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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상실의 끝에서 – 일이 무엇일까

- 말자 1

2013.5.14

온전히 말세적(末世的) 삶을 즐기고 있는 요즘이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것 이 외에는 2년4개월, 아니 28년간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그야말로 말세적 삶(-사람들이 나를 보며 말세라고 일컬을 만한 그러한 어찌하면 나태한, 편안한, 재미있는, 조금은 다른 삶) 을 즐기고 있다. 아침에 운동을 하고나면 공복감이 몰려온다. 허기져서 뭔가 요리해먹고는 잠깐 배가 꺼질 때까지 독서를 한다. 그러다보면 너무도 편안한 조도와 바람에, 낮잠을 잔다. 내가 일하지 않아도 세상은 놀라우리만치 평안하고, 조용하고, 생각보다 잘 굴러간다.

이렇게 온전히 쉬고 고민하는 시간을 또 언제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크게 엄청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구글어스로 세계여행을 갈만하고, 싸구려티켓으로 여행을 다니기도한다. 소소로운 국내여행도 일 걱정없이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또한 책을보고 있노라면 시대도, 나라도 초월한 여행을 다녀오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일하는 내내 듣던 이야기가 한국은 OECD 국가 중에 행복지수가 최하라고 하는데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버리자마자 내 행복지수는 전세계 1위가 된 듯하다. 이렇게 내 현재를 나열해놓고 보면 완전히 사토리세대와 다를바 없다는 것을 더 느끼게된다. 돈은 하나도 벌고있지 않지만, 소소한 일거리들로 일부 벌고 있지만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문득, 사토리세대스러운 삶 = 말세적 삶 = 행복한 삶에 가까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삶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이때까지 잊어왔던 ‘쉼’은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온전히 쉴 수 있는 이 시간 망설이지 말고 더 격정적으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든다.

낮잠을 한참 자고 일어나는 오후 4시, 이 나태함과 의욕상실의 끝에서 불쑥 고개를 드는 문제는 하나 밖에 없다. 삶의 다른 구성요소 중의 하나인 ‘일’이다. 도대체 일이 무엇일까,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할까? 나의 20대 후반 친구들을 만나보면 벌써 2-3년 일을 경험하고 이직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고, 나와 함께 이태백의 대열에 합류한 이들도 많다. 일자리에서 비인격적 대우와 모멸감 또는 그 일 자체에 대한 환멸감, 육체적/정신적 고갈로 직장을 나와 다른 삶을 고민하고 있다.

이를보고 어떤 노련한 윗 세대들은 말세적이라고 말하며 냉소를 날린다. “쯧쯧, 말세야. 요즘 어린 것들은 조금만 힘든 일도, 못참고 못버티고 나가요.” 4-50대가 말하는 “조금 힘든 일”은 본인들이 겪었던 세대의 힘듦과는 그 박탈감이 상당히 격차가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의해 “조금 힘듦”으로 치부하고 2-30대를 돌릴 수 있는 부품마냥 사회가 아니, 윗 세대가 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과 억울함이 불끈불끈 솟는다.

여기서 “조금 힘든 일”를 정의해보자면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아무 의문과 자유없이 내도록 엉덩이에 땀띠나도록 앉아, 허리가 휘도록, 콘텐트렌즈 또는 안경의 착용이 당연시 되도록 내몰린 이윽고, 대학교 4년간 아르바이트와 학점 4.5를 향해 코피 흘리며 공부하고도 모자라 취업고시를 격하게 치르고 나서 들어온 직장에서 ‘비상식적 대우, 비인격적 언사, 성장도 미래도 없는 일’을 강요받는 것이다. 이왕 이런 일을 한다면 나는 16년간의 자유를 보장 받고 일은 일대로, 성장과 자유와 자아실현은 내 스스로 하면 될 노릇이었다. 대체 잃어버린 16년은 무엇이란 말인가?

윗 세대들은 아무 조건도 없이-상대적으로 20대들이 그 일자리에 들어가는 조건들을 마주해보자면 그러한 것 같다. 과연 이전의 세대들이 다시 회춘한다면 현재의 20대들이 갖춘 조건들을 갖출 수 있을까- 원한다면 원하는 그 일자리에 들어와
그런 취급을 받으며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성공을 위해서 가족이고, 개인이건 잊어버리고 밤 12시가 되도록 일만하는 삶이 당연시 되던 때라 그것을 강요하는 본인들이 전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단언컨데 이것은 군대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문화 ‘이상하다.’ 아무리봐도 ‘잘못됐다.’

아주 선진적이고 회사문화가 정착된 곳이 아니면, 아니 정착된 곳처럼 보이더라도 일면에서는 밑에 후배가 들어오면 ‘시다’로 취급하고, 그들을 말과 행동으로 일적으로 괴롭히고, 일적으로도 성장가능성이 없는 허접쓰레기 같은 것만 시지프스 돌처럼 시킨다. 정말 이 일하는 문화의 일면 ‘이상하다.’ 아무리봐도 ‘잘못됐다.’

일은 타인에게 서비스와 물화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다. 좀 더 간단하게 보면 남들에게 좋은 서비스와 물질을 제공하고 그 이윤을 취하는 것이 일인 것이다. 그 일이 ‘조금 덜 힘들고, 의미가 있는 일’ 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래서 그것이 자아실현으로도 일부 이어질 수 없는 것일까? 그 많은 외국의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와 소설과 영화와 만화마저 그런 이야기들을 그리는데 이 절절한 한국사회는 그런 일을 찾기 힘들어 내가 이 세상을 득도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토리세대로 만들어버려야하는 것일까.

어떤 일을 해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의문과 고민의 시간을 유보당한채 살아온 16년, 아니 내 생애 전부 28년. 이제 의욕상실의 끝에서 진로탐색이라는 시간을 겨우 받게 되었다. 몸도 마음도 힘겹지 않고 의미있는 일을 찾아 헤매이고싶다. 나름 자아실현이라는 녀석도 찾고싶다. 외국에서는 평생에 걸쳐 이런 고민을 할 시간을 학교에서 준다는데… 때때로 억울한 마음도 드는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사토리세대 마냥 득도해서 만족하고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든 걸 유보하고싶지도 않다. 이 시간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나 역시도 힘들지 않은, 그리고 행복한 지금까지 없던 그런 무언가가 되고싶은 고민을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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