었다.
많이 나누었으니 좋은 일이다. 그런데 돈의 액수가 결코 만만찮았다. 오랜 동안을 소소하게 지불했기로 합산을 해보니 내 부담으로는 어찌 감당 했을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생활비를 추월한 내 소비 비중으로는 천문학적(?)인 것 같은 마음이다. 죽 써서 개 준 것도 유분수이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돈의 지출도 문제가 되지만, 어쩌자고 하찮은 부식 먹거리를 위해 아껴야 할 소중한 에너지를 이처럼 쓰고 있었다니…. 이런 문제들을 위해 지역 거래를 장려하는 소농 운동의 필요성이 강조되며 실천을 펼치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나도 금년부터는 절대로 택배 거래를 자제하자. 직배를 하되 다 못하면 그냥 버리더라도 결코 택배는 안된다. 년초에 우리 가족에게 나의 결심을 선포했고, 필요하면 와서 직접 가져가라며 동참을 선언했다. 나의 배낭도 큰 것으로 교체했고 양 손의 손가방도 커졌다. 감당에 겨운 무게도 감수하며 결심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제는 계절도 가을이 지나 겨울로 접어 들었고, 장포는 텅 빈 채 쓸쓸하다. 작년 이맘 때는 무, 배추등의 채소가 넘쳤는데, 지금은 우리집 김장거리도 부족하다. 작년에 비해 양이 더 늘었는데도 다 나눠드리지 못해 아쉬웠다. 우리집 가지, 고추, 무, 배추가 맛이 좋다며 바라는 사람이 작년보다 훨씬 많아진 것이다.

그럼 본론인 택배 말이다. 글쎄이다… 금년에도 택배를 완전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의존이 불가피했다. 불행하게도 말이다. 오늘날의 택배는 우리에게 고약한 “필요악”인 것이다.

응답 1개

  1. 말하길

    저는 어머니에게서 김치나 반찬 등을 택배로 받을 때면 비슷한 생각을 해봅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고 택배물의 특성상 포장을 꼼꼼히 하다보니 짐을 풀고 정리하고 나면 박스며 비닐봉지며 쓰레기가 왕창 나오거든요. 그래서 김치도 직접 담궈먹고 반찬도 해보려고 하는데…..가끔 어머니가 김치걱정, 반찬 걱정을 하시면 그 마음 때문에 그냥 받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가져오시는 갖은 부식거리, 묵은지….정말 잘 먹고 있습니다. 냉장고 한켠을 채우고 있는 먹거리들을 보면 선생님이 항상 수유너머식구들을 생각하고 계신 마음이 느껴져요^^무거운데도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니 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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