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최전선

왜 너는 거기 있는 걸까

- 벌꿀

하지만 아무도 벙어리로 살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도 기억 없이 살려고 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명령에 신경 쓰지 않는다.

불의 기억_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기차역

왜인지 우리는 아빠보다 먼저 영등포 기차역에 도착해있기 마련이었다. 길면 한 시간, 짧으면 30분 가량의 시간동안 발을 동동 구르며 아빠를 기다렸다. 내가 여덟 살 되던 해, 공무원이었던 아빠는 삼년 간 부산의 하숙집에서 기거했다. 장기 출장을 가면 그 만큼의 수당을 추가 할당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내와 네 명의 어린 자녀 그리고 그때까지 앞 길이 불분명했던 두 명의 성장한 동생을 집에 두고 부산으로 3년간의 긴 출장을 감행했던 것이다. 아빠는 두어 달에 한 번 집에 다녀가곤 하셨고 그래서 엄마와 나 그리고 언니는(때로는 동생이 되기도 했다)늘 기다려야 했다. 아빠가 서울 집에 오는 날, 아빠가 탔다는 비둘기호가 연착이라도 되는 날엔 사람 없는 휑한 기차역 개찰구에서 이리저리 서성거리며 짧은 다리를 폈다 접었다 했다. 아빠를 기다리는 일은 설레는 일이었다. 늘 지쳐있던 엄마는 그 날이면 들뜬 표정을 지으셨고 평소에 아빠 생각이 별로 나지 않았던 나도 덩달아 좋아해야 할 것만 같았다. 플랫폼의 끝에서 아빠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빠 빨리 와. 빨리 와요 노래를 부르며 생기발랄했던 마음은 아빠의 얼굴을 대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굳어버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 낯선 두려움이 밀려 들어왔다. 아빠는 오랜 시간 기차 여행 탓에 지친 표정을 애써 가다듬으며 차장에게 표를 건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허리까지 닿는 구멍 뚫린 철문이 드디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번엔 아빠한테 확 안겨봐야지 하고 꾹꾹 다짐했던 본디 내 맘과는 다르게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하고 나는 고개를 꾸벅하며 어색한 인사를 아빠에게 건넨다. 엄마는 애네는 딸내미들이 왜 이렇게 애교가 없나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네 명이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는 먼 길, 어느 누구 하나 깨트리려고 하지 않는 침묵으로 그새 캄캄해진 밤 하늘 만큼이나 마음은 먹먹하기만 했다.

그 날의 일기

1987년. 엄마는 어느 날 사나운 표정으로 다가와 채근하듯 물었다. 왜 넌 요즘엔 행복하다는 말을 일기에 쓰지 않니. 이제 우리 가족이 행복하지 않다는 거니? 나는 난처하고 혼란스러워졌다. 엄마가 내 일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거니와 대체 왜 저런 말을 하시는 걸까. 나는 엄마가 나의 행복을 의심하기 전까지는 스스로의 행복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숨어있던 것들이 눈앞에 대놓고 떠올랐다. 나는 그날 이후로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가 나에게 행복을 묻던 바로 그 날 위에 늘 위태롭게 서 있다. 행복이라는 말을 뱉어냄으로서 행복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는 것. 행복은 씨앗처럼 조심스레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리하게 조직되어지는 것. 재봉틀 위에서 낡은 천이 굴러가듯이 애써 재단된다는 것. 엄마의 행복이 셋째 딸의 일기 따위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순간 세상이 비틀거렸다. 나 이제 그만 착해도 되지요 엄마. 나의 존재는 엄마의 행복을 증명해주는 정도의 존재. 그래서 더 이상 착하지 않은 딸의 행복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 그날의 일기.

세퍼트

내가 살던 연립주택 위로 봉천동과 어울리지 않는 집 한 채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어린 내가 고개를 뒤로 꺽어 보아야 끝이 보이던 높은 대문은 두툼한 원목이었고 트럭으로 한 가득 잘생긴 정원수가 실려 들어왔다. 차라고는 배기통 꽁지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던 동네에 개인 차고도 만들어졌다. 동네 사람들은 웅성 웅성대며 공사하는 내내 그 집 주위를 서성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문들이 줄을 이었다. `외국서 가져온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았대.’ `집 주인이 애지중지 하는 다섯 살 짜리 애 만한 커다란 세퍼트도 다 미국서 가져온 거라며’ `그 집 난간은 남자 팔뚝보다 두꺼운 백양목이라더라. 몇 달에 걸친 공사 끝에 완성된 그 집은 높은 담에 둘러 쌓여서 밖에선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어른들의 들뜬 소문에 덩달아 휩쌓인 나는 저 안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으리으리하겠지 하며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소꿉장난하듯 얼토당토않은 물건들을 그 집안에 제멋대로 끼워 넣어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그리고 2년이 채 안 된 어느 날 오후, 응급차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대학생이었던 그 집 딸이 목을 매고 자살한 것이다. 어른들이 쉿쉿하던 가운데 들리는 이야기가 있었다. 딸이 남긴 유서는 이랬다고 한다. `안녕. 아빠는 나보다 세퍼트를 더 좋아하니까.’

돗자리

햇살 찬란한 소풍. 여자애는 바위 위에 혼자 앉아 있다. 여자애는 방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너는 거기 있는 걸까. 단짝 친구가 방금 자기 곁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 그 친구는 돗자리 위에 앉아 다른 급우들과 같이 즐겁고 떠들썩하게 김밥을 먹고 있다. 여자애에겐 돗자리가 없었다. 단짝 친구는 돗자리 위에 앉고 싶어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왜 나는 여기 혼자 있는 걸까. 여자애는 돗자리에서 멀찍이 떨어진 바위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아직 손대지 않은 김밥이 풍성했다. 저 멀리서 말 한번 섞어보지 않았던 한 애가 소리친다. 야. 이리 와. 같이 먹자. 여자애는 머리를 세차게 도리질치며 순간 생각한다. 내가 크면 제일 먼저 은박 돗자리를 사야겠다. 방수되는 커다란 걸로. 아니야. 난 앞으로 절대 돗자리를 사지 않을 꺼야. 목이 매어오자 여자애는 문득 궁굼했다. 왜 너는 거기 있는 걸까. 찬란한 햇살.

우엉

우엉은 길고 탄탄한 채찍. 반찬그릇을 채우기 위해 우엉을 다듬는다. 우엉 껍질을 벗기고 통나무 다루듯 쪼개고 쪼갠다. 날것 가득한 흙냄새. 폐부로 마셔야 하는 것.
혀가 아릿해지는 우엉의 흙냄새를 맡고 있으면 왜인지 오래전의 지하실 냄새가 떠오른다. 태어나고 두 살 적 부터 십 삼년을 살았던 연립주택의 지하실. 사시사철 음침하고 서늘했던 그 곳. 지하실 안에는 그 연립에 거주했던 가구 수대로 네 대의 연탄 보일러와 네 개의 작은 창고가 허름한 뒷골목 여인숙 방처럼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었다. 숨바꼭질을 할 때면 지하실로 내려가 남의 집 창고들을 전전하며 숨곤 했다. 어느 집의 창고엔 세로 줄로 인쇄된 오래된 책들이 천장 끝에 닿을 것처럼 쌓여 있었으며 어느 집의 창고는 텅 비어 있었고 어느 집의 창고엔 먼지 쌓인 풍로와 돗자리, 고장난 라디오와 재생 불가인 나무 의자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지하실 벽은 오래 묵은 곰팡이 냄새를 그만큼 오래된 습기와 함께 머금고 있었다. 하늘 아래 어느 것이든 이 지하실에 단 5분이라도 머문다면 그 냄새가 배어났다. 물건도 그랬고 사람도 그랬다. 겨울이면 엄마는 한밤중에 지하실로 연탄불 갈러 가는 게 무섭다고 했다. 엄마는 가슴에 하얀 토끼가 그려진 빨간색 잠옷을 입은 내 손을 붙잡고 지하실로 내려가 연탄을 갈았다. 엄마가 연탄을 갈아 넣고 있는 동안 연탄구멍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바라보고 있으면 그 곳은 딴 세상이었다. 그 구멍은 지나치게 빨갛고 뜨거웠으며 이글이글한 불길로 가득했다. 매탄가스 냄새로 코가 매콤해지기 시작하면 머리가 어질해졌다. 그러고 있으면 엄마는 `너 그러다 바보 된다’ 했다. 어느 날 이었던가. 빨간 토끼 잠옷을 입고 지하실을 따라 나섰을 때보다 좀 더 어른이 된 나에게 엄마는 옛적에 슬프고 무력한 마음을 가지고 그저 호기심이었던 나보다 더 오래오래 그 냄새를 맡으려고 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지구상에서 누군가 단 한명이라도 진정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것 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엄마는 살아남았고 나는 아직 바보가 되지 않았다. 대체 누가 우리를 구원해준 걸까. 나는 통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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