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솔의 공공공(公共空)

폐허의 미학을 호명하다—두리반 지하에서

- 이솔

그저 오래되고 낡아서 지저분하고 어두컴컴한 곳을 폐허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폐허란 기존의 기능을 상실하고 쑥대밭이 된 터를 일컫는다. 서양미술사에서 폐허(ruins)가 등장한 것은 이미 몇 세기 전인데, 특히 18세기 말엽부터 유럽에서 성행한 낭만주의 그림 속에는 폐허가 된 중세시대 형식의 교회 건축물이 자주 재현된다. 많은 이들은 독일의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풍경 그림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며, 실제로 이 무렵 유럽귀족들은 일부러 황폐된 것 같이 보이는 건물을 정원 한구석에 장식물처럼 배치하기도 했다. 이때 폐허는 시간의 흐름과 생명의 소멸을 상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를 그림이나 건축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주체들에게 삶의 기쁨과 희열을 선사한다.

그러면 동양의 경우는 어떠할까? 우리도 폐허의 시각적 의미와 경험에 집착해왔나? 중국계 미술학자 우훙(Wu Hung)에 의하면 전근대 중국 회화 속에는 폐허가 등장하지 않는다. 종종 시나 소설에 글로써 묘사되긴 했으나, 폐허를 시각적으로 그리는 것은 되려 금기시되어왔다고 기술한다.1한국 전근대 회화 작품을 떠올려 봤을 때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너진 건물들을 표현한 수묵화를 본 적이 있는가.

이에 반해, 한국 현대 시각문화 혹은 이미지 생태계(image ecology)에 너무도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폐허의 이미지이다. 그런데 이때 폐허는 자연의 법칙과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여 서서히 진행된 노화가 아닌 단칼에 행사된 인공적 폭력의 결과, 즉 파괴의 산물이다. 90년대를 장식했던 굵직한 사건 몇몇은 폐허라는 키워드를 빼고는 설명 불가능하다. 1993년 성수대교 붕괴를 시작으로, 1995년 초여름에 무너진 삼풍백화점은 수백 명의 목숨까지 앗아갔으며, 같은 해 광복절에는 문민정부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했다. 부실건설의 ‘의도하지 않은’ 부산물이든 국가적으로 계획된 ‘애국적’ 역사의식의 표출이든, 텔레비전과 신문지면을 오랫동안 장식한 이 폐허의 이미지들은 어쩌면 서로 그리 다르지 않은 폭력의 이미지(images of violence)로써 우리의 망막표면에 영원히 박혔는지도 모른다. 물론 7, 80년대에도 국가권력을 동원해 불도저식으로 진행한 대규모 재개발을 통해 철거된 삶터가 비일비재했다. 일례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원조 격인 <상계동 올림픽>은 88서울올림픽 성화 봉송 예상 경로 부근의 ‘환경미화’를 위해 철거된 저소득층 거주지역의 폐허를 비디오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이제는 사라진지 오래된 폐허가 영상으로써 불멸의 삶을 얻은 것 같다.

이에 착안해보면, 오늘날 한국 시각문화에서 폐허의 이미지는 프리드리히의 그림에서처럼 보는 이에게 시간의 흐름을 음미하고 또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권한을 선사하지 않는다(즉 자연과 인간의 대립에서 승리한 개인주체에 대한 찬사가 아니다). 요즘 들어 더욱 빈번하게 보이는 폐허 이미지들은 오히려 국가-자본의 거대한 폭력 앞에서 더없이 무능력해진 주체가 연약한 촛불처럼 사그라진 삶의 터전에 대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 얼마 지나지 않아 깡그리 치워질 철근콘크리트 부스러기들을 기록하는 예술적 실천은 장소의 기억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나타내며, 동시에 그 풍경의 비-기념비적(anti-monumental)이며 반-개발론적(anti-developmentalist) 미학을, 즉 별 볼일 없이 땅으로 쑥 꺼짐의 미학을 숭고함으로 전환하려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이런 시각예술 작업은 끝없이 증식하는 개발에 대한 욕망이나 초스피드로 돌아가는 자본의 시계를 잠시나마 붙잡아 두려는 마지막 몸부림이 아닐까?

그런데 도시 풍경의 파괴-재건축의 연속순환을 거부하는 이는 그저 한둘이 아닌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폐허의 이미지는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회상하는 개인주체의 무기력함 보다, 오히려 폐허 앞에서 더욱 힘을 얻는 저항적 주체들이 모여 형성한 공동체에 대한 사고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 즉 폐허는 국가-자본 폭력의 잔재로 덩그러니 놓여있지만, 그 폐허 앞에 서 있는 자들은 애도를 공공의 영역으로 호명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공공성을 띤 폐허의 미학’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런 폐허의 미학을 엿볼 수 있었던 한 전시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올해 7월 25일부터 8월 11일까지 열린 그룹전 <당신의 머리위에, 그들의 발아래>는 ‘콜렉티브 워크온워크’(장혜진 박재용)가 서울국제미디어페스티벌의 일부로 홍대입구 지하철역에 기획한 전시다. 기획 의도는 간단하다. 글로벌하면서도 로컬한 도시 안에서의 삶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전시장의 장소 특수성을 통해 은유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기획자들은 지하철 2호선과 인천국제공항철도가 교차하는(그리고 올해 말에는 경의선도 개통되는) 지하 2층 개찰구 옆에 위치한, 아직은 비어있는 상가와 창고 자리에서 국내외 9명 작가의 다큐멘터리, 비디오, 회화, 설치 작업을 펼쳐 보였다. 90년대 대안문화의 중심지이자 오늘날까지 인디뮤지션들의 아지트 역할을 하는 홍대라는 독특한 지역과 한국을 세계로 이어주는 관문인 인천공항행 초고속 열차가 만나는 곳.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장소는 옛 두리반 터에서 거의 수직으로 내려온 지하공간이라고 한다.

‘두리반’은 동교동에 위치한 칼국수집 이름이었으나, 2009년 12월 이후 재개발을 위해 건물의 강제철거가 발표된 후 531일 동안 계속된 가게 주인(안종려, 유채림)과 이들을 지지하는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동참한 투쟁의 대명사가 되었다. ‘작은 용산’이라고도 불리기도 한 두리반 투쟁은 오랜 농성 끝에 이루어진 시행사와의 합의 후 2011년 12월 다시 서교동에 가게 문을 여는 것으로 마감되었으나, 이 작고도 소중한 투쟁의 열매를 통해 새로운 형식의 인디음악 신(scene)의 활성화가 예감되기도 하였다. 이제는 평평한 공사판이 된 옛 두리반의 폐허를 머리 위에 이어 올리고, 공항열차를 발밑에 둔 이 상징적이며, 부조리한 공간에서 예술 작품들은 어떤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장소 특수성을 띤 전시는 어떤 경험을 선사할까?

전시 공간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임시로 세운 기둥 위 불안하게 걸려있는 평면TV에 틀어진 정용택 감독의 음악 다큐멘터리 <뉴타운컬쳐파티> (2011)의 티저 영상이다. 원맨밴드 ‘야마가타 트윅스터’로 널리 알려진 한밭이 보행자 도로에 서서 기타를 치며 특유의 목소리로 못 이룬 사랑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 그는 카메라를 응시하다 갑자기 카메라에 등을 돌리는데, 그의 시선은 차도 건너 노란색 굴착기가 옛 두리반 건물을 서서히 부수고 있는 곳을 향한다. 5분 남짓한 영상의 끝 무렵에 이르면, 가게 간판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게 된다. 철저히 폐허가 된 것이다. 뮤지션과 같이 카메라도, 관객들도 무너지는 두리반 건물을 바라보며 두리반 투쟁이 망각되는 것을 거부한다.

전시장 안으로 몇 발자국 더 들어가면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음직한 벽돌 더미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벽돌을 나르는 데 쓸 법한 지게가 올려져있다. 바로 권용주 작가의 설치작업 <아마추어 건축회의_머리로 힘을 쓰고>이다. 전시장을 단숨에 소규모 공사현장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한 작가는 평소 버려진 사물에 관심이 있으며 작은 스케일의 소박한 노동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좋다고 한다. 전시장 입구의 임시 기둥도 사실 권용주 작가가 폐가구와 판자를 재활용해 만든 ‘작품’이며 공간 조성의 일부이다.

이정민 작가는 먹과 아크릴을 사용한 회화 연작 <부스러기의 소멸> 중 세 점을 선보이는데, 이 작품 또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건축 재료에 관한 탐구처럼 보인다. 한 그림은 벽돌 벽을 정면으로 묘사하여 마치 캔버스의 평평함(flatness)이 건물 벽이라는 대상(reference) 위에 살며시 포개지는 듯하고, 또 다른 그림은 창틀 위에 올려진 돌덩이 몇 개를 묘사한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새총을 잡아당기는 인물이 들어간 마지막 그림에서 작가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벽, 돌덩이, 그리고 새총은 겉으로 보기엔 너무 간단해서 보잘것없는 도구에 불구 하지만, 2009년 1월 용산의 한 건물옥상 위에 올라가 철거반대 투쟁 중이던 시민들이 완전무장한 경찰특공대에 대항할 때 사용했던 유일한 생존의 무기였다. 작가는 재난의 장소를 담은 보도사진 일부분을 회화로 재해석했는데, 표현적인 붓 터치가 원시적인 보호막과 ‘무기’를 더욱더 초라하고 기능 부적절한, 기의(signified)없는 기표(signifier)로 전환해버린다. 즉, 용산사태는 애초부터 힘의 비대칭이 절정을 이루는 싸움이었음을 상기시키며 그 부당성에 대한 정치적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언급된 작품 이외에도 관심 있게 본 작품이 여럿 있었으나 지면상의 이유로 생략한다. 사실 전시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설치작업처럼 보였다. 갓 건설된 7번 출구와 이어진 개찰구는 2000년대 말부터 개통하기 시작한 공항철도와 9호선 등의 초고속 열차 시스템에 걸맞은 첨단기술을 뽐내고, 미래지향적이며 자본 친화적 정서를 풍긴다. 그런 개찰구 옆에 통유리로 만든 상가 공간이 있고, 이 공간 안에서 폐기 처분 직전 구출해 재활용한 싸구려 합판으로 전시 가벽을 설치하고, 기둥을 만들고, 프로젝션 방을 만들고, 공사판 벽돌을 쌓아 탑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이는 마치 완공된 후 멸균처리까지 마친 개찰구에 별의별 세균을 축적한 저항의 먼지를 퍼트리는 행위, 혹은 서울 부동산 이윤 창출의 필수 조건인 지하철역이라는 기능적 공간을 일종의 ‘폐허’로 되돌려 놓는 수준 높은 블랙코미디와 다르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전시 관람 후, 지상행 엘리베이터를 탔다. 통유리 엘리베이터였다. 지하 2층에서 승강기에 올라타자마자 문이 닫혔고, 어두컴컴한 지하 1층을 재빨리 지나쳐 단숨에 정오의 햇볕이 내리 쪼는 지상 1층에 도착했다.(아마도 지하 1층은 경인선 개통 후 상업화 할 계획인 듯하다) 그런데 이 몇 초 되지 않은 경험은 짧지만 강렬한 나머지 또 다른 엘리베이터를 상기시켰다. 1982년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이 기록한 그 유명한 LA다운타운의 보나번쳐 호텔 (Bonaventure Hotel)의 엘리베이터 말이다. 제임슨은 1층 로비에서 맨 위층의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는 이 고속 엘리베이터를 포스트모더니즘의 결정체로 묘사한다. 역시 통유리로 만들어진 엘리베이터는 건물 외부로 돌출되게 장착되어서 건물 밖의 도시를 현실이 아닌 그림이나 지표로서 인식할 수 있는 수직적 경관을 제공하고, 최종 도착지가 이 세상 끝이 아닌 360도 회전하는 레스토랑이라는 점 또한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상업화와 문화 논리를 시사한다고 분석한다.

보나번쳐 호텔 엘리베이터와 비교하면, 홍대역 7번 출구 지하 엘리베이터 경험은 후기자본주의나 포스트모던이라 총칭해서 묘사하기에 너무나 한국적이고 전복적이었다. 엘리베이터의 유리벽을 통해 재개발의 상징인 철골구조와 (곧 매장이 들어설 듯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아직 비어있는)흙같이 깜깜한 공간이 보였다. 사실 어둠을 ‘보았다’는 말보다는 감각적으로 ‘느꼈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고, 실제로 내가 시각적으로 ‘본’ 이미지는 주위가 어둡기에 유리창에 반투명으로 반사된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는 마치 대낮같이 불 켜진 지하 2층, ‘폐허’같은 전시장, 어두운 지하 1층 공사장, 그리고 다시 밝은 지상이 엘리베이터의 상행과 함께 교차하는 속도에 맞추어 깜빡거리는―그래서 마치 유령처럼 스쳐 지나가는―나의 환영과도 같았으며, 잠시나마 나라는 주체를 이 재개발 현장에 희미하게 삽입했다. 2012년 서울은 수직적으로나 수평적으로나 매끈한 경관으로 환원 불가능한 것 같다. 이는 아마도 도시의 삶을 총체적 그림(a total picture)으로 인식하려면 그 그림을 프레임 밖에서 음미할 수 있는 프리드리히의 그림이나 제임슨의 관찰기가 전제(prerequisite)로 둔 완전한 (개인)주체가 존재해야 하는데, 오늘날 우리에게는 왠지 그런 파워풀한 주체보다 촛불처럼 깜빡깜빡하고 환영처럼 떠돌아다니는 개인들의 집합체가 더 자주 보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는 또, 오늘날 서울에—아마 1988년, 1993년, 1995년, 2009년에도 그랬듯이—도시 군데군데 존재하는 폐허의 잔재와 또 이 폐허의 이미지를 붙잡아두려는 예술적 실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엘리베이터를 뒤로하고 홍대 뒷골목으로 걸어가면서 네 명의 젊은 뮤지션들을 보았다. 두리반 폐허를 오른쪽에, 홍대역 7번 출구를 바로 앞에 둔 이 매끈하지 않은 경관 속에서 이들은 앰프를 조율하며 타인들을 위한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동영상 링크] 옛 두리반 지하에서

  1. Wu Hung, “Ruins, Fragmentation, and the Chinese Modern/Postmodern” in Inside Out: New Chinese Art.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Asia Societ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59-66. []

응답 1개

  1. 말하길

    ‘폐허’의 공공적 이미지, 음, 색다른 해석, 색다른 볼거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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