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13-농사 일지(其 2)-春來 不春來. – 봄나물, 냉이를 케며……

- 김융희

이곳은 아직도 겨울의 끝자락인데, 남쪽에는 매우 흡족하게 비도 내렸고, 벌써 봄의 기운이 완연하다고 한다. 지난해 11월에 내렸던 눈이 아직도 녹지를 않아 지금도 응달엔 그데로이다. 눈을 녹일 만큼 아직 기온이 오르지 않았다. 꼭 기온 탓만은 아닌 것이다. 기온이 어지간히 상승해도 좀처럼 눈은 녹지를 않는다. 햇빛보다는 충분한 비가 내려야 응달의 눈이 녹을 것이다. 눈을 녹일 만큼 흡족한 비가 내려야 한다.

이곳 양지의 눈은 말끔히 녹았으나 아직도 땅은 꽁꽁 얼어있다. 햇살이 따뜻한 한낮에는 장포에 내려가 봄나물을 켓다. 겨우내 눈속에 갇혀 모진 혹한을 견덨던 봄나물들 몰골이 너무 애처로워 마음이 몹시도 짠하다. 물이 고인 낮은 곳의 나물 뿌리는 썩어 있고, 잎줄기들도 절반은 말라 죽어 있다. 햇빛에 노출됐더라면 붉은색을 띠었을 잎들이 푸른색 그데로였다. 햇빛을 더받기 위해 겨울 채소의 잎사귀는 붉은색으로 변한다.

대표적 봄나물 냉이는 벌써 늦가을에 나와서 자란다. 물론 봄에도 나서 자라지만, 대부분이 가을에 나와서 겨울을 보낸다. 나는 가을 냉이를 천기냉이라 부른다. 하늘의 절기는 땅의 절기보다 빠르기 때문에 빠른 하늘의 기운을 받아 자란 냉이란 뜻이다. 천기 냉이라야 향이 짙고 영양도 풍부한 본래의 냉이 맛을 즐길 수 있다. 봄의 전령사로 추위에 웅크려 위축된 우리 몸과 입맛에 고마운 것이 봄나물이며, 봄나물의 으뜸이 냉이인 것이다.

천기 냉이 중에는 조급한 성질을 참지 못해 벌써 가을에 꽃대를 새우고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봄에 하얀 꽃을 피워 자태를 뽐내며 봄을 알린다. 맨 먼저 맛과 향으로 식탁에 올라 입맛을 돋워 주는 고마움도 있지만, 특히 내가 냉이를 좋와하는 이유는 분수를 알아 자기를 관리하는 냉이의 능력 때문이다. 냉이는 잡초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텅빈 장포를 체워 먹거리를 제공하고선 농사철이면 미리 자기 자리를 비워줌으로 농사와 농부의 일손을 도운 것이다. 냉이는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며, 병충해에도 걱정 없다. 특히 농약에는 매우 약해 농약을 하면 없어진다. 이처럼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청정 먹거리가 냉이인 것이다.

우리의 몸에 가장 알맞은 웰빙 식품은 순수 토종 작물이다. 우리 품종인 신토불이 토종의 채소나 농작물로 냉이가 대표적이다. 냉이처럼, 자연 그데로 스스로 나고 자라며 작물에서 제외된 것은 아직 그런데로 우리 곁에 있어 다행이다. 몸에 좋고 가꾸기도 쉬운 우리의 농산물이 점점 자취없이 사라져 안타깝다. 정말 아쉬운 것은 토종 작물들 거의 대부분이, 종자 개량으로 변해 버렸거나, 외국의 상표 등록이 되어 있고, 아니면 이미 우리 곁을 떠나 존재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곁에만 가도 쓴 내음이 진동하며 꺾으면 하얀 진액이 치솟는 옛날 상추를 기르고 싶지만 종자를 구할 수가 없다. 마을 긴 고삿길, 담장이나 울타리 밑에 아줌마 엉덩이처럼 퍼져 싱싱하게 자란 자색의 갓을 길러 보고 싶다. 곰보 배추도 심어 걷우고 싶지만, 나같은 서툰 농사꾼은 종자를 구할 방법이 없다. 맷돌처럼 또아리를 튼 누렇게 탐스런 호박을 기르고 싶어 비슷한 종자를 구해서 심어보지만 익기도 전에 썩거나 겨우 키워 수확을 했어도 금방 썩어 버렸다. 살펴보면 콩알처럼 튼실한 구더기들이 득실거렸다.

너무 무성하게 빨리 변해서 “쑥밭이 된다”는 말이 생겼던 그 쑥을 옮겨 쑥밭을 만들어 보지만 잘 안되고 있다. 언젠가 쑥의 고장에서 쑥에 대한 건강 교육을 받았을 때였다. 그 곳의 쑥은 유기농으로 재배해서…란 말을 들었다. 그때 바로 그 곁에서 쑥밭에 화학 비료를 뿌리는 것을 보았던 당혹감을 지금도 기억한다. 음식물로 인한 현대인들의 건강에 문제가 심각하다. 참으로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새싹이 돋는 발생지기(發生之氣)의 계절인 봄철이다. 생기(生氣)를 불어 넣어줄 봄나물인, 내 귀한 먹거리 냉이와 봄나물을 캔다. 새롭게 돋아나는 생명의 싹을 먹어 자연의 기운을 취득함으로 그 기운이 우리 몸의 생기를 키울 것이다. 봄이면 상식으로 즐기는 봄나물들이, 냉이를 제외하면 다른 것들은 아직 빠르다. 냉이도 꽁꽁 언 땅에 깊숙이 박힌 뿌리가 잘 뽑히질 않는다. 그러나 힘들고 어렵게 기르고 수확해야 한다. 그것이 진실하다.

봄나물은 천기와 지기를 받아 자연의 기운을 내몸 안에 순환시킴으로 대사를 활성화시킨다. 쑥국이 먹고 싶은데, 아직 순이 트질 않았다. 민들레도, 씀바귀, 고들빼기들도 이제야 싹의 기운이 돋고 있다. 달래도 아직이다. 혹한에 시달려 너무 안되 보이는 냉이만 벌써 며칠 째케고 있다. 그래서 꽤 여러 곳의 가까운 이들에게 보내긴 했지만, 냉이도 벌써 꽃대를 새우고 있다. 어서 봄이 활짝 다가와 여러 나물들이 풍성했으면 싶다. 생각만 해도 입맛이 돈다. 말없이 봄의 기운이 온몸에 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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