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최전선

추억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릴 때 당신은

- 별집사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6쪽)

<앙드레 고르, D에게서 온 편지>

내 뼈가 으스러질지라도

시아버님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 건 작년 추석 이후였다. 그 전에는 스스로 몸을 가누고 앉아있으실 수 있을 정도였는데 추석 때엔 아예 몸을 일으키지 못하셨다. 요번 설에는 함께 식사를 할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다. “수안아 이게 누고? 숙모 아이가.” 마흔 넘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우리 부부가 대견해서인지 조카 수안이에게 나를 가리키며 수십 번도 넘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그 말씀을 듣지 못한다.

수십 년 간 수영으로 단련해 왔던 아버님의 몸도, 신문이나 시사 잡지, 두꺼운 책으로 가꿨던 정신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내가 몬 살겠다. 왜 그걸 그렇게 하냐고!” 아버님의 뜻 모를, 철없는, 아이 같은 행동 덕에 듣게 되는 말씀이다. 대구 시댁에 내려갈 때마다 들었던 농담대신 어머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시어머님은 전원주를 꼭 빼닮으셨다. 웃음소리도 그렇고, 작은 몸도 그렇다. 전원주 닮은 시어머님의 웃음소리가 작아진 것도 작년 추석 이후다. 아버님은 최근 치매와 척추협착으로 장애등급을 받으셨기에 나라에서 지원을 받아 작년 말부터는 하루 몇 시간 동안을 방문 간호를 받으신다. 워낙 지극 정성으로 아버님을 챙겨 오신 어머님은 도움의 손길이 아직은 익숙하지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하셨다. 아버님의 굳어진 육체를 요령 있게 다룰 수 있는 건 오로지 시어머님이시다. 175cm의 큰 키와 76kg의 건장한 몸은 더 이상 어머님에게는 든든함과 자랑거리가 아니다. 대소변을 못 가리셔서 생기는 매일 매일의 산더미 같은 이불 빨래와 무엇이든 자신의 뜻대로만 움직이시려는 고집이 어머님의 몸무게를 야금야금 가져간다. 이 낯선 상황 속에서 온전히 노부부가 견디고 있다.

우리가 해 드릴 수 있었던 일은 몇 통의 안부전화, 요양 서비스 신청, 몇 푼의 용돈과 선물을 드리는 것. 이것들 외에는 고스란히 어머님 몫이다. 남편 병수발 15년에 자신은 허리뼈에 여러 군데 금이 간 것도 모를 정도로 온힘을 다했던 김상옥 시조시인의 부인처럼 그렇게 으스러져라 간호하신다. 사려 깊고 따뜻했던 아버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지금의 어려움을 버틸 수 있는 지지대가 되는 게 아닐까. 내가 대구가 아닌 서울에 떨어져 있어서 병간호에 열외가 된 게 아니라 어머님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칠지라도 아버님 간호는 다른 사람 손에 절대로 맡기지 않으실 것 같다. 매일매일 하얗게 세탁되는 아버님 옷들이랑 이불 빨래가, 아버님 입에 딱 맞게 최적화된 콩잎 장아찌, 곰국, 호두멸치볶음 등등의 여러 가지 정성스런 음식과 간식이 그 증거품이다.

무너지는 당신을 볼 수가 없어서

“다시는 날 병원에 보내지 마. 죄책감 갖지 마, 날 위해 애쓰지도 말고.” 영화 ‘아무르’에서 아내 안나가 남편 조르주에게 첫 번째 뇌졸중으로 병원에 다녀온 이후에 하는 말이다. 거실 의자에 앉는 작은 움직임조차도 혼자의 힘으론 할 수 없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남편에게 안긴 후에 힘겹게 몸을 걸치게 되는 의자, 더 이상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게 된 손,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은 자존심. 그래도 남편에게는 다 보여줄 수 있다.

“축축하게 젖었네.”

“별거 아니야.”

대소변을 못 가리게 된 아내의 자존감을 생각해서 조르주는 담담하게 말하고 수건으로 닦아준다. 머리를 감겨주기도 하고, 신문을 읽어주기도 하고, 밥을 먹여주고, 음악을 들려주고, 설거지하고, 물을 먹여주고, 두 명의 간병인을 쓰고. 남편 조르쥬의 한결 같은 보살핌과 정성에 상관없이 시간이 갈수록 안나의 상태는 점점 나빠진다. 요양소에 절대 보낼 수 없다는 남편의 마음이, 이웃이 존경스러워하던 그 마음이, 물 한모금 안 먹고 어린아이처럼 뱉어내는 안나의 뺨에 손을 대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조르쥬는 꿈 속에서 아파트 복도가 물에 잠기는 고통을 맛보기도 하고, 안나가 다시 피아노 연주를 하는 환상을 보기도 한다. 두 사람만 남아 견디는 상황이 그 꿈처럼 무서웠을 테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수백 번의 간절한 생각이 연주하는 환상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안나가 아프다고 소리를 칠 때, 조르쥬는 옆에 와서 다정하게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열 살 때에 캠프에 갔던 어릴 적 기억을.

“캠프가 마음에 안 들면 어머니께선 엽서에 별을 그리라고 했지. 내가 보낸 엽서에 온통 별이었어. 그 엽서를 잃어버려서 너무 아쉬워.” 결국 조르쥬는 안나와의 생활이 매 순간 별을 그려야하는 엽서처럼, 지옥처럼 되어버릴 까봐 두려워서였는지 결국은 일을 저지르고 만다. 가장 두려운 것은 변해가는 자신의 괴물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가볍게 시작된 안나의 오른쪽 마비 증상이 점점 온몸으로 번져나가 자리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처럼, 그렇게 점점 고약하게 달라져 가는 자신을, 자신의 고통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아내를 절대로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고, 보살펴 지키겠다는 절절한 사랑과 용기가 살인으로 변질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마지막에 조르쥬는 안나(이미 죽은)와 함께 코트를 입고 외출을 한다. 조르쥬는 이미 안나를 빼놓고서는 다른 생활을 해 갈 수가 없다. 조르쥬는 안나가 없는 세계가 무서웠지만, 이제는 안나가 있어서 무서운 세계로 바뀌었다. 조르쥬는 감당할 수 없는 세계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함께 쌓아올렸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름다웠던 상대와의 추억이 점점 사라지는 것도 감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상대가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모습은 더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는 점점 최악의 상황으로, 온전히 한 사람이 주위의 아무 도움 없이 다른 한 사람을 챙겨야하는 절박한 상황으로 내몬다. 이 상황에서 이제 나에게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질문한다.

당신과 함께 떠나는 여행의 끝을 몰라

‘D에게서 온 편지’에 고르는 도린이 얼마나 아름답고, 현명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는지, 남편보다도 더 뛰어난 이성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고백하고 있다. 두 사람의 영혼의 교류와 사랑은 고통까지도 함께 나누고픈 경지에 이르게 했다. 도린은 거미막염과 자궁암을 앓고 있었다. ‘밤새도록 발코니에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을 만큼 통증이 심했지요. 우리 둘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고 믿고 싶었는데, 당신만 혼자 그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79쪽)

젊은 시절에 고르가 수입이 적은 기자 생활을 하며 글쓰기를 하는 동안, 도린은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남편의 기사 작성을 위해 자료 정리와 조사를 했다. 옆에서 남편을 돕는 도린은 철학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고르의 저서에는 도린의 비판과 견해가 녹아들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과 저서에 도린의 이름이 언급되거나 모습이 드러나지 있지는 않았다. 그것이 미안해진 남편이 저술하게 된 이 책. 바로 고르의 마지막 책이다. 마지막 저서를 쓸 때까지 고르는 도린이 있어서 발전했고, 완성되었다. 도린도 마찬가지였다. 결혼한 지 58년 만에 이 부부는 시골집에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주사를 맞은 뒤 이생을 함께 떠났다. 둘은 세상을 떠났지만 이 책 속에서 영원히 아름다운 부부의 한 모델로 남아 있다. 나는 이 부부가 선택한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함께 하면서 나눴을, 서로를 풍성하게 해주는, 서로를 아름답게 살리는 사랑은 닮아 보고 싶다.

늙음은 피할 수도 없고, 이겨낼 수도 없는가. 늙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다. 젊어서 싱그러웠고, 팽팽하고, 탄력 있던 기억들이 남아있는 한은. 그 누구도 늙음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르’를 보면서 무거워지는 물음 때문에 다시 시어머님과 시아버님, 앙드레 고로와 도린을 보았다. 나는 뭐라고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어떻게 부부가 사랑해야 하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 버겁다는 것만을 더 잘 확인했을 뿐이다.

복잡한 마음으로 마트에 갔다. 오징어채 옆을 지나는 순간 며칠 전부터 남편이 먹고 싶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맛있게 먹어줄 남편 얼굴을 상상하며 장바구니에 넣는다. 반찬 하나 만드는 데에 재미를 붙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저녁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남편을 기다릴밖에. 다른 방법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더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90쪽) <앙드레 고르, D에게서 온 편지>

응답 1개

  1. 서촌댁말하길

    나이드는건 정말 자신 없어요, 암만 생각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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