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최전선

맥에서 일하는 아이들

- 우주히피

1

상냥한 현아(M고 2, 18)

현아는 인사성이 밝은 아이다. 맥에서 일하는 알바생들은 서로 친하지 않으면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아는 누구에게나 반갑게 먼저 인사한다. 일이 서툰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다가가 도와준다. 누군가 모르는 것을 물어볼 때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상냥하게 가르쳐준다. 사람들은 그런 현아를 좋아한다.

남들은 친구 따라 강남 가는데 현아는 친구 따라 맥에 왔다. 중2때부터 친구인 소라(M고2, 18)가 함께 일하자고 해서 올 3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친구들은 학교수업이 끝나면 입시학원으로 달려가지만 현아는 맥으로 달려온다. 한 달 120-130시간 일해서 50-60만원의 임금을 받는다. 어차피 수능공부도 안하는데 맥에 와서 돈을 버는 게 현아의 삶에 더 유용하다.

“제가 소녀가장이라니깐요”

현아의 가난은 오래됐다. 그것을 체감한 것은 엄마, 아빠가 이혼한 중학교 때부터였다. 고1때 현아는 등록금을 못 냈다. 올해는 담임의 배려로 등록금이 면제됐다. 현아는 1년 후에 닥칠 졸업이 걱정이다. 고1때 못낸 등록금이 아직도 부채로 남아 그것 때문에 졸업을 못할 수도 있다. 등록금뿐만 아니라 현아가 해결해야할 돈이 많다. 가족 중에 돈을 버는 사람은 현재 현아 밖에 없다. 현아는 조부모,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아빠는 돈을 집으로 가져온 지 꽤 됐다. 조부모는 돈 벌이를 하지 않는다. 이제 아빠는 현아에게 돈을 빌려 쓴다. 얼마 전 9월 급여를 받고 20만원을 빌려달라고 해서 드렸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아빠는 빌린 돈을 밀린 도시가스 요금을 냈다며 현아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다. 추석 전, 할머니께 명절 쇠라고 10만원을 드렸다. 할머니는 그 돈을 밀린 전기세를 내는데 썼다. 이전의 월급도 이런 식으로 쓰였다. 현아는 어쩌다 집안의 밀린 공과금을 내는 처지가 됐다. 그래서 이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제가 소녀가장이라니깐요”

“돈 버는 게 다 그런 것 같아요”

맥에서는 일 못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선배는 후배가 들어오면 일을 매섭게 가르친다. 일이 서툰 사람을 보면 “짜증나”를 연발하거나 “우리 한 번에 쉽게 가자, 응?”, “아, ㅆ ㅂ” 등의 말을 자주 뱉는다. 이런 일터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한 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일을 배우는 중에 도망간다. 그렇지 않으면 ‘못해 먹겠다’ 고 대판 싸우고 나간다. 현아는 이런 맥의 분위기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사회 어디를 가도 다 똑같을 것 같아요. 처음엔 힘들었는데 제가 일을 해보니깐 언니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되더라구요” 매니저들의 구박도, 일의 고단함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삶의 과정 중 하나다. 시간이 지나 보니 신참 알바생의 서투름에 현아도 짜증이 난다. 왜 선배들이 그렇게 화내고 난리쳤는지 이해가 된다.

현아가 이렇게 말하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 그만 두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맥에서 일한 첫날, 집에 가는 길에 평소 연락이 뜸한 엄마가 문득 그리워졌다.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의 음성을 들으니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엄마는 일이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현아에게 말했다. 하지만 돈 나올 데가 없다. 급식비, 하다못해 용돈을 줄 사람조차 집에는 없다. 엄마도 그것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일이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 이제 현아는 엄마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참고 일했더니 오른쪽 엄지발톱이 빠져 버렸다. 일하는 동안 매시간 서서 발을 움직여야 했다. 그런 와중에 단화에 엄지발톱이 눌려 그만 썩어버렸다. 그후부터 발톱은 반 밖에 안자란다. 샌달을 신을 때면 엄지발톱이 눈에 거슬린다. 매니저나 점장님한테 발톱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 본적이 없다. 여기서 일하면 누구나 상처를 입는다. 발톱이 빠진 건 별 일 아니다. 현아는 일하면서 겪었던 서러움과 몸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도중에 여러 번 되풀이해서 말한다. “돈 버는 게 다 그런 것 같아요”

현아는 친구를 만날 시간이 없다. 평일은 물론 토요일도 나와 일을 한다. 일요일마다 고모부가 운영하는 교회에 나가 잔심부름도 한다. 맥알바와 교회 심부름에서 해방된 시간에 현아는 핸드폰을 가지고 논다. 핸드폰은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이어준다. 카톡으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음악을 듣고, 애니팡으로 스트레스를 날린다. 한 달에 핸드폰요금으로 8-10만원을 낸다. 요금이 부담스럽지만 핸드폰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이것만이 현아의 고된 삶을 위로해준다.

현아의 꿈

올해 고2, 인문계 생인 현아는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고 싶다. 아직도 1년을 더 다녀야 졸업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갑갑하다. 또래 친구는 수능공부로 눈코 틀 새 없이 바쁘지만 대학을 안가기로 마음먹은 현아에게 학교생활은 지루하다. 반 친구들은 그런 현아에게 대학을 안가도 괜찮겠냐고 묻는다. 현아는 그때마다 말한다. “괜찮아. 난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 그냥 빨리 돈 벌고 싶어”

현아는 파티쉐가 되고 싶다. 어차피 대학 안가는 거 무의미하게 수업을 듣기보다 직업반으로 옮겨 제빵 기술이나 배웠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직업반은 성실한 학생만 옮겨갈 수 있다. 지각일 수가 많은 현아는 불성실한 학생으로 찍혀 직업반에 못 갈 깔봐 걱정이다.

2

양아치 소라(M고 2, 18)

양아치. 맥에서 소라를 부르는 별명이다. 소라는 친하건 안 친하건 맥에서 일하는 알바생을 보면 들러붙어서 넉살좋게 밥을 사달라고 조른다. 사람들은 그 모습이 건달이 삥 뜯는 모습과 닮았다하여 소라를 그렇게 부른다.

소라는 일이 끝나도 집에 가지 않는다. 라이더 오빠들을 붙잡고 수다를 떨며 밥을 사달라고 조른다. 아니면 혜교 언니(비정규직 매니저, 25)와 진희언니(고3, 19)를 기다렸다가 노래방에 놀러간다. 그러다 보면 종종 자정 넘은 시간까지 **역 사거리를 배회한다. 어차피 엄마는 소라가 집에 있건 없건 신경을 쓰지 않는다. 늦게 들어와도 전화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에 있으면 동생이 돈 달라고 괴롭힌다. 집에서 괴롭힘 당하기보다 맥에 나와 사람들하고 노는 게 낫다. 소라는 일이 없는 날에도 맥에 나온다.

요즘 들어 맥에서 일하기 싫다. 슬기언니(매니저, 23)와 싸웠다. 소라와 혜교 매니저가 친하게 지낸다고 슬기언니가 소라를 구박한 것이 그 이유다. 슬기 언니는 전과 다르게 소라한테 짜증내고 잔소리를 심하게 한다. 소라가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소라한테만 뭐라 그런다. 그렇지 않아도 맥에서 일 하는 게 힘들다. 소라가 일하는 저녁 타임에는 손님이 많이 온다. 햄버거를 사려고 길게 늘어선 줄은 줄어들지 않는다. 소라는 그 줄을 볼 때 마다 이렇게 중얼거린다. “다 살쪄서 뒈져 버려” 9시 이후에는 술 취한 손님들이 온다. 그 손님들은 알바생에게 괜한 시비를 건다. 그럴 때 마다 어김없이 걸려드는 게 소라다. 업계의 관례상 잘못한 게 없어도 손님에게 무조건 사과해야한다. 소라는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송합니다, 손님”을 말해야하는 상황이 못마땅하다.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그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는 법을 잘 모른다. 사과를 많이 한 날에는 카운터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운다.

멀어지는 꿈

소라네 가족은 엄마, 소라, 남동생, 강아지. 이렇게 네 식구다. 엄마는 항상 돈에 쪼들린다. 소라와 동생이 급식비나 문제집 살 돈을 달라고 하면 늘 돈이 없다고 한다. 소라는 엄마한테 돈 달라고 하기가 미안해 맥 알바를 시작했다. 한 달에 50-60만원을 번다. 알바비를 받으면 급식비를 내거나 참고서를 사는데 쓴다. 엄마에게 10-20만원씩 생활비에 보태라고 드린다. 거기다 남동생 용돈까지 챙겨준다. 나머지 돈은 핸드폰 요금과 용돈으로 쓴다.

소라의 꿈은 애견까페 사장이다. 소라는 강아지가 너무 좋다. 애견까페를 하게 되면 강아지와 하루 종일 함께 있을 수 있다. 전문대 애견학과에 입학해서 강아지에 대해 공부를 하고 까페 운영에 대한 안목도 쌓고 싶다. 소라는 가정 형편상 강아지를 살 수 없어 유기견을 데려와 키운다. 엄마와 남동생은 강아지를 싫어한다. 강아지를 돌보는 일은 늘 소라 몫이다. 용돈의 대부분이 강아지 병원비와 사료비로 쓰이지만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강아지도 소라의 정성을 아는 걸까? 집에서 강아지만 소라를 반긴다.

자신의 꿈을 위해 소라는 알바도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한다. 하지만 소라는 두 가지 일을 성실히 해내기 벅차다. 맥 알바를 하면서 학교생활에 소홀해졌다. 일을 시작한 후로 소라는 아침 8시까지 등교하는 게 힘들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가면 12시.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잠이 안 온다. 피곤한 몸을 이리 저리 뒤척이다가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든다. 아침에 깨어 보면 9시가 훌쩍 넘어 있다. 종종 1시 넘어서 학교에 가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각을 하다 보니 1년에 정해진 출석일 수에서 3분의 1이나 넘게 결석을 했다. 자연스럽게 손에서 책을 놓아 버렸다. 학교 공부도 수능 공부도 진도를 너무 놓쳐버렸다. 이제 학교에 가면 피곤해서 자거나 친구들과 수다만 떨다가 온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하다. 학원에 다니면서 놓친 공부를 다시 하고 싶지만 학원비가 없다. 맥 알바를 그만 두고 학교 공부에 전념하자니 학교에 다닐 돈이 없다. 엄마는 소라의 학교생활에 무관심하다. 지각을 해도 밤늦게 들어와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직 소라가 주는 생활비에만 관심을 갖는다. 소라는 떨어져 사는 아빠가 그립다.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고, 교육비를 달라고 말해 볼까 싶지만 아빠와 연락 안한지 너무 오래 됐다. 전화를 걸 용기가 선뜻 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어요”

9월 중순 무렵, 담임은 소라에게 퇴학을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학교생활에 불성실한 소라에게 내린 특단의 조치다. 알바 아니면 학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 시작한 알바가 오히려 학교생활을 망쳐버렸다. 소라도 지각을 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아침에 자신을 깨워 줄 사람이 집에 없고, 혼자서 일어나기가 힘들다. 이제 지각이 만성적인 습관이 되어 버렸다.

거기다 맥에서 일을 하는 게 즐겁지 않다. 슬기 언니의 괴롭힘과 손님의 시비에 소라는 지쳤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포기 할 수 없다. 어떤 선택을 내려야만 할 시점인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소라는 사람들을 붙잡고 밥 사달라는 말 대신 이렇게 말을 한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어요”

3

외계인 명준이(고졸, 19)

명준이는 일할 때 혼잣말을 자주 한다. 마치 어린 아이가 상상 속 친구와 이야기하듯 보이지 않는 대상과 대화를 한다. 매니저가 ‘덜 떨어진 애’ 같다고 구박을 하거나 사람들이 ‘똘아이’라고 수군거릴 때 그 대화가 잠시 멈춘다. 눈앞에서 그들이 사라지면 혼잣말은 다시 시작된다. 명준이는 스스로를 외계인이라 부른다. 종종 여러 톤으로 목소리를 바꿔가며 혼잣말을 한다. 그럴 때면 투명 외계인과 교신하는 것 같다.

그래도 맥알바는 돈을 떼이지 않고

명준이가 맥에 들어온 지 1년이 넘었다. 작년 4월쯤 친구 우승이와 함께 입사했다. 당시 고3이었던 명준이는 취업을 하면 알바를 그만둘 셈이었다. 두 번 취직이 될 뻔했다. 한번은 성남에 있는 중소기업이었는데 면접에서 떨어졌다. 두 번째는 강남에 있는 LCD회사였다. 담임이 학교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라고 소개 시켜줘 간 곳이다. 중소기업보다 더 작은 ‘소’기업이었다. 업무를 가르쳐 주지 않고 중국어 공부를 시켰다. 내년에 있을 중국진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때때로 사장은 직원들 기강을 잡았다. 명준이는 의자에 앉아 사장에게 인사했다고 화장실에 끌려가 호되게 혼났다. 그렇게 두 달 동안 일을 했다. 첫 달 월급은 한 푼도 못 받았다. 두 번째 월급은 반만(60만원)줬다. 참다못한 동료들이 노동청에 사장을 제소하고, 학교에 일터의 문제를 알렸다. 그때 명준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그만뒀다. 두 번의 취직 실패 후 명준이는 다른 곳에 취직할 노력을 하지 않고 그냥 맥에 다닌다. 공고에서 전산학과를 전공했지만 이렇다할 자격증이 없어 월급을 떼어 먹지 않는 안정적인 일터를 찾기가 어렵다. 더구나 자신을 써줄 일터가 있을까싶다. 명준이는 고마움을 담아 말한다. “맥에 나와 이 일이라도 하는 게 다행이에요”

명준이는 ‘워시’를 담당한다. 밤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주간에 맥에서 썼던 온갖 식기를 씻는 일을 한다. 1평 남짓한 싱크대가 있는 구석이 명준이의 일터다. 그곳엔 늘 설거지가 쌓여 있고, 바닥에는 구정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다. 한쪽 구석에서 음식쓰레기통이 내뿜는 역한 냄새가 그 공간을 가득 채운다. 다른 동료는 그 냄새에 비위가 상해 그 공간에 있길 꺼려한다. 하지만 명준이는 그 냄새에 무감하다.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쉰다.

명준이의 옷은 늘 물에 젖어 있다. 앞치마를 착용해도 1시간도 안돼서 물에 젖어 버려 오히려 일하는데 불편하다. 그래서 앞치마를 착용하지 않는다. 고무장갑도 끼지 않는다. 뜨거운 물로 식기를 씻기 때문에 금방 손에 땀이 밴다. 땀 때문에 고무장갑이 손에 들러붙는다. 어쩔 수 없이 맨손으로 뜨거운 물과 독한 세제를 만진다. 그렇게 일했더니 일주일쯤 일했더니 손이 하얗게 변하고 피부 껍질이 벗겨졌다. 그 후부터 맨손으로 설거지를 해도 피부가 별 반응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철기식기를 다루기 때문에 늘 손에 상처를 입는다. 물 때문에 상처에 약을 발라도 소용없고, 반창고를 붙여도 곧 떨어진다. 상처는 물에 불어 하얗게 푸석거리거나 너덜거린다.

명준이는 한달에 100-130만원 정도를 받는다. 지난 4월부터 야간 워시 일을 시작하면서 백만원이 넘는 돈을 처음 만져봤다. 월급이 ‘소’기업 다닐 때 보다 훨씬 많아 졌다. 하지만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가방 대신 헤진 쇼핑백을 가지고 다니지만 창피하다는 생각을 한적 없다. 누군가 놀릴 때만 헤진 쇼핑백을 새것으로 갈아줄 뿐이다. 멋을 내는 것에도 흥미 없어 옷을 사지 않는다. 염색도 해본 적 없고, 미용실도 아주 가끔 간다. 여자친구도 같이 놀 친구도 없어 유흥비로 돈을 쓰지 않는다. 전화부 목록엔 학교선생님, 전도사님, 매니저, 고등학교 친구 번호만 있다. 또래 아이들은 게임을 하며 놀지만 명준이는 그것에도 흥미가 없다. 매달 돈이 통장에 쌓이는 것만 확인하며 언젠가 쓰일 때가 있겠지, 이러고 만다.

자신감 없는 삶, 닫힌 미래

1년 넘게 맥에서 일하면 보통 알바생은 정규직 매니저를 꿈꾼다. 명준이와 함께 입사한 친구 우승이도 앞날을 생각해서 트레이너가 됐다. 트레이너가 되면 시급이 300원 더 오르고, 정규직 매니저로 진급할 기회가 더 많아 진다. 그러나 명준이는 매니저를 꿈꾸지 않는다. 자신이 맡기엔 그런 직책은 너무 어렵다. 높은 직책으로 갈수록 신경 쓸 일이 많다. 더구나 테스트를 통과해야하는데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 명준이는 무언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없다. 남들은 쉽게 따는 운전면허증도 필기시험에 합격할 자신이 없어 학원에 등록하지 못한다. 지금 일이 힘들긴 하지만 시키는 일만 하면 되고 머리를 쓰지 않아도 돼서 만족한다. 그러나 영원히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 다가는 군대를 가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때까지만 맥에서 일을 할 생각이다. 군대 다녀온 후에는 뭐 할지 모르겠다. 군대에 가면 생각나겠지, 이러면서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는 명준이가 4학년 때 집을 나갔다. 아빠, 누나, 명준이. 이렇게 세 식구가 모여 식사하는 일은 드물다. 아빠는 밖에서 먹는 일이 잦다. 누나는 음식을 사와 혼자만 먹는다. 명준이는 스스로 끼니를 해결한다. 종종 음식을 만들다 보니 요리에 재미가 붙었다. 가끔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요리사가 될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른다. 남들 말로는 한식자격증을 따야한다는데 어떤 학원에 다녀야 하는지,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명준이는 찾아보지 않는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잠은 안 오고 무기력해져 다른 일을 할 엄두가 안난다. TV를 켜 놓고 그 옆에서 한없이 누워 있는다. 그렇게 한참을 있어도 잠이 안 오면 솔을 들고 집안 곳곳을 청소한다. 그러는 중에 집에 틀어 박혀 있는 누나랑 마주치면 싸우기도 한다. 대학생 누나는 집에서 손도 까딱 안하면서 명준이만 보면 온갖 잔소리를 퍼붓는다. 그러다 다시 청소를 하고, 누나와 싸우고, 이 짓을 반복하다 피곤해지면 얼핏 잠이 든다. 핸드폰 알람소리가 울려 깨면 어느새 출근할 시간이다.

하루의 유일한 즐거움, 바닐라 라떼

오전 7시, 퇴근 시간. 매장 밖으로 나온 명준이는 “햇빛이 눈을 찔러요”라며 눈을 못 뜬다. 눈부신 햇살을 피해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간다. 요즘 명준이는 바닐라 라떼 먹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시급보다 비싼 음료를 사 먹는 게 머뭇거려지지만, 맥 알바를 하고 난 뒤부터 유독 단 음식이 먹고 싶다. 매일 커피숍에 들러 바닐라 라떼를 사 먹는다. 어떤 날은 하염없이 앉아 있는다. 그러지 않는 날은 테이크아웃해서 쪽쪽 빨며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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