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생애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다-‘덕성여대 생애과정의 인류학’

- 현미지(덕성여자대학교)

01.

과거 상아탑이었던 대학이 취업 학원이 되고, 지성인이었던 대학생들은 ‘잉여’가 된 요즘, 많은 사람들은 “대학은 죽었다.”라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도 대학 수업에서 인생의 깨달음을 얻기를 기대하지 않고, 교수들도 기업과 학교의 등쌀에 밀려 ‘수업다운 수업’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수업만을 강의한다. 그러한 풍경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세상에,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특별했던 수업.”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수업이 있다.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본인이 작년 2학기에 수강했던,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정진웅 교수님의 “생애과정의 인류학”이 바로 그 수업이다.

이 수업은 강의계획서부터 뭔가 범상치 않았다. ‘나와 가족’, ‘나와 교육’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학생들은 매주 쪽글을 써내야 하고, 그 쪽글에 대해 20명의 소수 수강생들이 이야기를 나눈다는 강의계획서를 보고 나는 주춤했다. “우리의 삶의 시간표가 어떠한 문화적 각본을 가지고 있는지를 성찰한다.”는 나름 창대한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족이나 교육의 의미 등 온통 피하고 싶은 주제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삶에 대한 이야기를 수강생들과 교수님들 앞에서 말하기까지 해야 한다니? 그러나 그렇게 망설이던 찰나, 나는 강의계획서 맨 마지막에 있던 문구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생애를 점검하는 과정 자체가 개인의 삶을 문화적 맥락에서 조망하게 함으로써 치유적 의미를 지니기도 할 것이다.” 그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 나는 그대로 이 수업에 ‘조인’했다. “생각하기도 끔찍한 그 기억들에 대해서, 어떻게 쪽글을 쓰고 그걸 또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지?”하는 고민은, “에이, 설마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사람들 앞에서 하겠어? 다들 그냥 넘어가겠지.”라는 위안으로 억지로 덮어버렸다. 그땐, 그랬다.

02.

수업의 초반부, 그 분위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얼굴도 잘 모르는 수강생들이 주춤주춤 몸을 움직여 책상을 동그랗게 붙여 앉던 그 어색한 공기. 그 얼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이 세상의 불행을 나 혼자 떠안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의 나는 속으로 생각했었다. “나는 상처가 많아서 그걸 털어내고 회복되고 싶어서 이 강의를 수강했는데, 전혀 인생의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이 사람들은 과연 무슨 목적으로 이 강의를 수강했을까?” 그러나 나의 그 생각은, 강의 시작 3주가 채 되지 않아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기 어려워할 것임을 걱정하신 교수님의 배려였는지, 첫 주제는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라는 다소 말랑말랑한 주제로 시작되었다. 그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패스’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 자체는 그리 충격적일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수업의 방식과 내 예상과 정반대로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사람들 앞에서 꺼내는 수강생들의 모습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충격이 가실 새도 없이, “나와 가족”이라는 다음 주제에서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수업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것이다.”라고 예측한 내 생각과는 달리, 거의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으며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가정에 대한 상처를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연이은 눈물 행보에 “생애과정 수업에는 준비물로 휴지를 가져와야 한다.”는 말이 농담처럼 쓰였으며, 한 학생이 눈물 젖은 이야기를 끝내고 다른 학생이 비슷한 이야기를 이어서 말할 때 또 다시 눈물을 터뜨려 두루마리 휴지가 책상과 책상 사이로 전달되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나의 상처만이 유일할 것이라고 믿던 나에게는 굉장히 놀라운 결과였다. 게다가 이러한 수업 분위기는 비단 ‘가족’에 대한 주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뒤에 이어진 ‘나와 교육’에서도, ‘콤플렉스와 성장’에서도, ‘나와 사랑’에서도 학생들은 각각의 주제와 연관된 삶의 이야기들을 말하며 상처를 드러내고 눈물을 글썽였다. 물론 그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 상처만이 유일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내 앞에, 나 못지않게 아픈 이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도 내가 가진 상처와는 가장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했던, 항상 멀쩡한 얼굴들을 하고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 걸로 보여 내 질투와 부러움을 샀던 내 곁의 학우들이.

03.

그런 풍경이 계속되는 사이 수업의 분위기도 미묘하게 바뀌고 있었다. 한 학생의 이야기가 끝나면 교수님께서는 어김없이 다른 학생들에게 코멘트의 기회를 주셨지만, 왠지 모를 어색함과 불편함에 그 시간은 주로 교수님의 코멘트로 채워지곤 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눈물이 많아지고 자신들을 드러내 보이는 깊이가 깊어질수록, 수강생들 사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듯 했다. 따지고 보면 모두 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서로가 서로에게 던지는 격려와 위로의 코멘트들이 점점 수업시간을 채워갔다. 개인들이 털어놓는 이야기의 깊이도 더욱 깊어져서, 1시간 15분의 시간 동안 3, 4명이 이야기하기도 빠듯한 날들이 이어졌다.

사실 나는 그 수업을 듣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개인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물론 서로의 상처를 나누고 위로를 듣는다고 해서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현실의 고민에 시달리다가도 이 수업의 강의실에만 들어오면, 그리고 동그랗게 모여진 책상에 앉기만 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었다. 20명의 학생들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군인 교수님이 함께 동그랗게 모여 앉아 있는 곳.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나의 상처와 치부와 유약함에 대해 경청해주고 승인해주고 격려해주는 곳. 나에게 ‘생애과정 수업’은 피난처, 아지트와 다름없었다. 그리고 강의가 종강된 후 마련된 MT에 오기를 희망했던 수강생들과 실제로 MT에 참석한 수강생들의 열의를 고려해보았을 때, “가장 특별했던 만남은?”이라는 다른 학교 학생의 질문에 그 사람은 알지도 못할 ‘생애과정 수업’을 처음부터 설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한 수강생의 열의를 고려해보았을 때, 이 수업을 피난처 내지는 아지트로 여긴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04.

그렇다면 이런 수업이 가능했던 이유, 그리고 학생들이 이 수업을 그토록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다면, 이런 수업이 가능했던 이유에는 “그러한 수업 문화를 만들어낸 수강생들의 참여.”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수업에 대한 소문을 듣고 수업을 청강한 한 학생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듣기만 해도 저절로 무장해제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한편 한 수강생은 “다들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솔직하게 얘기해주셔서,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빚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모든 수강생들은 서로의 상처와 눈물에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코멘트에 서로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서로의 상처가 약점이 되지 않는 분위기를 형성해낼 수 있었고, 동지애에 가까운 유대감 역시 창출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이 수업을 그리도 특별하게 여겼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을 나는 수업 종강 후 학교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대표적인 힐링 서적인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훑으며, 그 책의 어조나 소제목들이 ‘생애과정 수업’에서 수강생들 서로가 서로에게 코멘트한 내용과 굳이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긍정과 위로와 격려의 제스쳐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책이 그다지 달갑지 않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책에 열광한 다수의 청춘들만큼이나, 또 다른 다수의 청춘들에게 비판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 책을 비롯한 대다수의 자기 계발서들로 상징되는 이 사회가, “청춘이면 아픈 게 당연한 거야.”처럼 우리의 상처를 획일화했기 때문이 아닐까. 형형색색 다른 우리들의 상처에 귀를 기울이려는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그저 우리의 상처를 모든 사람들이 다 겪는 것으로 치부하며 나약함으로 몰고 갔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의 상처는 남들이 다 겪는 획일적인 것이 되고, 상처를 드러내고 그 상처가 타자성이 아닌 감동이 되는 것은 유명인들이 ‘힐링 캠프’나 ‘무릎팍 도사’에 나왔을 때만 가능한 것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의 상처를 마음껏 드러내고 그 상처가 어떤 이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었던 장소인 “생애과정의 인류학” 수업이 우리에게 특별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을까. 이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백이면 백 다 부러워하는 같은 학교 학생들과 다른 학교 친구들을 떠올리며, 모든 학교에서 이러한 수업이 개설되기를. 더 나아가서, 우리 사회가 서로의 상처에 대해 경청과 승인과 격려의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이 수업을 개설해주신 정진웅 교수님의 말씀을 빌려 글을 마친다.

“자신을 타자로 드러내기 어려운 시대에, 각 개인들이 드러낸 타자성들이 ‘약점’이나 ‘뒷담화 거리’가 아니라 서로의 성장을 위한 ‘공적인 생각거리’가 될 수 있도록 경청과 승인과 격려의 문화를 만들어준 여러분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려 나의 최대한의 존경을 표합니다. 또 선생으로서 그런 감동적인 분투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모두에게 건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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