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최전선

꽃샘추위

- 박진영

또다시 3월이 되었다. 교칙상 겨울코트를 입을 수 없는 달이지만 그렇다고 봄이 오진 않은 교실에 오십 명 남짓의 여중생들이 모여 있었다.

3월에는 난로를 켜주지 않았다. 얇고 때가 묻은 커튼을 활짝 걷어놓아도 햇살은커녕 바람만 더 들어 왔다. 그나마 몇 줄기 비치는 햇살에는 먼지만 방향 없이 춤추고 있었다. 봄방학 동안 신지 않은 실내화는 체온까지 앗아갈 만큼 차가웠다. 두 개씩 신은 검은 스타킹도 흰 블라우스 안에 껴입은 폴라티(Pola T)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눈치껏 책상에 꺼내놓은 연습장과 필통도 어색함 보다 추위에 시달리는 듯 했다.

아침 9시도 안 된 시간이지만 형광등을 켜놓은 교실은 그래도 환하지 않았다.

같은 반이 된 아이들은 어색함과 추위를 어떻게든 견뎌야 했다. 누구 하나 큰소리로 떠들진 못했지만 우리들은 쉴새 없이 조잘거렸다. 오래 앉아 있어도 데워질 줄 모르는 딱딱한 갈색 의자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두 세 줄 뒤에 앉은 친구와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두 손을 남색 교복 주머니에 푹 찔러 놓고 어깨를 움츠렸다 폈다 하며 3학년의 새 담임이 누구일지 맞춰보는 거였다.

애들은 이름을 들어본 선생이라면 누구나 “혹시 000 아냐?” 하며 짧은 상상을 했다. 그리곤 대상이 누구든 기겁을 하며 그 선생이 담임이 아니기를 바랬다.
운 좋게 친한 친구끼리 같은 반이 된 애들은 전쟁터에서 가족이라도 만난 듯 안도감을 느끼며 손을 잡았다. 서로를 지켜줄 단 한 사람을 찾은 양 비장함마저 얼굴에 감돌았다.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2학년 때 같은 반이던 친구 몇몇이 눈에 띤다.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몇 번 어울려 논 적이 있으니 올해 더 가까운 사이가 될 것 같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도 보인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여학교에서 남자 같은 성격이었던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공부도 열심히 하는 편이어서 선생님들도 내 장난이나 농담에 너그러이 웃어주었다.그래서 나는 3월이 제일 싫었다. 정든 친구, 선생님과 헤어지는 게 아쉽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다. 그래 봤자 복도에서 수없이 부딪힐 테지만 3월의 선득한 공기만큼이나 어색한 이 교실에서 나는 조금 서글퍼졌다.

드르륵. 드디어 교실문이 열렸다.
키가 180센티미터가 훌쩍 넘어 보이는 남자 선생님이 들어왔다. 회색 양복을 입었는데 바짓단 길이가 조금 짧은 듯 했다. 마른 편이었고 희끗희끗한 머리가 귀 윗부분을 살짝 덮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은 볼이 옴폭 패여 있었고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은 매서워 보였다. 교실은 정지화면처럼 조용해졌다. 아까 떠들었던 사람을 잡아내기라도 하는 양 교실을 한 번 훑어본 선생님은 분필을 집었다. 그가 칠판을 향해 등을 돌리자 우리는 숨어있던 두더지마냥 고개를 약간 들어올렸다.
신.기.섭. 선생님 이름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선 소리 없는 동요가 일어났다.
선배로부터 무수히 들어왔던 우리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선생이었다. 늘 3학년 담임만 해오던 터라 이름만 들었지 실제 얼굴을 본 건 처음이었다.

가늘고 긴 나뭇가지를 항상 손에 쥐고 다니는데 매를 들 때마다 ‘치마 잡아’라는 말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별명이 ‘치마잡아의 황제’ 였다.

성적이 좋든 나쁘든 떨어진 점수만큼 엉덩이를 때리기 때문에 첫 시험을 못 칠수록 유리하다는 둥. 대중목욕탕에 가면 유난히 엉덩이가 빨갛거나 시퍼런 멍이 든 우리 나이 또래의 여자애들이 있는데 모두 ‘치마잡아의 황제’한테 맞아서 그렇다는 둥. 아픔을 피하기 위해 잔꾀로 속바지를 여러 겹 껴입으면 그 소리부터가 달라 선생님이 알아채고 더 세게 때린다는 둥. 그 동안 들어왔던 온갖 소문들이 앞다투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불안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두 주먹을 꼬옥 쥐었다. 첫 날 잘못 찍히면 일 년 내내 고생이라는 선배언니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기 위함이었다.
담당과목은 국어라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국어를 잘 하나 못 하나부터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몇몇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선생님은 이제 3학년이니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일 년 동안 공부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짧은 당부를 했다.

그리고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건 성적이 떨어지는 것과 품행이 단정치 못한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몇 가지 규율을 말했는데 손톱, 양말색깔, 실내화색깔, 머리길이 등에 관해서였다.

특히 머리길이에 대해서는 학생 한 명을 지목하며 ‘저 머리 길이가 기준이다. 저 보다 짧으면 내가 직접 잘라준다.’고 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이 안 돼 우리는 웃어야 할지 ‘네’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은 입맛을 한 번 다시더니 들고 있던 회초리로 나를 지목했다.

바짝 긴장한 나는 대답 대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는 머리가 왜 그렇게 길어? 내일까지 당장 잘라.”
순간 날 쏘아보는 선생님의 눈빛과 마주치자 나는 ‘네’라고 재빨리 대답했다. 저렇게 무서운 얼굴은 처음 보았다. 이마에 굵은 주름이 졌고 광대가 양 옆으로 삐죽 나온 얼굴이 굳이 매를 들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선생님은 다른 전달사항을 말했지만 내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난 내 머리길이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 엄마가 자르라 할 때 자를걸 하는 후회부터 나보다 더 긴 애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하는 억울함까지 들었다. 학교 다니면서 한 번도 혼나본 적이 없었던 나는 저 선생님이 아직 내 성적을 잘 모르나 하는 오만한 생각마저 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학교는 내게 집보다 편한 곳이었다. 영재에서 반항아로 전락한 오빠는 엄마아빠의 유일한 희로애락이었다. 오빠가 간신히 마음을 잡은 것처럼 보이는 날엔 부모님은 첫사랑과 재회라도 한 듯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며칠 잠잠하던 오빠가 사고라고 치고 가출하면 그 이후는 부부싸움, 엄마 몸 져 누움, 아빠 술 먹고 신세한탄이 예정된 수순이었다. 집 나간 오빠 방에서 소설책이라도 구경하는 게 집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평화였다.
그러나 학교는 달랐다. 아이들은 계속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놀이에 끼어 주었다. 내 얘기를 들어주고 웃어주었다. 우리는 숙제 생각을 하며 함께 한숨 짓고 시험 끝나고 놀러 갈 생각에 함께 들떠 했다. 서로 장난 치고 떠들고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는 등굣길을 난 좋아했다.
교과목 선생님들 모두 내 이름을 기억해주었다.

오빠만큼 머리가 좋진 않았지만 공부 말고 딱히 잘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나는 학교 성적으로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했고 선생님은 내 노력과 결과를 알아봐 주었다. 어려운 문제를 나에게 풀라 시킴으로써, 아이들 앞에서 내 칭찬을 해줌으로써, 내가 표정이 안 좋으면 ‘진영이 무슨 일 있니? ‘ 물어봐 줌으로써 나에게 학교가 집이 되게 해주었다. 선생님이 편했다. 날 귀여워해주는 이모나 삼촌쯤으로 여겼다.
나는 학교에서 맘껏 떠들고 공부하고 놀았다. 모두가 내 편인 것만 같아 눈치 볼 일이 없었다.
중 3 새 담임이 나를 매섭게 쏘아보기 전까지 말이다. 그 기억을 재구성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면 솔직히 그 때까진 어떤 불길함을 감지하진 못한 상태였다. 선배언니들로부터 ‘치마잡아의 황제’는 좀 무섭긴 해도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란 게 어떤 건지 잘 알기라도 하듯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머리도 좀 길고 첫인상이 싸가지 없어 보여도 알고 보면 좋은 아이란 걸 선생님도 곧 알게 될 거라 믿었다.

담임이 공부 잘 하는 아이를 특별히 좋아한다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 분명해졌다. 우리 반 정원은 오십 명이지만 담임에겐 열 명만 우리 반 학생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성적순대로 1등부터 10등까지였다. 교실에서 자리도 반 석차 대로 앉았다. 성적이 좋은 애들은 따로 불러 교사용 문제집을 주었다.

국어 시간에 1등부터 10등까지만 쳐다보며 수업하는 것 같았다.
열여섯 살의 나에게 담임의 그런 차별이 문제가 되진 않았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모든 시험에서 1, 2등 하던 내가 차별의 수혜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석차대로 자리가 배정되는 것만 제외하면 나는 담임으로부터 문제집은커녕 눈길 한 번 받은 적이 없었다.

왜였을까. 머리길이를 지적 받은 날 바로 머리를 잘랐고 시험도 잘 쳤고 수업도 잘 들었다. 담임 눈 밖에 날 일은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날 싫어할 이유가 아무래도 없었다. 물증 없이 심증만으로 괴로워하는 형사처럼 담임이 날 싫어하는 결정적 증거를 찾기 위해 학교를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담임이 내 짝꿍에게 부드러운 말이라도 한마디 하는 날엔 난 질투심에 좌절했다. 담임이 웃고 내 짝꿍이 웃고 오랜만에 농담하는 담임 덕분에 반 전체가 웃었다. 나 역시 패배감과 서러움을 애써 감추며 웃었다.

그러다 담임의 웃는 눈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아, 어리석게도 나는 그것에서 희망을 찾으려 애썼다. 선생님이 날 싫어하는 게 아닐 수도 있어.
내 모든 불안과 의심이 나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하루 빨리 깨닫고 싶었다. 암호를 해독하듯수업시간 담임의 표정과 말투를 읽고 또 읽었다.

나를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한 담임의 알 수 없는 마음 때문에 여중생은 애가 탔다. 차별한다는 불만이 있었음에도 담임의 엄한 카리스마가 통했는지 아이들은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치마 잡아’하며 매를 들 때도 여학생들은 마치 모든 게 연극이기라도 하듯 무서워하는 척 연기를 하며 매 맞는 걸 즐기는 듯 했다. 그 매가 분명 아팠음에도 애들은 회초리 맞는 일을 함께 하는 놀이에 참여하는 것인 양 여기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담임이 날 싫어한다는 직감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었다. 담임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선이고 그렇지 못하면 악이었다.

성적이 우수함에도 사랑 받지 못하는 나는 억울한 죄인이었다. 사랑만 받았더라도 담임의 성적 차별은 내게 아무 문제가 아니었을 테니 그의 비인간적인 입시위주 교육을 비판할 입장도 못 되었다.

중간고사가 짧은 봄과 함께 끝이 났다. 아이들은 춘추복도 더워하며 연신 손 부채질을 해댔다. 그속에서 나는 기분 좋은 기대감을 애써 참으며 앉아 있었다. 해마다 열리는 수학경시대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수학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수학이 날 좋아해.’ 하며 거드름을 피우던 나였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의 늦은 봄, 나는 들뜨는 마음을 억지스레 눌러야 할 것 같았다. 시샘 많은 신이 오랜만에 찾아온 내 행운을 가져가 버릴 것만 같은 어두운 예감이 들었다.

언제 담임이 경시대회 얘기를 할까 하루하루 기다렸다. 이윽고 며칠 후 조회시간, ‘전달 사항 끝’이라 말하고 교무수첩을 덮던 담임이 그제야 생각난 듯, 경시대회 이야기를 꺼냈다. 한 반에 한 두 명 뽑아 테스트를 거친 후 학교 대표 1명을 뽑는 식이었다. 나와 1등을 다투던 성아에게 담임이 물었다.
“한 번 나가볼래?”
전과목 모두 뛰어나지만 수학만 조금 약했던 성아는 거절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젠내 차례였다. 어떻게 하면 덜 거만하게 ‘나가고 싶어요.’ 말할 수 있을까.
우리 반 3등에게 담임이 물었다.
“한 번 나가볼래?”
자신 없다는 듯 3등은 고개를 저었다. 연말에 있을 학력고사가 우리 모두의 목표물이니 경시대회는 인기가 없을 만 했다.

하지만 난 나가고 싶었다. 수학만큼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부하는 과목이었다. 자신 있었다. 담임이 날 까먹었나.
우리 반 4등에게 담임이 물었다.
“네가 한 번 나가볼래?”
4등 역시 안 나가겠다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경시대회에 내가 나가는 일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자만했나. 그래서 신이 나를 벌주는 걸까. 잘난 척 그만하라고. 담임은 5등부터 10등까지 모두에게 건조하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10등까지 부르고 나서 ‘나가고 싶은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 하며 교실을 둘러 보았다.

담임이 내 눈을 피했다고 느꼈다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붉어졌다. 담임은 ‘그럼 우리 반은 아무도 안 나가는 걸로 알고 있겠다.’ 며 교실을 나갔다. 순간 3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수학 선생님이 나를 가장 예뻐한다는 걸 우리 반 애들도 알았을 거다.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모이는 것을 나는 참아야 했다. 그리고 눈치 없는 몇몇 친구들의 ‘담임이 왜 진영이한테 안 물어봤지?’하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내 이름이 불리지 않은 이유. 나도 친구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담임이 실수로 깜박한 것이 아니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안 그러려고 하는데 마주 잡은 손이 자꾸 떨렸다. 결국 나는 울음을 터뜨림으로써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나를 달래는 친구 누구도 구체적인 위로를 하진 못했다. 울지마. 괜찮아. 울지마.

다음 날 1교시 수업을 마치고 나는 교무실 문 앞에 서있었다. 쉬는 시간이 점점 끝나가고 있으니용기를 내야 했다. 떨리는 가슴 밖으로 뜨거운 공기를 내보내니 심장이 더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교무실에 들어서자 이 많은 선생님들 속에 교복 입은 한 명의 학생으로 있다는 게 기가 죽었다.

담임 자리를 눈으로 찾았다. 내가 미운 오리새끼만 아니었더라도 영광의 교사용 문제집을 받으러 뻔질나게 드나들었을 담임의 자리였다.

마침 지나가던 국사 선생님이 반갑게 알은체를 해주었다. 부끄럽지만 그게 자신감을 주었다.
책상 바로 앞에 설 때까지 담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선생님들이 많아내가 가까이 온 걸 모를 수도 있었다.

눈치를 살피며 허리를 조금 숙여 선생님을 불렀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지만 담임에게는 분명히 들리는 크기로. 교무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던 담임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날 바라봤다. 3학년에 올라온 첫날 내 머리길이를 지적한 이후 처음으로 날 유심히 보는 거였다. 가슴이 뛰었다.
“무슨 일이야?”
따지고 싶었다. 이유가 뭔가요?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나를 싫어하세요?
나를 왜 투명인간 취급하세요? 날 싫어하는 건 당신 마음이지만 그 이유라도 말해주세요. 목이메였다.
“무슨 일이냐니까?”
담임의 언성이 조금 높아지자 옆자리에 앉은 수학선생님이 쳐다보았다. 겁이 났다. 담임이 날 싫어하는 걸 수학선생님이 알게 되면 어쩌지.

그래서 더 이상 날 안 좋아하면 어쩌지.
“저… 수학경시대회 나가고 싶어서요.”
담임은 겨우 그거였냐는 듯 짧게 코웃음을 치며 다시 교무수첩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제 물어볼 때 얘기했어야지. 버스 떠난 다음에 손 흔들면 뭐해?”
버스가 떠났다는 말은 신청기간이 끝났다는 말일까. 떠나는 버스를 바보처럼 뒤쫓아가는 내 모습이 보였다.

담임 말에 의하면 이것은 내 잘못이란 게 된다. 담임이 내 의사를 물어보지 않아서 아니라 버스가 떠나기 전에 내가 타지 않았다는 거다.

담임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다.
아무 말 없이 서있는 내가 성가시다는 듯 담임은 손사래를 쳤다.
“안 가고 뭐해. 버스 떠났다니까.”
왜 그 버스를 제때 타지 않았을까. 나는 미련하게 후회하고 있었다. 어제, 오늘이 아닌 어제 말했어야 했는데.
포기하고 뒤돌아서야 했다. 담임이 날 싫어해서가 아니라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경시대회에 나갈수 없는 거다. 그러니 밉보이기 전에 어서 뒤돌아서야 한다. 그 때 수학선생님이 나를 잡았다.
“진영이 경시대회 안 나가요? 아니 얘가 안 나가면 누가 나가? 얘가 우리 학교에서 수학 제일 잘하는데.”
남편이 엄청난 부자라 집에 안방 크기의 드레스룸이 있다는 수학선생님이 새침하게 말했다.

단하루도 같은 옷을 입고 오지 않는 모델 같은 외모의 선생님은 오늘도 짧은 머리 가발을 하고 있었다.푼수 끼가 좀 있지만 머리가 남달리 좋아 수학시간에 우리를 자주 감탄시켰다. 그래서 나는수학선생님을 잘 따랐다. 선생님도 애들이 질문이라도 하면 ‘진영이한테 물어보고 모르면 나한테갖고 와라.’할 정도로 나를 믿어주었다.
수학선생님의 간섭에 불쾌해졌는지 담임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종이 한 장을 주며 내일까지 작성해오라 했다.

교무실을 나온 나는 정신이 아찔했다. 방금 무서운 호랑이를 만나고 왔다는 생각에 심호흡도 크게 했다. 원하는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에 어깨도 조금 으쓱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담임과 대결했다는 생각에 이르자 큰 실수를 저지른 듯 겁이 났다. 그 동안은 담임이 날 싫어하지 않길 바랐고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썼다면 이젠 그와 싸우는 수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그와 대적한다면 담임이 날 좋아해주는 날은 이제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생각에 나는 문득 외로워졌다.
미워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싸우기 때문에 미워해야 하는 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었다.

담임이 준 신청서를 작성해서 엄마 사인까지 받고 담임을 찾아갔다. 좀더 당당하게 굴려고 했다. 나는 이제 네 관심 따위나 구걸하며 네 눈치나 살피는 애가 아니야.
담임은 화를 냈다. 부모님 도장을 찍었어야 하는데 사인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이제 어쩔 거냐는듯 날 바라봤다. 나에게 기회를 주었는데 내가 그것을 발로 뻥 차버렸다는 듯, 내가 구제불능이라는 듯 바라봤다. ‘신청 못 하겠네’하며 비꼬는 말투엔 간사한 웃음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음에서 불이 일어났다. 도장이라고 말 한 적 없잖아. 신청서에는 그냥 ‘인’이라고만 적혀 있단 말이야. 도장과 사인, 그 차이가 정말 중요한 거야?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담임을 노려보았다. 나쁜 새끼. 네가 뭐라고 감히 나한테. 다른 모든 선생님이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 공부도 못 가르치는 게.

국어도 내가 너보다 더 잘할 걸.
결국 나는 경시대회에 나갔다.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전화해 도장을 갖고 학교로 오라 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담임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은 얘기하지 않았다. 담임이 날 미워하는 게 내 잘못이라 생각할까 두려웠다. 오빠 때문에 며칠 째 누워 눈물만 흘리던 엄마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도장만 주고 갔다.

마침내 학교 대표로 뽑혀 시 대회, 도 대회 모두 나갈 수 있었다. 학교 마치고 한 시간씩 수학 선생님한테 특별수업을 받았다.

한 달이 지나고 도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왔을 때까지 담임은 내게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결심을 일기장에 적었다. 담임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예전의 나를 비웃었다.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리라.

나 혼자만 감당하겠다 다짐했다. 누구에게도 위로 받지 않을 것이며 이 서러움을 들키지 않겠다고.
담임이 나를 미워하기 전에 내가 담임을 먼저 미워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국어시간에 절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담임 수업을 듣지 않고도 국어시험 100점을 받는 게 내 계획이었다. 담임이 수업시간에 농담을 해도 절대 웃지 않았다. 주번이어서 그가 내게 말을 걸 수밖에 없을 때는 할 수있는 모든 청소와 정리를 미리 해두었다. 그가 추가적으로 시킬 일이 없도록 말이다. 내가 담임을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리고 학교생활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친구와도 잘 지내고 다른 선생님과도 친하게 지냈다. 더 많이 칭찬받고 인정받으려 안간힘을 썼다.

담임의 사랑 없이도 내가 얼마나 잘 지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어차피 고등학교 가면 다신 안 볼 놈이야. 하루에도 수없이 되뇌었다.

수업시간에 고개를 들지 않은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담임이 나를 불렀다. 교무실이 아닌 계단 난간에 그가 서있었다. 수업시간이어서 지나다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시멘트 계단에 박힌무늬를 실내화로 문지르며 난 딴청을 피웠다. 계단 손잡이에 두 팔을 받친 담임이 내 눈을 들여다 보며 물었다.
“너 내가 그렇게 싫으냐?”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화가 났다. 의뭉스러운 인간, 마치 숙제 했니 라는 말처럼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물어볼 수 있을까.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묻고 싶었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그 말을
그는 어떻게 쉽게 내뱉을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싫다고 하면 어쩌려고. 나는 대답을 듣는 일이무서워 도망만 다니고 눈치만 살폈는데.
하지만 나는 대답해야 했다. 솔직하게 말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계기로 담임과 화해할 것인가.

나는 정치적인 고민을 잠시 했다. 그를 볼 날이 몇 달 남았는지도 영리하게 계산하면서 말이다.싸우고 정이 깊어지는 친구처럼 우리도 그렇게 될까.

동화 같은 상상도 짧게 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네, 싫어요.”
담임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복수도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내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담임밖에 없었다.

나는 너를 싫어한다. 너는 나를 이유없이 싫어했지만 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와 그것이 생겨난 모든 과정을 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보기 좋게한 방 먹고 말았다.
“실망이네. 나는 니가 꽤 괜찮은 앤 줄 알았는데.”
또 다시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또 내 잘못인 거였다. 실망이라니. 실망이 가능할 정도로 나를 좋게 생각해왔다니.

나는 네가 날 싫어하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싫어하니까 도무지 길이없어 널 싫어하게 된 건데, 넌 나를 괜찮은 애로 생각해 왔다니.

그렇다면 내가 이 모든 걸 망친게 되는 셈이었다. 나만 끝까지 참았으면 되는 거였다. 내가 성급했던 거였다.
담임은 들어가보라며 계단을 올라갔다. 이젠 정말 끝이구나, 허탈감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열 여섯, 누군가 이유없이 날 싫어할 수 있다는 걸 선생에게 배우기엔 어린 나이였다. 날 왜 싫어하냐고 물어본다면 서럽고 비참한 기분이 들 것이다.

물어본다 한들 진짜 이유를 알 수도 없다.그저 받아들여야 함을 스스로 배울 뿐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나는 ‘오분만울다 가자.’ 했다. 사랑받지 못하는 소외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마음 졸였던 하루가 끝나감을 안도하는 의식 같은 거였다. 보풀이 일어난 교복에 무거운 책가방, 덜컹이는 도시락가방, 모서리가해진 실내화주머니를 들고 벽에 기대어 씩씩거리며 울었다.

이후 국어시간에 여전히 고개를 들 순 없었지만 눈의 독기는 희미해졌다. 더 이상 손댈 수 없는망가진 라디오를 대하듯 담임의 음성으로 그와의 거리를 확인할 뿐이었다.
졸업식 이틀 전날 담임은 내게 심부름을 시켰다. 당시에는 선생님의 작은 심부름을 하는 일이 선택받은 자의 영광으로 여겨질 때였다. 예를 들면 선생님 책을 교무실에 가져다 놓는다던가, 옆 반에 가서 수업자료를 빌려오거나 하는 일 말이다.

담임은 내게 차 열쇠를 주며 그의 차에 가서 서류봉투를 가져 오라 했다. 우리반 1등부터 10등까지 아이들은 줄곧 해오던 잔심부름이었다.

화해의 손길이었다. 왠지 굴욕적인 기분이 들어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를 무안하게 만들면 안 될 것같았다.

운동장 끝에 주차된 담임의 차로 가서 서류봉투를 챙겨들고 다시 교실을 향해 걸었다. 그러다 이층에 있는 우리 교실을 올려다보게 되었는데 창가에 담임이 서있었다. 나를 보고 있는지아닌지 가늠하기엔 먼 거리였다. 교실을 향해 걷는 내내 걸음이 부자연스러웠다.

12월 학력고사를 치고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담임에게는 끝까지 문제집을 받지못했다. 우리반 중 다섯 명이 같은 고등학교에 왔다. 스승의 날이 가까워오자 중학교 담임을 찾아간다며 같이 가자 했다. 나는 가지 않았다. 친구들은 담임을 ‘알고 보면 좋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어쩌면 담임은 무섭지만 속정이 깊은 사람이었을 지도 모른다. 선생님, 제가 무얼 잘못했나요? 라고 내가 정중히 물어주길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학교가 내 세상인 줄 알고 까불었던 내가 그저얄미웠는지도 모른다. 그가 나를 싫어한 게 내 잘못도 아니듯 그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인정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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