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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귀농은 쉽지 않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 김융희

요즘 귀농 인구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가 외면하고 기피하는 가난의 길을 스스로 바라면서 농사를 하겠다며 나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니 쉽게 수긍이 가질 않습니다. 귀농 의도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꿈꾸며, 행여 대농의 기업농을 생각하는 것은 아닐련지? 귀농이라는 것, 농사꾼이 되어 사는 삶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농업을 외면하는 세상임에도, 귀농 인구가 늘고 있다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삭막한 환경에서 삶의 방식을 바꿔보려는 대안적 반응같아 반갑습니다. ‘농사를 저버리는 세상은 불행하다’는 생각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아름다운 환경에서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전원생활에 대한 기대가, 그저 이상향을 꿈꾸며 전원을 즐기겠다는 귀농의 결심이라면, 생각을 바꾸거나, 아예 생각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도시생활에 젖은 물량주의 의식을 접고, 질적인 삶을 위한 어떤 고난에서도 근면 소박한 생활로 힘든 고비를 잘 넘기는 의지가 절실합니다. ‘밥 팔아 똥을 산다’는 속담처럼 마음을 비우고, 땀흘려 일한 만큼 걷우며 사는, 오직 농업을 지키는 생태적 농사꾼이 되겠다는 각오가 남달라야 할 것입니다.

오래 전 농가에서 살 때였습니다. 농촌의 오랜 옛집이 도시인들에게는 제법 운치가 있어 보였던 것 같습니다. 석가레, 들보가 노출된 실내의 구조에, 재래식 부엌의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짖는 생활등, 모두가 이색적 분위기로 느껴진 모양입니다.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도 기특했고,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피워 밥을 짖는 것도, 굴뚝으로 연기가 솟아 펼쳐진 모습도 좋와 했습니다. 허술하지만, 막힘 없이 자유로운 농가에서 찬거리도 직접 조달하며 이색 체험으로 즐겁게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대부분이 재미있어 했던 기대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실망으로 바뀜니다. 재래식 화장실은 불결하고 불안한 장소로 일을 볼 수가 없습니다. 헐렁한 문짝에 방의 구조는 안심하고 잠을 잘 수도 없고, 파리, 모기, 벌레를 보면 비명입니다. 다음날 일어나보면 밤중에 모두 도망을 첬습니다. 지금도 도시생활에 익숙한 특히 아파트 생활에 젖은 도시인들에게 농촌생활은 불편 투성입니다. 마음과 현실의 차이는 큼니다. 도시인들에게 전원생활이 생각처럼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

내가 아는 가정의 귀농 이야기입니다. 안정된 직장을 퇴직하여 고향에 새 집을 짖고, 농토를 마련해 제법 알뜰한 귀농을 했습니다. 그러나 삼사 년을 못 넘겨 시골생활을 접고 지금은 서울 근교에 살고 있습니다. 식구들의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귀농을 실패한 것입니다. 그는 가족과 자신만을 의지하며 이웃을 도외시 했던 것입니다. 농촌의 생활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도시의 생활과는 많이 다릅니다. 이웃과 어울려 더불어 사는 삶이 무었보다 중요합니다. 그는 오랜 도시 생활로 어렸을적 고향의 정서를 잃었던 것입니다.

물론 말년을 귀농으로 행복한 가정도 많습니다. 나는 볼 일이 있어 갔던 시골에서 성공한 귀농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강원도 둔내에서 멀지 않는 곳입니다. 아늑한 산촌에 새로 지어진 예쁘고 아담한 농가였습니다. 집앞 텃밭에 가꾼 야채들이 너무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전직 교장선생님으로 말년을 귀농으로 행복하게 사시는 분입니다. 나는 인사를 청하고 말씀을 나눴습니다. 퇴직후 노후문제로 귀농을 선택하여 교직에 계시면서 틈틈이 장소를 물색하며 준비했다고 합니다.

옛 화전민 터였다는 둔내휴게소에서 30분 거리에 대여섯 가구가 살고 있는, 사방이 분지처럼 아늑하고 조용한 곳이였습니다. 서울 본토백이로 농사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이곳에 와서 이웃들과 지내며 보고 배운 것이 지금처럼 익숙한 농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웃분들이 수시로 오가며 술도 마시고, 농삿일도 나누는 행복한 일상이요, 주말이면 자식들, 지인들이 찾아와 함께 지내며, 그들의 귀가길엔 싱싱한 야채 보따리를 챙겨주는 재미가 삶을 즐겁게 한다는 자랑입니다. 그 분의 말씀에 공감하며 표정에서 진실이 느껴졌습니다.

세상의 변화처럼 농촌의 인심도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순박하고 정이 많던 옛 농촌 사람들이 아닙니다. 삶의 갈등은 지극히 사소한 것에 연유하며, 시골의 이웃은 매우 단순하여 감정 노출이 쉽습니다. 도시인들은 그 감정을 교양이 지배하고 감출 수도 있지만, 시골 인심의 아주 단순한 생각은 본능적 이해 득실에도 민감해, 속내는 이내 본색이 드러납니다. 도시인들은 개성을 지키며 이웃과 떨어져 살아도 별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골생활은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아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농사란 것이 자연의 품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먹거리를 가꾸는 일입니다. 생명의 중요함 만큼 농업은 신성하며 농사꾼은 천하지대본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농사일과 농사꾼의 꼴이 어떻습니까? 수확량을 늘리고 작물의 질을 높인다며 함부로 맹독성 농약과 비료 살포를 불사하며, 마음데로 유전자까지 조작하는 거침없는 행위가 농업의 현실이요, 농부가 애써 애지중지 기르는 작물을 가격 때문에 마구 갈아 엎고, 쌀값을 올려달라며 길거리에 쌀을 함부로 쏟아 버리는 사랑이 없는 농사꾼의 작태를 우리는 늘상 목격하고 경험합니다. 귀농이라는 ‘농사꾼이 되는 길’도 기분에 의한 일시적 충동이 되선 안되겠다는 말로 이만 줄이겠습니다.

응답 1개

  1. 지나가다말하길

    백배공감! 귀농을 위해선 한평생 굳어진 감각을, 일상을, 인간관계를,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니까요. 언젠가 아득히 귀농을 꿈꾸는 도시농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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