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최전선

한예종 청소노동자 인터뷰

- 너울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앞 벤치에 앉아있다. 지나가는 학생들도 별로 없고 조용하다. 50분이 되어 건물 경비원께 미화숙소가 어디 있는지 여쭤본다. 웅얼웅얼, 머뭇거리시더니 미술원 별관으로 가면 있단다. 별관이면 근처에 있을 텐데…. 지나가는 한 학생에게, 교수님 같은 분께도 물어도 모른다한다. 약속시간이 2분이 남았다. 순간 다급해진다. 왠지 길이 없을 것만 같은, 건물의 뒷길로 들어간다. 걸래가 빨래 줄에 가지런히 걸어져있고 스테인레스 철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여기야! 그렇게 조용하던 학교에서, 왁자지껄한 육성을 들으니 반가워 긴장한 마음 한번 들이쉬는 것도 까먹고 안으로 들어간다.  “어머, 학생들 왔네~ 밥은 먹었어? 우리 학생들한테 커피한잔 타줘야지~ 뭐 이런 걸 다 가져와! 돈도 없을텐데.” 몇 분은 화장실에서 방금 밥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계시고, 몇 분은 방안에서 이제 막 밥을 다 드시고 앉아계신다.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해 5시간 만에 갖는 휴식시간이라 조용히 누워서 휴식을 취할법한데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팀장이 스파이를 다 심어놔요. 너 이 사람(동료)하고 얘기하는 거 다 나한테 보고해라- 이렇게. 그래서 (노동조합 만들기 이전에)우린 같은 동료지만 맘 터놓고 얘기하질 못했어요.”

지난달 12일, 고려대, 연세대, 성신여대, 홍익대 등에 이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도 청소노동조합이 출범했다. 현재 한예종 청소노동자 시급은 4580원. 최저임금이다. 덕성여대에서는 지난9월 집단교섭을 통해 2013년 임금이 5600원으로 인상했다. “우리도 내년에 협상 5600원 생각하고, 7000원까지 생각하고 있는 데가 있데. 5600원은 평준화 될 거 같고.”라며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제는 연세대에 있었던 청소노동자 집단 교섭 투쟁 결의대회에 다녀오셨다고 한다. “어제 연대가서 들어보니까, 최소한 생활 할 수 있게 해 달라 얘기야. 세금내고 머고 학비고 머고 너무 오르지 않았느냐 이거여. 자녀들한테 들어가는 학비가 그렇고. 우리 기본급이 95만원 정도 밖에 안되니까. 그거가지고 살아지냐고. 생활이 안돼지….”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청소는 항상 ‘벌’이었다. 지각하면 ‘벌’청소, 무단 조퇴하면 ‘벌’청소. 그만큼 청소는 ‘벌’로 줄만큼 누구에게나 하기 싫은 일이다. 청소일이 그렇다보니 청소를 하는 사람도 별다른 존재감을 갖지 못한다. 문득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여쭈어 보니 여기저기서 한탄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거야 다르지. 내가 벌어야하니까. 내가 벌어서 생활에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놀고 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되면 안 나오지.” “학자금. 옛날에는 돈도 벌고 해서 자기학비 벌어 다녔는데. 학교공부가 옛날 같지 않아. 지금은 그냥 밤을 낮 삼고 공부해도 모자랄 판이야. 공부 안 하면은 취직하기도 힘들더라니까. 엄마가 조금이라도 보태려고 나왔지.” “자취하면 방세도 들어가고. 엄마가 뼈가 빠지게 줘도, 쓰는 사람은 돈도 아닌 것 같고. 휴.”

그렇게 자식들 학비 조금이라도 벌어보려고 시작한 게 청소 일이었다. “주변에 노인들이 청소 일을 많이 하시길래, 할만한가보다” 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또 “학교는 쉬는 날도 많고 빨간 날도 있고 하니까. 디게 편한 줄 알고 왔더니.”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노동인줄 몰랐던 것이다. 강의실, 복도, 화장실에 새겨진 발자국들 다 지우려고 마포질 하다 보니, 안 쓰던 어깨가 다 나가서 처음에는 받은 월급을 물리치료비로 다 썼다. 몸도 몸대로 힘들지만 관리자들의 감시감독 때문에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더 크다.

“우리 소장이 얼마나 악덕스러웠는데. 말끝마다 내 말대로 내 지시대로 안하면 잘라버린다. 안전교육 할 때마다 A4용지 이만큼 들고 다니면서 ‘이게 뭔 줄 아세요~이력서에요. 이력서가 50장도 넘게 쌓였네요.’ 네들 잘라버리겠다. 간접적인 협박이죠, 그게!”

 

“노조 가입하기 전에는 우리가 무릎 골절되어도 뼈가 부서져도 아프단 말도 못했어요. 그냥 나 혼자 슬슬 병원 다니면서 치료하고, 나와서는 안 다닌 것처럼 하고. 아프다고 하면 밉상 보여서 나중에 다 잘리고 그러니까. 아프단 말 한마디도 못하고 내돈주고 치료하고 그러고 살았어요. 그런데 노조 가입하고 나서 당장 변한 게, 요번에 18일 날 안전교육 하다가 누가 다친 사람이 있거든요. 우리가 당당하게 요구했어요. 한 달 봉급 내놓고 알바채용해라, 치료비 다 주라고 당당히 얘기했지. 옛날 같았으면 우리가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그랬더니 알았다고 해준다고.”

그동안 겪었던 아픔, 눈치를 보며 일해야 했던 치욕스러움을 얘기하면서도 표정에 어두운 기색이라곤 없다. 오히려 얼굴에 ‘당당함’이 보였다. 한 분은 수첩을 꺼내서 까끌까끌한 손으로 하나씩 짚어가면서 노조가 설립된 후 바뀐 점을 얘기하신다. 불과 한 달 전만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할 수 있다는 것. 우리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 이라는 말에,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저 학교에서 유령 같은 존재였던 그들에게도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나라 전체 노동인구수의 비정규직 비율은 40%가 넘는다. 통계상으로는 그 정도이지만 실제로는 아마 절반을 훌쩍 넘길 것이다. “비정규직 없애고 정규직화 돼야지 학생들도 좋지. 마찬가지야. 사회 나가면 다 비정규직이잖아.” “나 얼마전에 메스컴에서도 봤어. 뉴스에서. 인천공항에서 6800명 일하는데 800명만 정규직이고 6000명은 비정규직이야. 하다못해 불 끄는 소방사들 까지도 비정규직이야. 어디가서 챙피해서 얘기를 못한대요, 가장들이.” “우리나라 현실이야 지금. 비정규직을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집에 가서 딸한테 맨날 그래. 비정규직을 왜 그렇게 많이 만들었는지 몰라!” “일자리 창출 머 해가지고는. 아휴~”

당신이 먹고사는 문제에 바빠 별로 관심 없어 보여도, 자신들도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에,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또한 자식들이 취직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사실에 그들은 ‘비정규직’에 대한 걱정을 쏟아낸다.

10월 27일. 서울역에서는 비정규직 없는 일터 만들기 10만인 촛불행진이 있었다. 대리운전기사, 서울시 다산 콜센터 상담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강사 등. 그들은 마이크를 잡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이틀 전에, 같이 얘기 나눴던 한예종 청소노동자들이 떠오른다. 비정규 노동이 얼마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준 그들. 집에 가는 길, 지하철 스크린 도어 앞에서 왠지 씁쓸한 기분으로 기다리는데 “어머, 학생~”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한예종 청소노동자분들이다. 너무 반가워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려는데, 한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고마워~”

월화수목금요일 하루에 8시간씩 힘들게 일하고 쉬어야할 주말에 광장에 나와, 같이 촛불행진을 한다는 사실이 무척 감동이었다. 계속 일해도 불안정한 삶과, 열악한 노동 환경은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문득 이틀 전 인터뷰가 끝나고 오갔던 말들이 떠오른다.

“우리가 이거(인터뷰) 11월 초에, 학교 안에 뿌릴 거에요!”

“그래요? 많이 뿌려요~! 성대 미화 아줌마들한테도 갖다 주고! 고마워!”

*성균관대학교 노동문제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고 기록 및 글정리는 너울님이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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