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일기

이윽고 게슈탈트 붕괴

- 라훌라(장애인활동보조인)

활동보조서비스 ( Personal Assistance Service )

“활동보조서비스란 한 가지 또는 복수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장애로 인한 지역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본인 스스로 신변처리가 불가능한 장애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최대한의 자기관리권을 부여하여,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통한 자기실현을 추구하기 위한 서비스이다. 또한 장애인의 장애정도에 따라 직접지원 또는 간접지원을 병행하는 서비스”이다
활동보조서비스는 혼자서는 자신의 일상생활조차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생존권과도 같은 서비스이다. 또한 장애인에게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가족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지속성과 책임성, 전문성에 한계가 있는 자원봉사자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해 줄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활동보조인을 위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활동보조인이란 말이 남한사회에 등장한건 1998년이다. 제도가 시행된건 2006년도부터다. 그 당시에는 시범사업이었기 때문에 많은 혼란이 있었다. 안다. 너무 잘 안다. 왜냐면 그 당시 내가 활동보조인을 해봤기 때문이다.
위 설명에는 직접지원이든 간접지원이든 어떤 지원을 해주는 사람이고 지속성과 책임성을 가지고 전문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머슴처럼 일했다.

자기실현에 대한 정의도 모두가 제각각이고, 지원이란 게 어디까지 하는 게 지원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케바케(CASE BY CASE)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딱히 사수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업무역량을 체크하거나 규정이나 규격에 기준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도 아니다. 이 업무의 세계는 도표나 수치, 보고서나 영업 같은 분야가 아니라, 인간의 신체와 내면을 가장 밀접한곳에서 관리하고 상대하는 세계다.

말하자면, 이런 세계는 아니란 거지요

말하자면, 이런 세계는 아니란 거지요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김애란의 소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에서 명화가 용대에게 하는 말이다. 언제나 ‘어디’ 가 중요하고 그걸 알아야 머물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다고, ‘짜이날’ 이라는 단어를 잊지 말라고. 그 말이 당신(용대)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 줄 거라고 말한다. 이 소설을 읽고 꺼이꺼이 울었다. 부러워서? 그럴지도. 그것보다는 저 말이 사무쳤다. 도대체 내 자리는 어디냐? 난 어디에 있는 거냐? 짜이날 짜이날 울었다. 용대와 명화는 작품 속에서 각기 택시운전노동자와 조선족 식당노동자로 등장한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울리다니!

활동보조인을 하면서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월급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일을 하고 주택청약을 들고 전화요금을 자동이체하고 바우처를 긁고 수도세를 내고 부양의무제폐지와 장애등급제폐지를 부르짖고. 그렇게 살다가 추석 때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수급권자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이유는? 내가 돈을 착실히 벌었기 때문이란다. 부모님은 내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 모른다. 말해도 알 수 없다. 장애인과 내가 이 사회 속에서 비슷한 꼴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용자와 나는 사회적으로 같은 자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될지는 몰랐다. 워 더 웨이 짜이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계에서는 장애등급제폐지와 부양의무제폐지를 요구하며 투쟁중이다. 그 전에는 이동권투쟁과 활동보조인제도를 요구하며 투쟁했다. 그렇지만 김주영씨의 사망 이후로 활동보조24시간제도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나는 솔직히 급조된 주장이고 많은 고민이 없다는 생각이다. 우선 당사자인 활동보조인의 의견은 안 들어가 있다. 그 24시간제도라는건 어떤 24시간제도인걸까? 현재 활동보조인의 심야수당은 1000원이다. 그 돈을 더 받고 어떤 지속성과 책임성, 전문성을 가지고 장애인을 지원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가지지 못하면 장애인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장애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일까? 심야노동을 하게 되면 이용자를 재우고 자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내일인걸까? 2시간 일하고 15분 쉬는 동안에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1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아 행복해를 연발하면 되는 걸까? 편의점 알바에게 열심히 하세요. 좋은날 있을거에요. 같은 거짓말도 해주면서? 너는 바코드를 찍고 나는 바우처를 찍겠지.

김주영씨의 노제에 나도 있었다. 일로써 갔지만, 일만 한건 아니다. 김주영씨는 장애인이었고 동시에 노동자였다. 그녀의 일이 나의 일이고, 그녀의 자리가 내 자리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종종 장애인들이 재능투쟁이나 한진중공업투쟁에 연대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마음이 더없이 좋다. 동지라는 말은 그닥 맘에 들지 않지만. 어쩌면 장애인이나 활동가들, 코디네이터들, 야학 교사들과 동지같은게 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는 잘모르겠거나 아니라고 생각한다. 확인할 수 없다. 활동보조인도 재능노동자처럼 노조가 없고, 한진중공업노동자처럼 상시적인 해고불안에 시달린다. 활동보조인은 25000명 활동보조이용 장애인은 35000명. 특별히 주휴수당이나 시간외수당. 보건휴가도 없다. 이런 현실에서 활동보조 24시간제도란 어떤 24시간인걸까? 장애인의 복지를 노동자의 저임금으로 때우려는 걸까? 24시간제가 시행되고 나서 장애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그때는 활동보조인의 책임으로 매도되는 건 아닐까? 김주영씨와 나는 같은 자리인데. 우리는 어디로 가는걸까요?

나는 아담을 인공위성처럼 따라다닌다. 식사를 하거나 무엇을 지원할 때 내 자리는 정해져있다. 그의 오른쪽. 내가 그의 오른팔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곳을 다녔다. 수유너머. 별꼴. 집회현장. 인권운동사랑방. 영화제. 그때마다 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활동보조인이고 이용자의 편의를 돕기만 하면 된다. 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지키면 되는 일이라고. 그렇지만 이러저러한 관계와 공간 안에서 나는 아담의 주체를 보조하는 객체인가? 아니면 주체로써 존재해도 되는 걸까? 내가 활동보조 할 때 일에만 전념 하는 게 옳은가? 아니면 관계도 만들어도 되는 걸까? 어디까지 관계가 가능한 걸까? 활동보조인이라는 정체성과 나라는 정체성은 양립 가능한가? 어느 것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걸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활동보조를 할 때마다 무언가를 단념하는 건 나였다. 가령 아담이 어느 자리에 더 남고 싶어 할 때, 나는 아담의 욕망을 존중하는 게 옳다고 그게 좋은 거라고 강박한 것 같다. 그래, 동정이었다. 장애인이니까.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옳고 그게 내일이라고. 아담이 비장애인이라면 그럴 수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일 년을 살았다. 아담의 자립과 내 자립은 연결돼 있고, 일종의 자립연대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만용이 아니었을까? 나는 꾸역꾸역 자립을 위한 보증금을 모았지만 내가 남들과 잘 어울려 살아갈지 모르겠다. 아담의 자립 같은 건 내가 관여할 문제도 아니고 관여해서도 안 되는 것 아닐까? 나는 그저 그의 의견을 듣고 대답하고 시키는 걸 하고 기다리고 바우처를 긁고 퇴근하고 출근하고 하면 되는 활동보조인이니까. 활동보조인 이전의 나는 누구였을까? 활동보조를 안할 때의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 있는 걸까? 아담과 내가 있을 때 누군가 안부를 물으면 아담의 안부를 전달해주면 되는 걸까? 내 안부도 말해야 하는 걸까? 아담과 밥을 먹을 때 밥을 먹는 나는 일을 하는 걸까? 식사를 하는 걸까? 나는 보증금을 다 모았는데 이제 이다음에는 뭘 하지? 나는 정말 누구인걸까?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짜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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