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장애인 스토리텔링

매력의 역사를 교직한, 사진글 역사작업

- 이영남(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내 안의 역사 프로젝트는 역사를 쓰는 새로운 스타일로 역사가 쓰여졌다. 이 새로운 스타일은 <사진글 역사작업>인데, 이번에는 사진의 시각에서 이 스타일을 말해본다. 지금까지 역사서술이나 이야기작업은 말과 글 위주이거나 사진을 먼저 찍고 여기에 설명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전개된 것이 사실이다. 글과 사진이 동시에 뭔가를 지향하면서 의식적으로 함께 역사를 쓰는 작업은 아무래도 적었던 것 같다. 이번 내 안의 역사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글과 사진이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했다. 이 작업의 의미에 대해 미리 말해본다면, 그 중의 하나는 호혜적인 상승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사진을 중심으로, 사진은 어떻게 역사를 써내려갔는지, 그것이 말-글과 어우려져 어떻게 <사진글 역사작업>을 했는지 말한다.

사진작가 김영갑은 사진에 바람을 담았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사진을 찍다가 그만 심장 깊이 제주가 박혀버렸다. ‘바람에 환장한’ 젊은 사진작가는 제주에 살지 않을 수 없었고 심장에 부는 바람을 찍으려 매일 제주 중산간 일대를 헤맸다. 광기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하루종일 기다렸고, 며칠 같은 자리에 있어도 바람은 불지 않았다. 그러나 끈기있게 기다렸고 마침내 하나 둘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제주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만나는 것은 바람이지만, 물론 이 바람은 제주의 바람이 아니라 김영갑의 바람이다. 김영갑 프레임 안에 들어온 바람일 뿐인 것이다. 비록 문자 그대로 김영갑은 키운 건 8할이 제주바람이었더라도, 그러나, 그것이 제주바람을 재현했다거나 제주정서를 표현했다는 말을 함부로 쓸 수는 없다. 제주사람은 그것을 제주바람이나 제주정서라 동의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오히려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상황이 어찌되었든, 제주바람이 제주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면 바람을 본다는 것, 아무개의 사진에서 바람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그럼 나는 마음에 어떤 바람을 품고 있나 생각하는 것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광기의 세월을 살다간 한 사진작가로부터 받은 행운이 주는 인생의 의미인 것이다. 김영갑(1957~2005)에게 제주는 사진을 찍어야 하는 장소이고, 바람은 어떻게든 사진 프레임에 넣어야 할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한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대화할 때 상대에게 어떤 인상을 받게 되는데, 이때 인상이 형성되는 요소 중에 얘기(말-정보)는 단지 7%에 불과하고 한다. 대신 목소리 톤(38%)이나 몸짓(55%)이 훨씬 크다고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말을 주고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시각과 청각을 포함한 몸 전체로 느끼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말에 담긴 내용, 목소리 톤, 말의 속도, 그리고 말과 말 사이에 끼어드는 침묵, 손동작 같은 다양한 요소가 어울려져야 한다. 아마도 이런 연구결과는 우리가 어떤 사람을 이해할 때 그 말만 가지고 이해하지 않는다는 상식을 확인해주는 결과일 것이다.

이런 시선으로 보면, 말과 글만 가지고 역사작업을 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일반적인 관념으로는 역사를 쓴다고 하면 글만 쓰거나, 말과 글을 혼용해서 써내려가는 것이 연상된다. 근대역사학은 기록(archives, official records)을 역사서술에 편입시키는 전략으로 아카데미에 자리를 잡았다. 근대사진도 기록사진 장르를 통해 사진에 역사를 편입하는 전략을 쓴 것 같다. 새로운 역사학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메므와 워크숍에서 ‘사진글 혼용전략’은 역사를 새롭게 쓰는 작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작가 고은경은 한 사람 한 사람 표정을 사진에 담았다. 워크숍이 열리는 곳에서 대화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얼굴, 휠체어, 손, 발, 다리를 사진에 담았다. 동해바다로 여행을 갔을 때도 여행의 매 순간을 담았다. 특히 마지막 날이 인상적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날 내내 오던 비는 그치고 해맑은 햇살이 비쳤는데 햇살 때문인지 바람도 참 자유로웠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서울에서 몇 시간이나 걸리는 곳에서 자유를 맛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날 사진작가는 자유를 담았다. 그리고 사진작가는 집으로 가가호호 방문해서 그들이 집에서 사는 모습도 담았다. 대학로의 방통대 교정에서는 만추의 토요일 오후햇살에 힘없이 내려뜨려진 손을 사진에 담았다. 우리는 매주 한 차례 만나 세 시간 동안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러나 사진작업은 매주 3시간 동안만 진행되지 않았다. 4개월동안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음없이 사진작업이 진행되었다.

워크숍 중간 중간 우리는 사진을 같이 보곤 했다. 참 빛나는 모습이었다. 사람이 헛눈팔고 있을 때 꾸미지 않고 드러내는 표정이 있다. 보통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 정색을 하고 표정을 가다듬지만 사진을 찍는 줄도 모르고, 누가 나를 보는지도 모를 때는 세월을 거쳐 형성된 자기만의 고유한 표정이 꾸밈없이 드러난다. 아기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표정을 익힌다. 엄마 품을 떠난 이후에도 살면서 이런 저런 일을 겪고 그러면서 표정에 그런 역사가 하나둘 새겨진다.

우리는 함께 사진을 보았지만, 사진을 보는 것이 단순히 추억에 젖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난 번에 했던 말,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을 우리는 사진에서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아온 세월을 쓰면 몇 권의 소설이 되지만 결국 한 줄로 요약되는 인생처럼, 꽤 많은 말을 듣고, 하고 꽤 많은 글을 읽으면서도 요약되지 않았던 바로 그것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사진글 역사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이다. 산에서 흘러내려오다가 어느 지점에서 소용돌이치는 여울목처럼, 추억이 아닌 역사를 말하는 이 순간이 사진글 역사작업의 여울목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사진과 글을 합치자는 테크닉이 아니었다. 소설가 김영하는 요약할 줄 모르는 뻔뻔함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우리의 뻔뻔함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려 준 것은 사진작가의 작품이었다.

이번 메므와 워크숍에서는 ‘매력의 역사’도 썼다. 어떤 사람의 매력이 성실함이라면 성실함의 역사를 쓰는 것이 매력의 역사이다. 그런데 성실함이라는 것은 참 추상적이다. 그이가 사람을 만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실하구나 말은 할 수 있지만, 결국 ‘그래서 성실한 것이었구나’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다. 사진이 매력의 역사를 찍는다면, 매력적인 성실함을 담을 것이다. 그것은 표정에서, 손짓에서, 몸짓에서 드러난다. 사진을 보면서 추억이 아니라 역사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사진이 애초부터 매력의 역사를 쓰려고 했기 때문은 아닐까? 몇 개월 같이 메므와 작업하고 대화하고 모임을 갖고 책작업을 하면서 사진작가 고은경의 사진프레임에는 ‘매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에 환장해서 광기의 세월을 사는 영혼은 아마츄어의 영혼이다. 아마츄어의 어원은 무언가에 대한 진지한 사랑이다. 전문가는 자기가 하는 일, 그 일에 빠져 있는 자기 자신과 동료들을 마음 깊이 사랑하기 힘들다. 그러나 아마츄어는 직업적 전문가가 아니기에 사랑하지 않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며 몰두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전망이나 입신양명이 사진의 동력은 아닌 것이다.

사진에 환장한 사람의 사진작업은 “사진과 애정으로 사진찍기, 사진에 미쳐 사진 찍는 내 모습 찾기, 이 세상에 사는 나 자신이 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진 찍기”일 것이다. 사진작가 최광호는 <<사진으로 생활하기>> 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사진을 찍을 때 나와 만물은 스스로의 존재로서 빛난다.” 이 구절이 적어도 한번은 지금 사진에 환장한 한 아마츄어 사진작가를 구원했다. “만추의 토요일 오후 대학로에서 사진작업이 있었다. 희영이 떨군 저 여리고 힘없는 손을 잡고 쓰다듬어 보았다 차갑고 부드러운 손…. 그러나 자립세상을 향해 휠체어를 운전하는 가장 강한 손. 그녀의 손이 눈부신 햇살 아래 빛났다. 나도 홀려서 셔터를 눌렀다.” 그냥 사진만 찍은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그것을 표현하고 걸어가 그 손을 만지며 감촉을 느끼며 공명하며 동무사진을 찍었다. 결국 아마츄어 사진작가는 프로페셔날로 사진만 찍은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 그리고 동무와 혼연일체가 되었던 것이다.

아마츄어리즘이 수준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빈필하모닉은 매년 신년음악회을 한다. 1939년부터 시작이 되었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정평이 있고 전통이 오래된 음악회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 음악회는 전세계로 실황중계되는데, 한 해 8억의 인구가 본다고 한다. 프로페셔날 중의 프로페셔날이다. 그런데 빈필하모닉의 모토는 ‘아마츄어리즘’이다. 단원들은 하나같이 아마츄어리즘이 빈필하모닉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증언한다. 세상에, 음악세계에서 이들보다 더한 전문가도 없을 것이고 이들은 매일 하이테크니션을 연습한다. 그러나 이들은 ‘마음에서 마음으로’라는 모토를 내세우며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음악과 사람들과 향유하는 것이다.

이번에 사진으로 써내려간 역사는 ‘매력의 역사’였다. 심장에 남은 사람을 하면서 우리는 자기만의 오브제를 표현하려고 했는데, 사진작가도 어쩌면 그이만의 푼티쿰을 표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역사가의 시선으로 사진을 보면서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말과 글이 7%의 역사를 말한다면, 나머지 93%의 역사는 어떻게 써야 할까? 사진작업은 아직 쓰여지지 않은 93% 세계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상으로 사진을 중심으로 사진글 역사작업을 이야기했다. 여기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진글 역사작업>은 “나의 역사, 공동체 역사”를 쓰는 데에 유용한 방식이라는 점이다. 다음 호에는 사진글 역사작업의 의미를 보다 상세하게 다뤄볼 예정이다.

응답 1개

  1. 여하말하길

    사진 이전에는 그림을 그려 남겼습니다. 김홍도도 그렸더군요. 확실히 사진은 예술로서만이 아니라, 역사로서도 가치있는 기록임에는 틀림없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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