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N 여름강좌 ] 베르그송 – 정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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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스님이 베르그손에 대한 강의를 한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굉장히 의아해하십니다. 과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 철학자인 베르그손과 불교가 갖는 이미지는 서로 좀 멀어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베르그손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가 ‘생명’과 ‘자유’임을 떠올려본다면, 이 두 사람의 사유가 만나 새롭고 재밌는 이야기들 만들어지리란 것을 쉽게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겨울 진행되었던 첫 번째 강의에서는,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이라는 책을 통해, 베르그손 철학의 기본적인 전제가 되는 ‘지속’이라는 연속적이고 질적인 흐름으로서의 시간관을 중점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즉 시간이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몇 분, 몇 초라는 불연속적인 단위로 나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관념은 우리의 외적 지각이 모든 것을 공간적으로 양화시키는 데에서 오는 잘못된 인식일 뿐이라는 베르그손의 독창적인 해석이죠. 그가 ‘자유’를 다루는 방식도 이 개념과 밀접히 연관됩니다.
정화 스님은 기본적으로 이 입장에 동의하시지만, 베르그손이 공간을 시간과 분리시켜서 양화된 것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조금 다른 의견을 보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항상 결합된 형태로 존재하며, 이들이 분리되어 보이는 것도 또한 우리의 인식작용에 의한 현상이라는 것이죠. 이는 인식작용의 언어적인 특성, 유식학에서는 ‘명언종자가 현행한 것’으로 설명되는, 인식이 모든 것을 분별하여 고정시키고자 하는 습관 때문입니다. 또, 이것은 외부의 정보들을 패턴화해서 저장하는 DNA의 생물학적 특성이나 시간과 공간이 상호작용하며 변화한다는 상대성이론의 주장과도 이어집니다. 즉 공간도 시간과 마찬가지로, 양화되고 불연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따라서 ‘자유’에 관한 개념도 베르그손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됩니다. 이처럼 정화스님은 베르그손의 철학에 유식학적 해석들과 현대 과학의 다양한 실험들, 정보들을 가지고 접근하면서 새로운 사유들을 엮어내는 것이죠.

이번 강의에서 다룰 책인 <물질과 기억>에서는 ‘기억’이라는 현상을 통해, 물질과 정신이란 기존의 철학이 주장해왔던 것처럼 ‘분리된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는데요, 기억이라는 게 순전히 정신의 작용만이 아니란 것을 보이면서, 이것을 물질과 정신이 만나는 사건들의 거대한 저장소라고 해석해내는 것이죠. 그러면서 기억, ‘이미지’란 그 배후에 있는 무언가를 표상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임을 주장합니다.
이와 같은 베르그손의 이야기는 인식의 주관(견분)과 인식의 대상(상분)은 독립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며, 하나의 인식이란 이 두 흐름이 형성해내는 장이라고 표현하는 유식학의 해석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정화스님의 사유 속에서 이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될지, 어떤 지점에서 차이를 보이며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게 될지 굉장히 기대됩니다!

평소에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구성 되어있는 건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이나, 시공간이나 감각, 기억 등에 대해 일상적인 해석을 넘어선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이번 강의가 큰 자극이 될 것 입니다. 또 요즘 불교사상이나 동양사상이 왜 현대물리학과 연관되어 등장하는지 궁금하셨던 분들에게도 이 강의가 아주 흥미로울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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