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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봄이 시작되면서…

- 김융희

지겨운 추위는 우수 경칩이 지나고 3월이 다가도록 물러갈 줄을 모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심해진 빠른 세월을 탓했던 마음이 금년은 그게 아니었다. 겨울 내내 혹한의 추위가 지겨워 따뜻한 봄날씨가 그립고, 4월이 오히려 기대려졌다. 그 고대했던 4월의 시작이다. 남녘에선 벌써부터 꽃소식이 한창 전해지고 있다. 벚꽃을 비롯한 꽃축제도 이곳 저곳에서 열리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북녘엔 언땅이 아직도 겨울 그데로다. 마침 기다린 봄비가 내렸다. 옮겨야할 몇 나무를 캤다.

겨울이 길면 봄날은 짧아, 봄이 순식간에 지나친다. 아직도 봄기운을 못 느끼는 날씨이지만, 풀렸다하면 아마 벌써 여름의 문턱일 것이다. 그래 개으름뱅이 농사꾼의 날씨 짐작은 농사를 망치기 일쑤인 것이다. 어지러진 장포를 정리하고 준비를 서둘러야 할 때인 것이다. 어림해도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느껴진다. 긴 긴 겨울을 웅크려 지내면서 굳어졌던 몸이 그동안 해이해진 마음과 더불어 자꾸만 머뭇거려진다. 그런데다 나는 허리 통증에 대한 강력한 주의 경고를 받고 있다.

냉이, 망초, 씀바귀, 달래, 등… 봄나물을 캔다. 나물은 좋은 먹거리이지만, 캐지 않고 두면 잡초가 된다. 그런데 쪼그리고 앉아서 캐는 일이 몹시 힘들며, 허리와 관절에는 매우 해로운 자세이다. 퇴비도 깔아야 한다. 까는 일도 힘들지만, 당장 옮기는 일이 더 걱정이다. 20kg 한 포대를 들기도 힘든데다, 모두 100포대가 넘는 양으로 엄두가 나질 않는다, 비닐도 걷어 주고, 고추, 가지의 버팀대도 뽑아야 한다. 오이 덩쿨 지주도 아직 그데로이다. 쌓인 일들처럼 모두가 돈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일당임금 펑펑 퍼주면서 노동 일손을 빌릴 수 있을 텐데….

제일 서둘러야할 일은 씨앗 구입과 씨앗들 정리일 것이다. 특히 수입종이나 새로 개발한 신품종을 지양하며, 옛부터 지켜 내려온 신토불이의 토종 작물 재배를 농사 방침으로 정하고보니, 씨앗들 확보가 더욱 시급한데도 그 대책이 난감하다. 고향 장터를 가서 수소문하며 구해봤지만 쉽지를 않았다. 우선 감자, 고구마, 호박, 팟, 등. 옛 기억을 더듬으며 몇 가지를 구했지만, 이것들도 믿을 것은 못된다. 토종 씨앗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갖고 있는 시골 농사꾼들이 거의 없었다.

토종 작물에 집착하면서 이토록 농사 방침을 정한 것은 내가 서툰 농사꾼이기 때문이다. 나는 농삿일에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이 없다. 아무리 자급용 농사이지만, 내가 힘들여서 지은 작물의 수확을 제대로 기대할 수가 없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일들이 겹쳐 시간 여유가 없었고, 능력이 서툴다 보니 작물 재배, 관리가 너무 힘들었다. 무농약으로 자연재배를 하면서 병충해를 막을 방법을 잘 몰겠고, 무성한 잡초를 제거하는 일도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힘들고 시간에 쪼들려 작물을 그냥 버려둔 채 방치한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방치된 작물이 병충해와 잡초에 비교적 잘 견디는 것이 토종 작물임을 알게 됐다. 토종은 어지간해서는 잡초에 별로 힘들어하지도 않았고 병충해에도 끄덕 없었다. 잡초에 파묻히기 보다는 잡초를 제압하며, 주위와 더불어 사는 것이 우리의 토종 작물이었다. 나는 이를 바로 눈앞에서 확실하게 확인했다. 이는 신토불이에 꼭 어울린 농사로써 가장 바람직스런 먹거리를 얻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 이것이다! 서툴고 개으른 농사꾼에게 딱 어울린 나의 농사 짖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냉이, 달래, 쑥, 망초, 씀바귀, 민들레, 고들빼기, 질경이, 들깨, 똘갓, 머위, 취, 돈나물, . 이들 모두가 입맛 땡기는 우리들의 먹거리가 아닌가!
이것들은 제 스스로 자랄 뿐, 농약은 물론 비료도 손길도 모두 필요없다.

이런 농삿일거리를 생각하며 여유를 느껴 신나하는데, 메시지가 뜬다.

“이번 토요일을 잊지 않으셨죠? 우리 ‘노아 합창단’의 노래 연습이 있는 것!
전원 모두가 빠짐 없이, 시간 맞춰 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부총무.”
농삿 예기하다가 무슨 뚱딴지이냐구요? 글쎄 봄이 시작되면서 이런 일이 생겼답니다.

우리 “노아 남성 합창단”이 또 일을 저질렀습니다. 창단 일년도 않되어 해외 공연을 다녀오더니 이번엔 국내 공연을 한답니다. 지난 해부터 말은 있어왔지만, 말로써 끝이질 않고 계획이 구체화됐습니다. 오는〈9월 6일에 여의도 영산홀에서〉공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50년이 넘는 역사로 일본에서도 알려진 “노년 남성 합창단”을 초대까지 하면서… 공연 날짜가 앞으로 꼭 5개월의 기간입니다. 경력도 미미한 신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촉박해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열심히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4월의 봄이 시작되면서 매 주마다 주말이면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한 시간의 공연 스케쥴이래도 매주 한 곡 씩 연습을 해야할, 너무 빡빡한 강행군이 시작되었습니다. 농삿일에, 노래 연습에, 거기다 신체적 부담까지 겹쳐져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성의와 성원과 가호가 있음, 꼭 잘 이루어지리란 믿음만으로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따뜻한 날씨와 더불어 산더미같이 쌓인 농사일에, 겨운 노래 연습까지… 경황없이 4월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또 깜박했습니다. 좀체 원고 독촉을 하지 않는 위클리수유 편집진의 메일을 방금 받았습니다. 부랴 쓴 원고를 보냄니다. 봄이 시작되면서 더욱 바쁜 일상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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