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성공회대 노숙모임 – “꿈꾸는 슬리퍼” 정훈이의 고민이래요.

- 정훈

우리는 이렇게 활동했었다.

2009년 가을, “방 구할 돈 없으니 학교에서 살아보자”며 시작된 “성공회대 노숙모임 – 꿈꾸는 슬리퍼”의 이야기는 2013년 4월 8 – 11일까지의 전시회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후의 꿈꾸는 슬리퍼의 활동들은 고민 중이지만, 학교 공간에서의 활동은 정리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빈곤 문제를 사회에 드러내고, 가난해도 보다 여유로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실험하고, 빈곤에 저항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텐트 마을’을 비롯해, 2주에 1만원의 돈으로 3끼 밥을 해결할 수 있는 ‘밥 모임’, 돈 없이 영화 보기를 통해 지역주민을 만나고 싶었던 ‘작은 영화관’, 돈 없이 예술하기, 당사자의 고민을 드러내는 참여형 미술 프로그램 – ‘항동아트쎈타’, ‘농사짓기’,우리들의 노동 이야기를 풀고 싶었던 ‘거리식당’, ‘잡지 몽슬’ 등의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하였다.
빈곤, 주거의 문제를 사회에 환기시키고자만 했던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활동을 통해 다양한 빈곤의 당사자들을 만나고 싶었고, 대상화되며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린 빈곤의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자신들의 문제를 풀어내고, 우리와 함께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언어를 지킬 수 있는 공간인, 일상의 공간에 주목했다. 우리의 활동의 무대는 우리의 일상 공간인 학교와 그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공간들이었다.
빈곤의 문제가 쉽게 해결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길고 길 빈곤과의 싸움에서 “가난뱅이가 더 가난뱅이답게 살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노동을 강제하는 사회에서 노동을 좀 더 쉽게 거부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면, 우리를 강제하는 힘에서 좀 더 쉽게 벗어나 저항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고민들 속에서 다양한 활동들이 기획되었고 실천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진행되던 우리들의 3년간의 활동들이 마무리 되었다.

(……)

그런데 이 글은…

갑작스러운 고백일 수 있겠지만, 그 시간동안 우리는 많이 지치고 힘들었다. 그래서 그 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를 고민하는 중이다. 많은 고민들 때문에 시간을 두고 정리를 할 생각이었는데 갑작스레 이 글을 부탁 받았다. (…….) 그래서 고민을 안고 이 글을 쓴 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우리 활동의 성과

처음 텐트를 치고, 빈곤의 이야기를 꺼내보자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과연 그렇게 해서 “빈곤의 당사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리고 스스로도 많은 고민이 들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우리는 우리의 활동을 통해 다양한 지역의 빈곤 당사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만나는 것을 넘어서 관계맺음에서도 훨씬 더 평등한 관계(너도나도빈곤)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들이 진행하던 다양한 활동(특히 텐트)들은 우리에게 일종의 “자기소개”가 되어주었고, 이 것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낮은 수위의 네트워크지만 우리는 우리의 공간에서 폭 넓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관계는 “빈곤”이라는 주제 속에서 연대하는 관계였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계맺음은 우리가 지향했던 반계몽, 반권위주의적 관계였다. 우리의 방식은 누군가에게 “당신이 문제가 있다면, 나를 지지하라” 따위가 아니였다. 당신과 나는 같은 고민 속에서 “친구”이자, “함께 연대 할 수 있다” 는 관계였다.(어떤 관계는 정말 그러했다.)

하지만, 성과의 부분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진행한 몇몇의 모델들은 실패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관계의 확장이며, 그렇게 모인 당사자들이 직접 힘을 가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것은 활동이 지속 될 때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우리의 활동이 무엇을 남기고 어떤 성과를 만들지는 현재로서 이야기하기 힘든 것 같다.

고민

다양한 관계들을 “빈곤”이라는 주제로 만날 수 있었음도 우리들은 계속 지쳐갔다. 그런데 대부분 모임 안에서의 문제들이 우리를 지치게 했다. (노숙모임은 열린 모임을 지향했기 때문에 다양한 맴버쉽(?)을 가진 구성원들이 노숙모임을 거쳐 갔다.)

모임의 구성원들도, 우리가 만나고 싶고, 만난 지역의 사람들도 사회적 소수자(약자)인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지향은, 우리 역시도 소수자이고 그들과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서로 평등하게 만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언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표준어”를 정하는데 있어서 반대했다. 각자의 언어, 표현방법은 개인의 배경 속에서 형성된 “존중되어야 할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서로 생소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처음 만난 것 처럼, 서로 각자의 언어들을 가지고 손짓 발짓하며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언어를 나누는 태도”만을 중요하게 생각 했었다. 개인적으로 아직도 옳은 지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평등하고 평화롭기(?) 위한 시도”가 예기치 않는 폭력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우선, 개인이 다른 개인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한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배경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이것은,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어떤 사람의 언어는 이해하기 쉽고 명쾌하지만, 어떤 사람의 언어는 너무 난해하며, 솔직하지도 않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 기껏 했던 이야기가 내일은 거짓이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서로의 언어를 지속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감정노동”을 발생시켰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 명의 활동가들만이 이 역할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선택(?)되어 이 역할을 도맡게 되며 이 역할을 맡게 된 활동가들이 지치는 문제가 발생했다.(지역의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또, 서로에 대한 이해를 전체가 함께 나누지 못하게 되다보니, 서로에 의한 소외 문제가 발생했다.(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또한, “말하기 태도”에 대한 우리의 합의가 실천의 영역에서는 너무 어려웠던 문제도 있었다. 어떤 사람의 말하기 방식은 소통을 잘 이끌어내는 말하기 방식인데 반해, 어떤 이들은 그런 것들을 잘 못했다. (우리는 대표를 두지 않고, 서로 돌아가며 회의(매주)를 진행하는 방식을 채택했었다.) 이것은, 지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회의 진행자의 역량에 따라 모임 분위기가 좌우되는 문제가 자주 발생했다. 우리가 지향했던 자율적이고 평등적인 모임은, 능동적인 주체들의 모임이었지만, 개인들의 능력에 의존하고 그것이 구조화되면서, 자율적이고 평등하고자 했던 지향이 무색해진 면이 있다.

후에, 모임안의 문제를 풀기 위해 강령을 만드는 노숙모임에 어울리지 않는 노력도 해보고, “세미나”나 “모임 내 간담회”, “총회” 등의 소통을 위한 시도들은 계속 되었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소통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만 깊어질 때가 많았다.

또한, 노숙모임은 권위주의와 계몽주의에 대한 반대를 지향으로 가지고 있었다. 타인을 대상화 하지 않고, 권력에 의해 차별지어진 사회적 약자인 우리들이 평등하게 연대할 수 있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의 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권력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 할 수 있었다. 물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이중성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구조의 모순을 안고 살아가니깐)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주체성을 다시금 의심하게 하는 문제였다. (우리는 주체가 아닐 수밖에 없지만, 주체적이길 지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모임을 통해 만난 친구들 중에는 배제의 기억 속에서 상처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노숙모임은 반권위주의를 이야기하며, 이들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푸는 공간으로만 노숙모임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권위적 관계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의 해방구가 되었지만, 이들은 책임지는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데서 해방을 느끼지만,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이러니 소통이 잘될 수가 없었다.) 또한, 모임 활동가들이나, 모임의 권위(?)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많았다. 책임을 함께 해서 만들어간 활동이 아님에도, 그 결과물만을 권위적으로 이용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었고, 권력에서의 배제 된 상처를 권위에 의존하며 타인을 배제하는데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것이 현실에서 나타나 부딪히게 될 때는 정말 힘든 일들이었다.

우리는 자율적이고 평등한 관계로서 사람들을 만나 함께 활동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들은 활동에 있어서 자율적이지 않았고, 주체적이지 않았으며, 우리 모임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우리에게 기대고 싶어 했다.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거니 좋아해야하나? 하지만, 활동을 함께 하는 관계로서는 바람직한 관계가 아니었다.

모르겠다. 지치지 않고,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기억이 이렇게 떠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과 좀 더 오래할 힘이 있었다면, 우리는 다른 관계를 맺지 않았을까 싶다. 그 때는 좀 더 희망찬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텐데! 내가 지친 것이 아쉽다. (?!)

모르겠다. 일상공간에 평화를! 일단, 난 내 공간에서 생존을! 그런 활동을 더 고민하고 싶은데 힘이 안난다. 그래서 아직은 좀 더 쉴 생각이다.

(노숙모임은 학교 안 활동을 정리하고, 이 후 활동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응답 1개

  1. 바카스말하길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보니 경험하신 일화들이 더 듣고 싶네요. 텐트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도 참 궁굼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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