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지역아동센터의 숙제-제도 안으로 들어간 공부방

- 성정아(나란히지역아동센터)

2006년 처음 나눔의 집에서 공부방 일을 시작했다. 초등, 중등을 합쳐서 20명 남짓의 아이들이 있는 조그만 공부방이었다. 3명의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다. 비영리단체로 동네에서 공부방 활동을 어렵게 이어오고 있었는데 방과후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교육복지 예산이 막 투입되던 시기였다. 그 예산은 어려운 시기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초등학생, 중학생이 함께 좁은 공간에서 있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 특히 폭력과 괴롭힘. 권력관계의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는 중학생과 초등학생의 분리가 필요했다. 2007년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중학생공부방으로 따로 나왔다. 재정적인 안정을 고민해야했고 지역아동센터로 인가를 받게 되었다. 2009년 나란히 지역아동센터의 탄생 배경이다.
지역아동센터가 되자 풍족하고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25인 시설에 2명의 실무자 인건비, 정기적인 프로그램비. 예전에는 겨우 아이들 간식만 챙겨줄 수 있었는데 다양한 활동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지역아동센터라는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서 운영하는 데에 치러야하는 대가가 많다. 민간의 다양한 공부방들을 관리하기 위해 기준을 만들고 평가하고 채점한다. 채점한 결과에 따라 예산을 주기 때문에 실정에 맞지 않아도 중앙정부에서 마련한 획일적인 기준에 맞추어야 했다. 전에 없었던 행정서류들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공부방 교사 두 명 중 한 명은 행정업무를 전담하고 한 명은 아이들을 혼자 보아야하는 부담감이 생겼다.

아이들의 출석 또한 딜레마가 되었다. 청소년들의 특성상 매일 출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기 생활의 균형을 잡고 조절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아이들은 그 기회를 박탈당한다.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이미 많은 억압을 받고 있다. 공부방까지 강제로 규제하여 답답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공부방이 최소화된 규칙으로 숨통을 트이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작은 여유가 있어야 자기를 돌보고 타인에게 관대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아동센터 규정은 그런 여유가 없다. 매일 출석해야 한다.
1년에 횟수가 정해진 의무교육도 5가지이다. 공부방에 아이들이 의무로 참석해야하는 교육이 이렇게 늘어나게 되는 것이 걱정이다. 아이들이 자신을 규제하는 또 다른 공간으로 여기면 어떡하나. 출석이나 의무교육의 부담에서 교사 스스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로 인해 아이들과의 관계도 나빠지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도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주변 환경에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상당히 적극적인 존재들이다. 지역사회와 가정이 건강하게 변화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동시에 그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자신의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인간이다. 하지만 중앙에서 정한 지역아동센터 이용자 규정을 보면 보호와 건전육성이 필요한 아동이 그 대상이다. 아이들을 보호받고 육성되어야하는 대상으로, 지역사회가 무언가를 항상 해줘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들로 본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사례로서 관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관점은 지역아동센터의 구체적인 운영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출석률, 운영시간, 사례관리집중도를 증명할 수 있는 행정서류들로 센터 운영을 평가한다. 당연히 교사들의 업무도 행정서류들과 사례관리에 집중될 수 밖에 없다. 교사들의 생각과 공부방의 색깔, 운영방식,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까지도 바꾸어버릴 수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지역아동센터 지원은 운영의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교사가 아이를 바라보고 키우는 관점을 고민하고 유지하는 여유를 앗아가버렸다.

내 책상위는 항상 어지럽다. 수많은 행정서류들과 정리가 되지 않는 아이들의 자료. 머릿속은 숙제들로 항상 어지럽다. 평가의 기준이 되는 행정서류를 그래도 우리의 교육철학에 맞게 바꾸는 숙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함을 느낄 수 있는 과정을 만드는 숙제. 평가 잘 받는 숙제(아니, 평균 점수만 받았으면 한다). 교육과정도 잘 만들어 내고 싶은 욕심과 숙제.
나도 워낙 제도권 시스템에 익숙한 인간이 아니라, 지역아동센터 4년차인 올해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힘들다. 3년에 한번 꼭 받아야하는 평가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그 수많은 서류들을 만들어내야 하고, 구비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아이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과정을 다른 누군가가 관찰하고, 정리해준다면 좋을텐데. 올해 평가 준비를 하려면 아이들은 잠시 제쳐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2013년이 지나면 완전히 지쳐버려서, 넉다운이 될 수도 있겠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영원히 희망만 하는 것으로 그칠 수도 있을 것 같아 두렵다.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응답 1개

  1. 산하말하길

    글 잘 읽었습니다.. 올 한해도 힘내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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