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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독일 공연을 다녀와서(6). (마지막 회)

- 김융희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린 지난 여름이었다. 며칠후엔 런던 올림픽이 개최되는 때이라서 유럽행 항공이 매우 혼잡했었다. 서울에서 직접 베를린행이 없어, 처음엔 헬싱키 경유였던 것이, 항공편 사정으로 뮨휀으로 바꿔 출발했다. 뮌헨에선 몇 시간의 여유가 있어, 공항 광장의 대중술집에서 흰 소세지에 뮨휀 맥주를 마실 수 있었던 기회는 다행이었다. 밤 늦게 베를린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베를린에선 “한국문화원”의 배려로 충분한 휴식과 더불어 여독을 말끔히 풀수 있었고, 인류의 수치요 독일의 상처였던 베를린 장벽의 상흔을 밟으며 브란덴부르크문, 운터덴린덴거리등의 시내 관광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 세 차례의 공연에 마음이 쓰여 관광은 가능한 자제했었다.

다음날 베를린의 ‘루드비히 성당’에서 공연을 끝내고, 공연이 끝난 늦은 밤 오우토반을 달려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린 라이프치히로 이동했다. 열차 역사인 중앙역에서 멀지 않는 곳의 중심가에 있는 홀리데이인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라이프치히에선 ‘한국문화원’의 주선으로 “라이프치히 한인교회”에서 교포를 위한 첫 공연이 있었고, 바흐도 자주 들렸다는, 유명한 관광 식당인 “바우어바흐 켈러”에서 식사를 했고, 가벼운 시내 관광을 즐겼다.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본격 공연을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드디어 “성 토마스 교회”에서의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이로써 우리는 독일에서의 모든 공연을 무사히 잘 끝냈다.

이제 남는 시간은 관광 답사의 시간이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발상지인 비덴베르크와, 쫒기는 위기의 루터를 보호하여 성경 번역을 완성케 했던 장소인 바르트부르크성을 찾았고, 아이센나흐, 바이마르, 할레, 그리고 마이센, 드레스텐을 차례로 답사했다. 대부분이 구 동독지역이다. 주마 간산의 건성으로 스치며 지나온 관광 길이, 이젠 반년이 지난 먼 옛적 일이 되었다. 그 시공을 함께 아우르며 현장의 실제를 써야하는 여행기를 나는 지금 쓰고 있다. 우물안 개구리 보다 좁은 영역을 다녀와서, 체험이라며 한 두 번도 아닌, 벌써 여섯 번째를 쓴 것이다. 잠자다 말고 봉창을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염치를 싸두고서도 도저히 있어선 안 될 일이다. 벌써 오래전 일인데도 그냥 넘기려니 마음이 편치를 않다. 꼭 써야할 꺼리가 있기는 있는 것일까? 마음에 작은 갈등을 느끼며, 쓸까, 말까를 망설였었다. 나는 아직도 쓸거리가 있는 것이다. 특히 “다음으로”라는 토를 달아온 것도 구실이며, 변명거리다.

종교 개혁에 대한 역사적 현장에서 느끼는 내 생각, 포스담을 지나면서 우리 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포스담 회담에 대한 얽힌 생각들, 마이젠을 방문하면서는, 세계에 자랑거리인 고려 상감청자를 비롯한 조선백자를 만든 도자기의 종주국이었던 우리 조상들의 솜씨를 지키지 못한 아쉬움으로 자존심이 상했다. 경이의 찬탄을 아끼지 않는 관광객들 틈에 끼어서 억대의 호화 고가의 자기셑을 보았던 경험들과 함께, 그토록 자랑하면서 내세운 마이센의 도자기 전시장에서의 생각들을 정리했어야 했다.
그리고 바이마르에서의 바우하우스의 여러 건축물과 작품들의 견학과 함께, 괴테와 실러가 문학의 길을 함께 했던 것을 말고는, 두 거장의 삶의 길은 전혀 이질적이요 상반되었음에도 그처럼 서로가 의기 투합할 수 있었던, 평생동안 아름다운 우정을 지키며 살았다는 사실이 나에게 그 현장을 꼭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드레스텐에서는 요하노임과 슈탈호프의 외벽에 2만 5천장의 마이센 도자기타일을 사용해 100m의 길이로 작센왕과 주변 인물들을 묘사한 거대한 벽화 “군주의 행렬도”를 좀더 시간을 내여 샅샅이 들여다보지 못했고, 아름다운 석조건물인 드레스텐의 미술대학이 지척에 있음에도 들러보지 못했던 아쉬움도 컸다.

목적과 동기가 분명해야 어떤 의지력이 생길 것이다. 또한 노력 못잖게 중요한 것이 애착이다. 처음 여행기를 쓰면서 밝혔지만, 나는 눈과 마음을 즐겁고 풍성하게 해주는 여행을 기대하지 않았고, 공연 이외엔 무엇 하나 꼭 정해진 뚜렸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매사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독일인의 국민성에 대한 부러움과, 근검, 절약, 검소, 청결에 철저한 그들의 삶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독일 방문의 기대가 컸었다. 그리고 우리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파독 간호사와 광부에게도 관심을 되세겨 보면서, 분단의 아픈 역사를 함께 했고, 먼저 통일을 이룬 독일에 대한 관심은 우리에게 당연지사이며 절실한 문제였던 것이다.

독일 식문화를 대표하는 감자, 호밀빵, 소시지를 말고도, 라이프찌히의 홀리데이인 호텔의 식사는 맛이 매우 좋와 모든 메뉴가 내 입맛에 딱 맞았다. 특히 아침 식사로 감자와 양파 요리, 도마도 슾, 유난히 고소한 우유와 함께 노릇노릇하게 구운 먹음직스런 빵을 실컷 즐길 수 있었다. 돌댕이처럼 거칠고 딱딱하지만 바삭거리면서 하얀 속살의 폭신 쫀득한 독일 바게트, 특히 영양가가 넘칠 듯 씹을수록 고소하고 풍부한 맛의 빵 ‘브레첼’은 지금도 생각하면 입맛이 다셔진다. 아침마다 호텔에서 들었던 식사가 독일에서 일부러 찾아다녔던 유명 식당이나, 이국에서 먹는 한식보다도 훨씬 더 좋았던 것도 이번 여행의 이색 체험이다.

‘먹거리 없는 여행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며 맛기행을 즐기는 이들은 음식이 매우 중요하다. 맥주와 소시지는 찰떡 궁합으로 친다. 맥주는 술이 아닌 음료라며, 소시지를 밥처럼 맥주를 국처럼 즐기는 독일인들이다. 매일 다른 종류로 맛을 보는데도 13년이 걸린다는 수천 종의 다양한 맥주와 소시지의 생산지가 이곳 독일이다. 나는 ‘소시지를 안주로 마시는 맥주’는 충분히 즐길 기회가 있으리라 미리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기대는 마음의 바람일 뿐이었다. 유명한 뮨휀의 옥토버 페스트는 천 만의 인파가 몰리는 세계적 맥주 잔치이다. 여기서 소비되는 맥주만도 천만 리터에 수십만 톤의 소시지가 소비된다고 들었다. 바이에른의 전통 의상인 ‘레더호제’를 입은 콧수염 아저씨가 독특한 디자인의 ‘비어크룩’ 맥주잔에 유명한 뮨휀의 맥주 ‘파울라너’를 들고 있는, 사진에서 보아온 멋진 모습이 정겹게 떠오른다. 다시 방독의 기회가 된다면 나는 행사기간인 9월 말이나 10월 초로 일정을 맞출 것이다. 그래서 옥토버 페스트를 즐겨볼 것이다.

독일에선 휴일이면 상점과 음식점은 거의 모두가 문이 닫쳤고, 문이 안 닫혔는데도 폐점시간이 되면 상품을 살수 없었다. 정석, 정도를 중시하는 독일인들의 원리 원칙과 투철한 시간 관념은 예외가 없었다. 얼렁 뚱땅이 용납되지 않는 철저한 교통 법규의 준법 정신은, 도로의 차선이나 달리는 차량을 보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노랑색의 절대선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흰선 마저도 거의 점선으로 되 있어, 유턴과 좌회전이 허용되는 도로임에도, 질서 정연하게 흐르는 차량들의 교통문화는 놀랍고 부러웠다.
우리나라 백화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 유명한 세제 “PERSIL”도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깨끗하지 못한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독일인들의 국민성과 자부심인 완벽주의자들의 심리를 만족시켜주는 세제가 바로 ‘PERSIL’인 것이다.

어려서부터 철저한 교육으로 몸에 벤 절약습관과 바른 정신을 지구촌 사람들은 반드시 본받을 일이다. 이런 것들이 나를 어려서부터 독일이란 나라를 동경하게 했고,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만들었다. 특별히 주위에 신경이 쓰이지 않는 자유로운 환경, 꼭 찝어 말 할 수는 없어도 독일은 멋있는 나라였고, 멋있는 사람들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휴가를 즐기는 나라, 그러면서도 직장에선 사명감에 넘쳐 일에 몰두하는 투철한 근로정신과 생활에 충실한 그들이 오늘의 독일을 있게 했다는 생각이다.
기본과 중심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단순 투박하면서도 실용성과 합리성을 따르는 그들의 일상 생활의 에너지 절약, 알뜰 장보기를 보면 숙연한 마음이다. 독일인들의 청결 습관을 결벽증으로 표현한다. 그런데도 화장실에서는 우리처럼 휴지를 맘데로 쓸 수 없었고, 손을 말린 드라이어를 전혀 볼 수 없었다. 청결과 위생의 배려가 아닌, 절제이며 당연히 개인이 챙기는 솔선수범인 것이다.

유행을 줄이는 삶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숨어있는 매력이 느껴지기도 하며, 낡은 것들이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기능미에 또다른 정취를 즐길 수 있다. 그런 멋을 아는 그들이기에 처음부터 상품을 견고하게 만들며, 낡은 물건도 잘 관리하며 소중하게 여긴다. 처치 곤란한 애물도 아끼며 재활용하는 생활습관이 일상 몸에 베여있다. 사용하지 않는 가구나 옷가지등을 수집하고 깨끗하게 손보아서 싼 값에 팔아 그 이윤으로 아프리카등의 가난한 나라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는 기관, 옥스팜(OXFAM) 후마나(HUMANA)와 같은 구호 단체는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독일 국민들은 재활용의 값 싼 물건을 이용해서 좋고, 남을 도울 수 있어 더욱 만족해하는 그들인 것이다.

여행기가 현지에서의 경험이 아닌 그곳에 대한 생각들, 바랬던 일들을 지루하게 열거했다. 정말 동경했던 곳을 실제로 가서 보고 체험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 기대는 컸다. 그런데 가는 목적도 달랐고 일정도 너무 짧았다. 몹시 아쉬웠으나 결코 실망스럽진 않았다. 지난 송년회 모임에서였다. 누군가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계속 여운으로 남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큰 열망이 있어서 열심히 볼려고 노력했음도 나만이 아는 사실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법이라고 했던가? 꼭 그런 기회가 또 있으리라 믿으면서, 나의 독일 나들이에 대한 이야기를 아쉽지만 여기서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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