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지가 쓰는 편지

어느 특별한 경험

- 윤석원(전 전교조교사)

4. 어느 특별한 경험

유물론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종교적인 본성이 실현된 신념체계 즉 신앙과 같은 모든 의식 즉 정신 현상은 실재의 제3차적 특징이래. 감각적인 것은 2차적인 특징이고 질량이나 에너지 따위 물리적인 특징은 제1차적인 특징이고. 3차적인 특징은 2차적인 특징을 그리고 2차적인 특징은 1차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대. 그러니까 결국은 모든 현상이 1차적인 특징인 물질이나 에너지로 환원될 수 있대. 대부분의 유물론적인 뇌신경학자들은 모든 정신 현상 즉 의식을 뇌의 물리화학적인 반응으로 되돌려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해. 그래서 그들은 만약에 인간에게 종교적인 본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뇌세포라는 물질에 전기 화학적인 에너지가 종교적인 본성으로 작동되는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어야 한 대.

그래서 유물론적이고 환원론적인 뇌신경 학자들은 신이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우리의 뇌의 전두엽의 어떤 프로그램 속에 내재해 있다는 거야. 그 프로그램에 신 개념 모듈이 들어있다는 거야. 그래서 기도할 때 활성화되는 전두엽, 이성과 감정과 의지를 하나의 행동으로 조화시키는 전두엽, 양심 즉 초자아가 머무는 전두엽이 신의 거처라는 거지.

인간이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의 고통을 신 개념으로 진정시켜서 세라토닌이라는 분비물로 위안과 만족을 얻으려고 전두엽이 종교적인 본성 프로그램과 신 모듈을 만들어냈다는 거야. 인간의 의식의 연장 수단인 컴퓨터의 프로그램의 작동 방식은 연산에 따른 전기·화학적인 변화잖아. 환원론자들은 이와 마찬가지라서 인간의 종교적인 의식도 뉴런의 전기 화학적인 변화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거야. 이 말의 뜻은 종교적인 의식이나 신은 실재가 아니라 뇌가 만든 환각이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야.

그런데 이러한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이고 환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진 한 뇌신경학자가 임사체험을 한 이후 과학의 과제는 영혼과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거라는 놀라운 주장을 들고 나와서 화제가 되고 있어. 저자 이름은 이븐 알렉산더(Eben Alexander). 의학박사로 하버드 메디컬 스쿨에서 교수와 의사로 근무했대. 과학 학술지에 150여 편이 넘는 논문을 게재했고, 국제 의학 컨퍼런스에서 200회 이상 연구 발표를 하는 등 뇌의학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은 인물이래.

하버지가 읽은 그의 책은 <나는 천국을 보았다>야. 저자 표현대로 “과학에 헌신하는 삶”을 살던 이가 뇌사 상태에서 영적 세계를 여행한 내용이야. 그는 저 세상에서 신도 만났대. 하버지는 이 사례를 융의 심리학에 비추어 인간의 의식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탐구해 보려고 해. 이 글은 의식에 대한 탐색적인 독후감이야.
저자가 스스로 ‘N of 1(단 하나의 사례)’이 된 것은 2008년 11월. “성인이 자연발생적으로 걸릴 확률은 연간 천만 명 중의 한 명 꼴 이하”라는 대장균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뇌막염으로 7일 동안 의식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에 희귀 사례가 되었대. 7일 만에 다시 깨어나는,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대. 그동안 저자의 뇌는 “잘못된 방식으로 작동한 것이 아니라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또는 “인간의 고유한 면을 담당한다고 설명되는 부분이 완전히 꺼져 버린 상태”였대. “대뇌 신피질이 이미 나가버린 상태”를 엑스레이 사진, 병원 기록, 신경 기록 등 모든 의학적 자료들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저자는 특히 강조하고 있어.

만약에 뇌사 이후에도 뇌와 상관없이 의식이 있었고 그 때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의식의 기원이 뇌가 아니라는 엄청난 사실을 뜻해. 뿐만 아니라 뇌가 만든 자아는 뇌와 함께 죽고 의식의 주체는 뇌가 아닌 다른 어떤 것, 즉 우리가 부인했던 영혼이라고 부르던 것 즉 죽은 사람의 넋과 같은 어떤 것이었다는 사실을 뜻해. 더 나아가 이는 죽음 이후에도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삶을 살아갈 가능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증거일 수도 있고. 따라서 이는 유물론적인 세계관을 단번에 뒤집어 버리는 경험이고 재발견이야. 만약에 이 재발견이 사실이라면 인류가 이제까지 발견한 그 어떤 것보다도 위대한 발견이지.

다만 뇌사 이후에 7일 동안 의식을 가지고 어딘가를 여행하다가 깨어서 돌아온 사례 즉 뇌사 이후에도 의식이 살아있었다는 증거가 단 하나의 사례라서 사람들이 믿기는 힘든 발견이야. 비슷한 임사 체험 사례는 많았으나 대개 잠깐 심장사한 경우지. 7일간의 뇌사 이후에도 의식을 가지고 사후 세계를 경험했다는 보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례야. 그래서 보편적인 증거로 뒷받침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영혼의 재발견이지.

재발견이라는 말을 쓴 것은 비슷한 사례가 아주 많아 충분한 증거일 수도 있었지만 확증적인 증거를 가지고 알아듣게 설명하지 못해서 믿을 수는 없었다는 뜻이야. 이번의 사례는 저명한 뇌신경 의학자의 뇌가 완전히 꺼져 버린 것을 여러 의학 장치들이 증명하는데도 본인은 의식이 살아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어. 그리고 그동안 다른 세계에서 전형 다른 경험을 했대. 7일 만에 살아나서 자기는 유물적이고 환원론적인 세계관을 버렸노라고 고백했어. 그러니 이 사례를 버리거나 무시할 수도 없게 되었다는 뜻에서 재발견이라 한 거야.

우리는 영혼의 존재 말고도 이 사례에서 중요한 사실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 그 중에 하나가 뇌가 의식을 만들어 내는데 부분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는 거야. 위 임사체험을 읽어보면 뇌사 이후에도 ‘나’가 독립된 자아(또는 영혼)로서 겪었던 새로운 경험은 이 세상보다 너무나 또렷해서 깨어난 이후에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었대. 그러나 깨어나서 생각해보니 그때 그는 이 세상의 경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온 누구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는 거야. 그런데 심장사의 경우는 이와 다르게 대부분 짧은 임사체험 시간 동안 저 세상을 여행하다가 문득 자기가 어디서 온 누구이고 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나서 돌아오고 싶었다고 말한대. 뇌사냐 아니냐에 따라서 이세상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이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는 바로 그것은 이세상의 경험을 간직한 뇌의 역할 때문일 거야.

심장만 멈춘 수많은 사례에서는 뇌에 저장된 자신의 경험체계에 따라 자기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보고되었대. 만약에 그렇다면 유체가 이탈되어도 자아가(또는 영혼이) 아직 살아있는 자신의 뇌와 원격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어. 그렇다면 정말 그렇다면 유체가 이탈하고서도 자아가 원격적으로 자신의 뇌와 소통이 어떻게 가능한가하는 문제가 생겨. 또 만약에 심장사한 경우에 자아가 살아있는 뇌와 소통이 가능하다 것은 거꾸로 뇌사의 경우에는 죽어 있는 뇌와의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이 두 경우에 의식이 같은가 다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르고 왜 다른가하는 두 가지 문제가 생겨.

먼저 그 원격 소통의 가능성에 대하여. 유체이탈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유체이탈은 심장사나 뇌사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에도 잠자다가 더러 나타날 수도 있고 최면 따위 심리적인 방법으로 유체이탈을 유도할 수도 있대. 성인의 경우 삼분의 일 정도는 평생에 한 번 쯤 경험할 수 있다는 거야. 하버지도 16세쯤에 친구와 싸우는 데 목을 졸리어 죽었다가 깨어난 것 같은 경험을 했는데 그게 그건지는 확신이 안 서. 어떻든 특수 촬영했다는 영상을 보면 희미한 안개와 같은 형체가 몸에서 분리되어 몸 주변에서 어른거리는 것이 보이는데 그게 유체(幽體)래.

그런데 내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대부분의 유체는 빛나는 가느다란 어떤 줄로 자신의 뇌와 연결 되어 있대. 만약에 이탈한 유체가 자신의 살아있는 뇌와 교신하려 한다면 줄이 없어도 텔레파시로 소통할 수도 있잖아. 저명한 심리학자 C.G. 융은 인간 마음의 심층에는 물리적인 시간·공간의 제약을 초월하는 차원이 존재하며, 거기서는 텔레파시나 투시나 예지 등의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대. 그래서 그는 시공을 초월하여 지각할 수 있는 메카니즘을 동시동조성:(신크로니시티:synchronicity) 또는 동시성 메카니즘이라고 명명했어. 일종의 직관 능력이 잠재해 있다는 거지.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직관 능력을 심령현상이랄 수도 있지. 그런데 융의 동시동조성 이론은 오늘날 양자물리학 시대에는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정신적 현상이래. 그래서 그 연결 끈과 상관없이 원격 소통을 잠정적으로 인정하기로 했어.

융과 같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은 이러한 직관 능력을 실제라고 믿지만 이에 무관심한 학자들 이를테면 프로이드라면 이를 환각이나 착각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런 얘기라면 끝까지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을 거야. 하버지도 이게 사실이라 얘기 꺼리가 될 만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다만 과학이나 사상이나 철학 또는 윤리, 예술은 인간의 다양한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왜 그런지 그 속에 들어있는 진선미의 근거와 가치를 밝히는 과제를 가지고 있어. 그런데 인간의 경험의 근거와 가치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경험은 다 환각이나 착각이라고 무시하는 태도는 겸허한 학문적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 하버지는 반신반의 하면서 모든 인간의 경험들이 평범한 상식이 될 때까지 가설적인 추론을 해보려는 거야.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뇌사 이후에도 의식이 있었다는 것은 의식이 반드시 뇌가 지닌 경험을 이용하여 과거를 기억하거나 미래를 상상하거나 새로운 사물을 해석하거나 경험을 근거로 추론하고 판단할 때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어. 뇌사로 뇌와 연결이 끊어진 위 사례의 자아는 경험의 울타리에서 풀려나서 오히려 더 자유롭게 동시공조의 상태(직관 상태)로 돌아가서 저 세상에서 의식적인 존재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경험을 했을 수도 있어. 그러나 차원이 다른 세계의 경험을 이 4차원 세상의 경험 도식으로는 설명할 수는 없을 지도 몰라.

그리고 뇌사한 저자의 경우에는 뇌의 경험에 따라 지각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던 자아가 동시공조할 수 있는 직관 능력을 가진 본래적인 자아로 되돌아갔을 수 있어. 다른 차원으로 들어간 주체가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다른 차원의 방식으로 경험할 수도 있게 된 거지. 아무튼 이 자아가 뇌사 이후에 뇌를 떠나서도 존재하고 활동할 수 있었다면 이 자아는 유물론자들의 생각보다 더 근원적인 존재야. 이 본래적이고 근원적인 존재가 그들이 말하는 대로 뇌가 만든 환상이나 착각이 아니라 실재라면 그들이 부인했던 영혼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거지. 그리고 그것이 영혼의 재발견이라면 이는 세계관과 인간관 등 수많은 관점과 가치와 의미를 뒤집을 만한 발견이랄 수도 있어.

만일 이 사례가 사실이라면 이승과 저승이 세계가 같은지 다른지, 그리고 뇌가 의식을 만드는데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아내는데 실마리를 찾을 수는 없을까. 우리는 이 뇌사한 임사체험자의 의식을 심장사한 임사체험자들의 의식과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의식과 대조함으로써 알게 된 차이점들로 이승과 저승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의식을 만드는데 뇌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아 볼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을 거야.

먼저 뇌사한 임사체험자의 의식의 특징은 의식이 아주 명징했다는 거야. 감각기관이나 감각 중추 없이도 주변을 지각할 수 있었고 소리나 언어가 아니라 생각만으로 거기의 의식적인 존재와 소통할 수 있었대. 그러니까 감각기관 없이도 동시공조만으로 느낌이 아주 명징한 세계라면 거기 직관 세계는 이승의 4차원 객관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일 거야. 우리의 감각기관은 4차원세계에 맞추어 진화되었을 텐데 거기서 쓸모가 없었다면 거기는 4차원 세계가 아닌 거야. 거기 직관 세계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는 세계는 아니겠지만(그러면 무질서의 세계로 돌아가고 말겠지만) 거기의 어떤 기준이나 질서, 법칙에 따른 생각이라면, 즉 거기서 옳은 생각이라면 맘먹은 대로 되는 세계인 것 같아. 여기서 볼 때는 공상 만화 같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안 믿어지지만.

다음으로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저자 자신이 어디서 온 누구인지 자기 정체성을 알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야. 심장사한 임사체험자들도 대개 뇌사한 경우와 비슷해서 저 세상에서 이런 저런 경험을 한다는 거야. 하지만 자기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 생각이 나면서, 제자리로, 예전의 자아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깨어난다는 거야. 그러니까 심장사한 의식들은 직관적인 의식 세계에 머물지만 객관적인 의식 세계의 경험을 잊지 못하므로 두 차원의 세계의 의식을 다 가지고 있다는 거지.

그러나 여러 가지 근거로 직관세계에 대한 경험의 깊이와 폭이 뇌사한 경우보다 심장사한 경우가 더 얕고 좁을 수도 있겠다는 추론은 가능할 것 같아. 심장사한 자아는 4차원의 세계의 조건에 따라 적절하게 반사하던 체계를 가진 살아있는 자신의 뇌와 동시공조하고 있기 때문이지. 4차원 세계의 경험의 울타리에 갇혀 있던 자아가 다른 차원의 세계에 가서도 4차원의 경험에 비추어 보고 판단하려 할 거야. 그래서 다차원 세계의 의식적인 존재들과 동시공조하는데는 4차원의 경험체계가 오히려 방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홍아야, 이 사례가 보여준 것은 뇌가 만든 또 하나의 착각이거나 환상이든지 아니면 몸을 떠나서도 의식이 가능한 어떤 실재가 있든지 둘 중에 하나야. 하버지는 영혼이라는 것이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야. 그러나 네게 그런 신념체계를 강요할 수는 없지. 다만 우리의 삶의 의미와 가치가 이승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연속성을 염두에 두고 살기를 바래. 그러면 네 세계관도 인생관이나 가치관도 달라질 거야. 기독교의 원죄의식이나 지옥의 공포 때문에 네 삶이 어두어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수많은 세상을 넘나들며 너 자신을 조금씩이라도 완성하기를 바래. 그러면 네가 실현한 가능성만큼 네가 더 행복해지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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