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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출산율이 낮아진다고 한다. 레알? 내 주변에는 결혼과 출산이 넘쳐나는데?

- 말자 2

어느 결혼 이야기 – 4. 주례사 듣는 대신 밥 먹고 싶다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신랑과 신부가 차례로 입장했다. 진행자는 주례를 소개했다. 그는 신랑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운 대학교 교수였다. 사회를 맡은 남자가 주례를 하늘 높은 자리로 올려주었다. 대.다.나.신. 주례의 진행에 따라 혼인 선언을 마쳤다. 이제 일반적으로 결혼식 가운데 가장 재미없고 지루한 절차인 주례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날의 주례사는 지루하지가 않았다. 얼마나 지루하지 않았는지, 듣고 있는 속에서 불이 났다. 그는 먼저 신랑 아버지에 대한 칭찬을 했다. 이어서 신랑 칭찬을 시작했다. 훌륭한 대학을 나와 아버지가 임원으로 있는 대기업에 (모두가 알기로 낙하산으로) 취업한 신랑의 대단함을 칭찬했다. 결혼하는 이들이 서로 복 받았음을 말하려고 하나보다 했다. 이제 주례가 신부의 이름을 불렀다. 주례는 신부를 향해 긴 시간 동안 이야기 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너, 신랑 참 잘 만났어. 행운인 줄 알아! 그러니까 시부모와 신랑에게 잘 하렴!” 나는 신부 측 하객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의 어머니에게 인사드렸다. 그녀의 얼굴이 유독 붉었다.

주례에 관한 이야기 하나 더 있다.
누가 봐도 신랑, 신부와 일면식 없는 주례였다. 인터넷에서 “주례사 양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가 읽고 있던 바로 그 원고였을 것이다. 그는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안 들어도 뻔히 아는, 부부가 되는 이들을 위한 세 가지 덕목을 말하고 있었다. 시시하고 재미없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지루함을 느꼈는지 주례는 대형 이벤트를 시작했다. 첫째 덕목에 대해 다 말해 갈 즈음부터 그는 기침을 시작했다. 그 기침은 끝나지 않았다. 정말이지 끝나지 않았다. 멈춘 듯하여 말을 시작하려나 싶으면 다시 기침이 시작됐다. ‘어떡하나, 물이라도 가져다 줘야하나?’ 하며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바로 축가가 시작되었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모르게 식은 서둘러 끝났다. 주례는 피로연 식사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 식장을 나갔다. 신랑, 신부는 주례를 찾아 재빨리 피로연장으로 달려왔지만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 주례에게 묻고 싶다. ‘괜찮으신가요? 살아 계신 거죠? 그날 기침은 언제 멈추셨나요? 요즘도 주례사 일이 들어오나요? 이번 주말에도 주례하러 가시나요?’

이런 일도 있었다.
아버지가 퇴직한 직후였다. 함께 일했던 30대 직원이 결혼 소식을 알리며 주례를 부탁했다. 몇 번 거절했지만 거듭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고 한다. 어쩌면 별로 거절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에게 주례를 맡긴 사람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평소 아버지가 너무나도 말이 없어서 그는 몰랐던 것 아닐까? 나의 아버지는 공기를 먹는 호흡을 해 무척 작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화낼 때 빼고는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법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걱정은 이것보다 무엇을 말해야 할까에 있었나 보다. 며칠 동안 고민한 후, 아버지는 답을 찾았다. 나를 부른 것이다. 훗. A4용지 한, 두 장으로 주례사를 써오라 했다.
결국 그들은 스물아홉, 결혼도 안 한 사람이 써 준, 결혼하는 부부를 위한 덕담을 듣게 되었다. 그건 그렇고, 궁금하다. 과연 아버지의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들렸을까?

결혼식에 참석한 5, 60대 아저씨들은 매우 쿨하게 축의금 봉투를 내고는 발걸음 가볍게 피로연장으로 향한다. 어렸을 때는 신랑, 신부가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결혼식 진행과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떠들다 밥 먹으러 나가버리는 아저씨들이 이상하게 보였다. 하지만 이제 나 역시 주례사를 듣는 것이 지겹다. 친구 결혼식만 아니라면, 주례사 생략하고 밥 먹고 오고 싶다. 밥 맛있게 먹고 슬쩍 식장으로 돌아와 단체 사진 찍으면 좋을 것 같다. 나도 이럴진대 2, 30대에는 자기 친구 결혼식을 다니고, 이제는 친구 자식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있는 아저씨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결혼 생활 2, 30년씩은 한 아저씨들이 부부를 위한 덕담 들어서 무엇 하겠는가.

주례사의 의미, 유래를 찾기 위해 포털 검색 창에 ‘주례’를 쳐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검색결과가 주르륵 쏟아졌다. 각종 주례협회 사이트가 주르륵주르륵 나온다. 놀랍다. 신세계다. ‘주례사 자격증을 가진’이라는 광고 문구도 등장한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주례의 얼굴을 보고 선택할 수 있다. 역시나 초, 중, 고등학교 교사 혹은 대학 교수 출신이 대부분이다. 결혼 날짜와 시간, 예식장 위치를 적어 신청을 한다. 물론 신랑, 신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사례금을 입금하면 된다. 주례사 시장 역시 결혼 시장의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개 신 앞에서 결혼 서약을 하는 서양의 결혼식 문화 가운데 그 외형만을 우리가 따라하면서, 우리나라 결혼식에서 주례가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종교적 권위자 앞에서 부부가 되어 영원히 하나가 되겠다고 약속하는 서양의 결혼식을 흉내 내면서 주로 초, 중, 고등학교 은사 혹은 대학 교수 앞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례사는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과 다름없다.
때로는 신부 혹은 신랑의 부모와 친분이 있는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가 주례를 보기도 하는데, 그들은 신랑과 신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대신 친분이 있는 부모를 은근히 높여 주는 기능을 한다. 배우자 가족이 기독교 신자이기에 교회 결혼식을 하게 된 친구의 아버지는 주례사만은 자신의 친구가 하면 안 되냐고 계속 중얼거리셨다고 한다. 자신의 무엇을 그는 드러내고 싶었던 걸까.

주례를 선택하는 것도 결혼식 준비과정에서 큰일이다. 하지만 마땅치 않을 때, 돈 주고 산 주례 앞에서 혼인을 서약하고, 그가 혼인이 성사되었음을 선언하는 이상한 경험을 해야 한다. 그가 하는 따분한 말을 들으며 서 있어야 한다. 너무 지겨워 자세가 흐트러질 수도 있다. 그러면 결혼식이 끝난 후 어머니의 잔소리가 쏟아질 것이다. 하객들은 초등학교 아침 조회 시간으로 돌아가 각자 떠들어 대거나, 주변을 기웃댈 것이다. 아! 주례사를 듣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와 함께 사진도 찍어 남긴다.
나와 상관없는 이를 형식적인 주례로 세우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 결혼 문화에서 주례사 절차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랑과 신부, 하객 모두를 위해서다. 현재의 주례 문화,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최근에는 주례 없는 결혼식을 하는 친구들도 많다. 이를 위해서 결혼식 인기 MC를 섭외한기도 한다. 결혼식 MC라는 새로운 결혼 시장이 또한 형성되고 있다. 예비신부, 신랑이 자주 가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진행 잘하는 MC의 연락처와 비용을 공유한다.
이러한 방법 말고 때로는 부모님이나 친분이 두터운 어른이 덕담을 전하기도 한다. 한쪽 부모님이 혼인 선언을 진행하고, 다른 쪽 부모가 덕담을 나눈다. 이럴 경우, 사실 주례사나 다름없이 보일 수도 있지만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덕을 나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때도 주의할 것이 있다.
한 친구가 결혼을 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었다. 시아버지가 덕담을 나누었다. 아뿔사! 아버지가 너무 신나셨다. PPT 자료까지 준비해 오신 아버님! 아버님!!!
그날의 결혼식은 내가 그때까지 참석한 결혼식 가운데 가장 늦게 끝났다. 그날 아버지가 세운 기록은 1년은 지난 지금까지 깨지지 않았다. 신랑과 신부가 그날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맛있었던 갈비탕과 아버지 끝날 듯 끝나지 않던 덕담이 생각날 뿐이다.
그날의 주인공, 시아버지였다.

아. 그렇다면 나의 결혼식은 어떻게 될까?
아. 그보다 먼저, 결혼 할 일은 있을까?

응답 1개

  1. cman말하길

    결혼식도 한 민족과 사회를 대표하는 귀중한 문화적 유산이자 현상인데, 대한민국의 결혼식을 보고 있자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안타까울 때가 잦습니다. 물론 제가 아직 깨닫지 못하는 귀한 의미와 상징이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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