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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토크쇼#4 외부세력과 현장

- 봄눈별

세상의 수많은 투쟁 현장에는 언제나 수많은 외부세력이 존재한다. 외부세력은 투쟁 현장 내부의 당사자가 아닌 외부에서 진입한 사람들과 집단을 의미한다. 외부세력은 당사자가 아니지만, 당사자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그 누구보다 헌신적이다.

사실 외부세력들은 외부세력이라는 말을 외부세력답게 사용한 바 없다. 외부세력이라는 말은 사찰을 의심케 하는 정부의 보고서나 찌라시를 자처하는 일부 언론들이 이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지칭하느라 처음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구분하기 위해서다. 이 문제에서 손 떼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이, 외부세력 스스로 자신을 외부세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은 이미 그 문제의 당사자로 자리매김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까.

지난 11월 7일 있었던 ‘두물머리토크쇼 – 외부세력과 현장’에서는 강정마을, 홍대청소노동자, 평화바람, 콜트콜텍, 두물머리 등 각자의 자리에서 긴 시간 결합해온 외부세력들이 총집합해 약 3시간 가까이 긴 이야기를 나눴다. 질문은 미리 정해져 있었지만 여기에 구애받지 않고, 시간과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자유로이 대화하는 형식을 빌었다.

우선 모든 패널들은 외부세력이라는 단어에 대해 반감을 보이지는 않았다. 데모꾼, 전문 시위꾼, 알바, 불순세력 등 어떤 호칭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 다만 내부세력과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는 의견들이 많았다. 외부세력이 개입할 수 있는 범위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만큼이거나, 합의가 가능한 선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는 편이 좋다고 밝히는 이들이 다수였고, 감정과 심정이 일치될 수 없겠더라는 의견과 워낙 긴밀하게 연대하다 보니 결국 일체화 되더라는 의견도 있었다. 또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화합해나가는 것이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외부세력이기 때문에 그 싸움의 완전한 주체가 될 수 없는 한계가 있었고, 그럴 때는 약간의 서운함과 실망감도 느낀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곧 나의 문제라는 의식을 가지고 현장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자신을 볼 때 일종의 안도감을 느낀다는 표현도 있었다.

두리반에서 활동했던 혜원은 당시 두리반에서의 투쟁이 즐겁고 신나게 이어지기도 했지만, 결국은 유채림, 안종녀. 이 두 분의 삶과 소망이 제일 중요했으므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는 이 두 분을 완전히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외부세력들은 이어,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들은 회의 등을 거쳐 극복할 여지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부장적인 구조 등 각종 민감한 이슈들은 내부세력들과 조율하고 해결해나가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이 부분을 현명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내부적인 의견 조율이 많이 필요했는데, 어떤 결론이 내려지기보다는 늘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에 더 집중하자는 쪽으로 힘이 모아지곤 했다고.

예컨대, 대추리의 경우 어르신들 앞에서는 여성들이 담배를 피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는데, 내부논의 결과 그렇게 하기로 했었다. 그 어르신들과 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토론하면서 그것을 바꾸어낸다던가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했을 테고 괜한 힘 빼는 일일 것이라고 판단. 그것보다는 당장의 국가폭력에 어떻게 맞서 싸울지 논의하고 힘을 쓰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했다고 답한 이도 있었다.

외부세력이 된 이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 나 혼자만이 아니라 세상 모두가 소중하며, 세상의 모든 문제가 나의 문제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타심이 높아지고,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한 노력도 하게 되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무엇보다 외부세력이라는 말로 구분되어지는 우리들이 결국은 구분되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현장의 일부분으로 살아간다는 것, 즉 세상의 일부분이 되어간다는 것에 대한 자연스런 믿음이 생겨났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특히 강정의 활동가들은 강정마을에 우연히 머물게 되면서 강정마을주민들을 삼춘이라고 부르게 되고 활동가들과 일체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차차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반면, 홍대청소노동자 투쟁에 결합했던 플라멩고의 희강은 이 투쟁에 결합하는 데 있어 밥이 큰 매개가 되어 주었다고 말하고, 그러나 결국은 이 문제가 단지 이렇게 밥을 나누고 함께 잠을 자는 것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노동자의 문제, 나아가 내 자신의 문제임을 자각하는 데 있었다고 답했다.

콜트콜텍의 전진경 작가는 조금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꺼냈다. 대추리나 용산 등을 거치면서 자신은 투쟁하는 분들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심정이 일치되기를 바랐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장에 무언가 분노하거나 기쁜 일이 있을때도 사실 그 감정이 바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투쟁하는 당사자들의 그런 감정을 보면서 연쇄반응으로 그런 감정이 따라온다고. 그들이 기쁘니까 나도 기쁘고 그들이 분노할 때 나도 분노하게 되는 거. 콜트콜텍에 들어갈 때는 아저씨들이 ‘신비한 예술가’로 바라봐 주어서 그런 시선을 나름 즐기면서 그 신비감과 좋은 이웃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공장 안에 내 작업장이 있으니 어떤 측면에서는 이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 곳이 철거되거나 한다면 나의 작업장도 없어지는 거다. 그래서 가끔은 같은 위치에 서기도 하는 것 같다. 농성장 이전 문제가 있을 때는 의도치 않게 개입이 되기도 했었다. 그 분들의 숫자가 별로 없고 워낙 관계가 긴밀하고 개인적이다 보니까 개인안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듯. 아무튼 목표는 좋은 이웃으로 지내는 것이다.” 라고 밝히고 자신의 예술을 통해 민중을 위한 삶을 원했던 계기가 있었으며, 실제로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용감한 우리 딸이라는 말을 남겨 그녀의 이러한 확신이 좀 더 확고해질 수 있었다고.

전진경 작가에 이어 패널로 참여한 콜트콜텍의 상덕은 파견 미술에 대해서 이렇게 답했다. “파견미술은 작업장에서 현장으로 스스로를 파견하는 것을 말한다. 대추리 때부터 알던 작가들이 용산에서 다시 만났고, 그렇게 친해지면서 그 이후 이것저것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인천 대우 비정규직 농성장 가서 꾸미기를 한다던가. 그렇게 함께 하고 현장작업을 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명명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고, 파견미술이라고 이름이 지어진 것 같다.” 이처럼 파견미술이란 단어 역시 외부세력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다.

평화바람의 경우 2003년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며 결성된 뒤로, 군산 미군기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주로 군산에 머물며 활동하고, 이후에는 대추리, 용산, 강정 등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활동을 지속해왔는데, 이 모든 문제들이 결국 나의 문제라는 문제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고 답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인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마지막으로 사심의 문제도 제기되었다. 연대하는 데 있어 사심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패널들은 개인의 욕망이 완전히 없지는 않았다는 데 대체로 동의하는 듯했다. 누군가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게 되어 함께 하게 된 것도 있다는 의견과 피상적으로 막연히 생각해오던 공동체의 모습 속의 만족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번 토크쇼를 통해 외부세력이라 불리는 자신들이 어떻게 연대해왔고 또 앞으로 어떤 식의 연대 활동을 해 나갈 것인지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다만 외부세력과 현장이라는 제목이 붙은 만큼 각자 개인의 삶에 대해서 좀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또 개인의 삶과 욕망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면서까지 외부세력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다 듣기에는 시간이 너무 모자랐다.

아직도 국가폭력과 불의에 맞서야 하는 곳이 많이 있다. 이 날도 꽤 많은 방청객들로 북적였다. 그들 또한 어느 곳의 외부세력들이었고 개인의 욕망보다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현장에 머무는 이들이었다. 그러므로 외부세력은 단순히 구분지어지는 사람들이 아니다. 희생하고 헌신하면서 삶을 바꿔나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평화가 곧 세상의 평화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스스로를 내던져 기꺼이 현존하는 모든 외부세력들의 안녕을 기원해마지 않으며, 덧붙여 그들 자신을 깊이 보살피는 하루, 하루가 되어 줄 것을 진심으로 당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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