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아직 끝나지 않은 밀양 송전탑

- 성현

처음 밀양 송전탑 투쟁 숙소에 들어갔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당시 날이 추워서였기도 했지만 그 공간 안은, 내복을 입은 나에게도 한기가 강하게 느껴질 정도로 추웠기 때문이다. 그런 추운 공간 안에서 몇 개의 히터에 의지한 채 주무시고 계시는 세 분의 할아버님들이 눈에 보였다. 아무런 사전 연락 없이 갑자기 찾아온 우리를 보며 짐짓 놀라셨지만, 이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한기때문인지 몰라도 스티로폼 장판에는 습기가 맺혀있었고, 이런 공간에서 70이 넘은 어르신 분들 세 분이서 투쟁을 하고 계신다는 게 놀라우면서 한편으로 서글펐다. 이제 햇수로 9년차에 접어들은 밀양 송전탑 투쟁. 도대체 무엇이 이런 열약한 환경 속에서 어르신들을 투쟁하게 만든 것일까.

밀양에서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송전탑 반대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초에는 76만 5000볼트 고압 송전탑 건설을 막으려던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아주 한심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르신이 돌아가신 건 안 됐지만, 전기 안 쓰고 살 수 있나?’ 그러나 질문이 잘못 되었다. 고압 송전탑 반대와 전기를 안 쓰는 문제는 다르다.

주민들이 765kV 고압 송전탑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자파의 위험 때문이다. 고압 송전탑의 전자파 위험은 충남 청양군 화성 지역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이곳은 76만 5000볼트가 아닌 34만 5000볼트가 지나가는 곳인데도 마을 어른들이 몇 년 사이 암으로 죽어가고, 경기도 양주시 장흥 지역의 경우도 변전소와 송전탑으로 인해 주민들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이런 곳에서 잠자고 밥 먹고 농사지으며 살아야 한다. 당신이라면 이런 곳에서 살 수 있겠는가? 전자레인지에서 3분 동안 발생하는 전자파도 무서워하는 현실인데, 이런 곳에서 하루 24시간 × 365일 × 10년, 20년, 30년 동안 살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가 왜 생겨났는가. 이제 제대로 질문을 했다. 밀양에만 69개의 철탑이 들어서게 되는 765kV 송전선로 공사는 핵발전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핵발전소는 21기가 가동 중이다. 세계 5위다. 거기다 5기가 건설 중에 있고, 6기를 더 세울 계획이다. 그 중 고리에 1~4호기, 신고리 1호기가 가동 중이고, 신고리 2, 3, 4호기가 건설 중에 있고 5, 6호기는 계획 중이다. 이 지역에 핵발전소가 집중되면서 적어도 5, 6호기가 들어서면 새로운 송전선로가 필요해진다. 앞으로 건설 계획인 신고리 5, 6호기 핵발전소 때문에 이 문제가 불거졌다. 거꾸로 말하면 신고리 5, 6호기를 건설하지 않으면 765kV 송전선로에 따른 고압 송전탑 문제는 해결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숨긴 채 한전 측에서는 갈등의 원인을 보상금액이 확실하게 합의되지 않기 때문이라고만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의 생존권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어떻게든 합의만을 하려고 노력중이다. 하지만 그때의 합의는 결국 기만일 뿐이다. 근데 우리가 인터뷰한 어르신들도 명확히 밝혔듯이 이 투쟁은 무엇보다 생존권의 유지를 위해서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한전 측에서는 주민들의 생존권에 대한 염려는 전혀 하지 않으며 어떻게든 합의를 하려고 온갖 기만적인 술수들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 또 일어난 거짓합의서 사건1이 바로 한전의 본 얼굴이다. 우리는 마을 공동화을 유발하고 생존권을 박살내는 한전의 정책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이 인터뷰를 기획하게 되었다. 다음부터는 밀양 송전탑 투쟁 서울본부에서 대화한 내용들이다.

Q.요새 투쟁의 동향은 어떠한가.
– 밀양댐 바로 옆에 동화점 마을. 거기서는 산 위에다가 벽돌집으로 만든 찜질방을 지어놓고 24시간 교대로 서가면서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 투쟁 중이다. 헬기장도 동화점 마을 옆에 있는데, 헬기장에도 농성장을 지어놓고 투쟁하고 있다. 한전은 자동차로 올 수 없는 곳에 자재들을 공수하기 위해 헬기를 많이 이용하는데,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헬기장에도 농성장을 지었다. 한전은 주민들이 제시한 대안을 여전히 무시한 채 자신들이 세운 계획만을 진행하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송전탑이 설치될 경우 전방 2km 안의 마을들은 아직도 합의를 안 한 상태이다. 그 바깥의 몇몇 마을들은 합의를 했지만 그 안의 마을들은 합의를 안 했다. 협의는 아직 하고 있는 상태이다. 반대를 하는 마을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지키고 있다.

Q.지중화되면 괜찮은 건가?
– 지중화란 도로 밑으로 전기선을 설치하는 것이다. 부산에는 지중화하고 밀양에는 지중화 못해준다는 것은 무슨 경우냐. 확실히 지중화를 하면 돈이 많이 든다. 근데 국민의 건강권이 정말 중요한 건데, 왜 부산만 해주고 밀양은 안 해주냐. 송전탑을 설치한 다른 지역들의 건강권 침해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지역의 어른들을 만나보니까 그분들도 말씀하시길, 어떻게든 송전탑 설치를 막아야한다고 말하셨다. 게다가 송전탑 설치 이후 마을에 사람들이 매우 많이 빠져서 완전히 공동화되었다고 말셨다. 건강하셨던 분들도 갑자기 암걸리고 난리도 아니라고 한다. 무엇보다 전자파 피해는 전세계적으로 확실하게 조사된 바가 없어서 매우 위험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건강권 침해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냥 몇 푼 던져주려는 한전의 행태에 기가찬다.

Q. 김치우 어르신의 죽음의 이유
– 김치우 어르신의 죽음은 매우 서글픈 일이다. 처음에 경찰은 김치우 어르신의 죽음이 분신이 아니고 불씨가 옷에 붙어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데모를 했고, 그래서 김치우 어르신의 사인이 확실히 밝혀지게 되었다. 게다가 김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신 이유를 보면 더욱 가관이다. 한전은 송전탑의 전기선 설치의 궤도를 이상하게 했다. 직선으로 선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꾸불꾸불 돌아서 설치한 것이다. 분명 직선으로 설치하면 돈도 훨씬 절약되고 시간도 훨씬 덜 걸리는데 왜 한전은 궤도를 그렇게 정한 것일까. 만약 직선으로 전기선을 설치하게 되면 당시 밀양 시장의 사촌의 땅 위로 전기선이 지나가게 되었다, 그것 때문에 한전측에서는 전기선 설치의 궤도를 그렇게 잡았던 것이다. 직선으로 설치된다면 전혀 피해 없었을 김치우 어르신의 땅은 한전과 밀양시장 간의 농간에 의해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게 되었고, 분에 못이긴 김치우 어르신은 분신자살을 했다. 정말 너무나 서글픈 일이다.

Q. 요즘 고소 고발의 동향은?
– 한전에서는 다 취하했는데, 하청업체들은 아직 고소*고발을 취하하지 않았다. 하청업체 측에서는 같이 취하하자고 했지만 우리들 입장에서 보면 어이가 없다. 우리는 정당한 우리의 생존권을 위해서 투쟁을 한 것인데, 하청업체들은 엄청난 폭력과 성폭행을 저질렀다. 물론 합의를 봐서 고소를 취하하면 벌금도 안 물고 좋겠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지 않는가. 우리에게 9년 동안 엄청난 폭행을 가했던 하청업체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고, 정의를 확실히 우리의 편이다. 돈 때문에 진실과 정의를 포기할 수 없다.

Q. 대선 후에도 많이 도와주는 이들이 있는가.
– 최근에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120명이 서명해서 도와줬다. 조경제 의원을 대표로 해서.

Q. 하루 일과가 어떠한지?
– 3일에 한 번씩 교대하고 있다. 밤에도 여기서 잘 수는 없으므로 9시까지 여기를 지키다가 근처 여관에 가서 잠을 잔다. 8시 1시 6시에 한전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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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하는 마을 어르신들은 그냥 대책없이 한전 측의 입장에 대해 부정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존권을 유지하면서 전기선 설치를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연구하셨다. 다음이 바로 마을 어르신들이 다양한 학술단체들에게 자문하여 얻어낸 대안들이다.

대안1. 기존 345kV 용량 증대 + 지중화 345kv 2route
* 2012년 10월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한국전력공사 국정감사 중, “765kv 밀양구간을 345kv 지중화로 할 경우 기술적으로 가능하냐”(진보정의당 김제남 의원)는 질의에 당시 한전 사장이었던 김중겸 씨는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국내 최장 지중화공사인 남부산-북부산 345kv 송전선로의 경우 대도심을 관통하는 14년간의 공사로, 공사비용이 1km당 127억원, 총합 2,788억원이다. 한전이 밀양구간 지중화 공사 비용으로 책정한 2조7천억원은 터무니 없는 액수이다.

대안2. 신양산-동부산 345kv선론, 신울산-신온산 345kv 선론
* 신고리변전소에서 신온산변전소까지는 10km, 신양산변전소까지는 약 20km에 불과. 신고리변전소에서 신양산, 신온산간 노선을 신설하면 현재 건설하고 있는 송전선로와 연결할 수 있어 증설되는 신고리핵발전소의 발전량을 충분히 송전할 수 있다.
* 특히, 신양산 노선과 신온산 노선은 전력수요가 가장 많은 부산지역과 울산지역으로 전력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전력공급지와 수요지를 연결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대안3. 함양 ~ 울산간 고속도로를 이용한 지중화
* 현재 건설 예정인 함양 – 울산간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현재 거의 완공중인 북경남변전소까지 지중화한다면, 사업비는 물론 지역갈등도 상당히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송전선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지난해 3월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기억할 것이다. 최근 소식에 따르면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 1~3호기에서 나오는 세슘 등 방사성 물질 방출량이 최근 들어 증가했다고 한다. 사고의 여파는 지금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 이어질 것이다. 1986년 4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유럽 전체에 직접적인 피해를 미쳤다. 그런데 핵발전소 사고는 사후 대책이 없다. 그냥 피해만 남는다. 전문가들은 체르노빌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표현한다. 2022년까지 17기의 핵발전소를 모두 폐기하기로 한 독일은 올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20%에 이르러 핵발전을 웃돌 것이라고 한다. 먼 미래를 내다봤을 때, 독일이 앞서가는 나라라는 건 세 살 아이도 알 수 있다.

송전탑을 반대하며 싸우는 70~80 먹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전기를 거의 안 쓴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욕실에서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지도 않고, 온풍기나 에어컨을 틀어대지도 않는다. 매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것도 아니고, 비데를 사용하지도 않고, 김치냉장고를 24시간 돌리지도 않는다. 이렇게 전기를 쓰는 이들은 주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곳 어른들은 겨우 쓴다고 해봐야 전기장판 정도이다. 그런데 전자파 피해와 생존권의 위협을 온통 이들만이 감수해야 된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리고 밀양의 어르신들도 대책 없이 부정만 한다는 이미지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위에 언급한 대안들처럼 지중화를 통한 전기선 설치를 제시하셨지만, 사실 핵발전 정책만 폐기한다면 이런 사태가 9년동안이나 일어날 필요가 없었다. 문제의 본질은 핵발전이다. 핵발전 정책의 폐기만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핵발전 정책의 폐기만이 밀양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다.

‘전기 안 쓰고 살 수 있나?’라는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왜 위험한 핵발전이어야 하나?’ 지금 정부는 핵발전을 맹신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제 회의장에서 ‘원자력 이용은 불가피하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원자력을 포기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참고로 인터넷 뉴스 검색에서 고리 원전 1호기를 찾아보라. 최근까지 사고로 얼룩져 있다. 지금 세계의 흐름은 핵발전을 줄이고 대안에너지로 가고 있다. 이 정도는 상식이다. 송전탑을 반대하는 어르신들의 생각이 이 정도는 된다.

핵발전의 문제는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에 직결된다. 핵발전 맹신에서 벗어나도록 우리가 소리쳐야 한다. 제 몸을 불사르며 외친 이치우 어르신의 뜨거운 마음에 닿아 보자.

  1. 2월 21일 한겨레 신문 사회면:
    한국전력과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는 지난 18일 조경태 국회의원(민주통합당)의 주선으로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회의실에서 만나 송전탑 건설 문제의 해결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양쪽은 다음달 4일 또는 6일 다시 만나 재논의키로 하고, 다음 대화 때까지 △대화 창구 일원화 △공사 중단 △고소·고발 취하 노력 등 3개 사항을 합의했다.
    하지만 이틀 뒤인 지난 20일 한국전력 밀양 송전선로건설 특별대책본부는 보도자료를 내어 “단장·산외·상동·부북·청도면 등 밀양시 5개면 주민대표단과 ‘밀양지역 765㎸ 송전선로 주변지역 지원사업 협약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국회에서 양쪽이 만나기 사흘 전인 지난 15일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협약서를 보면 “765㎸ 송전선로가 건설돼 운영되면 그 다음해부터 운영을 끝낼 때까지 송전선로가 통과하는 주변마을에 해마다 24억원을 지원한다”고 돼 있다. 협약서에는 밀양시 5개면 주민 대표 10명이 서명했다.
    이에 대해 반대대책위는 22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보상을 미끼로 주민들을 분열시키려는 비열한 행위”라고 한전을 비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한전과 협약을 맺은 ‘주민대표’라는 사람들은 결코 주민들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며, 이들이 주민을 대표해 한전과 협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아는 주민도 없다”고 주장했다. []

응답 1개

  1. 엘까말하길

    기사 잘 보았습니다.
    밀양에 관심[만] 갖고 있는데,
    뭘 해야 도움이 될지 괜히 더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잘못 표기된 것이 있어 두 개만.
    + Q1 동화점 마을 -> 동화전 마을
    + Q3 김치우 어르신 -> 이치우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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