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사랑 지상주의, 난 아닐세

- 자분자분

나는 이상하게 연애가 안 되는 사람인 것 같다. 결혼 전 몇 번의 연애 경험이 있었지만 늘 애인에서 친구로 변하기 일쑤였다. 서로 호감을 갖고 몇 번 만나고 나면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지를 않았다.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요?!”

가슴 절절히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놓치는 건 좀 아까웠는지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상대가 내 제안을 받아들일 걸 알고 있었다. 상대방도 나를 여자가 아니라면 친구로라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친구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는 친구가 있다.

왜 그랬을까. 글을 쓰며 곰곰이 나를 들여다보니 나는 연애가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 연애를 두려워했던 사람이었다. 거절당할까봐, 상처받을까봐, 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될까봐 겁이 났다. 특히 남자들이 감정적으로 다가오면 담을 쌓고 경계를 많이 했었다. 그 경계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게 했다. 더러는 내 쪽에서 먼저 좋아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거의 스토커수준으로 구애를 했었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 열정이 식어버리기 일쑤였다. 쓸데없이 눈도 높았다. 나는 완벽한 남자를 바랬었다. 남자를 통한 신분상승을 원했던 것 같다. 외모, 실력, 경제력, 집안, 성격, 의리, 인간성 등 어느 하나라도 마음에 안 들면 갖가지 핑계를 대서 헤어지던가 친구 하자고 했었다. 또 한 가지는 남자를 만나는 일이 너무나 귀찮았다. 예쁘게 보이려고 신경 쓰는 게 유치하기도 했고 온전한 나로 만난다는 느낌보다 가식적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도 좀 심심하고 건조하게 했다. 그 당시 나는 삶이 지루하고 직장에서는 거의 매일 싸움박질이었다. 언제 사표를 써야하나 호시탐탐 생각하고 미루고 하던 때였다. 그러던 중 복도에서 만나면 외면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던 선배에게서 소개팅 제안을 받았다. 선배와 사이가 나쁘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덜컥 소개팅을 받아들였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처음으로 맞선이라는 걸 봤고 그 첫 맞선남이 지금 나의 남편이 되었다. 나는 처음에 그가 썩 마음에 내키지가 않았다. 단 칼에 자르지 말고 내 얼굴을 봐서라도 세 번만 만나보라는 선배의 부탁으로 몇 번을 더 만났다. 그러면서 이 남자정도면 대충 큰일은 겪지 않으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이야 가진 게 없지만 생활력은 좀 있을 것 같았고 돈이야 없으면 내가 벌면 된다는 맹랑한 자신감이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남편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이 정도 여자면 크게 모나지 않고 그럭저럭 살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사랑에 대한 절절함이나 애절함의 추억이 별로 없다. 그리고 결혼 전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의 결과라고 볼 수는 없지만 지금 남편과도 대면 대면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 댓가가 나에게 혹독한가 하고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쉬움은 있지만 지나친 후회는 하지 않는다. 누구나 명품가방을 가지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다. 명품가방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거나 아예 내 것이 아니겠거니 하고 포기하는 사람도 제법 많이 있다. 사랑도 분명 인생을 풍요롭게 해 주지만 누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나는 사랑도 그런 종류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연애, 사랑에 크게 목메고 싶지 않다. 뜨거운 사랑의 경험이 없어도 나는 촉촉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애절한 사랑을 못 해본 게 아쉽기는 하지만 아쉬운 건 사랑만이 아니다. 절절한 사랑이 없다고 내 추억이 삭막하지도 않다. 나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것 관심과 호기심이 발동하는 뭔가를 하고 지냈기 때문에 즐겁고 유쾌한 기억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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