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가 특집

너의 목소리가 들려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고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 해적왕

작년 12월 말, 장자 책을 막 덮은 내게 누군가 “장자를 읽어보니 어때?”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딱 네 글자면 충분했다.
“위험했어.”
그리고 그로부터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그때 그 대답을 떠올리며 나는 쓰게 헛웃음을 지었다. 위험했어, 라고 말하는 3개월 전의 그 녀석 이마에 땅콩을 먹이고 싶다. 더 이상 난 상관없다는 식의 과거형. 위험했어는 무슨 놈의 위험했어야. 넌 위험했고, 위험하고, 앞으로도 쭉ㅡ 계속 위험할거야.

나는 3개월 간 장자를 읽는 동안에도 장자는 위험하다고, 장자의 늪에 빠지면 안된다고 수도 없이 스스로를 추슬렀었다. 장자의 늪은 무기력했고 회의적이었으며 우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장자를 경계했고, 되도록이면 장자의 말을 흘려듣기 위해서 노력했다. 나이 열여덟 이팔청춘에 염세주의자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아직 연애 한 번 못해봤는데! 장자의 늪에 빠지기엔 앞으로 남은 나의 창창한 세월이 너무 가여웠다.
장자는 어지러운 세상을 살았지만 고통받는 백성을 구제하고자 발 벗고 나서거나,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목숨을 내걸지도 않았다. 오히려 장자는 세상을 바꾸겠다며 박차고 일어난 이들을 향해 ‘네 한 몸이나 잘 돌보라’ 며 혀를 끌끌 찬다. 그렇다. 장자는 불타는 석양에 마주 선 채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사노라면’을 목 터져라 부르는 사람의 뒤통수를 날리며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미래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고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미래를 앞에 두고 어지러운 세상에 맞서 장자가 취했던 자세는 도전이나 변화가 아니었다. 장자는 오히려 세상에 나서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자기 몸을 온전히 지키는 것에 초점을 두었는데, 이러한 장자의 사고는 무척 생경하고도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희생과 헌신’을 아름답고 숭고한 가치로 배워왔다. 지금보다 키가 몇 뼘은 더 작았던 시절, 부모님께서 사다 주셨던 위인전 전집을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며 몇 번이나 다짐했던가. 나도 타인을 위해 살아야지. 나라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지만 장자는 말한다. 그들은 영웅이 아니라 한낱 어리석은 자들에 불과하며, 그들의 숭고한 죽음 또한 사실은 별 볼 일 없는 죽음과 다를 바가 없다고.
장자가 누누이 말하는 ‘자기 보전’의 그 너머에서는 장자가 가진 변화에 대한 회의와 무기력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처음에 장자를 마주하는 것은 꽤 불편했다. 장자에게서 희망이라는 것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불편함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무렵, 장자를 읽을 때마다 들려오는 ‘안 될 거야 아마.’ 하는 장자의 목소리에 나는 언제부턴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넌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왜! 왜! 왜!
그렇게 나는 장자의 ‘삐딱함’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부 3>
… 어떤 사람이 자기 그림자가 두렵고 자기 발자국이 싫어서 이것들을 떠나 달아나려 하였는데, 발을 더욱 자주 놀릴수록 발자국은 더욱 많아졌고, 빨리 뛰면 뛸수록 그림자는 그의 몸을 떠나지 않았다 합니다. 그래도 그 자신은 아직도 더디게 뛰는 때문이라 생각하고 쉬지 않고 빨리 뛰다가 결국 힘이 떨어져 죽어 버렸다 합니다. 그는 그늘 속에서 쉬면 그림자가 없어지고, 고요히 있으면 발자국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사람. 그 벗어날 수 없는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 치다 죽어버린 사람. 그리고 장자. 내가 들여다보았던 장자의 삐딱함 끝에는 그가 딛고 선 혼돈이 있었다. 미래는 기대할 것이 없다던 장자. 그는 세상을 혼돈으로 바라보았다.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그림자처럼.
장자는 깨달은 것이다. 발밑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장자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애쓰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그림자를 떨쳐내려 달음박질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기에. 그 결말은 결국 발밑의 그림자를 달고서 지쳐 쓰러진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 테니까.
이처럼 장자는 떨쳐낼 수 없는 발밑의 그림자처럼 이 세상을 바꿀 수도, 변하지도 않는 혼돈의 세계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발밑의 그림자를 떨쳐내는 것이 아닌 ‘잊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장자는 그늘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림자를 가만히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그늘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는 자신의 그림자에게서 벗어났다. 그렇다. 결국, 장자는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더 깊고 넓은 어둠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밑의 그림자에게서 벗어난 것이다.
마치 꺼진 재와도 같이 시큰둥한, 한결같이 자기 보전만을 말하던 장자. 하지만 분명 그런 그 또한 한 때는 어둠을 밝히는 한 떨기 불꽃을 품고 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무수한 희생과 헌신에도 변함없는 현실에 결국 그 불꽃은 점점 사그라들어 마침내 한 줌의 꺼진 재가 되었을 터다.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방식을 택한 장자. 나는 그런 장자를 보며 장자의 말마따나 무척이나 어리석게도, 발밑의 그림자를 떼어낼 수 있다고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장자에게 이별을 고했다. 나는 발밑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쉼없이 뛸거야. 너와 내가 갈 길은 달라. 만나서 즐거웠어. 잘 가라.

나는 장자와 쿨하게 헤어지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3개월 동안의 만남에 이별을 고한 이후로도 장자는 끈질기게 내 앞에 나타났다. 우린 꽤나 질긴 인연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물론 새벽에 ‘자니…?’라는 문자가 오는 건 아니었지만 그는 자주 내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밥을 먹을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드문드문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혼란스러운 이 세상을 꿰뚫는 강렬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쯤되니 슬그머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난 아직도 장자한테 휘둘리고 있다.
그래. 너 목소리 멋지다. 그래도 일단은 쉽게 꺼지지 않을 우리의 불꽃을 위해서, 잿무더기 속에 남아있을 나의 마지막 불씨 한 점을 위해서라도 뜀박질 좀 할게. 넌 늙었지만 난 아직 젊잖아. 그러니 청춘의 치기라고 생각하고 좀 봐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늘에 내 자리 하나 마련해주라.

응답 1개

  1. 슈트말하길

    제가 처음 접한 장자에 관한 글이네요. 별꼴카페갔다가 문집을 보고 가져와 읽었는데, 재밌게 본 글들 중 두개가 실려 반가워 글을 남깁니다. 해적왕님의 글을 읽으며 더넓은 그늘로 들어가기까지 숱한 뜀박질을 했을 장자가 그려졌습니다. 해적왕님은 웃긴데 슬픈글을 잘 쓰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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