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가 특집

안녕 못해요

- 채 밝음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한 18살 학생이에요. 저는 아빠와 함께 단 둘이 살아요. (엄마는 1년 전에 돌아가셨고요.) 평범한 저에게도 특별한 걸 꼽자면 바로 아빠에요. 저희 아빠의 이름은 장주 [莊周], 철학자세요. 아빠와 함께 공부하는 제자들도 셀 수 없이 많아요. 저는 철학도 잘 모르고 뭣보다 아빠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알지도 못해요. 그런데 아빠의 제자들이 아빠를 존경하는 걸 보면 뭔가 있긴 한가 봐요.
 
또 가끔씩 다른 철학자나 정치인들이 아빠를 찾아 와요. 조언을 얻으러 오기도 하고 가끔 논쟁도 벌여요. 나라에서도 아빠를 섭외하려고 엄청 애를 쓰지만 아빤 끄떡 없어요. 직책도 인위적인 거라 본성을 해친다나 뭐라나. 어쨌든 제자들과 공부도 하고 글도 쓰지만 좋게 말해 철학자이지, 한량이나 다름없어요.
 
아빠의 지혜는 둘째 치고 가장으로써의 자질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어요. 자기 사상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빤 우리 집의 가장이잖아요. 아무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으니 엄마만 고생하다 가셨죠. 게다가 자유, 자유 하면서 여기저길 그렇게 쏘다니는데 걱정이 안되겠어요? 아빠의 이런 점들 때문에 저는 하루하루가 피곤해요.
 
한번은 아빠의 무책임한 면들에 너무 화가 나서 바락 바락 대들었어요. 그랬더니 아빠가 뜬금없이 자기가 쓴 동화를 읊는 거예요.
 
“ 야, 북극 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있어. 곤의 길이는 몇 천리가 넘어. 감이 안오지? 오늘로 치면 군산에서 서울까지 200 킬로미터가 좀 넘거든? 그 거리의 몇 배 이상이야. 엄청나지. 근데 그게 변해서 새가 되면 그걸 붕(鵬)이라고 해. 그 붕의 등은 길어도 너~무 길어서 길이를 알 수가 없어. 붕이 날기 시작하면 그 날개는 하늘에 뜬 구름 같아. 얘는 태풍이 바다 위에 불면 그 때 9만 리나 높이 올라서 남극의 바다로 이동하지. 남극 바다가 뭔지 알아? 천지(天池)야.”
“ 갑자기 왜 그 이야길 하세요? ”
“ 끝까지 들어봐. 매미와 쪼그만 새가 그걸 보고 비웃었어. ‘우린 펄쩍 날아 나무 가지에 올라가. 어쩔 땐 땅에 떨어질 수도 있어. 뭣 하러 그렇게 높이 올라서 남극까지 가?’ 라고. 그 매미가 우리 딸이었네.”
“ …뭐라고요? ”
“ 매미나 쪼그만 새는 붕새가 나는 것에 대한 의미를 깨닫지 못해. 아마 그 의미를 알려주는 게 불가능하지만 알려줘도 구체적으로 깨닫진 못 하지. 네가 지금 그래. 넌 내 사상이나 하는 행동의 의미를 깨닫지 못해. 아마 내 그림자 끝자락이라도 쫓아와서 이해하는 수준이 되려면 곤(鯤)은 돼야 할 걸. 매미가 곤이 된다라…. ”
 
아빤 자기 할 말만 끝내고 또 어디론가 나가버렸어요. 전 그냥 멍 때리고 있었고요. 아빠의 풀이는 알 듯 말 듯 해요. 게다가 찝찝하기까지 해요. 내가 매미라니!
 
이 괴짜 아빠와 저의 갈등은 이걸로 끝나지 않아요. 근데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뭔가 찝찝함과 불편함이 팍팍 묻어나요.
 
그로부터 며칠 후의 일이에요. 사건은 학교에서 터졌죠. 몇몇 애들이 자폐아를 괴롭히는 거에요. 온갖 욕설을 하면서 툭툭 치기도 했고요. 교실 뒷문에서 거울너머로 지켜보다가 생각했죠. ‘정의를 꿈꾸는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나서는 것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하고요. 그래서 자폐아를 괴롭히는 애들한테 ‘ 하지 마! 얘가 너네 장난감이냐?’ 하고 한마디 던졌어요. 그땐 바보같이 말만 하면 얌전히 말 들을 줄 알았죠. 돌아온 반응은 ‘넌 갑자기 왜 끼어드냐’ , ‘우리가 만만하냐’, ‘씨x 꺼져’ 등등 아주 폭발적 이더라구요. 뭐 어쨌든 운이 좋아 쉬는 시간이 돼서 각자 자기 교실로 돌아갔어요.
 
다행이다 싶어서 저도 제자리로 돌아갔어요. 근데 그 애들이 했던 말이 자꾸 귀에서 울리는 거에요. 정의실현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는 뿌듯함, 자폐아를 구해냈다는 안도감 같은건 없었어요. 괜히 나섰나 하는 후회, 나중에 나한테 해코지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어요.
 
집에 돌아오니 왠 일로 아빠가 계시는 거예요. 괜히 울컥해서 울어버렸어요. 아빤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전 혼자 주절주절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어요. 보통 아빠들은 자식이 이런 일을 겪으면 네 행동이 옳았다고 다독여주거나 위로해주지 않나요? 그런데 우리 아빠 하시는 말씀이,
 
“ 사서 고생 했네, 어이구 ~”
“ 뭐라고요? ”
“ 넌 정의니 뭐니 엄청난 일을 한 것 같지? 그 일을 위해 네가 희생해서 결국 얻은 게 뭐야? 너 지금 걔네가 한 말들 때문에 신경 쓰이고 속상하지? 넌 그 일이 자꾸 신경 쓰이고 마음이 복잡하잖아?”
“ 그래서요? 아빤 도대체 저한테 무슨 말씀 하시려는 거예요? ”
 
제가 흥분해서 큰 목소리로 따져들자 아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씀하셨어요.
 
“네가 그토록 지키려는 그 가치가 대체 뭔데? 그게 진짜 네 몸과 정신을 손상시키면서까지 할 값어치가 있긴 한 거야? 너 하나 간수도 못하는 주제에 가치를 지키겠다는 건 모순이지 뭐야!”
 
여러분이 봐도 웃기죠? 어떻게 아빠란 사람이, 한때 공무원이었던 사람이, 철학자란 사람이! 딸에게 한다는 소리가 어떻게 이럴 수 있죠? 남의 가치관을 들쑤시는 것도 모자라 가치를 위해 행하는 것을 하찮다고 말하다뇨. 여성권이나 민주주의, 우리가 지금은 아무 의식 없이 편하게 누리는 것들도 사실은 수많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요. 아빠 말은 어떻게 보면 정당한 권리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헛고생했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 없어요.
 
한번은 아빠를 이해해보려고 아빠에게 물려받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봤어요. 아빠도 나처럼 어렸을 때 뭔가를 위해 치고 박고 싸우다가 크게 다치거나 소중한 것을 잃었나? 그래서 저런 말을 하는 건가? 아무튼 아빠의 사상은 참 아이러니해요.
 
정말로 아빠의 사상이 의심스러웠던 건 엄마의 장례식 때였어요. (동시에 아빠를 조금 인정하게 된 날이기도 하죠.) 엄만 온갖 집안일과 돈벌이에 저까지 챙겨야 하니 두 팔 두 발이 모자라셨을 거예요. 엄마 사진을 앞에 두고 정신없이 울고만 있었죠. 전 엄마가 죽었단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요. 게다가 난 이제 무엇에 의지해야 하나, 하는 막막함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아빤 저를 챙겨주거나 돈을 벌어올 것 같진 않았거든요.
 
막 싸돌아다니던 아빠가 제 전화를 받곤 엄마의 장례식에 달려왔어요. 전 이번 기회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꼈으면 싶었죠. 그런데 갑자기 숟가락을 들고 쟁반을 막 치면서 생전 처음 듣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하는 거예요! 한 가지 이상한 건, 아빠의 표정을 잘 보진 못했지만 웃는 것 같진 않았어요.
 
전 아빠가 미친 줄 알았어요. 아빠의 행동이 이해가 안가는 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정말 화가 나는 거예요. 이것도 아빠 나름의 뜻이 있는건가? 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야말로 혼란스러웠죠. 엄마를 조문하러 온 사람들도 있고 해서 말리고 싶었는데 아빠의 행동이 좀 무서웠어요. 그래서 아빠만 멍하니 쳐다보는데 다행히 아빠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아빠를 말렸어요.
 
“ 야, 너 미쳤어? 네가 마누라 죽었다고 울 사람 아니란 건 알겠는데, 이건 아니지! 어디 자식 있는 앞에서 말이야, 어? ”
“ 야 임마, 나도 사람인데 안 슬프겠냐? 그런데 생각해보란 말이여.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지도 않았어. 우린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써 존재하게 된 거지. 단지 무(無)에서 유(有)로 변한 것 뿐이야. 죽음도 마찬가지야. 또 다시 유(有)에서 무(無)로 변한 것 뿐이라고. 그리고 유(有) 의 관점에서 죽음이란 무(無)지만 무(無)의 관점에서 죽음은 새로운 탄생, 즉 유(有)란 말이지. 내 마누란 죽었지만 새로 태어난 겨. 그러니 그렇게 나사 빠진 채로 울고불고 할 일은 아니란 말이지!”
 
아빤 마지막 말을 할 때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외쳤어요. 순간 벙- 쪘어요. 아빠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전 엄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구요. 아빠 생각이 어찌됐든 엄만 죽고 없잖아요. 어찌 저찌 장례식을 끝냈지만 그 후로도 엄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게 실감이 안 났어요. 공부도 손에 안 잡히고 몇 달 동안 의욕 없이 멍 때렸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차츰 생각을 해봤죠. 죽음과 삶은 그냥 유무의 변화일 뿐이라는 것에 대해서.
‘ 내가 엄마를 볼 수 없고 대화 할 순 없지만 엄만 죽음이란 상태로 변화한 것 뿐이다. 엄만 사라진 게 아니라 다시 무(無)로 돌아간 거다. 그리고 이것이 엄마 뿐 만이 아니라 나, 아빠, 친구들.. 누구나 겪는 순환적인 변화다. ’
그렇게 생각하니 슬픔도 엄마에 대한 생각도 조금 정리가 되더라고요.

제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아빠와 저의 사이를 진단 받고 싶어서예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였죠. 제가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이해하지 않는 게 아니라고요. 제가 아무 이유 없이 아빠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소리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런 일을 겪을 당시엔 그저 멘붕이었는데 사연을 쓰다 보니 아빠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어요. 완전히 백퍼센트 아빠를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요.
 
생각해보니 같이 18년을 살았는데도 이 모양이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바로 해결 될 것 같지도 않고요. 또 저는 그동안 아빠의 사상 조차 한번 파고들려고 하지 않았으니 이런 사이가 당연한 걸지도 몰라요. 알아들을 수 없는 동화들, 어찌 보면 불량해 보이는 아빠의 물음 … 전 그냥 겉만 봐놓고 어렵고 이상하다며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전 아빠가 쓴 동화책을 펼쳤어요. 그 순간 아빠의 단편 동화들이 우수수 나왔어요. 처음엔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자로다 식으로, 그림을 보듯 눈으로 보기만 했어요. 이건 제 의지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됐어요. 어렵고 낯설었으니까요. 글을 보니 더더욱 아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물론 지금도요.) 두 번째 읽어보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수준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렵고 낯설었어요.
 
아빠의 글을 따라가 보면 그곳에 아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헤매는 꼴이 되어버렸으니 그냥 때려치고 싶었어요. 그래도 꾸역꾸역 세 번째 읽어보니 대충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어림짐작으로 알겠지만 역시나 알쏭달쏭해요. 동화 속에서 아빠가 하려는 질문도 간신히 몇 가지 건져냈어요. 그런데도 이 웅장하고 황당한 이야기 속에 정말 질문 건더기가 이것 뿐일까, 싶은 마음에 손으로 더 저어보게 되요.
 
지금 막 아빠의 동화책을 덮었지만 제 머릿 속에는 온통 아빠의 글에 관한 생각 뿐이에요. 게다가 뭔가 뭉게뭉게 피어난 안개 속에서 아빠가 보일 듯 말 듯, 그래서 더 헤매고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 걸 괜히 질문해서 머리만 복잡하게 하고… 그야말로 멘붕의 연속이예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구요? 직접 읽어봐요, 어떤지!

응답 2개

  1. 벗나래말하길

    슬픈 여우 새끼 마냥 목을 길게 빼고 수유너머를 향해
    우엉우엉 울어대는 밝음아,
    이 글을 다시 보니 역시 성숙해진 너를 본다.
    너는 문화의 황무지, 군산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태생을 어쩌니.
    오히려 그래서 나는 믿는다 .
    수유너머 정기를 황무지에 뿌리 내릴거라고…

  2. 박카스말하길

    글을 보면 왠지 딸이 아빠보다 훌륭한 듯! 열공해서 아빠의 뒤통수를 가격해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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