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일지에 붙여 ‘눈속에서 봄을 기다리며”

- 김융희

농사일지에 붙여 ‘눈속에서 봄을 기다리며”

13-농사 일지 其1.

금년 겨울은 눈이 내리면서 시작해, 추위와 함께 쌓인 눈에 덮인 채 보내게 될 것 같다.
아직 겨울이 되기전, 지난 늦가을의 11월 중순에 펑펑 내려 쌓인 눈이 2월의 하순으로 접어든 ‘우수’ 절기인데도 아직 그대로이다. 오리장에서 알을 꺼내면 얼어 터져 있고, 낙엽을 두둑히 깔아준 집에서 살살이는 영하 25도가 넘는 혹한을 이기지 못해 동사했다. 인근 산에선 굼주려 울부짖는 산짐승들의 울음소리, 새들의 비명소리가 쉴새없이 들려온다. 하수통의 버린 지수가 계속 겹쳐 쌓여 결국은 입구까지 얼어 막혀버렸다. 변기통도 얼어 터졌다.

쌓인 눈이 한 번도 녹지 않은 채 겨울을 지낸건 금년이 처음이다. 겨우내 영하 10도 이하의 계속된 혹한은 참 지독했다. 겨울 날씨의 특징인 삼한 사온의 기온이 점차 불규칙은 했지만, 금년만은 아예 한(寒)이 있었고 온(溫)은 전혀 없었다. 눈이 녹질 않았으니, 봄나물의 모습이 궁금하다. 불규칙하게나마 잠깐씩 풀린 날씨로 눈이 녹으면 냉이 같은 나물도 켈 수 있었는데 금년은 그것도 할 수 없었다. 쌓인 눈을 이불 삼아 견디며 얼어 죽지 않기만을 바랬다. 얕은 개울물에 물고기들도 고통이 심했을 터, 외딴 곳에서 홀로 지내신 할머니가 냉방에서 영면했다고 한다. 혹한의 계절이 여러 참화들로 참혹하다.

오늘 우리 지역의 기온이 영하 25도를 넘었다. 입춘 한파가 대단함을 알고는 있었지만, 금년의 입춘 추위는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다. 너무 추워 꼼짝도 않은 채, 실내에서 버티는데, 한낮의 햇빛이 들면서 뒷산에서 꾀꼬리소리가 들렸다. 겨울들어 처음 듣는 반가운 소리였다. 봄의 문턱인 입춘을 알리는 소리로 알고 얼른 문을 열어 바라봤지만, 흰눈에 덮인 잣나무들만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래, 꾀꼬리가 아니래도 계절은 변함없이 정직하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웠을 뿐, 어딘가 지금 봄은 오고 있으며, 또 꽃이 필 것이다.

경칩이 지나면서 개구리와 함께 농사꾼은 농사 준비의 활동을 시작한다. 풀린 날씨와 더불어 서두르진 않아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금년 농사는 벌써 기대가 된다. 견디기 힘든만큼 농사에 훼방꾼인 해충들의 동사로 작물들 피해가 줄어들 것이다. 물론 익충의 피해도 있겠지만, “음양의 조화”란 말처럼 매사엔 호오(好惡)가 함께함을 지난 여름에 실감했다. 지난 여름도 기상의 악조건으로 농사가 매우 힘들었었다. 그런데 수확량은 줄었으나, 결실은 여간 실하게 여물었고, 과일이 유난히 달고 맛있었다. 날씨의 악조건을 극복하며 얻어진 작물의 실속있는 결실이었다.

작물과 종자에 대해선 진즉 마음을 정했다. 작물은 신품종이나 수입종은 사절이다. 종자도 구할 수 있는 한, 신토불이의 토종을 선택하겠다. 외화(外華)보담 실속을 찾아 정직한 먹거리를 얻는 것이 내 길이다. 먹거리를 마치 약재처럼 취급하는 옳지 못한 생각들을 버리고, 생명을 위한 참먹거리를 얻기 위해 진실한 농부가 되어야 한다. 신토불이, 웰빙, 몸에 좋은 보약, 등의 마치 먹거리를 약장사처럼 ‘몸에 좋은’이란 입벌림으로 취급하는 오늘의 현실을 보면서 절실한 생각이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가 “정직한 농사의 되살림”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가장 정직하고 진실해야 할 농업이 망가지면서 우리 인간들은 불행이 시작됐다.”면 아무도 수긍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오해와 허구를 벗기면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많이 그리고 보기 좋게”란 “소득과 상품성”만을 위한 생각이 오늘날과 같이 비료와 농약을 필요로 하는 농사를 짖게 됐다. 이 사실만은 인정하자. 인위가 아닌 자연스러울 때, 가장 무난하다. 매사가 그렇지만, 일시적 욕심이 근본적 해법은 못된다. 작물은 그냥 본디데로 크고 자라야 제대로 결실이 되고,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먹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신품종이나 수입종은 비료와 농약 없이는 재배와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 또 길러본데도 우리의 먹거리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크고 보기 좋은 떡은 맛 있을지 몰겠지만, 겉이 번드르르한 농산물은 실속이 없다. 비록 볼품 없고 맛이 좀 덜 해도 천천히 더디 자란 작물이 우리의 건강을 지켜준다. 토종은 병충에도 강하며 잡초에도 강하다. 또한 생육도 왕성하다. 농약도 제초제도 필요없고, 비료도 없이 생육이 왕성하다. 이처럼 볼품없는 자란 토종이 신토불이로 건강에 좋은 먹거리인 것이다. 이런 사실이 지금 과학적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다.

요즘 나는 무릎을 치면서 읽은 책이 있다. <송광일 박사의 “기적의 채소”>란 책이다. 지금까지 나의 먹거리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시원하게 밝혀주는 고마운 책이었다. 실제 농사를 짖는 농부로써 얻는 놀라운 발견을 학문적인 연구와 노력으로 이루어낸 빛난 결실이었다.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쓴 책이다. 꼭 읽기를 권하며, 자세한 내용을 다시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 혹한을 피해 방안에 갇혀서 얻은 소득이다. 요즘 꾀꼬리 소리가 앞 산 뒷산에서 부쩍 늘었다. 봄이 오는 소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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