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일기

폭행과 직접지급제도

- 아비(장애인활동보조인)

1. 범죄경력 조회서

최근 활동보조인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것은 활동보조인에게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건강검진 서류와 범죄경력 조회서를 중개센터가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건강검진에 드는 비용도 비용이겠지만(보건소에서 발급받을 수 있는 건강검진서류는 몇천 원에 불과하지만, 병원에서 발급받아야만 하는 해당 건강검진서류는 오만 원의 발급비용이 든다.), 자신의 신상정보를 유출하는 문제였기에 어떻게 대처할지 이야기가 많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011년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당시부터, 활동보조인의 자격과 관련된 조항에는 성범죄경력자나 정신질환자 등은 활동보조인을 할 수 없는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었다(‘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29조). 이러한 개인신상 정보의 요구도 법률로 규정되어 있기에 법적 문제는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미 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그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있었으나, 보건복지부는 물론 지자체, 중개센터들도 아무런 의식을 하고 있지 않다가(이러한 사항은 심지어 보건복지부가 내어 놓은 지침에도 몇 년 동안 적혀있지 않던 사안이었다.) 2013년에 들어서야 활동보조인의 신상에 관해서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법 규정상으로는 몇 년 전부터 엄존하고 있던 사안이었겠지만, 현장에 있는 활동보조인들에게는 새로이 생긴 큰 변화였다.

사회적으로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은 요즈음, 노동자들에게 범죄경력 조회서를 요구하는 것은 활동보조인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택시기사, 외국인노동자, 병원종사자 등. 그 사례는 많다. 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사회적 인식 앞에 노동자가 대동단결하여 저항하여야 하는지, 아니면 밥벌이는 숭고한 것이라며,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만 유난 떨 것은 아니라며, 순응해야 할지 참으로 아리송할 뿐이다.

2. 최근의 폭행사건

최근 한 활동보조인이 장애인 이용자를 폭행한 사건이 보도되었다.1) 나는 해당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이 사건에 중개기관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활동보조 서비스가 장애인 이용자에게 활동보조인을 통해 직접 제공되지만, 현행 활동지원제도에서는 중개센터가 중개수수료를 바우처의 25%까지 취하며 활동보조인을 파견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중개센터의 책임범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논의가 분분할 수는 있으나, 원칙적으로 중개센터는 활동지원인을 파견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파견노동에서 파견업체에 그 책임을 묻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대답이다. 그런데 문제는 작금의 중개센터가 그러한 책임을 질 ‘능력’이 있는지의 여부이다.

3. 현장의 활동보조인이 느끼는 중개기관의 역량·역할

나는 중개센터가 활동보조인의 폭행과 같은 분쟁 사안에 어떤 현실적 대책을 세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중개기관들의 인력상황은 아주 열악해서 코디네이터 1명에 100쌍가량의 장애인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을 관리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서 코디네이터들이 가능한 업무 거의 전부는 장애인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을 연결해주는 매칭업무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료 활동보조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그들 또한 중개기관에 기대하는 바가 없다. 현장에서 느끼는 중개기관의 역량·역할이라고는, 고작 연락처 전달책 정도밖에는 안 된다. 경험이 많은 활동보조인일수록 장애인이용자와 문제가 생겨도 중개기관을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중개기관도 사업인 만큼 노동자인 활동보조인보다 고객인 장애인이용자의 편을 들어주기 쉬운 경향을 띨 수밖에 없다는 점. 둘째로 중개기관이 장애인자립생활운동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장애인당사자주의적 경향이 강하기에 활동보조인의 편을 들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 셋째로 중개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장애인 당사자인 경우도 많고, 그들이 문제상황에서 감정이입하는 대상은 노동자이기보다는 장애인이용자라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이용자와의 문제를 중개기관에 말한다는 것은 그저 시끄러운 활동보조인으로 낙인찍히는 의미 이상의 것은 없다. 장애인 이용자들이 중개기관을 어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바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중개기관은 활동지원제도에서 가장 소외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중개기관의 현장장악력은 인력난으로 인해 거의 제로에 가깝다. 보건복지부가 활동보조인을 ‘개인사업자’로 취급하려는 배경에는 이런 이유도 무시 못 한다고 생각한다. 중개기관이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을 장악하고 있다면 이런 주장은 나올 수가 없다.

4. 폐쇄성

장애인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폐쇄적 공간에 있을 때, 활동보조인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장애인 이용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오던 문제이다. 시설의 폐쇄성이 폭력을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폐쇄적 공간에서만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설 비리의 해결을 위해 시설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간의 폭력문제도 그들의 활동이 집안에서 폐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들의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투명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그 역할을 중개기관이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태도가 파견주체의 책임 있는 태도이며, 자립생활운동의 본래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집도 폐쇄적이라면 시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인력난으로부터 기인한 현장장악에의 무능함 때문에 중개기관은 그저 활동보조인이 착한 사람이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마약을 한 적도 없고 범죄경력이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이는 시설의 폐쇄성은 그대로 둔 채 시설장이 착한 사람이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5. ‘직접지급제’와 ‘개인예산제도’

그런데 최근 일부 장애인단체에서는 ‘직접지급제’와 ‘개인예산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움직임이 보인다. 보건복지부 또한 이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이미 지적된 것처럼, 정부 입장에서도 예산절감이나 국가책임을 완화할 수 있기에 매력이 있는 정책이다.2) 서울시에서도 시도하였으나 중앙체계 때문에 좌절되었다고 하니, 그 도입가능성은 꽤 커 보인다. 하지만 장애인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활동보조 서비스가 시장화 되는 것이기에 그 폐단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주장하는 장애계에서는 중개기관이 수익으로 가져가는 25%의 수수료를 직접 장애인이 활동보조인을 고용할 때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그만큼의 많은 돈을 지급하면 더 많은 활동보조인력이 몰려들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지만, 그러한 판단은 ‘시장’을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활동보조인의 노동과 완전한 대입은 불가능하겠지만, 활동보조인의 노동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설업체들이 이미 있다. 잔심부름센터가 그것인데, 해당 서비스의 요금은 회당 6000원에서 8000원이 기본요금이다. 이를 활동보조인의 노동에 대입해 보자면 그 비용은 현재 지급되는 수가보다 더 많이 든다.3) 시간별 이용료로 책정하는 경우도 최저 시간당 15000원이다. 5시간 이상 줄서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인데, 이마저도 겨울에는 시간당 1만 원의 추가비용이 든다. 거기에 심부름센터로부터 거리가 멀 경우 또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25%의 중개수수료를 장애인이용자가 취한다 할지라도, 시장비용에 맞춰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힘든 일이다.

▲ 2011년 8월 21일 mbc 뉴스 화면

▲ 2011년 8월 21일 mbc 뉴스 화면

이는 활동보조인 입장에서도 그리 반길 일은 아니다. 활동보조인이 ‘개인사업자’가 될 경우, 활동보조인이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보호는 못 받게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은 역시 중개기관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있어서 자립생활센터의 역할은 더 커져야만 하고 그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는 당연히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직접지급제’나 ‘개인예산제’는 중개기관에 대한 지원을 현행보다 오히려 줄이는 제도이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입장에서는 25%의 중개수수료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존립기반을 뒤흔드는 일이다. 활동지원사업을 통한 수익은 센터 운영비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더불어 많은 장애인당사자로부터 제기되는 활동보조인의 전문성 재고를 위해서는 활동보조인의 교육 부분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겠는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활동보조인교육마저 사라지게 되어 현장에서 인권 침해적 사건들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 또한 높다.

6. 코디네이터의 직접고용과 인력충원

활동보조인만 장애인을 폭행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활동보조인력의 10% 정도만이 남성 활동보조인이기에4), 많은 남성장애인이 여성활동보조인을 이용하고 있다. 장애인 이용자가 활동보조인을 성추행하는 사건도 크고 작게 일어난다. 그렇다면 장애인 이용자에게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범죄경력 조회서’를 요구해야만 할까? 앞서 말했듯 나는 그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코디네이터 인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만 하고 코디네이터는 자주 활동지원의 현장에 방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예산제’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논자들도 제도 안착을 위해서는 공적 기관들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으로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당위보다 그것을 이루어낼 조건이다.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열악함 만큼이나, 중개기관 코디네이터들의 열악함도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중개기관이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코디네이터 인력을 감축시키는 것이다. 코디네이터가 현장을 자주 찾아갈 수도 장악할 수도 없는 이유에는, 현행 바우처 제도의 시장성도 한몫한다. 활동보조인이 장애인의 생존권이라면 그것의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일부 장애인들이 주장하는 ‘직접지급제’와 ‘개인예산제’가 정부가 복지예산을 축소하는 빌미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1) 에이블뉴스, 장애인 가정 덮친 65세의 악마, <http://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14&newscode=001420130624152702165943>, 2013.06.27.

2) 이어 종합토론에서 성심여대 이승기 교수는 "장애인계의 경우 그동안 배제됐던 장애인의 선택권과 통제권을 강화하고 행사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반면,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예산절감이나 국가책임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더 두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_ 비마이너, 장애인의 선택과 통제, 개인예산제로 가능할까?, <http://beminor.com/news/view.html?section=1&category=3&no=5615>, 2013.07.12.

3) 잔심부름업체 애니맨의 서비스 이용요금 http://www.anyman.co.kr/?pg_code=230 참고.

4) 에이블뉴스, 답답한 활동보조인 남녀 성비 ‘불균형’, <http://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22&newscode=002220130718175723013106>, 2013.07.19.

응답 1개

  1. cman말하길

    아! 너무 안타까운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현장의 생생한 상황과 장애인 복지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이 큰 도움이 됩니다. 세심한 지적과 대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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