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장애인 스토리텔링

장애인권 스토리텔링의 의미

- 이영남(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지난 4회에 걸쳐 2011년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이제 진행경과와 의미를 말하면서 2011년 프로젝트는 정리한다. 다음 번부터는 2012년 프로젝트를 다른 시선으로 살펴볼 것이다 워크숍 진행경과 2011년 여름 인권단체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에서 “탈시설 장애인의 나를 찾는 여행: 나의 어메이징 스토리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번 발바닥 스토리텔링은 우리 시대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우리 시대는 장애인의 발바닥이 닿는 곳은 인권유린의 현장이라 말해야 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역경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이 피는 법이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이런 동서고금의 진리에 의지해 말해보면, 이번 ‘발바닥 스토리텔링’은 암담한 현실, 인권유린의 역경 속에서 성숙하게 피어난 들꽃들의 향연이었다.

발바닥 스토리텔링의 진행경과는 다음과 같았다.

2011년 3월~5월 기획 및 사전 준비작업이 있었다. 모두 7명 참여하기로 했다
2011년 6월~8월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총 9번의 모임이 있었다
2011년 9월~10월 워크숍 후속활동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영상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참여한 7명은 한 때는 장애인 생활시설에 거주했으나 ‘탈-시설’ 후, 현재는 서울 지역 여러 곳에서 자립생활을 하는 분들이었다. 인권단체에서 인권활동가로 살며 장애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거나,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후일을 기약하고 있거나, 그림 활동을 하고 있거나, 지역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지역생활에 열심히 적응 중이거나,… 그렇게 여러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여성이 3명이었고 남성이 4명이었다. 연령대는 30대~40대였다. 그런데 7명이 참여했다고는 하지만 발바닥 행동의 활동가 한 분이 모임을 전체적으로 조직하고 운영했으며 내부 프로그램을 진행한 사람(임상동무)도 있었으니 모두 9명이 참여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활동보조(중증장애인의 생활을 보조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커피나 빵을 먹을 때나 화장실을 갈 때 보조)를 자임하고 참여했던 활동가들이 있었고 실제 활보를 담당하는 분들까지 직간접적으로 참여했으니 참여인원을 굳이 말한다면 10~20명이었다.

스토리텔링 워크숍은 총 9번 개최되었다. 9회 모임은 3단계로 진행이 되었는데, 이를 소개하면 프로그램 소개(1회), 주제 발표(2회~8회), 공개 발표회(9회) 순서였다. 워크숍 후속작업 중 하나로 영상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 다큐멘터리 감독(다큐 인 박종필 감독)이 마지막 공개 발표회 자리에 참여해 멋진 ‘영상 다큐멘터리’를 탄생시켰다. 이제 발바닥 스토리텔링의 역사는 전문 다큐멘터리 감독이 제작한 아름다운 영상으로 남게 되었다.

이번 발바닥 스토리텔링은 ‘임상역사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했다. 임상역사 프로그램은 ‘내가 쓰는 나의 역사’라는 타이틀로 2008년에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4명~9명이 참여해 3개월~2년의 기간 동안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서 한 편의 역사를 쓴다. 이 프로그램은 후기구조주의 철학자인 미셸 푸코의 사유, 역사학의 미시사, 임상문학, 그리고 포스트모던 심리학인 이야기치료(Narrative Therapy) 등이 어울린 프로그램이다. 임상역사 프로그램은 2008~2011년 에 한국(서울, 충남 홍성)과 미국(LA)에서 총 9회 열렸다.

2011년 8월말, 여름이 끝나는 날 저녁무렵이었다. 경복궁 옆길을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지나갔다. 열명이 넘었다. 마침 길은 넓었고 행인이 많지 않아 우리는 유유자적하며 걸을 수 있었다. 잠시 나무가지에서 내려 앉았던 새들은 그렇게 가지를 날아 올라 제 갈 길을 갔다.

우리 시대 장애인 이야기, 그리고 시대의 희망에 대해

2011년 발바닥 스토리텔링의 사업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오랜 시설생활로 잊혀진 ‘나’를 찾으면서, 자립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자신감 향상”이었고 둘째는 “같지만 다른 삶을 인정하면서 나만의 삶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생활하다 지역으로 나와 생활하는 ‘탈-시설 장애인’은 시설에서의 삶과 현재 지역의 삶이 너무도 상이해 혼란스럽고, 그래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것을 어려워 한다. 우리 시대 장애인은 ‘집’이 아니라 ‘장애생활시설’에서 살아야 하고, ‘자유’가 아니라 ‘억압과 통제’를 몸으로 익혀야 한다. “시설-억압과 지역-자유”, 이 둘의 간극이 넓어 어떤 균형감각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것이다. 정체성이란 한 사람이 오랜 세월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도 이게 나구나 하는 것을 흉중 깊은 곳에 간직하는 것인데, 우리 시대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자기표식을 빼앗긴 채 어딘가에 강제로 맡겨두어야 하는 것과도 같다.

“엄마가 나에게 ‘여섯 살’이란 걸 가르쳐 주던 날 엄마, 아빠와 함께 공원에 갔어요. 엄마는 먹을 걸 사온다 하셨고 아빠는 잠깐 어디엘 다니러 갔다 오신다 하셨지요. 잠깐은 수 십 번도 더 지났는데 엄마, 아빠는 오시지 않았고, 울었어요. 그리고 낯선 사람의 손에 이끌려 경찰서에 가게 되었고 경찰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어느 아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어요. 우리들의 하루 일과는 6시 기상, 7시 30분 아침식사, 12시 점심식사, 5시 30분 저녁식사, 7시 취침. 이것이 500명 규모 시설의 하루 생활입니다. 그 곳은 참 이상한 곳이었어요. 내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내고, 이상한 옷을 입히고, 반찬을 한 그릇에 모두 섞어 주더라고요.” (시설 장애인의 이야기 중에서)

정체성은 자기결정권/자유와 연결되어 있다. 모두가 하나의 복장을 하고 있고, 동일한 반찬과 밥을 매일 먹어야 하는 통제상황, 더구나 구타와 외출금지까지 겪어야 하는 폭력상황은 무엇을 의미할까? 폭력적인 상황에서 통제되는 누군가는 있지만 시설에 갇힌 사람들에게 ‘나’는 없다. 어딘가에 갇혀 강제노역을 하는 사람들(예:성매매 업소), 감옥에 갇힌 사람들, 병영에 갇힌 사람들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이번 발바닥 스토리텔링이 정체성 회복을 표방한 것도 이런 때문이다. 그런데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같이 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른 이의 삶을 인정하는 여유이다. 나만의 색깔은 다른 이들의 색깔과 어울릴 때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번 발바닥 스토리텔링이 ‘우리의 이야기’ 또는 ‘우리 시대 장애인의 이야기’를 표방한 것도 이런 때문일 것이다.

2007년 말, 장애인 생활시설은 전국적으로 300여 개가 넘고 그 곳에는 30,000여 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다. 2005년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인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인한 비자발적 시설입소가 78%가 넘는다. 한편 2008년 서울시정개발원의 <시설장애인 탈시설욕구 조사>에 따르면, 퇴소 희망자가 50%가 넘고 지역사회에서 주거, 소득, 활동보조 등이 지원된다면 지역사회에 나와 살 것을 희망하는 사람이 70% 이상이다. 결국 우리 시대 장애인은 누군가에 의해 시설에 갇히고, 한번 갇히면 장기간 통제-폭력상황에서 짐승처럼 생활해야 하고, 그 곳을 ‘탈출’하고 싶어도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한다. 이번 발바닥 스토리텔링 참여자들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시설은 서로 달랐지만 시설생활은 유사했다. 이러 저리 시설을 옮겨다니며 살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도 있었으며, 버려진 7살 아이가 울며 집을 찾다 기차에 치이는 운명도 있었고, 말로 쓸 수 없는 비극적인 가족사도 있었다. 갇힌 자들의 내러티브에서 그들은 걸어나왔다.

시대의 암울 속에서도 희망은 빛나는 법이다. “자유로운 생활, 시설 밖으로”를 내걸고 활동하는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은 시대의 희망이다. 발바닥 행동의 활동가들은 탈시설 운동의 최전선에서 헌신하며 열정을 불사르고 있기 때문이다. 시설실태조사를 벌이고, 시설생활인과 상담하며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고, 그들의 탈출을 위해 행동하기도 하고, 지역생활 정착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주거복지사업 등)을 일관되게 추진한다. 물론 열정을 사르는 단체가 한 둘이 아니다. 발바닥 행동이 유일한 인권단체는 아닌 것이다. 자연스레 발바닥 활동가들은 여러 인권단체와 협력해서 ‘따뜻한 물질’을 만들고 있으며 이는 장애인권의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제 ‘이야기 세계’에서도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는 발바닥에서 하는 장애인 이야기 사업 중 하나였다. 이번에 워크숍을 하면서 발바닥이 탈시설 장애인들에게 동무이며, 언제나 그들의 믿는 구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11년 ‘발바닥행동 스토리텔링’은 역경 속에서도 성숙하게 피어난 들꽃들의 향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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