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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당장 바리케이드 치기 – <신자유주의의 탄생> 토론회 참가후기

- 지안

* 지난 수유너머N의 화요토론회에 <신자유주의의 탄생>의 저자 장석준 씨가 방문했다. 토론회를 보고 후기의 형식으로 위클리에 글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무지하게 “네!”라고 대답했던 것이 이 글의 시작이다. 사실 나는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이나 그로 인한 사건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따라서 토론회의 중심 내용인 칠레-프랑스-영국의 사건들에 대한 해석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몹시 당연하게도 오랫동안 글의 주제도 잡지 못했지만 애초에 내가 “네!”라고 자신 있게(?) 답했던 이유에는 나에게 다가왔던 신자유주의에 대해 풀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은 나에게 다가온 신자유주의와, 내가 화요토론회 발표문의 핵심 주장이라고 생각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과 그 방법으로서의 세 가지 층위’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썼다.

내가 신자유주의를 만난 곳은 그 “촉수”의 끄트머리였다. 그러나 사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겪었던 불행이 신자유주의라는 몸통에 서 기원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2008년의 불꽃을 든 사람들을 명동거리에서 만났을 때 ‘소고기 때문에’ 거리에 뛰쳐나온 사람들이 나는 무서웠고, ‘화재’ 용산참사가 왜 그렇게 계속해서 미디어에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한창 쌍용자동차 파업이 신문을 장식했을 때 수업시간 한 교사는 “그거 미친놈들이야”라고 표현했지만, 그 교사 개인에 대한 반감 이외의 분노는 느낄 수 없었다. 그만큼 나는 정치적 의식이 없는 애였다.
그런데 내가 한 가지 느껴왔던 분노가 있다면, 그건 학교에 대한 분노였다. 사람이 죽어도 끝이 나지 않고 모두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교육에 대한 분노 말이다. 단순히 교육 문제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로까지 연장되는 그것에 대한 분노 말이다. 보통 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떠올렸을 때 그것은 경쟁의 이미지다. 경쟁은 사람을 참 이상하게 만든다. 1점 때문에 교무실에서 울고, 달리기 기록 1초를 줄이려고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하게 되며, 끊임없이 옆 사람을 깎아내리려고 한다. 그런 상황들을 보고 있는 것 자체도 지쳤었지만 진작 경쟁의 궤도 밖에 위치하고 있던 내 입장으로서는 사람이 도구가 된다는 점이 훨씬 더 견딜 수 없었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학생-교사-학부모라는 3항은 모두 도구가 되고 각자의 쓰임새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모든 만남은 그 쓰임새라는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도구의 만남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대통령이 바뀌었고 이 열기는 한층 더 가열됐다. ‘일제고사 부활’로 인해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나이의 중학생들이 같은 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 와중에 자신의 ‘쓰임새’를 넘어서려는 선생님이 있었고, 우리보다 한 살 많던 3학년 학생들에게 이 시험에 대해 거부할 권리를 알려주었다. 저쪽에서 주장한대로 일제고사 거부를 조장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난데없는 이 부활에, 일제고사가 무어냐고 물어온 중학생들에게 그것을 거부해도 괜찮다는 하나의 권리를 알려준 것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 선생님은 파면 당했다. 이때, 전국적으로 12명의 교사가 파면을 당한다.
내가 같은 재단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등교를 할 때면 선생님은 플랜카드를 들고 항상 교문 앞에 서있었다. 지각해서 뛰어가면서도, 매일 나는 안 하던 인사를 꼭꼭 하면서 교문을 지나쳤다. 빗속에서 우비를 입고 서있는 선생님을 보며 눈물이 흐르던 날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내가 느낀 분노의 종류는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는 분노는 아니었다.
그러던 내가 신자유주의라는 촉수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 계기는 같은 해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 <저 달이 차기 전에>라는 쌍용자동차 파업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였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며 공권력이 사람을 팬다는 것을, 그것도 어느 액션영화보다도 더 하게 팬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제 서야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 강렬했던 그 사건들이 하나의 고리로 엮여서 다시 다가왔다. 사람들이 촛불을 든 것은 ‘소고기 때문’만이 아니며, 용산참사는 단순한 ‘화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미친놈들”이 아니라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미친 사회에 대항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내 중학교 선생님을 교문 밖으로 내몬 것은 학교가 아니라 사회였다. 그리고 정확히는 신자유주의였다. 아무튼 나에게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다가왔다. 그것은 내가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 주변을 잠식하고 있었고 사람들을(/나를!) 구석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신자유주의란 무엇일까? 신자유주의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그것은 “국가 권력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의 기원은 검색창에서 미국 경제위기…케인즈 주의의 실패…국민 지지로 인한 레이건 정부 집권이라고 요약된다. 하지만 저자는 사실 신자유주의라는 “교리”는 투쟁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는 어떤 경제적 단계만을 거쳐서 자연스럽게 귀결된 것이 아니라 대항 세력과의 싸움을 거쳐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투쟁”을 통해 신자유주의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최소한 두 개의 전선에서 전투가 있었다는 것이다. 즉 선택지가 하나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신자유주의에 맞서고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집단이, 투쟁의 팽팽함이 있었다는 주장은 지금의 판도를 보면 생경하기도 한데, 대체 어떤 종류의 팽팽함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투쟁이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팽팽함의 이미지를 되불러내야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대안-팽팽함을 만들 수 있을까?

저자는 신자유주의를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로 보기를 요구한다. 신자유주의란 문명적 수준의 프로젝트이며 시장을 사회의 다른 모든 질서와 가치들 위에 놓는 교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대선을 통해 목격했듯이 “교리”라는 것은 이미 논리로 깨지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중심에서부터 주변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박혀있다. 그리고 그 교리를 퍼나르는 무수히 많은 신체들이 있다. 그것을 어떻게 깨부술 수 있을까? 최소한 신자유주의에 어떻게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저자는 크게 세 층위에서의 대안 만들기를 주장한다. 국민국가의 차원, 그리고 국민국가의 아래의 차원과 위의 차원에서 대안이 생성된다. 국민국가 아래의 차원이라는 것은 생활세계 수준에서 풀뿌리 사회를 재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즉 결과적으로 시장이 압도하고 있는 질서를 바꾸고 시장을 사회에 다시 끼워 넣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국가 위의 차원의 대안은 국민국가들끼리의 공동 행동 형태를 만드는 것, 어떤 초국적인 질서를 구축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것은 기존 신자유주의 질서를 “해체”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구조 개혁이라는 “부분적인 개혁을 넘어서는 자본주의 구조 자체에 손을 대는 개혁”의 노선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런 강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생활세계의 정치로까지 시선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망각으로부터 투쟁의 기억을 끌어내자고 말하며 지금 현실에서 다시 그와 같은 대안세력을 만들어내자고 반복해서 주장한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대안은 “분명 정치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저자의 “정치”에 대한 이미지는 단순히 국가권력에 관계되는 활동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2차 대전 이후의 통상적인 ‘정치’ 이해에 따르면 그 주 무대는 곧 ‘국민국가’다. 국민 국가의 제도 정치 과정이 곧 ‘정치’인 것이다. 이 책에서 국민국가 ‘아래’의 ‘생활세계’, 국민 국가 ‘위’의 ‘지구질서’에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바로 이러한 ‘정치’ 이해를 넘어서기 위해서이다.” (화요토론회 발표문) 즉 이때 정치가 의미하는 바는 생활세계/국민국가/지구질서를 아우르는 형태의 정치다. 그런데 이때의 정치가 보다 폭넓은 주체를 상정한다고 하더라도 국민국가나 그 위의 수준, 초국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어떤 세력이 있어야함은 분명할 것 같다. 나는 국민국가나 초국가적인 움직임을 조직할 때 그것의 주체가 대중이 될 수 있을까? 생활세계 수준의 ‘정치’와 국가적인, 초국가적인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함께 갈 수 있을까? 라는 점이 궁금했다. 촉수의 끄트머리에서 신자유주의를 만났다고 했던 것처럼 사실 내가 겪었던 신자유주의가 굉장히 개인적인 단위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큰 단위의 힘은 상상이 가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조직보다 저항이 우선되었으면 한다. 즉 세 가지 층위의 대안 방법들에서 내가 관심 있게 본 영역은 생활세계 차원의 저항들, 민중의 영역이었다.
쌍용자동차 분향소가 강제 철거되고 열린 집회에서 한 시민발언자의 말이 아직도 귀에 울린다. “먹고 사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이유가 전부는 아니”라던 말. 나도 그랬고, 항상 내 주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 뭐, 다른 걸 찾다가 자기만 손해 보는 거야”라는 말로 포장되어버리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자기가 믿던 “교리”의 희생자가 본인이 되었을 때, 그때 그 분노의 화살은 과녁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저자가 말하듯 신자유주의는 가장 작은 단위까지 영향을 미치는 교리이고 그렇다면 우리 역시 그런 작은 단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민중의 영역에서 생생한 투쟁이 다시 불러일으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국가적인 단위의 움직임을 조직하는 국가적인 권력이 주체가 되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사람들 하나하나가 주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예전 그 신자유주의의 대안세력의 그 ‘정신’은 지키되 그것을 실행하는 주체가 어떤 정치세력이나 집단이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즉 어떤 민중의 바리케이드가 다시 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상하는 것은 ‘바리케이드’이다. 이 바리케이드는 누가 주체가 되는 바리케이드가 아니고 나처럼 뒤통수를 맞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순식간에 쌓아올리는 그런 종류의 바리케이드이다. 위에 내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고 표현한 시기부터 나는 일종의 바리케이드를 치며 살아왔다. 물론 그 바리케이드는 작았고, 약했고, 잘 휘둘렸고 분명하지 않았다. 사실 바리케이드라는 단어도 거창하게 여겨지는 것이, 나는 어떤 사회의 모순에 대해 그 틀을 정해두고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방식으로 저항해왔던 것이다. 나는 이 부끄러운 정지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답은 뻔하지만 하나다. 혼자서는 바리케이드를 칠 수 없고 더 확고한 바리케이드를 치기 위해서는 “함께” 하는 것이 답이라는 것. 대부분의 내 친구들은 지금 재수학원에 있다. 그들 역시 교육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재입시를 치루는 것-혹은 대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만’ 도태될까봐 “무섭다”는 공포감에 다시 ‘교육’-‘사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택했다. 이렇게 경쟁이란 칼바람은 개개인을 모래알처럼 흩트려놓았다. 재수학원에서 1주일에 3시간 주어진다는 자유 시간에 나온 친구들을 만날 때면 “청년들은 톱밥처럼 쓸쓸해 보인다”는 기형도의 문장이 머리를 맴돈다.
그래서 나는 “함께” 하자고 말하는 것, 같이 치는 바리케이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위기의식, 어떤 문제의식을 느꼈을 때 즉석에서 ‘당장’에 내가 들어가고 내가 만들 수 있는 바리케이드. 즉 마치 프랑스 시민들이 자신들의 가구를 가지고 나와 쌓아올린 바리케이드의 이미지처럼 되는 대로 당장 합쳐 뚝딱뚝딱 지어 올리는 그런 종류의 바리케이드를 원한다. 너무 추상적이고 상식적인 결론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장 바리케이드를 칠 용기는 누구에게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함께”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런 “함께” 한다는 것에서 투쟁-바리케이드는 시작된다.

응답 1개

  1. hy말하길

    장석준의 글을 읽으면서, 신자유주의의 역사나, 푸코의 통치성의 개념을 마주하면서 내내 우리의 내부에 있는 힘이 무엇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지요. 이 지옥으로부터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인지.. 혹은 푸코의 말대로 이것이 억압이 아니라 힘의 게임이라면 우리는 이 겨울의 구름떼를 밀어낼 봄이 공기층을, 전선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우리도 내내 이런 질문을 가슴 속에 품었던 것 같네요. 지안에게도 같은 물음을 품게 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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