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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반시대

공장도 돌리고 기타도 칩시다

- 지안

콜트콜텍에 대한 소개

“공장을 돌려라” “기타를 쳐라”라는 문구가 콜트콜택의 이 긴 싸움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지난 2007년 부평의 콜트공장과 대전의 콜텍공장이 경영난과 노사갈등을 이유로 폐업을 감행했다. 정리해고 당하던 날, 해고노동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다가 공장 문에 붙어있는 해고통지서를 읽었다고 한다. 해고의 근거도 문제이지만 그 통보에서부터 이루어진 몰상식한 행동들은 2010년 콜트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방종운 지회장을 회사차량으로 상해한 사건으로 이어지고, 동아일보는 콜트콜텍 투쟁에 대해 허위기사를 싣기도 한다. (3년의 싸움 끝에 정정기사를 내리라는 판결을 받는다.) 얼마 전에는 예고 없이 경찰과 용역들이 들이닥쳐 노동자들의 공장이기도 하며 예술가들의 작업실이기도 했던 콜트공장을 철거했었다. 해고 이후로 7년 동안 해고노동자들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비상식적인 사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강 송전탑에 올라가기도 하고, 생계를 위해, 기타 만들던 손으로 콩과 고추를 심어 고추장을 만들기도 하고, 고추장 판돈으로 해외 원정 투쟁을 떠나기도 하고, ‘콜밴’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연주를 하러다닌다.

예전에 빵집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장난으로 짤라볼테면 짤라보라는 말을 했을 때, 같이 알바 하던 매니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알바생이 짤린다는 게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너 막상 짤리면 기분 되게 더러울걸?”이라고. 그때 우리는 막 웃었었지만 나는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해고’라는 것에 대해서.
얼마 전에 ‘정리해고’가 주말 예능 프로 <무한도전>의 꽁트 무한상사에 등장했었다. 이것이 주말 프라임타임 예능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정과장’ 캐릭터가 정리해고를 당하는 장면에 할애했다. 정리해고라는 게 그만큼 빈번한 사건이고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방송 이후로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 정리해고가 이야기되고 있다. ‘정과장’의 정리해고라는 이 짭쪼름한 상황을 보며 사람들은 본인의, 자신의 아버지의, 친구의, 쌍용자동차의, 콜트콜텍의 해고를 떠올렸다. 역시 정리해고가 활발하게 이야기되고 있는 까닭은 사람들이 이것을 단순히 예능의 소스로 사용된, 일회적인 사건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현실에서 무섭게 벌어지는 일로 절감했기 때문이다. 콜트콜텍 송전탑 투쟁을 노래한 소히의 <한강 송전탑에는 사람이 살았어>의 가사가 표현하듯이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들이닥친 정리해고는 단순한 알바생인 내가 그려보아도 끔찍한 상황이다.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은 아무 전조도 없이 어느 날 공장 문 앞에 붙여진 종이로 해고통보를 받는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밀어내버리고 남은 공간은 소히가 표현하듯 “폐허”로 전락했다. 사실 “한강 송전탑”에서 내려다본 사회는 온통 “폐허”만이 남은 공간일지도 모른다. “폐허”가 된 공장, 2200여일의 장기 투쟁장 콜트콜텍을 생각해보았을 때 “긴 시간 정말 힘들었으니까”라는 가사가 너무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노동과 예술의 만남

그러나 이렇게 무진장 심각해 보이는 투쟁기록에도 불구하고 지난 화요토론회(이하 화토)에 방문한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와 예술가 팀은 오히려 연구실에 생기를 주고 간 것 같다. 화요토론회와, 끝나고 있었던 뒤풀이에는 “다들 왜 이렇게 말을 잘하시나”부터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은 “인물도 훤하다”는 얘기, “다른 투쟁장보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훨씬 밝은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돌아다녔다. 그들의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와 예술가들의 만남이야기”라는 토론회 제목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직접 밴드를 결성해보니 멀게 생각되던 “예술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느껴졌다는 이인근 지회장님의 밴드 이야기와 직접 지은 <봄>이라는 시를 읽어주시던 방종운 지회장님. 확실히 이들은 더 이상 노동자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콜트콜텍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꿈의 공장>에서 예전에는 기타는 보기만 해도 “징글징글” 했었더라는 한 노동자의 말은 여기서 뒤집어진다. “투쟁보다 밴드일이 더 많더라고요”, 노동자가 예술가가 된 이 상황의 아이러니 속에서 놀라운 힘이 만들어진 것 같다.
‘기타’라는 노동 대상의 특수성 때문일지 정말 다양한 예술가들이 이들에게 결합했다. 그뿐만 아니고 노동자들이 예술가가 되어버렸다. 콜트콜택 노동자들이 만든 밴드 ‘콜밴’에 속해있는 이인근 지회장님이 화요토론회에서 “(멤버마다 음악에 대한 생각이 달라) 밴드가 해체하게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해 화토 참석자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굉장히 웃기기는 했지만 사실 정말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예술가가 되었다. 혹은 적어도 그들의 삶은 예술가들이 ‘아저씨’들에게 바라는 대로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전보다 행복해진” 측면이 있다. 기타를 만들기만 하던 손이 그것을 연주하는 손이 되었을 때 노동자들이 이제 외치는 것에는 단순히 “공장을 돌려라”라는 요구사항만이 아니라 “기타를 쳐라”라는 자신을 향한 말 또한 포함된 것 같다. 이번 화요토론회에 참석자들이 자리를 꽉 메우기도 하였거니와 시간이 지나고도 콜트콜텍에 대한 이만큼의 여운이 남는 것을 보면 누군가 이번 화요토론회를 “히트”쳤다고 말한 것이 과장된 표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콜트콜텍’ 노동자와 예술가가 연대하는 공간

이번 화토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노동자와 예술가가 연대하는 방식이었다. 갑작스러운 철거가 있기 전까지 콜트공장에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차리고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이웃으로 살았다. 특히 전진경 작가님은 그렇게나 콜트공장에서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이 자신들도 거기서 작업을 하고 싶지만 콜트콜텍에 대한 작업만 할 것은 아니라서 조심스러워진다는 말에 대해 “저도 제 작업 할 거고 거기서 꼭 그분들에게 필요한 작업을 하는 게 아니고, 한 공간에서 그냥 그렇게 사는 거예요. 어때요 좋잖아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좋은 작업을 거기서 많이 하는 게 시간이 갈수록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게 실질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런 것보다 이웃이라는 게 힘이 되지 않을까. 각자 가진 에너지를 충돌시키는 것이 서로가 서로 다른 반응으로서 만들어지는 관계가 더 필요한 게 아닌가. 현장에서 작업을 할 생각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많이 하자. 그러면 이웃인 아저씨들도 내가 만드는 에너지를 통해 활력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관계가 되면 멋있겠다.”

여기서 전 작가님이 그리던 연대의 방식은 공간을 나눈다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작가님이 동료작가들에게 “(콜트콜텍 관련 작업을 하는 것) 그런 거 필요 없어요. 그냥 하고 싶은 작업하는 거예요 이 공간이 다 말해주는 거예요.”라고 말했을 때, 이 연대를 “한 공간에서 그냥 그렇게 사는 거” 라고 말했을 때, 콜트콜텍이라는 공간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무언가 운동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혹은 참여를 못하겠다고 했을 때 나도 그렇고 주위 사람들도 “시간이 없다”거나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투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십대 후반이었던 우리가 여러 일에 많이 분노했었지만 직접 뛰쳐나가지도 못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던 것 같다. 이미 집회에서의 투쟁 방식이 띠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것만 한다고 절대(!) 말할 수 없지만 분명히 우리가 현실에서 투쟁을 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고정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투쟁은 뭔가 당사자인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결합해 그들이 외치는 것을 외쳐야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예술가조차 “현장에서 작업을 할 생각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많이 하자”고 했다면, 콜트콜텍에 작업실을 차린 것이 그냥 가서 ‘아저씨’들과 공간을 공유하고 각자 자기 일을 하는 것이었고 예술가들이 보여준 투쟁 방식이 이런 것이었다면, 우리 역시 “그냥 그렇게 사는 거”의 방식으로 단순하게 결합하거나 또는, 내가 할 수 있는 차원의 또 다른 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콜트콜텍 관련 자료를 찾다가 이런 말을 보았다. 밥 딜런도 그렇고 수많은 뜨거웠던 음악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다는 것에 대한 말.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예술가들의 성찰. 인터뷰에서 나온 답은 “밥 딜런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그가 있었기에 세상이 이 정도”라는 것이었다. 만약 방종운 지회장님의 시 <봄>에 나오는, 콜트콜텍에 “깨어진 노동자들의 마음 만져줄” “희망의 손”이 온다면 그것은 예술가들의 손 혹은 예술가가 된 노동자 자신들의 손일 것 같다. 예술에는 그런 힘이 있다. 콜트콜텍이 7년이라는 시간동안 장기투쟁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예술의 이런 힘을 노동자들이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도 이들의 삶은 이 측면에서 이전과 달라졌다고 한다.
나는 그래서 뒤풀이 시간에 한 해고노동자 분에게 물어보았다. 분명히 이렇게 많은 과정을 겪으면서 목표가 달라졌을 것 같은데, 이 투쟁의 마지막 목표가 무엇이냐고. 역시 ‘복직’이라고 답하셨다. 해고노동자들이 청춘과 삶을 바친 콜트콜텍이라는 “공장은 돌려”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분들이 복직을 하더라도 (아마 그럴 거 같긴 하지만) “기타를 치자”고 계속 외쳐주었으면 한다. 이제까지의 아픔을 다 모르고서, 죄송한 말을 하는 것 일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분들이 공장으로 돌아가 다시 노동자로 위치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나는 여기서 큰 힘을 보았다. 앞에서 잠깐 말했듯 나와 친구들은 직접 투쟁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 중 누군가는, 그래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아”라고 말해버린다. 그건 우리가 말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번도 뛰쳐나가보지 않고 한 번도 좌절당해보지 않고, 다른 누군가의 좌절의 경험을 전하는 방식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정말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겪은 분노를 세상에 보여줄 필요는 있다. 이번에 화요토론회를 보면서 참 느낀 게 많다. 지금은 재수생이 된, 십대시절 함께 분노를 나누었던 이들에게 콜트콜텍에 대한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

화요토론회에서 방종운 지회장님은, 낭송한 본인의 시 <봄>에서 해고노동자들의 마음을 말한다. 시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이 땅에 수많은 노동자는/ 분노로 봄을 맞는다./ 터질 것 같은 분노로/봄을 맞는다.”라는 구절에서 봄이 주는 따뜻한 이미지는 “구조조정” 당한 “노동자”의 차가운 현실을 부각시킨다. 아마도 소히가 바라보는, 한강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에게는 “봄”이 왔을 것이다. 그러나 “터질 것 같은 분노”에 잠긴 노동자들은 온전히 “봄”을 맞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용역들이 깔린 공장을 노동자-예술가들이 다시 재 점거 했을 때, 노동자와 예술가가 공간을 공유하고 연대해나가며 “폐허”의 공간을 다시 꾸려나갈 때, “그냥 그렇게 사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자꾸 결합할 때, 이인근 지회장님이 앞으로도 밴드가 해체하는 아픈 마음(?)을 계속 공감할 때 즉 노동자가 자꾸 예술가가 될 때, “조깅하는 사람들”의 “봄”보다 더 나은 종류의 봄은 분명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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