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밟을 수 없는 땅

- 백납(수유너머R)

4월 4일. 아침에 일어나 SNS를 보니 대한문 분향소가 침탈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정오쯤 대한문에 도착해 상황을 살펴보니 사람들이 그저 두런두런 앉아 있다. 원래 분향소가 있던 자리에는 화단이 조성되어 있다. 화단의 흙만 밟은 사람들도 공공기물손괴죄 명목으로 연행되었다. 난리가 한번 지나가고 난 대한문 앞은, 그래도 별일이 없는 듯하다. 대치상황도 끝났고 별다른 집회도 없다. 7시에 집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들르기로 한다.

7시부터 진행된 집회는 경찰과의 물리적 마찰이 심했다. 원래 분향소가 있던 자리를 지키려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과 24인의 죽음을 추모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을 어떻게든 비워 놓으려는 경찰이 충돌했다. 조성된 화단 위에 영정사진을 얹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곳에 설치된 영정사진, 현수막, 기타 추모 물품을 강탈해가는 경찰이 있었다. ‘국가 중요시설’인 화단 보호를 위해 경찰이 치워야 할 물품들은 많았다. 집회신고 시 허가받은 현수막, 비닐, 천막이나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한 깔개 등의 물품들은 ‘국가 중요시설’을 위협하는 물건이었고, 아무나 함부로 소지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추모소를 다시 세우기 위해 천막을 치려고 하면 경찰들은 집회 참석자들을 에워싸고 달려들어 물건들을 부수고 강탈해갔다.

현수막 침탈하는 경찰들 @arco_kwon

4월 5일은 식목일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 화단에는 식목일에 맞춰 나무가 심어졌고, 펜스마저 둘러졌다. 하지만 펜스에는 철거 규탄 문구와 추모 문구들이 즐비하게 붙었다. 중구청이라고 적힌 파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은 대한문 주변을 언제나 지키고 있었다. 이 날 특기할 만한 것 은, 집회 중 화단으로 들어가려는 집회 참가자들을 중구청 공무원들이 직접 막아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찰들은 중구청 공무원들을 ‘협박’하는 집회 참가자들을 ‘공무집행 방해’, ‘폭력’등으로 연행해 가겠다고 방송을 계속 했다.

막아서는 중구청 공무원들

집회는 비교적 일찍 마쳤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대한문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들은 많았다. 성공회대 대학생들은 집회가 끝났음에도 민중가요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저녁 10시부로 연행된 사람들이 모두 석방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분위기는 고조된다.

4월 6일. 오전 8시 집회 물품을 훼손하는 중구청 공무원에게 항의하다가 3명이 다시 연행된다. 비가 내렸다. 비가 내려도 오후 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보도블록 위에 흙을 붙고 화단을 조성해 놓으니, 흙이 쓸려 내려온 곳이 많았다.

그날 집회에서 코오롱 최일배 위원장은 연대 연설에서 화단이 국가 중요 시설인지, 화단에 들어가는 것이 무차별 연행되어야 할 죄인지 묻고는 당당하게 화단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람들은 다시 영정을 화단 위에 올려놓고, 현수막도 다시 걸었다.

이후 며칠 대한문에 들르지 못했다. SNS를 통해서 김정우 지부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7천의 탄원서가 접수되었으며 영장 청구는 기각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피켓과 영정사진을 들고 화단에 오르는 추모자들의 사진이 보인다. 누군가는 올리고 누군가는 치우고 하는 싸움은 계속 되고 있다.

* * *

집회에 나가 있던 중 들은 말이 있다. 짓밟히는 꽃들을 보며 한 중구청 공무원은 꽃이 참 불쌍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불쌍히 여기고 싶은 꽃은 그 꽃이 아니다. 지금 대한문 앞에 심겨진 꽃은 중구청 공무원들이 그곳에 심는 순간부터 이미 ‘생명’이 아니라 추모자를 내쫓기 위한 ‘공공기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짓밟힌 꽃은 중구청 공무원들이 심었던 그 꽃만은 아니었다. 철거된 물품 중에는 분향소를 꾸미기 위해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화분 또한 있었다. 나는 치워진 화분을 보면서 그것을 가져다 놓았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들은 그 꽃을 분향소에 가져다 놓으면, 자신이 가져다놓은 그 꽃을 돌보기 위해서 스스로가 이 분향소를 자주 찾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꽃이 말라죽을 것이 안타까워 꼭 그들은 그곳을 다시 찾았을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없는 동안에 그곳에 오는 누군가가 꽃을 돌봐 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이 가져다 놓은 그 화단은 분향소로 향했을 돌봄의 총계를 측정하는 척도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중구청 공무원들이 진정으로 짓밟히는 꽃이 안타까웠다면, 꽃을 경찰과 추모자들의 충돌 속에 두지도 않았을 것이며, 분향소를 철거할 때 있었던 꽃들 또한 치우지 못했을 것이다.

치워진 화단들

대한문 앞 화단의 성격이 무엇인지는 그것을 지키기 위한다는 구실로 쳐진 펜스가 말해주고 있다. 시민들의 눈에 꽃은 보이지 않는다. 그 펜스를 넘어섰을 때, 비로소 꽃은 보이기 시작한다. 대한문 앞 광장의 공간으로부터 누군가를 내쫓기 위해 펜스가 쳐 져야만 했고, 그 펜스를 치기 위한 구실을 찾기 위해 꽃을 심었다. 나는 누군가를 내 쫓기 위해 심어졌던 또 다른 화단을 알고 있다. 재능교육은 1인 시위가 보기 싫다고 화단을 만들어 사람을 내쫓았다. 당시에 화단을 만들었던 주체가 기업이었다면, 지금은 그 화단을 조성하는 주체가 구청의 공무원들이고 경찰들일 뿐이다. 중구청 공무원들과 경찰들은 국가와 공권력의 이름으로 대한문 앞 도로를 점거하고 사유화하여 추모자들을 내쫓을 뿐이다. 광장에 국가의 재산이 들어섰을 때, 우리는 그것을 국가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청 광장에 심어진 잔디는 내가 밟을 수 있는 잔디일까. 그런 국가는 과연 우리를 위한 국가일까.

응답 1개

  1. 말하길

    펜스 안에 놓은 건 생명체로서의 ‘꽃’이 아니라 생의 의지를 가로막는 공공기물이었다는 말이 참 와 닿네요. 그 꽃이 불쌍해요. 어쩌다 생명이 생명을 저지하는 장벽으로 이용되었을까. 나쁜 공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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