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 일지. 어찌 날씨만의 탓일까?

- 김융희

이제는 혹한이나 날씨등, 기후 변덕에 대한 푸념은 내심 그만 접어 두려고 다져온 터이다. 우선 잦은 넉두리에 내가 지쳤고, 너무 투덜덴다는 불평 불만의 오해가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또 들먹여 넉두리 짖이다. 봄이 한창일 때에도 연거푸 우박이 내렸고, 정성껏 모종을 키워 가꾼 오이와 같은 작물이 냉해로 시들어버리는 이상한 날씨는 4월의 끝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꼴들을 지켜봐야 하는 농사꾼의 속 좁은 투정을 그냥 삭이기란 생각처럼 쉽지를 않다. 또 넉두리이냐며 외면이 아닌, 함께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후의 질서에 어떤 혼란이 분명하다. 오월의 중순으로 접어든 지금까지 나는 벌과 나비를 아직도 보지를 못했다. 얼마전 까지만해도 우리 집 돌배나무에 꽃이 피면 꽃보다 더 많은 벌들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금년엔 그 돌배 꽃이 벌써 시들어 한참 지났음에도 계속 적막하다. 노란 배추 꽃도, 하얀 냉이 꽃도 만발했는데 흰나비는 그림자도 볼 수가 없다. 달이 없는 밤에 휘들러 피는 배꽃처럼, 벌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 꽃들이 측은하다. 봄바람이 살랑데는데도 라일락 꽃 향기가 전혀 없다.

꽃의 개화시기도 예년 같지를 않다. 보통 4월이면 벌써 봄을 알리는 꽃들이 만발했었다. 낮은 곳에 노오란 민들레 꽃이 지천으로 깔리면, 돌배나무에는 흰 꽃무리가 뭉게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이어 벚꽃이 잎사귀와 함께 무리져 화사했었다. 그런데 금년엔 5월 초순에야 피우기 시작한 꽃들이 중순에 접어들면서 이제야 한창이다. 그것도 꽃들의 개화 순서가 전혀 아니다. 꽃을 피우고 잎새를 내거나, 잎새 다음에 꽃이 피는 경우도 헝클어져 저바린 채, 꽃 피는 순서란 양지와 음지의 구분만 있을 뿐이다.

물론 내가 사는 지역 우백당의 경우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우리 지역만 있는 현상일까? 네 계절이 뚜렸했던 기후의 특성도 이젠 볼 수 없다. 몇 년 전부터 맑은 가을이면 산들바람에 하늘거리며 피는 코스모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벌써 여름이면 미리 꽃을 피운 것이다. 물론 꽃도 옛날 꽃처럼 청초한 모습이 아니다. 나는 여간 섭섭했다. 코스모스에게 “예전처럼 가을이 아닌 여름에 꽃을 피운” 그 까닭을 물었다.

코스모스는 나에게 이렇게 속내 마음을 전해 주었다.

『옛날엔 무더위의 여름이 지나면 살랑 바람이 불어오면서 하늘은 맑고 푸르러 초원의 말들도 살이 쩠다. 햇빛도 따사롭고 찬란했다. 정말 마음껏 흔들거리며 춤추고 싶은 기분이다. 그래서 험한 날씨, 찌는 무더위도, 무서운 폭풍과 천둥 벼락도, 참고 견디며 여름을 버텼다. 그 맑고 푸른 하늘아래 시원한 바람따라 살랑거리며 춤추는 가을이 그렇게도 즐겁고 행복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옛 가을이 아니다. 변덕을 부리는 지랄의 날씨는 여름도 봄도, 가을도.. 모두가 그게 그것이다. 그런데 내가 굳이 힘들어 여름을 버틸 이유가 없다. 그래서 지금은 여름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도 피는 것이다. 그것 뿐이다.』

이는 지금이 아닌 오래 전에 내가 어딘가에 벌써 써먹은 내용이다. 물론 나의 억지스러운 추측의 허언(虛言)인 것이다. 질서도 특색도 없이 모두가 뒤엉켜 버린 일들이 어찌 날씨 뿐인가? 세상이 온통 혼돈의 소용돌이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속 좁은 촌노의 기우이기를 바란다. 벌이 없어서 파리를 대신 이용하고 있다는 동료 농부의 말도 들었다. 치아가 망가지면 잇몸이 대신하듯, 현대인들의 그토록 영특을 자랑하는 과학의 능력을 믿고 싶다.

그러나, 글쎄 우리는 지금…

물 한 잔 마시기 위해 말끔한 종이컵을 쓰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열 발자욱도 걷기가 싫어 엘리베이터, 에스카레이터를 이용하고, 손에 물기를 씻으려 와글거리는 드라이어를 마구 틀어데는 화장실에서의 모습이다. 공중 화장실 앞에 걸어둔 두루마리를 젊은이가 열 여섯 번을 감아돌려 화장실에 든다. 요즘 커피점에서 파는 음료의 일회용 컵을 보라.

얼마 전까지는 시골집을 방문한 며누리, 손자들이 수세식 변소가 아니어서 더 이상 머물지를 않더니, 이제는 세척기가 달려 있지를 않아서 불평이란다. 이처럼 서민들의 일상사들이 변하고 있다. 도촌도 없이 공간을 꽉 메운 자동차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 지구는 대혼돈이다. 이같은 무질서의 혼돈에 자연인들 어찌 지탱할 수 있겠는가?

이같은 현실에 나만의 지나친 호들갑이며, 그저 기우라며 모두 외면해야 할 일일까?

나는 아닌 것 같은 데…. 글쎄 잘 몰겠다. 파종의 농사철이 되어 장포에 모종을 하며, 예같지 않는 이것 저것 많은 것들을 보면서, 어쩐지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런 심사를 아는 듯, 꽃이 나를 달래고 있다. 5월의 지난 5, 6일경에 집안에 피운 꽃들의 모습을 담아 여기함께 늘어놓은 푸념이 쑥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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