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삶의 의욕상실을 마주하다.

- 말자 1

얼마전 퇴사를 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어서 모든 것이 첫 경험(?)인지라,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른채 2년 4개월을 보냈다. 퇴사 역시도 생애 최초의 경험이다 보니,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퇴사를 하는 것이 마치 회사의 사정과 스케쥴에 피해를 끼치는 것마냥 이야기하기도 하고, 통사정을 하기도 하는 통에 (그럴 필요없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몸둘 바를 모르기도 하였지만서도, (그럴 필요가 다소 있어보이는) 무엇보다 대책없이 그만둔다는 점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간의 여러 어려움이나 사정으로 퇴사하기로 마음은 먹었으나, 막상 그 다음이 잘 떠오르지 않아 불안했던 것이다. 그려진다는 미래가 그다지 지금보다 훌륭할 것 같지도 않고, 할 일 없음에 전전긍긍 불안에 떨거나 내가 왜 그랬지하며 자책하고 후회할까봐 두려웠다. 이렇다 할 대단한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안적 비전이나 나만의 구체적 행동강령(?) 있는 것도 아니며, 소시민적 가정사 덕분에 부빌 언덕조차 없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건강한 내 맨 몸 하나 외에는 가진 것이 참으로 없었다. ‘하~….’하고 깊은 숨을 내쉬고 나니, 문득 가진 것도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배짱 좋게 들었다. 무엇을 하든 삶의 어느 측면에서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고, 내가 의미있었다 평가하면 의미있는 삶의 바탕이 되어줄 시간들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자기 위안으로 나의 첫 ‘퇴사 후’가 시작되었다.

공식 백수 오일째. (주말빼고 ㅋㅋㅋ) 백수 첫 날엔 책장정리를 했다. 나중에 혼인하면 다른건 몰라도 서재만은 천정도 높아야 하고, 도서관처럼 책장도 벽 한켠에 칸칸이 세워두어야 하며, 좋은 나무로 된 책상과 편안한 의자도 가져다 두고, 그 위엔 지구본을 빼놓지 않고 올려놓으며.. 등등의 구체적인 이미지상이 있을 정도로 잘 꾸며놓고 공상하고 싶은 나만의 공간이 서재이다. 스물 후반이 되어서도 부모님집에 아직 얹혀 사는 나로서는 내 책상이 놓여있는 두어평의 그 공간이 바로 예비 서재나 다름없었다. 학창시절동안에도 책상을 얼마나 애지중지했었지, 책상에 놓여있는 영수증 하나도 의미를 두고 올려놓은 경우가 있어 엄마가 책상 위에는 쓰레기가 놓여있어도 정리하지않았다. 취직하면서는 나의 꿈의 공간을 포기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돌아보니 2년 4개월동안 책상에 앉은 기억이 별로 없었다. 그만큼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나의 가까운 미래를 계획하거나, 공상하는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을 둘러댈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주 오랜만의 책상과의 조우를 몹시 기껍게 맞이하고, 더불어 식구들이 먹은 뒤 놔두고 학교를 가거나 출근한 뒷 설거지 및 집정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 내일하는 시급한 기획서작성, 담당업무의 진행, 야근 등 내 바쁨과 고생스러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우리식구들의 고생스러움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나마 나는 이제 백수라 좀 쉴 수 있는데, 여전히 쉬지 못하는 우리 식구들의 바쁨과 고생스러움을 보면서 안쓰러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청소와 설거지의 손길이 성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우리 가족은 행복할까?

둘째날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커피숍으로 향했다. 오후에 친구와 함께 미용실에 가기로 하고 그 사이시간동안 그간 너무 너무 너무 너무나 미루어 두었던 영어공부를 좀 할까해서였다. 나는 학창시절엔 영어공부를 좋아하고, 영어를 말하는 내 모습을 사랑했으며, 그래서 학부 때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교직을 이수했다. 여러 이유로 교사의 꿈을 접은 뒤 사무행정직으로 일하면서는 그마저의 영어 실력도 다시 미끄러져 내려갔다. 왠지 ‘영어’로 귀결되는 중고등, 대학까지의 내 학창시절이 다 물거품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의 영어공부는 그간 풀죽었던 내 학습욕을 자극했다. 영어문장이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내내 깡통소리가 ‘깡깡’하고 났다. 쉬는 동안 공부를 좀 해야겠다고 다짐했으며, 그리고 묶었던 머리카락을 잘라내었다.

셋째 날엔 서점엘 가서 시몬베유의 ‘중력과 은총’이라는 책을 샀다. 페이스북에서 누군가 공유해놓은 글을 보고, “사람들은 이상과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갈팡질팡하며, 괴로워한다. 언젠가는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은총을 기대한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진리는 우리가 그러한 현실이라는 중력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상하는 대신 사실을 간파하고, 중력을 이기며 은총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라는 뉘앙스의 책의 내용이 마치 나의 이야기인양 당겨 (사실 누구라도 자신의 이야기라 느낄 터이지만)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마지막 직원회식에 함께하지 못한 직장 최고 상사가 사주는 점심을 먹으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 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굉장한 피곤함이 밀려오며, 그간 어떻게 버티며 일을 하였는지 내가 너무 대견하기도 하고, 사람 사이에서 나 자신을 너무 혹사 시킨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였으며, 어쨌든 사직서 한 장이 그렇게 기특하게 여기질 수가 없었다. 그러고나니, 이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다. 집으로 일찍 돌아와서는 나의 돌봄이 가장 필요한 엄마를 비롯하여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매일의 야근과 주말 투잡 등 자주 안마주치니 데면데면해진 가족과 대화를 다시 시작하고, 안식처로서의 기능은 어느새 상실하고 하숙집으로 전락하였던 북한산 자락 나의 집으로 돌아와 그 속에서 편히 쉬기 시작했다.

넷째날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일을 보냈다. 모두가 출근하고 아무도 없고, 동네마저 고요한 늦은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벌떡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아니하고, 눈만 말똥말똥 뜨고 누워 마음껏 천장을 바라보았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살랑 들어오는 바람소리, 참새소리, 햇볕이 포근하게 타오르는 소리, 아침 흙냄새, 가끔가다 지나는 사람의 발소리 등 내 생활의 터전이었던 도시의 소리와 냄새를 비로소 맡아볼 수 있게 되었다. 시간과 차분함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다 오늘은 몸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누웠다가 자전거를 한 5분타러 나갔다가, 귀퉁이에 피어있는 노란 민들레를 앉아서 쳐다보다가, 지난 11월부터 그마저 의욕을 상실해버렸던 운동을 좀 다시 해보기도 하였다. 정말 엄마가 그토록 걱정하는 날것의 백수적 삶이었다. 그러나 삶의 속도를 늦추고, 무엇인가를 계획하지 않고 시간을 관리하지 않고 시간을 ‘소비’하자, 의욕과 활기가 다시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앞으로의 내 삶의 시간이 ‘재충전’되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친구집에 놀러가기로 했다. 부러 서둘러 출근길 사람들과 동행을 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가, 지하철 사호선을 타고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를 갈아타고 가는 여정이었는데, 출근대열 속에 속해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보니 그간 그 속에 함께 섞여있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단 한번뿐인 ‘오늘’의 아침의 귀함은 잊은채 무표정으로 낯선 사람과 부대끼거나 늦을까 불안으로 전전긍긍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닫히는 지하철문을 향해 뛰는 사람들,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지하 7층에서 지상1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야하는 바람에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와당탕탕 쏟아져나와 우다다다 경주아닌 경주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울리는 땅의 진동을 느끼며 조금 비켜서있으면서 그들은 질주하는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드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뛰고 있으면서 자신이 뛰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겠지.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향해서 뛰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겠지. 얼마전까지 그들과 다르지 않았던 내가 그랬듯이.’
그들 중에 한명이었던 나도 이따금은 이것이 과연 멈출 수는 있는 레이스일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태어나서부터 입시지옥, 스펙관리, 취직지옥, 장래걱정 등 질주하지 않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래서 멈추는 방법을 모를뿐더러, 멈춤 뒤에 오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계속 뛰도록 했던 것 같다. 삶의 목표와 행복추구를 하더라도 일단은 느리게라도 뛰면서 해야지, 멈추면 정말 낙오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멈추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를 두고 뛰어나가는 사람들의 뒤에서 그들을 뛰도록 뒤쫓는 것의 실체를 비로소 볼 수 있었으니까. 그것은 불안이었다. 갖은 자에게는 잃을까 하는 불안, 없는 자에게는 더 없을까하는 불안. 우리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뒤쫓는 것은 불안이라는 죄수의 딜레마였다.

삶은 어떤 것이어야할까. 이십대 후반의 신체 건강한, 삶의 목표가 넘쳐나야 할 나는 하릴없이 지하철을 서성거리는데, 저 허리굽은 노인은 어떤 목표를 향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 이른 아침부터 김밥과 떡을 이끌고 나와 팔고 있다. 이천원짜리 꼬마김밥냄새와 노인의 애씀이 참 맛있고 내 삶에 좋은 영양분이 되고있는 느낌이 들었다. ‘귀농으로 억대 연봉벌기’리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책광고도 눈에 띈다. 귀농과 억대연봉, 결국 누군가가 내 놓은 대안들도 결국엔 자본이 잠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칠흙같은 밤하늘에 불빛 약한 별처럼 희망같이 느껴졌던 대안들도 서비스화 되고, 자본의 가치로 매겨지고 하고 말거라는 예고편처럼 느껴졌다. 무심코 바라보고 있던 뉴스의 내용들이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심기 위해 반복학습을 시키기 위한 학습교구내지 확성기처럼 느껴졌다. 살다보면 이런 때도 필요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삶의 방식을 방해없이 마주하고 생각해볼 때와 잃은 것과 얻은 것을 열거해볼 한두시간 정도의 시간과 영혼이 쫓기지 않을 시간이 말이다. 그리고 나면, 소소로운 것들로부터 우리의 삶을 움직여가는 보이지 않는 힘까지 크고 작게, 새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모든 20대의 퇴직을 종요하는 것은 아니나, (뭐 그다지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사실들이 그다지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을수도 있고..) 내가 점점 느껴가고 있는 내 하루의 재미와 내 하루의 소중함, 하루를 산다는 것의 재미를 모두가 얼마간은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퇴사 천명(?) 시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아했던 부모님을 포함한 내 주변의 어른들과는 달리 내 마음과 처지를 자신들의 처지를 바탕으로 온전히 이해하고 지지해주었던 친구들 덕분에 마음 편히 그간 못 누렸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이전 세대와 다른 모습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지금이 20대들의 진정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삶의 지향이 무엇인지, 방법적인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쫓기지 않고 고민하는 한가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과정 속에서 일이백여만원의 돈과 사무실 동료, 실무력은 잠시 잃을지 모르나, 20대 오늘이라는 시간과 삶의 정리정돈, 관찰력과 경청, 관계의 회복, 의문과 의심으로 시작하는 진실에의 추구, 대안에 대한 욕망, 무엇보다 ‘나’를 찾게 될 것이다.

정말 회사를 사직하는 것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 만큼 힘들었던,
행복하고 싶다는 열망만 있을 뿐 돈없고, 빽없고, 구체적으로 그리는 직업상이 없는 나에게
후회할 것 같아, 작년부터 계속 미루어오다 드디어 이루어 내고만 숙원사업 퇴사!
사토리세대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기존의 것들에 대한 욕망과 의욕을 삶의 전과정을 통하여 상실했기 때문에
진짜 내 행복이 무엇인지 모색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상식을 이야기하는 비상식적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비상식을 이야기하는 상식적인 내가 되는 시간을 모두가 만끽하길 바래본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