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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출산율이 낮아진다고 한다. 레알? 내 주변에는 결혼과 출산이 넘쳐나는데?

- 말자 2

어느 결혼 이야기 – 1. 청첩장을 받았다. 내가 왜?

2012년 5월 9일 수요일. 하루에 한 개 올까 말까한 카카오톡 문자가 왔다. 모르는 번호다.

-ㅋㄷㅋㄷ 잘 사러?

‘아니, 이건 무슨 언어 파괴?’ 라는 생각을 하며 누가 이런 문자를 보냈나 싶어 프로필 사진을 봤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10여 년 만이었다.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난 이후, 처음으로 내게 연락한 것이었다. 사회적 인간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대충 잘 산다고 대답하며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즉각 답이 왔다.

-ㅋㄷㄱ 당근
-!
-궁금해서 ㅋㄷㅋㄷ말시켜봣오^^

도대체 ㅋㄷㄱ은 뭥미? 한참을 생각해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1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고민해보지만 모르겠다. 하지만 이 문자를 보낸 의도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언어 파괴 안부문자에서 무엇을 파악했냐고? 뭐 서른 즈음한 여자라면 누구나 금방 파악했을 것이다.

결혼! 결혼! 결혼!

나의 센스에 감동하라며 능청스레 ‘너~ 좋은 소식 없어?’라고 묻고 답을 기다리자 동창녀는 예상대로 반색하며 ‘9월에 갑니다.’ 라고 했다. 그러고는 난데없이 고교 동창들과 만나서 놀자고 했다. 대충 얼버무렸다. 나? 연락하고 지내는 고교 동창생 없다. 아니, 고등학교 시절에도 친구는 없었다. 청첩장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세 달이 지났지만 동창녀에게 연락은 없었다. 8월이 되고 초대 명단에서 나를 버렸구나 싶어 룰루랄라 방심하고 있던 순간, 동창녀는 8월 모일로 약속 날짜를 잡아 놓고 시간이 되냐 물었다. 시간이 안 된다고 대답했다. 아쉬워하는 척을 보탰다. 이것이 실수였다. 포기를 모르는 동창녀는 두 번의 거절에 굴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반장과 나를 따로 만나겠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반장. 이름은 기억하지만 성은 기억나지 않는 반장. 하지만 물어보지 못하겠는 반장. 고교 시절부터 두 마디 이상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 그녀와 나를 불러 셋이 밥을 먹겠다고 했다. 세 번은 거절하지 못하는 못난 성격 탓에 나는 한 고급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어야 했다. 나쁜 계집애. 떡볶이이라니!

만남과 동시에 티가 날 정도로 결혼반지를 만지작만지작 하는 그녀를 보며 살짝 애간장을 태우다 “남편 센스 너~무 좋다!”를 연발 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치? 넌 역시 안목이 있다니까?”를 시작으로 그 반지가 어떤 셀레브리티가 애용한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데,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떡볶이만 처먹었다.
그런데 말이다. 알고 보니 그날의 만남에는 청첩장 증정식 외에도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동창녀는 계속해서 내게 연락하고 지내는 동창이 누구인지 물었다. 그녀의 질문 이후 우리는 슬슬 대화를 접어야 했다. 더 많은 청접장을 뿌리기 위해 그녀는 숨어있는 동창 한 명, 한 명을 찾기 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만난 순간 그 목적 달성에 실패한 것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연락하고 지내는 동창이 없었다. 그러자 동창녀는 고등학교 시절에 어떤 무리에서 놀았냐는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2년 동안이나 같은 반이었으면서 몰랐다니! 나는 어떤 무리에서도 어울리지 않았고, 단짝이라는 것도 없었다. 솔직히 그녀가 나의 전화번호를 알고 이렇게 연락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언빌리버블. 아마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리며 아기 새 깃털같은 머리털을 가진, 곧 대머리가 될 남자와 소개팅을 시켜준 ‘한 때 친구라 불리었지만 원수가 된 여자’가 알려주었을 것이다.
별 소득 없이 대화는 자주 끊어졌다. 동창녀는 반장과 다른 동창들의 결혼 생활, 남편 혹은 남자친구의 직업과 연봉, 결혼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도 입을 열었다. 그리고 떡볶이 국물을 싹싹 긁어먹었다.

청첩장을 받고 헤어졌다. 나는 그녀에게 무엇이어서 이 결혼식에 초대받은 걸까?
동창녀는 비록 우리가 단 한 번도 따로 연락하거나 만났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마음으로는 나를 엄청 친해지고 싶은 사람, 절친으로 생각했던 걸까?
나는 그녀와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동안 즉 고교 3년 중 2/3의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냈지만 대화를 나눈 기억도 없고, 스무 살 이후에는 따로 연락한다든지 만난 기억조차 없다. 동창녀는 어째서 나에게 청첩장을 주었으며, 어떤 더 많은 사람을 찾으려 한 걸까?

얼마 전 <화신>이라는 SBS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오프닝에서 한 설문조사 결과를 꺼냈다. 결혼식에서 기대하는 것에 대한 남, 여 설문조사였다. 남자 1위는 무려 첫날밤이었다. (잠깐, 이 결과에 너무 놀라고 말았다. 솔직히 첫날밤이라니. 이 첫날밤이 그 첫날밤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여자 1위는? 그렇다. 축의금이었다. 오호라!

나는 하나의 봉투였던 것이다.

결혼식 당일 파트타임을 얻게 된 나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지정받은바 역할을 다 해 봉투를 보냈다.
결혼식을 마치고 한 달 후. 그녀에게 카카오톡 문자가 왔다.

-[애니팡] **님이 당신을 초대하였습니다. 지금 확인해보세요!

이제 나는 하나의 하트♥가 되었다.

카톡 채팅방의 나가기 버튼을 눌렀다.

이 경험담을 한 친구에게 말하자, 자신은 사이가 좋지 않던 전 직장 선배가 어느 날 갑자기 방긋 웃는 이모티콘을 날리며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렸다고 했다. 우리는 이들의 염치없음을 욕했다.
솔직히 이런 몇몇 생뚱맞은 초대 외에도 ‘이걸 나한테 왜 주지?’ 라는 의문을 가지며 청첩장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청첩장을 나눠주는 마음을 완전히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객 수가 신랑, 신부의 성품과 지금까지의 인생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고 손님이 너무 없으면 초라해 보인다고 수근 거리는 사람이 있는 것이 우리 결혼식장의 현실이다. 그러니 하객으로 참석할만한 사람을 샅샅이 찾고, 염치불구하고 청첩장을 나눠주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하객을 사기도 하는 마당이니 말이다. 또 한편 들어온 축의금 액수로 결혼식이 잘 되었는지 잘 안되었는지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모두가 하객 수와 축의금 액수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혼식에 초대하는 입장에서 어느 관계의 선까지 청첩장을 나눠주는 것이 예의에 맞는지도 혼란스럽다. 이런 때는 옆에서 조언해 주는 이들의 역할이 커진다. “애매한 경우는 일단 주는 것이 나아. 상대방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지. 청첩장 못 받으면 은근 기분 나쁘다?”라는 이도 있을 것이다. 혹은 “얼굴만 아는 직장 동료에게까지 청첩장을 주는 건 실례 아닐까?”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물론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의 몫이다.

나를 하나의 봉투로 생각하지 않는 그러나 청첩장을 줘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희 결혼했습니다. 마음으로 축복해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카드를 결혼식 이후에 보내준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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