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수세식변기로 똥거름 만들기

- 박정수(수유너머R)

총알보다 똥이 더 무서운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정신분석학자의 책에 독일과 프랑스, 미국의 변기 구조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독일의 전통적인 변기는 구멍이 앞쪽에 있어서 우리 눈앞의 똥을 관찰하여 건강상태를 점검하게 되어 있는 반면에 프랑스는 구멍이 뒤에 있어서 똥을 누자마자 내려 보냅니다. 미국은 중간 형태로 변기의 물 위에 똥이 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볼 여지 없이 내려 버립니다. 지젝은 똥이라는 더럽고 불결한 대상을 처리하는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세 문화권의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변별합니다. 독일민족의 섬뜩하리만치 반성적인 태도와 프랑스민족의 급진주의적 태도, 앵글로색슨의 중도적 실용주의가 똥 처리 방식에 함축되어 있다는 겁니다. 뭐, 그럴법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재미난 성찰엔 그 세 방식에 공통된 태도, 즉 똥을 ‘더럽고 불결한’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와 다른 문화권을 대조하는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정신분석학이 꼭 똥을 꼭 더럽고 불결한 대상으로만 보는 건 아닙니다.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에 따르면, 서너살 무렵의 아이들은 똥에 대해 애정어린 관심을 보입니다. 자기 몸에서 나온 최초의 생산물이니까요. 그래서 똥을 사랑하는 대상을 위한 선물로 누기도 하고, 반대로 부모가 자기에게 나쁘게 대하면 그 불만을 똥을 안 누는 것으로 표출합니다. 그런 심인성 변비가 고착되면 나중에 폭력적이고 자린고비같은 성격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프로이트는 똥에 대한 유아기적 태도와 성인 사회의 돈에 대한 태도를 유비시키는데, 똥과 돈 모두 더러우면서도 소중한 대상이라는 점에서, 순환을 통한 사회적 관계 형성의 매개물이라는 점에서 그럴 법합니다.

더럽게 보든 소중히 여기든 정신분석학은 똥에 대한 태도가 ‘무의식’적이라고 전제합니다. 자린고비형 성격이든 반성적, 급진적, 실용적 이데올로기든 똥에 대한 태도는 ‘억압’되었다가 심리적, 상징적으로 ‘회귀’될 때 비로소 발견됩니다. 똥에 대한 이런 정신분석적 분석을 통해 똥에 대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 걸 금기시하는 서구문화의 특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목축생활의 전통 때문에, 육식문화라 냄새가 많이 나서, 전염병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튼 서구 사람들이 똥, 특히 사람 똥에 대한 혐오감은 대단합니다. 그중에 하나, 6.25 전쟁 때 야전에서 미군들이 총알보다 더 무서워한 게 ‘조선인’들이 싼 똥무더기였다고 합니다.

똥에 대한 이런 혐오감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차치하고, 그것의 물질적 결과는 자원 낭비, 토양의 황폐화, 수질오염으로 나타났습니다.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인분농법 대신 화학비료로 농사를 지으면서 토양이 황폐해지고 엄청난 정화 비용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각 가정에서 나오는 분뇨는 수세식 변기를 거쳐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모입니다. 가라앉은 건더기는 소각하거나 해양에 버려지고, 오수는 각종 화학약품으로 정화하여 하천으로 흘려보냅니다. 서울에는 4곳의 종말처리장이 있는데, 난지처리장 한 곳에만 하루 3천 톤의 분뇨가 들어옵니다. 톤당 처리 비용은 3만5000원 정도. 한 곳에서만 하루 처리비가 1억원 이상이 드는 셈이죠. 마지막 찌꺼기는 먼 바다에 버려 바다를 오염시킵니다. 자체 분뇨처리장을 갖추지 않은 대도시에서 배출되는 인분은 포항·부산·군산 등지의 먼 바다에 흩뿌려집니다. 가끔, 수세식 화장실에서 똥을 눌 때면 문득 이 도시 아래로 엄청난 똥바다가 흐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합니다. 이 위생적인 도시문명은 어쩌면 똥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과 같은 게 아닐까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농법대로 똥과 오줌을 오염물질로 버리지 않고 유기거름이라는 농업자원으로 순환시킬 수도 있는데 말이죠.

천연비료 너무 비싸 똥거름으로
똥거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사실 거창한 문명사적 성찰에서 나온 게 아니라, 경제적 계산에서 비롯했습니다. 올해 봄부터 한강 노들섬 도시농업공원의 시민텃밭을 분양받아 텃밭농사를 하고 있습니다. 7명이 공동으로 14평 텃밭을 경작하는데, 그동안 상자텃밭이나 두 세 평 규모의 텃밭만 가꾸다가 제대로 된 텃밭을 가지니까 농사가 전략게임처럼 재밌습니다. 작물별 재배 전략, 텃밭 배치 전략, 시기별 파종·수확 전략, 병해충 대응 전략을 짜고 태풍같은 우발적 상황에 대처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는 전 과정이 사이버 전략게임처럼 재미집니다. 텃밭 농사의 재미 중 5할은 ‘아이템’ 확보에 있습니다. 달걀 노른자와 식용유를 이용한 방충제 만들기, 계란껍질과 식초를 이용한 칼슘영양제 만들기, 담배꽁초, 은행잎, 마늘 등으로 방충제 만들기 등 유기농에 필요한 천연 영양제와 약제를 만드는 재미가 전략게임의 아이템 획득만큼 재미집니다. 그 중 규모가 가장 큰 아이템은 천연비료입니다. 먹을 만한 작물을 얻으려면 충분한 시비가 필요한데, 천연비료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흙살림배양균 20Kg에 1만원, 봄 가을 두 차례 14평 텃밭의 밑거름 비용만 해도 대략 10만원이 듭니다. 웃거름도 줘야 하고, 액비도 줘야 합니다. 관상용 화초를 가꾸는 게 아니라면 비용 대비 농작물 가치가 너무 적어집니다. 그래서 방앗간에서 깻묵을 사다가 발효시켜 밑거름으로 썼습니다. 1만원어치 사면 아쉬운 대로 봄 가을 밑거름은 충당됩니다. 웃거름용 액비는 우유통에 오줌을 모아서 사용하거나 쌀뜬물을 김치국물, EM효소로 발효시켜 사용했습니다.

김장배추 정식하고 나서는 내년 농사를 대비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거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왕겨(혹은 땟밥)와 섞어서 발효시키고, 시장에서 공짜로 생선내장과 머리를 얻어다 아미노산 액비를 만들고 있습니다. 야심차게 새로 시작한 퇴비생산은 똥거름 만들기입니다. 우리집(다세대 빌라 4층) 화장실의 수세식 변기에 비닐봉지를 씌운 바가지를 넣고 똥을 눈 후 왕겨를 뿌립니다. 3, 4일이 지나 용기가 가득 차면 옥상에 마련해 둔 거름 상자에 붓는 겁니다. 냄새도 안 나고, 깨끗합니다. 볼 일 볼 때는 예쁜 촛대에 촛불을 밝혀 집중력도 높이고 분위기도 돋굽니다. 이렇게 해서 도심 주택에서 생태화장실을 만들었습니다. 수세식 화장실을 생태화장실로 바꾸는 건 무척 간단한 작업이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심리적으로 먼 길을 거쳐왔습니다.

생태화장실을 향한 가깝지만 먼 길
귀농한 분들의 생태화장실 소식은 많이 듣고 실제로 보기도 했습니다. 노들텃밭에도 생태화장실을 두 군데 만들어 인분퇴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남의 일이었을 뿐입니다. 언젠가 귀농을 하게 된다면 나도 멋진 생태화장실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 당장 수세식 화장실을 생태화장실로 사용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귀농하신 분 얘길 들으니, 집 밖에, 밭가에 만들어 놓은 생태화장실은 수시로 이용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농사짓는 본인은 의지로 가겠지만, 식구들까지 일상적으로 이용하기는 힘들다는 거죠.

두물머리에 한 친구가 갈대숲 속에 멋진 일인용 생태화장실을 만든걸 보고, 거기서 시원하게 볼일까지 보고서도, 그리고 몇 달 후 그 똥거름이 향기로운 거름흙으로 변신한 걸 직접 보고서도 나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러다 <위클리수유너머> 137호에 두물머리 농사꾼 최요왕 님이 “수세식 화장실. 순환고리를 끊어버린 주범”(http://suyunomo.jinbo.net/?p=10785)이란 글에서 인분퇴비화를 통해 유기농업의 내적 순환고리를 완성하고 싶다고 쓰신 걸 보고 번개처럼 ‘그래, 나도, 지금, 여기서’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똥에 대한 혐오감이 적은 것은 이미 저희 집에 사는 두 마리 반려견의 똥을 모아다 거름으로 써 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섯 살 된 딸(매이)이 자기가 눈 똥을 엄마아빠에게 과시하는 걸 보면서(과연 자랑할 만한 똥을 눕니다^^) 사람 똥에 대한 혐오감이 약해진 탓도 있습니다. 그런 경험이 모여 내 똥을 거름으로 되돌리는 화장실 개조 프로젝트까지 감행한 겁니다. 수세식 변기에 바가지 하나 넣는 것으로 끝나는 이 싱거운 생태화장실 만들기에 꼭 필요한 재료가 있습니다. 바로 냄새 제거 및 탄소유기물 보충을 위해 똥과 섞는 왕겨나 톱밥입니다. 시골 정미소나 큰 목공소 가면 왕겨나 톱밥을 그저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서울에선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인터텟으로 왕겨를 주문할 수는 있지만 트럭 분량으로 팔기 때문에 엄두가 안 납니다. 그래서 노들텃밭 홈 페이지에 저의 인분퇴비 계획을 소개하고 텃밭지원팀에서 한 트럭 주문하면 저희가 소매로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노들텃밭에서 농사짓는 다른 분이 “여럿이서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 개인적인 사견만을 위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사안을 이행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댓글을 올렸더라고요. 이미 노들텃밭에는 생태화장실이 있고 인분퇴비도 사용하는데 모르는 건지, 아니면 그건 공공의 똥이고 이건 개인의 똥이라 다른 사안이라 생각하는 건지, 아무튼 똥에 대한 도시인들의 “정서적”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다행히 지원팀에서 비공식적으로 톱밥을 제공해 줘서 똥거름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태화장실

생태화장실2

어떤 사람들은 도시인의 똥은 시골똥과 달라 거름이 안 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 똥은 축분에 비해 영양분이 풍부합니다. 사람은 먹은 것의 30% 정도만 소화하고 나머지 유기물질은 배설합니다. 또 농약 친 농작물과 항생제 맞은 동물의 고기를 먹는다 해도 깨끗이 조리해서 먹으니 온갖 항생제와 호르몬제로 오염된 사료를 먹고 싼 축분으로 만든 퇴비보다 훨씬 덜 오염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민망한 얘기지만, 요즘은 똥을 누는 게 ‘배설’의 느낌보다 ‘생산’의 기분이 듭니다. 내 몸이 아주 값진 걸 생산하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똥 누는 게 즐겁고 기다려지는 일이 됐습니다.^^

응답 3개

  1. 김성희말하길

    저도 어렸을때 시골 할머니댁에서 뒷간에 가 똥을 누었더 기억이나네요. 재로 덮어두시는 할머니 모습…그리고 밤에 오강에 찬 오줌들을 밭에다 뿌리시던 모습…생생합니다. 수세시 변기를 사용하면서도 도데체 이똥들이 어디로 갈까? 늘 걱정합니다

  2. 조리노말하길

    누리집들을 기웃거리다 님의 글을 접하였습니다. 제 생 거의를 서울과 대도시에서 보냈지만 어려서는 시골에서 컸습니다. 그래서 난 수세식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물을 누를 때 마다 이건 아닌데 아닌데 생각만 하며 답답해하기만 하고 막연한 공상을 해오기만 했어요. 님의 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힘을 보태고 싶군요. 식구들도 설득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난 제 오줌만 모아 조그만 텃발을 가꾸고 있습니다.

  3. 여하말하길

    어렸을 때 잿간이 딸린 뒷간의 기억이 있어요. 약간 무서운 느낌과 함께.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똥을 멀리 하네요. 우리의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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