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가 특집

우리의 시간과 공간이 무한하게 나누어질 수 없음에 대하여

- 산책자(수유너머N [흄세미나]팀)

1

2012년 12월 19일의 선거는 이렇게 지나갔다. 존재하는 무엇이 그처럼 존재하는 어떤 이유가 실존해야만 할 것이라고 믿는 한 우리는 맹신에, 다시 말해 모든 것의 말해질 수 없는 어떤 이유에 대한 믿음을 살찌울 것이다. 그런 이유를 결코 발견할 수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믿거나 믿기를 열망할 수밖에 없다. 사실성에 도달한 것을, 사유 자신의 본질적 한계들에 대한 발견, 궁극적 이성[이유]을 찾아낼 수 없는 자신의 부적합성에 대한 발견으로 만드는 한, 우리는 형이상학을 폐지할 것이며, 이는 가장 염려스러운 것까지 포함하는 온갖 형태의 종교적인 것을 소생시키게 될 것이다. … 사물들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처럼 존재해야 하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믿는 동안 우리는 그러한 세계를 어떤 신비로 삼을 텐데, 왜냐하면 그 이유가 절대로 우리에게 양도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가피한 강제적 이유의 강요는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덫이나 이론적 소심함의 결과가 아니다. 사실상 그것은 어떤 거부로 부터 나오는데, 이 거부는 본래적으로 사실적인 것에 대한 결정적인 반론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우리가 사변적 전개과정에 최소한의 신뢰성을 보장하기를 원한다면 정확히 제시하고 논박해야 할 것이 바로 그러한 반론이다. (Quentin Meillassoux, 정지은역,『유한성 이후』우연성의 필연성에 관한 시론, 도서출판b, 2010,; 4. 흄의 문제 p139)

2. 시간과 공간의 무한하게 나누어질 수 없음에 대하여

시간과 공간의 본성은 우리의 관념에서 확인되어야 하므로, 시간 공간을 무한하게 분할 할 수 있다고 지각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따라서 우리의 시간과 공간의 관념은 무한한 수의 부분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시간 공간을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단위로 형성되어진 것으로는 인식할 수 있다. 이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 깊게 하기 위해서 흄이 서술한 첫 번째 원리인 합일원리가 필요하다.

무한하게 나누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흄의 반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무한한 것은 무엇이나 하나의 무한한 수의 부분들을 갖는다. (2) 무한한 많은 부분들을 갖는 것은 무엇이든 무한하게 커다랗다. (3) 따라서 유한한 연장은 어떤 것도 무한하게 나누어질 수 없다.

3. 공간 시간 그리고 동일성의 원리(the Copy Principle)

합일원리, 분할원리 그리고 추상관념의 이론을 적용하면, 분리할 수 없는 점이나 계기가 시간과 공간의 부분들을 구성하고, 시간과 공간의 관념은 그러한 점들의 배열에 따른 복합인상에서 나온다. 동일성에 대한 기하학적 기준에 대해 흄은 공간 시간이론에서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이것은 원인, 도덕 그리고 미학 등에 대해 언급 하지 않으면서 진리의 이론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흄의 공간 시간 이론에 불만족스런 부분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흄의 공간 시간이론이 합일 원리의 예외로 생각되는 것이었다. 캠프 스미스는 공간관념의 설명이 ‘논고’의 서문에서 주장하는 원리들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이러한 원리들을 지지하며 끝난다고 말했다. (Kemp Smith (1941:273)) 흄 자신도 이 논의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논고’의 1권 2부는 『탐구』(Enquiry)’에서 자세히 다루어진다. 비록 무한 분할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회의주의에 대해 서술하기 위해서 2부 마지막 절에서 기술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논고』에서 중심이 되는 철학적인 다른 부분과 시간과 공간의 설명은 비슷한 이유로 생략되었다. 그러나 추상관념, 외부 대상 그리고 자아와 같은 것도 『탐구』에서는 짧게 서술 되어졌다.

공간관념이 흄의 원리인 인상과 관념 사이의 호응관계에 포함되는 위치가 쉽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합일원리가 ‘예외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 공리이며, 이러한 첫 번째의 원리가 공간관념의 근원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것은 공간 관념이 우리들의 경험의 특이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공간과 시간의 관념은 다른 관념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좀 더 직접적이며 자아와 특별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대상들을 지각 하면서 위치라는 관점에 기인한다고 말할 때, 공간과 시간관념에 따르는 위치의 관점을 감각경험에 대한 정신의 근원적 원인으로 다루어진다. 이러한 해석의 직접적인 문제는 공간과 시간이 우리의 감각에 영향을 주는 방식에 기인하는 관념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구분하여 말한다. (논고:64) 그러므로 위치라는 공간과 시간의 관념은 정신보다는 차라리 경험에 기인한다고 지적하였다. (Marina Frasca-Spada, “Space and Self in Hume’s Treatise”, university of Cambridge, 1998)
흄은 시간 혹은 공간의 단순 인상은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는 이러한 관념들의 기원에 관한 논의에서 첫 번째 원리에는 맞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시간과 공간의 관념이 본질적으로 자연적임을 알기 위해서 그는 인상이 항상 관념을 따른다는 원리를 적용 한다. 그 원리를 설명하는데 많은 분량의 서술을 진행한다. 그리고 진공이 존재하지 않음을 주장한 후 그는 소수만이 그의 주장에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육체의 작용에 대한 비밀스런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는 듯하다. 과학에서 신체는 단지 감각들로 그들 스스로를 발견하는 외적인 속성에 의해 알려진다. 그리고 경험이 나에게 대상들을 알려주는 한에서는, 그 대상이 나의 감각과 대상이 서로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공간과 시간의 관념은 상상 속에서 연합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만약 경험에 대한 철학적 결론에 우리가 정초 한다면, 이것이 우리가 시간과 공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전부이다. 더구나 이러한 개념은 흄의 철학의 모든 것이 된다. 철학은 우리의 지각들, 인상들, 그리고 관념의 원인과 본성을 단지 설명하려는 의도를 가지며, 그런 이유로 삶의 안내자로써 충분하다. 흄은 인상과 관념의 경험적 기준을 주장하였고, 이것은 인간 행동에 대한 모든 설명과 관련되었다. 따라서 그의 설명에서 첫 번째 부분에 공간과 시간관념을 불러들였고, 신체의 궁극적 원인에 대한 탐구는 네 번째로 언급되었다.
공간 혹은 시간 그자체로는 어떠한 단순 인상도 없는 반면에, 공간과 시간은 감각적 인상들을 구성하는데 기인하는 추상 관념으로서, 흄이 경험에서 하나의 단순한 인상에 대한 관념의 기원을 조심스럽게 추적하는 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공간의 복합 관념은 단순인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원리상 각각의 분할 할 수 없는 색 입자는 분명한 감각적 인상이거나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지각이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한 색깔의 점들로 – 물질의 무한분할 가능성과 수학적 점들 사이의 중간적인 것 – 감각하는 단순인상을 경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즉 이러한 나누어 질 수 없는 점들로 구성된 공간을 지각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른 한편으로는 공간이 나눌 수 없는 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공간 관념의 기원인 단순 인상이 이와 같이 설명되어 졌으며, 다음의 전개과정은 어떻게 그 관념이 흄의 추상관념 이론에 사용되는 인상의 기초를 형성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경험은 어떤 질서나 또는 다른 것으로 표현되는 다수의 인상들에 기인하면서 감각되며 유사한 나눌 수 없는 인상들이나 감각에 어떤 질서 혹은 방법으로 나타나는 지각들로써 공간의 추상관념은 형성된다. 앞서는 인상 그리고 공간적으로 질서 잡힌 사물들의 인상들을 복사한 하나의 관념이 공간의 모든 관념이다. 따라서 그것들의 표상 방식에 더하여 색이 더해진 점의 복사물이 공간의 관념이다. 색이 더해진 각각의 점은 느끼거나 볼 수 있는 그러나 정신에 의해 더 이상 나누어 질 수 없는 단순 인상이고, 그 각각은 어떤 대상의 가장 작은 부분을 표현한다.

시간관념을 구성하는 각각의 단순한 나누어질 수 없는 계기는 역시 정신에 의해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의 잘못된 관념으로서 보통은 지속하거나 변할 수 없는 것으로 시간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시간의 관념에 대한 기원을 단순 인상으로 추적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시간의 관념을 ‘허구’에 의해서 변할 수 없는 것으로 우리는 사유한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에 지속적인 지각의 계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시에 내가 확고부동한 대상을 응시하고, 6시에 동일한 대상을 보았을 때, 마치 각 순간들이 그 대상의 상이한 위치나 변화에 의해 구별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그 대상에 시간관념을 적용시키기 쉽다. 지각들의 계기와 비교되는 그 대상의 첫 번째 현상과 두 번째 현상을 그 대상이 실제로 변했던 것처럼 옮겨 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 대상이 두 현상들 사이의 무수한 변화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과, 불변적 지속 기간 또는 오히려 허구적 지속기간도 역시 변화를 증감시킴으로써 모든 성질들에게 감관에 뚜렷이 나타나는 계기와 동일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덧붙일 수 있다. 이 세 관계들로부터 우리는 관념들을 혼동하기 쉽고, 그리고 변화나 계기가 전혀 없이도 시간과 지속 기간의 관념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상상하기 쉽다. (논고:65)

우리가 외양상 변화하는 대상들의 지각에서 다양한 계기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흄은 말한다. 시간관념을 그것의 기원하는 인상으로 추적해가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하나의 변화하는 대상의 관념에서 시간이나 지속의 관념을 이끌어낼 수 없는 이유는 시간으로 인식될 수 있는 그러한 인상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변화하는 대상만 있을 뿐이다. 변화하는 대상에서 우리는 변화를 포함하는 계기를 알 수 있고, 이것은 우리가 시간관념을 끌어내는 지점이다. 우리는 단지 변화 없는 대상을 마치 변했던 것처럼 그러한 관념을 다루어서, 불변하는 대상에 대한 관념을 사용할 수 있다. 즉 그 대상은 인식될 수 있는 어떠한 계기도 없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인식될 수 있는 계기를 가졌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것에 부수하는 계기로부터 허구에 의해 우리를 차단하는 인상은 어떤 것도 없다. 지금 현재 인상들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세계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흄의 설명에서 우리는 즉각적인 인상을 가질 수 없다. 분할 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논의는 아주 순간적인 최소한의 시간 점들이 있다는 결론을 흄은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러한 시간 점들은 단순하게 주목할 만한 가장 작은 계기의 순간이다. 그리고 시간의 나눌 수 없는 계기들은 어떤 실제 대상이나 존재로 채워져 있음이 틀림없으며, 연속하는 형태들의 지속으로 그리고 정신에 의해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논고;39)

흄의 시간과 공간 관념의 기원에 관한 설명으로 동일성 이론이외에 다른 내용은 필요 없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의 관념에 대한 기원으로서 하나의 나눌 수 없는 점이나 계기의 단순 인상을 흄이 찾기 때문이다. 어떠한 방법이나 질서 안에서 단순한 나눌 수 없는 지각들의 덩어리를 경험하는 것은 우리가 공간의 관념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된다. 시간은 둘 혹은 더 이상의 순간적인 최소한의 지각들이나 계기들이 질서지어 지거나 서로 관계 맺고 배열되는 또 다른 것이다. (Angela Coventry, “Hume : A Guide for the perplexed”, 2007, continuu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