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哭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 최한결

대구에서 학생들이 죽는다. 한두 명이 아니다. 그것은 교통사고에 의한 것도 아니고, 연쇄살인마에 의한 것도 아니다. 그냥 학생들 자신이 목숨을 끊는 것이다.

그건 학교폭력 때문이잖아, 하고 내 친구는 말했다. 자신이 꽤나 ‘그런 쪽’에 상식이 많은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하는 그 아이는 학교폭력 사례들과 어디선가 주워들은 소문들을 줄줄이 늘어놓고는 이게 다 인성교육의 부재 탓이라고 말하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더 교육하고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자신 있게 해결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 대구는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그것은 아마도 교육감이 열과 성을 다해 실시한 예방교육과 소통의 강화, 인성교육들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구의 아이들은 자살한다. 학교폭력은 원인이 아닌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사실 우리들은 정답을 알고 있다. 성적이 문제다. 최상위권에 들지 못했다고 야단치는 엄마와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므로 쉬지 않고 공부하라고 거듭 강조하는 선생님. 숨이 막힐 정도다. 입시를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12년을 달려야 하고, 그렇게 쉼 없이 달리느라 입시 외의 모든 것은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것을 외면해버리거나 ‘다 그렇다’며 무작정 참으라고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살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다른 기계들보다 우수한 기계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데. 꼭 자살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한탄이라도 하고, 한숨도 푹 쉬어보고, 아니면 울기라도 한 경험이 다들 한 번씩은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까지 목표의식과 경쟁동기로 가득 차있다고 생각했던 아이들도 그런 경험이 한 번씩은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 길로 친구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랑 성적은 비슷하지만 늦으면 새벽 3시까지 박카스를 들이키며 공부하는 아이다. 자기 꿈이 SKY라며 입만 열면 공부얘기를 쏟아내고 나는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사명감을 갖고 공부하는 아이. 전화를 걸고 나서 신호음이 3번쯤 가자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아 그냥. 너 지금 뭐하고 있었어?
수학 인강 듣고 있었는데?
아 그렇구나. 근데 있잖아.
응?
넌 공부 열심히 하잖아,
야, 이게 열심히 하는 거냐.
새벽까지 하고 자면서.
아 됐고. 왜 전화했어?
넌 공부하면서 힘들었던 적 없어?
있지. 왜 없겠냐. 지금도 진짜 죽겠다.
정말?
당연한 거 아냐? 안 힘든 게 이상하지.
너도 그런 게 있구나.
응. 나 손목에 칼 데려고 했던 적도 있는데?
정말?
응. 왜 얼마 전에 애들 죽는다고 막 난리였잖아. 성적 스트레스 때문에.
그렇지.
나 그거 듣고 그 사람들이랑 묘하게 동질감 같은걸 느꼈어. 그래서 나도 해볼까? 뭐 이런 느낌 있었고.
그랬구나.
아 몰라 나 인강 마저 들어야 됨. 일단 끊고 내일 얘기해.
응.

녹음된 전화통화를 다시 돌려봤다. 잡음 때문에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가며 대충 내용을 적었다. 힘들어 하고, 또 이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공부하는 친구가 불쌍했다. 하지만 나도 저렇게 해야겠지. 내가 어찌되던 난 공부만 잘하면 되는 거니까.

내가 예전에 공부를 좋아했던 때가 기억난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학교에선 생태수업이 1주일에 한 번씩 있었다. 근처 강을 관찰하거나 열매들을 채집해와 그걸 보고서로 남기고, 또 발표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틀린 답에 빗금을 긋지 않고 물음표를 남겼고 끝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다 같이 다시 설명을 들었다. 반에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 아이는 없었고 교과서를 읽을 때는 다 같이 읽었다. 선생님은 잘못한 아이가 있으면 따로 불러 꾸짖었고 잘 한 아이는 모두의 앞에서 칭찬했다. 그 때 난 공부가 좋았고, 다른 아이들도 그랬다.

난 지금 공부가 즐겁지 않다.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숙제에 매달리느라 다크서클이 짙고,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깨우지 않는다. 수업은 아이들의 참여 없이 선생님의 요점정리만으로 진행되며 체육시간엔 수행평가에만 대비한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아끼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변화는 없고 학생들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학교는 미쳐가고 아이들은 죽어나간다.

난 학교에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자살은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않는다. 이미 너무 흔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학생들은 공부에 지치고 학부모들은 아이들에 쏟아 붓는 돈과 시간에 지친다. 공부는 더 이상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규격화된, 좀 더 우수한 노동자를 길러내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지금 학교는 쓰레기다.

응답 5개

  1. 살마리말하길

    고등학교 다니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것이 정말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인지 내 삶에 정말로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
    대학교 1년 다니고 수능날이 다가와서 우연히 며칠 뒤 수능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찌나 충격이던지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계절보다도 무엇보다도 수능까지 며칠남은 날이라는 그것 하나로 하루하루를 살았는데. 이제 제 일상에서 그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던 거에요. 그리고 그렇게 힘들어하고 그렇게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다 잊고 있던 거에요. 물론 그때 그렇게 열심히 외웠던 내용들도 대부분 잊고요, 수능에 나온다고 그렇게 중요하다던 것들이 더 이상은 중요하지도 않고요.
    ‘스무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고려대를 그만두며 김예슬 양이 썼던 글 중에 이런 문장이 있죠. 많이 아팠습니다. 그 문장, 너무도 절절하게 이해했으니까요.
    글 쓰신 분이 부디,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그런 시간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 말하길

    꼭 이런 코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10대들의 진솔한, 하지만 끔찍한 이야기,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3. 엘로디말하길

    세상에 다른 공부가 있다는것도 여기 와서 알게 된것 같아요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것도 기쁘고요…
    사람들이 갈 수있는 길은 여러개가 있는데 항상 같은 길로 만 가는것 같아요.. 수유넘어에서 다른 길을 찾아 보아요 ㅎ___ㅎ

  4. 지안말하길

    입시란 게 사람을 참 이상하게 만들죠. 어떤 방식으로든 학교도 마찬가지구요. 저에겐 이미 과거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 공간은 많은 문제의식을 주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저도 위클리에 이런 글을 쓰고 싶었는데 십대별곡이 생겼다니!!! 애독자가 되겠습니다. 글 잘봤어요! 글쓴이님이 ‘현재’에서 색을 잃지 않고 잘 싸우길 바랍니다.

  5. shineelove말하길

    한결아~~~오랜만!!!
    여전히 너는 열씌미 하는구낭!!!^^
    여름까지 기다리기 너무 힘들 것 같아ㅠㅠ
    안부 전해주공…
    잘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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