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4/7 현장스케치

- 반작용

강제 철거의 황당함과 설치된 화단의 우스꽝스러움에 대해 생각할 때, ‘대한문 쌍용차 농성장 강제철거’가 우리 사회에서 이슈화 되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이렇게나 ‘힐링’을 외쳐대는 사회에서 말이다. 하루에 발간되는 책들 중 수십 권은 목이 터져라 치유를 말하고 일주일에 한 두 번씩 힐링 캠프니 힐링 멘토니 하는 소리를 들으려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켜는 마당에, 정작 피가 나고 곪아서 벌어진 상처 앞에서는 팔짱을 끼고 방관하고 있다.

4월 7일. 우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서도 사람들은 밝은 목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눈인사를 하며 따뜻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대한문 앞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세 개의 원이 있었다. 첫 번째 원은 울타리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 높고 앙상한 초록색 펜스였다. 그 펜스를 등 뒤로 하고 경찰과 마주한 채, 듬성듬성 무리를 모여 만들어진 엉성한 원이 두번째였다. 마지막 원은 첫째와 둘째 것에 비해 견고하고 커다란 것이었는데, 경찰의 형광 노란색 옷과 중구청 공무원들의 하늘색의 옷이 그 원에 어떤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저쪽 한 귀퉁이에는 주차된 세 대의 버스에는 ‘살기 좋은 중구청’, ‘국민의 경찰’ 따위의 글들이 적혀 있었다. 살기 좋은 중구청과 국민의 경찰이라. 괜히 얄밉고 공허하기까지 한 말들이었다.

길고 하얀 옷을 입은 신부가 단 위에 서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천주교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낯선 미사였다. “여러분, 여기 왜 오셨습니까.” 신부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함께 살려구요!”

어느 남자가 소리쳤다. 나는 그가 들고 있는 현수막을 바라보았다. ‘함께 살자’ 단순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살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는 것을 말이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함께 산다는 말처럼 진부한 것도 없었다. 힘든 사람이 있다면 돕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한다는, 그것은 우리의 사회가 늘상 강조해 왔던 미덕이었다. 또한 우리가 언제나 하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감정이 매마르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이의 처지에 공명하지 않는가.

며칠 전, 출근길의 만원 전철 안에서 내 마음을 애잔히 떨리게 한 것도 그런 종류의 공명이었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 뒤로 보이는 사진 속에서 어떤 남자가 경찰에게 온 몸을 붙들린 채 고통스런 얼굴로 무언가를 소리치고 있었다. 짧은 기사였다. “대한문 앞에 설치되었던 쌍용차 분향소가 오늘 새벽 중구청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다” 아픔에 짓이겨져 울상이 되어버린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하고 아파왔다.

사실 그것은 매우 단순한 작용이다. 발바닥에 조그만 가시가 박혔을 때, 우리는 굳이 그 가시를 보지 않아도 따끔한 아픔을 느낀다. 그것은 여전히 내 신경이 살아있다는 뜻이고 당연하게도 발바닥이 나에게 속한 내 몸뚱이라는 소리이며 때문에 발의 상처도 아픔도 온전히 내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함께 살아갈 때, 비슷한 것을 먹고 비슷한 것을 보며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살아갈 때 다른 이의 아픔과 기쁨은 금새 나의 것으로 전치된다.

때문에 그 아픔을 함께하지는 못할 망정, ‘강제 철거’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발을 자르는 사람과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누군가가 아픔을 소리치는 그 장소를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드러낸 그 곳을, 지켜주고 함께 아파해야 할 우리의 사회가 그들을 ‘강제철거’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뚱이에 스스로 칼날을 들이대는 사람과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상처투성이가 된 발을 보고 당장은 그 아픔이 너무 크고 내 몸 같지 않다고 스스로의 발을 잘라버리는 짓과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 처연하고 어리석은 수술을, 불구가 되기 위한 미봉책을 명령한 중구청장과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그 칼날이 되고자 감정이 무뎌지고만 경찰과 공무원들.

위압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경찰을 의식한 듯, 신부가 말을 이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힘이 커질수록 민주주의는 후퇴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들 마음 속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춥고 굳은 날씨에도 이 자리를 지키는 쌍용차 노조 분들의 두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여기 오셨습니다. 이곳에는 중구청 공무원들도 계시고, 경찰도 계십니다. 둘러싸여 있는 우리도 무섭고, 쌍용차 노조 분들도 무섭습니다. 함께 살고 싶어서, 당연한 일을 하려고 이곳을 찾았는데 너무나 무섭습니다. 어쩌면 경찰이 무섭고 시위한다 비난하는 손가락이 무서워서 못 나오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우리 속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우리를 무섭게 하는 환경이 커질 수록, 민주주의는 후퇴한다고 생각합니다.”

뒤를 돌아 나는 노란 옷과 하늘색 옷을 맞춰 입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들에게 팔을 흔들었다. 누구보다도 이 말을 들어야 할 것은 그들이었다. 함께 살자고, 우리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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