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가지 궁상이몽

흔한 커플의 대화

- 멜러즈

‘츄우욱… 후욱… 휠…휠…’

촛불을 켜고 방 형광등을 껐다. 주황색과 검은색이 묘하게 섞인 방 한 구석에 우린 앉아 있다. 우린 꼭 안았고 키스를 했다. 아, 이 맛이구나… 우리의 첫 섹스… 바지 앞섶이 벌써 반응을 보인다. 텐트를 친다고 하나? 텐트가 하늘을 향해 쳐진다. 느껴진다. 중력을 거스르는 우주의 힘, 정력, 에너지. 이대로라면 무엇이든 뚫지 못하랴. 그리고 그 무엇을 받아주는 샘물 같은 곳. 『태백산맥』에서는 ‘꼬막’이라 지칭되고, 흔한 통속소설에서 꽃잎으로, 제이슨 므라즈의 노래에서 ‘나비’로 표현되는 그 곳. 우리의 밤엔 이들이 주인공이다.

여자와 남자를 하나로 이어주는 그 무엇들. 성인이 되었는데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그 곳들. 이제 ‘섹스’라는 단어는 학문적으로는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남녀의 성기는 커플들 사이에서만 남들 모르게 속삭여질 뿐이다. 둘만의 공간에서만 그것들이 날개를 편다.

거리를 함께 걸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한다.
“우리 같이 가게 작은 거 해봐도 좋을 텐데 말이야.”
“자기는 큰 가게~!”

이쯤 되면 알만 하다.

“가게가 꽉 차겠네.”
“가게가 알차겠지.ㅎㅎ”
“자기, 고수업?(고추 up됐어?)”
“응. 고추업.ㅎㅎ”

이럴 때면 제대로 길을 걷기가 힘들다. 이런 대화가 일상다반사.

우리는 성기에 매인 족쇄를 풀어주려 한다. 성기를 둘만의 방에 가둬놓지 않고 훤한 낮에도 대화의 장에 초대하고 싶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성이 개방되고 젊은이들이 ‘원나잇’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난리지만 정작 커플 사이에서도 성에 대한 논의는 획일적이다. 사랑이 있는 섹스, 건강한 성, 깨끗한 성. 낮에 성을 말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밤에 불을 끄고 나서야 기다렸다는 듯이 미친 듯이 섹스 한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 것은 수업시간 이외에는 섹스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나 고추 아파.”
“왜?ㅜ.ㅜ”
“아까 만졌어.”
“으이구. 혼자 만지지 마라니까. 담부턴 나한테 맡겨,”

이런 (사소한) 대화를 비롯해,

“자기, 오늘따라 가슴이 예뻐 보이네. 만져도 돼?”(그러면서 껴안으면서 슬쩍 만진다)
“꺄아, 싫어. 누가 봐!”(그러면서 웃는다)
“그래?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데?”(주위를 슬쩍 살핀다)

만일 겨울의 버스 뒷자리라면 외투로 상체를 가리고 그 속에서 남자는 여자의 가슴을 만지고, 여자는 남자의 그곳을 만지는 놀이가 가능하다. 엔돌핀이 돌고 눈이 풀리는 순간이다. 남들이 보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키스하고 서로를 애무해 줄 수 있다. 놀이와 섹스의 경계를 넘나든다.

고추와 꽃잎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성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모텔에서만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몸의 일부로서 회자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 물론 그렇게 교육하지 않는 나라에서 태어나 교육받았기에 한번에 이를 깨기란 어렵다. 독일에서 발간된 『섹스북』 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독일 사회가 개방되었으면 얼마나 개방되었으랴. 책에 나온 첫 섹스에 대한 묘사도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지금까지 기억나는 사진은, 발가벗은 남자아이가 누워 있고 역시 발가벗은 여자아이가 남자의 고추를 만지려고 하는 장면이다. 포경이 되지 않은 고추를 그냥 벌레 관찰하듯 보고 있었다. 과연 이런 표현이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남녀가 서로 환상을 갖도록 숨기는 게 아닌 생물학적인 호기심.

사실 드러나지만 않았지 커플들은 둘만 있으면 꽤나 야한 대화를 즐기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커플끼리만 고추와 꽃잎을 논하고 있을 뿐이다. 의견은 분분하겠지만 조금 더 나아가자면 공론화의 장을 만들면 좋겠다. 친구사이도 좋고 토론회도 좋다. 어릴 적 주말의 명화 야한 장면에서 괜히 딴청 피웠던 사람이라면 조금 힘들겠지만 가족끼리의 대화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다. 그런 대화가 정상적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로 느껴질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한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툭툭 건드린다.
“자기는! 저 아저씨가 보는데 그만 만져!”
“왜~? 내건데~!”
“으이구. 그건 맞는데.ㅋ 떼어서 가지고 다니라고 주고 싶네.”
“오~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만지면 금새 커져서 따뜻해지구. 핫팩처럼.ㅎㅎ”

겨울엔 핫팩보다 고추? 라고 생각하나보다. 만지면 금새 따뜻해지는 핫팩처럼, 이야기를 나누면 금세 얼굴이 붉어지는 야한 대화. 이 추운 겨울에 한 번 추천한다. 정치 이야기보다 핫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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