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천의 얼굴을 향한 탈안면화의 영상실험, I’m Not There

- 류재숙(수유너머N)

1. 다양성과 생성의 특이성, 밥 딜런

토드 헤인즈의 영화 <I’m Not There>(2007)는 1960~1970년대 미국의 격동의 시대를 함께 부대껴온 밥 딜런에 관한 영화다. 저항의 아이콘으로 인식되는 밥 딜런은 실제 하나의 모습으로 정의될 수 없다.

“너의 시대를 표현하고, 너의 시대를 노래하라.” <I’m Not There>의 포크뮤직 싱어송 라이터, 우디 구스리. 60년대 초반 포크음악은 흑인 차별과 전쟁을 좋아하는 미국의 성향을 거부한 민중들의 저항을 반영하였고, 밥 딜런은 그의 음악으로 인권운동가, 반전운동가로서 시대의 저항성을 대표한다.

“그들은 내가 세상을 손가락질하기를 바라지만 내 손가락은 열개 뿐이오.” <I’m Not There>의 변심한 가스펠 가수, 패스터 존. 그러나 6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포크음악이 음악 자체의 가치를 넘어서 정부에 저항하는 정치적 도구로 변질되는 것을 느끼자, 그는 전자기타를 들고 연주함으로써 음악적 변신으로 대중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다. 그것은 프랑스의 시인 랭보가 그러하듯 장르 비틀기를 통해 또 다른 음악의 변주를 실험하는 것이었다.

“난 혼돈을 받아들여요. 혼돈이 날 받아들이지는 모르겠지만” <I’m Not There>의 시인, 아서 림바우드. 60년대 후반 전쟁의 종식과 더불어 대대적인 미국경제의 발전과정에서, 그는 세상에서 자신의 음악이 무엇언지 되묻는 다양한 시도를 한다. 70년대 이후 그의 음악은 점점 난해해지고 시적 은유가 가득한 음악적 실험을 계속하고, 기독교 성향의 가스펠 앨범을 발표하면서 시대보다는 대중과 종교에 심취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밖에 헐리우드의 부흥기에는 영화배우로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은둔생활을 할 때는 몇 권의 책을 써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미국 중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리기도 했다. 오랜 잠적을 딛고 2006년 발표한 <Modern Times>라는 앨범으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한다.

이처럼 포크가수, 인권운동가, 반전운동가, 시인, 은둔자, 기독교인이기도 했던 그는 자신의 시대와 함께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변화시켰다. 이런 의미에서 밥 딜런은 하나의 단일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다양성과 변이·생성을 표현하는 특이성의 대표자이다.

또한 저항의 아이콘에 대한 거부, 포크는 통기타로 해야 한다는 인식에 대한 거부, 신의 존재에 대한 거부 또는 신의 거부에 대한 거부, 자신의 상업화에 대한 거부, 그리고 대중이 규정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거부. 이러한 방식으로 밥 딜런은 자신의 시대가 자신에게 부여한 의미와 상징을 거부함으로써, 또한 자신의 모순을 극단으로 표출시켜 균열된 자아를 생성시킴으로써, 자신을 해체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아무 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도 고정되지 않는 잠재성 자체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은 기관 없는 신체이다. 이러한 잠재성은 의미화, 주체화라는 안면성의 추상기계를 통해 단일한 의미, 하나의 주체로 고정된다. <I’m Not There>는 7명의 딜런을 통과하면서, 다양한 딜런, 생성하는 딜런으로 나아가는 잠재성을 그리고 있다. 이 에세이는 <I’m Not There>가 밥 딜런이라는 얼굴의 해체, 탈안면화의 추상기계를 통해 어떻게 기관 없는 신체로 나아가는 일관성의 구도를 그리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2. 밥 딜런의 얼굴을 해체하는 <I’m Not There>

<I’m Not There>는 어떻게 밥 딜런의 얼굴을 해체하고 있는가? 이 영화는 밥 딜런에 관한 영화이지만, 전기영화의 정형화된 공식과 스타일을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의 전기영화가 아니다. 먼저 내용의 층위에서, 주체의 상징과 시대적 배경의 해체를 통한 얼굴의 해체이다. 다음으로 표현기법에 있어, 실제 인물과 캐릭터의 불일치를 통한 얼굴의 해체이다.

먼저, 내용의 층위에서, 일반적인 전기영화가 죽은 인물을 대상으로 단일한 캐릭터를 통한 상징화를 목표로 하는데 반해, <I’m Not There>는 살아있는 인물을 대상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상징성을 해체하고 있다. 전기영화가 한 인물의 연대기적 구성으로 진행되는 데 반해, 이 영화가 시간대를 교차시켜 시대적 배경을 해체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전기영화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다. 이를 통해 죽은 인물의 상징화 대신 살아있는 인물의 생성을 의도하고 있으며,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고정되는 의미화 대신 시대적 배경의 해체를 통한 의미화의 해체로 나아가고 있다.

이 영화는, 우디 거스리(마커스 칼 프랭클린), 아르튀르 랭보(벤 위쇼), 잭/존(크리스찬 베일), 쥬드(케이트 블란쳇), 로비(히스 레저), 빌리(리차드 기어), 나레이터 목소리(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7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7개의 에피소드가 교차하고 있다. 백인과 흑인이, 남성과 여성이 밥 딜런으로 등장하며, 싱어송 라이터, 시인, 포크가수, 가스펠가수, 뮤지션, 영화배우, 은퇴한 총잡이가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밥 딜런의 한 때, 또는 하나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존재들이지만, 이들은 실제의 밥 딜런과의 불일치를 통해 존재한다. 일반적인 전기영화가 인물을 하나의 단일한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안면화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인종과 성, 다양한 직업을 통해 단일한 이미지를 해체하는 방식으로 탈안면화하고 있다.

다음으로 표현기법에 있어, 전기영화의 정형화된 스타일을 유형화하는 메소드 연기기법(method acting)과 달리, <I’m Not There>는 전기영화의 정형화된 스타일을 해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메소드 기법이 ‘전기영화의 안면화’의 대표적인 유형이라면, <I’m Not There>는 ‘전기영화의 탈안면화’를 시도하는 실험이다.

‘인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극중 인물과 동일시를 통한 극사실주의적 연기스타일을 뜻하는 메소드 기법은 배우의 몸이 ‘메소드’, 즉 수단이 되도록 한다. 이는 전기영화에서 실제 인물과 유사한 캐릭터를 캐스팅하고, 배우는 자신이 맡은 배역과 닮기 위해 체중을 조절하거나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메소드 기법은 외면적이며 기술적인 연기에 실제 인물과 심리적 태도를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배우가 철저히 실제 인물화함으로써 연기에 극단적인 리얼리즘을 부여하는 것이다. 즉 배우들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배역에 완전히 몰입시켜 실물과 같이 연기하는 기법으로, 알 파치노(Al Pacino),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 메릴 스트립(Meryl Streep) 등이 대표적인 메소드 배우이다.

전기영화와 이 영화의 주요한 차이점 중 하나는 “이 영화가 속임수 장르라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볼 때 우리 모두 이 속임수에 연루되는 것이다. 이 영화 역시 사실과 허구를 섞고 있는데, 당신은 농담 안에 있으며 나로 인해 웃음으로 초대받은 것이다.” 토드 헤인즈. 영화적 허구란 명백한 진실이지만, 실제 인물·사실과의 일치를 통해 이 진실을 은폐하려고 하며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영상의 미덕으로 간주된다. 한편, 이 영화는 실제 인물·사실과의 불일치를 통해 영화적 긴장을 의도하고 영화적 허구를 드러내어 관객들을 속임수와 농담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메소드 기법이 실제 인물과의 동일성을 목표로, 실제 사실에 영화적 허구를 일치시키려는 방식으로 안면화하고 있다면,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밥 딜런과의 의도적인 불일치와 영화적 허구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탈안면화하고 있다.

3. 탈안면화의 추상기계, <I’m Not There>

<I’m Not There>에서 탈안면화의 추상기계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하나는, 인종의 추상, 성의 추상, 직업의 추상이라는 밥 딜런에 관한 세 가지 형태의 추상을 통해 형식 자체를 추상하는 추상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시대가 부여한 의미화를 해체하는 탈의미화와 자신의 정체성, 대중의 시선을 해체하는 탈주체화 방식의 추상이다.

먼저, 형식 자체의 추상. <I’m Not There>에서 흑인(마커스 칼 프랭클린)이 인권운동가로서 밥 딜런을 상징하고, 여배우(케이트 블란쳇)가 음악적 변신으로 비난받는 뮤지션으로서 밥 딜런을 연기하고, 가수에서 시인, 영화배우, 총잡이 등 다양한 직업군이 밥 딜런으로 등장한다. 7명의 딜런은 밥 딜런에게서 나왔지만, 그에게 고정되지 않는 개별성을 넘어서 일반성을 지향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특히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쥬드 캐릭터는 처음부터 여배우에 의해 그려질 것이며 실재하는 딜런과 가장 근접한 인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추상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흑인이 연기하는 딜런은 굳이 흑인일 필요가 없는 백인이거나 흑인이어도 상관없으며, 여배우가 연기하는 딜런은 여성성을 표현하기 보다는 남성이거나 여성이어도 상관없는 성적 변이를 표현하고 있으며, 가수이거나 가수가 아닌 다양한 직업으로 등장하는 딜런은 직업적 특성보다 어떤 직업군이어도 상관없는 다양성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흑인이나 여배우, 다양한 직업들은 그것들의 고유한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 그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흰 벽/검은 구멍의 체계로서 안면성의 추상기계가 작동하여 백인 중년 남자의 평균적인 얼굴로 안면화하는 공통형식의 추상방식과 대립한다. 인종과 성과 직업을 추상하는 탈안면화의 추상기계를 작동하여 오히려 백인 중년 남자인 가수 딜런의 얼굴을 해체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하나의 형식으로 고정하려는 시도를 거부하고 절대적 추상화를 따라가고 있다.

다음으로, 탈의미화·탈주체화하는 추상. <I’m Not There>에서 밥 딜런은 저항의 아이콘이나 시대를 거부하는 음악적 변신, 혹은 대중과 종교에 심취하는 뮤지션 등으로 등장한다. 이들 캐릭터는 시대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화되지만, 오히려 시대에 고정되지 않고 자신의 시대가 부여한 상징을 넘어서는 탈의미화의 수단으로 그려질 뿐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 밥 딜런은 대중적 시선에 의해 상징화-해체를 거듭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의해 균열-정립을 되풀이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마찬가지로 이들 캐릭터는 대중과 자아와의 관계 속에서 주체화되지만, 오히려 대중과 주체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음악적 특이성을 넘어서는 탈주체화의 양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영화는 의미화와 주체화 사이에서 양자를 작동시키는 안면성의 추상기계를 통해, 시대의 중심화된 지배적 관계에 의해 의미화되고, 타자의 시선과 자신의 정체성에 의해 주체화되는 방식을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탈의미화, 탈주체화하는 탈안면화의 추상기계를 작동시켜, 시대와의 관계를 통해 탈의미화하고 대중 혹은 자신의 시선을 통과하면서 탈주체화하는 양자의 절대적 탈영토화의 선과 함께 얼굴의 해체로 나아가고 있다.

“(의미화 지층의 탈지층화 운동은) 진정한 생산으로 만들기 위해 무의식을 의미화와 해석으로부터 떼어내는” 실험이다. 또한 “(주체화 지층의 탈지층화 운동은) 의식을 주체로부터 떼어내어, 끊임없이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가거나 버려진 땅에 달라붙어 그것을 다른 종류의 공간으로 변환시키는” 유목주의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밥 딜런이라는 하나의 상징을 의미화의 지층으로부터 떼어내는 탈의미화의 실험과, 하나의 의식을 주체화의 지층으로부터 떼어내는 탈주체화의 유목주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4. 딜런의 너머에 있는 천의 딜런을 위하여

결국 <I’m Not There>에서 밥 딜런이라는 얼굴의 해체, 탈안면화의 추상기계를 통해 도달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일반적인 전기영화의 공식을 해체하고 정형화된 스타일로 안면화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비정형화된 스타일을 통해, 그리고 인종과 성과 직업을 추상하고 나아가 시대의 중심화된 의미와 의식적 주체를 해체하는 작업을 통해, 이 영화는 순수 잠재성 자체로서 기관 없는 신체, 일관성의 구도로 나아가고 있다.

어떤 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잠재성, 질료화된 입자의 탈영토화된 흐름으로서 기관 없는 신체는 단일성을 해체하는 다양성과 고정화를 거부하는 변이·생성이다. “이 영화는 사실과 허구를 섞고 있으며, 동시에 허구를 한번 더 밀고 나아가는 것 그게 논지를 입증하는 창조적인 선택이란 점, 그건 의심할 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토드 헤인즈. <I’m Not There>는 사실과 허구을 섞는데 그치지 않고 허구를 한번 더 밀고 나감으로써 모든 형식화된 사실을 추상하여 새로운 창조, 다양성과 변이·생성에 이르고 있다.

밥 딜런이라는 얼굴의 해체를 통해 밥 딜런은 하나의 이미지를 넘어서고 있으며, 살아있는 밥 딜런은 여전히 생성하는 존재이다. I’m Not There. But They are all Bob Dylan. 7명의 딜런은 누구도 밥 딜런이 아니지만 그들 모두가 밥 딜런으로 존재한다. 동시에 밥 딜런이라는 얼굴의 해체를 통과하면서, 우리는 잠재성 자체로서 기관 없는 신체에 도달하고 있다. 도처에 존재하고 항상 근원적이고 내재적인 잠재성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삶 자체에 항상-이미 내재하는 현실성으로서의 잠재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관 없는 신체 상의 긍정적이고 절대적인 탈영토화의 가능성으로서 일관성의 구도를 포착한다. 일관성의 구도란, 모든 종류의 형식을 벗어난 개념이고, 상이한 형식을 가로지르며 그것들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탈형식적 통일성(일관성)을 형성한다. “상대적 진보는 복잡화에 의해서보다는 형식적·양적 단순화에 의해서, 구성요소와 종합의 획득에 의해서보다는 차라리 그것의 상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I’m Not There>에서 상이한 형식을 가로지르는 탈형식적 일관성은 하나는 그의 음악으로, 다른 하나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딜런들이 발을 튕기는 순간으로 표시된다.

이 영화가 오로지 확실한 ‘밥 딜런의 영화’라는 점은 그의 노래가 끊임없이 울려퍼지고 있다는 것뿐이다. 한편, 영화 속에 사용된 노래도 밥 딜런의 대표곡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노래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표성과 상징성을 또 한번 해체한다. 또한 “영화의 모든 딜런들은 발을 튕기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이 동작이 그들을 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이어주는 좋은 방법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토드 헤인즈. 인종과 성과 직업이라는 형식적 요소들을 상실하면서 ‘발을 튕기는 순간’에서 형식을 가로지르는 일관성을 그리고 있다. 이 순간 역시 그것이 특별한 의미나 주체의 특성을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는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토드 헤인즈의 농담과 웃음으로 초대받고 있다.

이제 하나의 딜런, 하나의 이미지는 없으며, 다양한 딜런, 생성하는 딜런으로서 ‘다가오는 모든 것을 향해 열려있는 다양성과 변이의 순수 잠재성 그 자체’가 존재할 뿐이다. 밥 딜런의 얼굴은 해체 되었으며,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하나의 딜런이고 그로 인해 획득할 것은 모든 딜런, 천의 딜런이다. I’m Not There. But We are all Bob Dylan.

*참고자료 : <I’m Not There> 토드 헤인즈, 『노마디즘』 이진경, 『불안한 것들의 존재론』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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